건축가 김석윤의 제주 최초작 옛 수산물품질검사원 철거 눈 앞..."무작정 철거 문제" 

 

▲ 옛 국립수산물품질검사원 제주지원. ⓒ제주의소리

제주시 일도1동 구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옛 국립수산물품질검사원 제주지원 건물의 철거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있다.

최근 김수근 작가의 서울 '공간 사옥'이 국내 문화예술계의 반발로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위기를 모면한 것과 맞물려  제주에도 비슷한 운동이 벌어질 조짐이다.  

제주시는 건물이 오래돼 철거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고, 문화예술계는 제주 대표 건축가 김석윤의 고향 최초작인 만큼 무작정 철거는 안된다며 맞서고 있다. 

수산물검사원은 제주 출신 건축가 김석윤이 지난 1977년 현대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 스타일로 설계한 건축물이다. 고향 제주에는 첫 작품이다. 3년여전 검사원이 이전한 이후에는 빈 건물로 방치돼왔다. 

제주시는 최근 이 건물을 헐고 경로당을 새로 짓겠다는 예산안을 제출했다. 구도심 살리기 운동을 하던 문화예술인들은 즉각 반발했다.

제주국제문화교류협회, 제주문화포럼, 한국여성건축가협회, 문화유산연대, 대한건축학회 제주지회, 문화공간 양, 아트앤 콘텐츠, 비아아트 등으로 구성된 건물철거반대추진위는 25일 오전 문화교류협회 사무국에서 ‘검사원 철거 중단 요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철거가 현실화되면 작년 제주시청 구청사와 더 갤러리 카사델아구아 철거에 못지않은 비극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영림 회장은 성명서를 통해 “무작정 철거가 답이 아니라 전문가로부터 지혜로운 방법을 자문 받아 부수지 않고 재보수와 유지를 할 수 있는 방안으로 진행돼야 한다”며 “이 건축물 자체를 넘어서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지역에 좀 더 문화적이고 세련된 논의를 거쳐 미래지향적인 해답을 찾아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 회장은 “이 건축물은 제주를 대표하는 건축가 김석윤 선생이 고향 제주 땅에 디자인한 최초의 작품인 만큼 구도심의 상징적인 건물로 보존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며 “더 갤러리 카사델아구아를 지키고자 했던 열정과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주 땅을 기반으로 성장한 인물들의 존중”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 회장은 “수산물검역소는 특정 작가 작품 이전에 도시 재생 각도에서 풀어가야 한다”며 “무조건 부수는 것이 아닌 개보수하면서 원형의 흔적을 갖고 가는 것이 지속가능한 제주의 발전과 미래에 대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이 부근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 비엔비판의 신창범 대표는 “제주시청 구청도 그랬고 이런 식으로 주변에 남은 게 사라져버리면 과거의 기억이 없는 도시가 되는 것이 아니겠냐”며 “저 건물을 무작정 그대로 두거나  행정을 막자는게 아니라 구도심 개발 패러다임 자체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제주국제문화교류협회가 25일 협회 사무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신창범 게스트하우스 비앤비판 대표(왼쪽)와 성명서를 읽고 있는 고영림 회장(오른쪽). ⓒ제주의소리

국가소유던 이 건물은 지난 4월 제주도가 매입했다. 제주시는 이 건물을 헐고 예산 9억원을 투입해 2층짜리 경로당을 신축할 계획이다.  이번 달 열리는 도의회의 예산결산심사위에서 이 예산안이 통과되면 시는 내년 1월부터 공사에 돌입할 계획이다.

일도1동 관계자는 “리모델링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지난 8월 주민 자생단체합동워크숍에서 개보수보다 새로 짓는 게 낫다는 의견이 나왔다”며 “건축한 지 36년이 지났고 노후가 돼 리모델링을 하는 것 보다 아예 새로 짓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말했다.

문화교류협회 측은 이 건물이 아직까지 특별한 안전성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고, 구도심의 대표적인 건축물임에도 제대로 된 의견수렴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이 건물에 대한 전문가 심의나 안전성 검사가 이뤄진 적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협회 측은 건물의 유지-철거 여부와 관련해 전문가 집단의 심의와 함께 제주도민 전체가 참여할 수 있는 공청회를 요구하고 있다.

협회는 개인 건물도 아니고 지자체 소유의 공공건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구도심 개발의 방향추가 될 수 있다며 예산 통과를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 회장은 “도시의 건축물과 이에 스민 기억의 편린들은 지역 공동체의 자산”이라며 “부수어야 할 것과 보존해야 할 것을 합리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논의하고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시건축문화유산연구소 ‘지간’의 이사장인 양상호 제주국제대(건축디자인학과) 교수는 “제주를 대표하고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건축가의 첫 작품인데 너무 쉽게 철거된다는 것이 제주도의 문화의식이라는 게 크게 아쉽다”며 “제주에서는 건축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양 교수는 “김중업 건축가의 상징작인 옛 제주대 본관 건물과 제주시청 구청사 건물이 쉽게 철거됐다”며 “지역의 역사를 대표하는 건축물을 그렇게 쉽게 철거하는 것은 너무 아쉬운 일이고 문화의식의 부재”라고 말했다.

이 건물을 설계한 김석윤 건축가는 전 제주문화포럼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1992년 아천건축상, 2004년 제주도문화상, 2009년 한국건축가협회 본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는 제주시 탐라도서관, 한라도서관, 제주현대미술관 등이 있다. <제주의소리>

<문준영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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