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보다 닭이 좋아” 28년 닭집 달인 선장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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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멍 보멍 들으멍, 서문시장] (2) 백양닭집 김형주·김애옥 부부 / 정신지

<제주의소리>의 주말 코너 ‘걸으멍 보멍 들으멍’에서 제주 곳곳을 누비며 할망 하르방들의 소박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온 인터뷰 작가 정신지가 이번엔 제주 전통시장에서 걸으멍 보멍 들으멍 글을 쓴다. 그녀는 일본에서 12년간 유학생활을 했고, 그 사이 유목민처럼 세계 17개국을 떠돌며 사람과 사회, 지역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일본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에서 문학박사(지역연구학) 과정을 수료한 그녀가 타고난 역마살을 내려놓고 지난해 초 고향 제주로 돌아와 할망 하르방들을 만나는데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왔다. 이제 그 발길을 잠시 전통시장으로 돌려 올해 문화관광형시장에 선정된 제주서문공설시장에서 상인들과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녀의 펜 끝이 전하는 시장사람들의 사람냄새 진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시장 한편에서 28년째 닭집을 경영하는 동갑내기 부부, 김형주·김애옥 씨(1959년생). 금실 좋은 부부의 닭집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남편은 솜씨 좋게 닭을 손질하고, 그 곁에 나란히 선 아내는 그것을 맛깔나게 튀겨내고 양념을 한다. 지글지글 바싹 튀겨낸 통닭은, 내놓기가 바쁘게 후다닥 팔려나간다. 주말이면 예약주문이 밀려서 찾아오는 손님을 못 받을 때도 있을 만큼, 백양 통닭은 동네 주민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유명한 맛집이다.

김형주 씨의 고향은 전라남도 고흥. 총각 시절 여수에서 커다란 원양선의 뱃일을 하던 중, 제주가 고향인 어여쁜 처녀 김애옥 씨를 만나 연애로 결혼했다. 그리고 큰딸이 2살이 되던 해 제주로 거처를 옮기고 지금의 장사를 시작했다.

▲ 제주서문시장의 소문난 맛집 '백양닭집' 김형주·김애옥(55) 부부는 동갑내기다. 원양선 선장 출신의 전라도 사나이 남편과 애교가 철철 넘치는 제주댁 부인은 28년간 시장에서 '진짜 제주표' 닭으로 서문시장을 지켜왔다. '닭살 커플'같다는 소리에 부부가 웃음보가 터졌다.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아이고, 처음에는 장사가 정말 안됐죠. 지금이야 마트도 있고 치킨집도 있어서 매일 먹고 싶으면 닭고기를 사 먹지만, 옛날엔 안 그랬어요. 닭은 삼계탕 할 때나 먹지, 제주도 사람들은 닭고기를 많이 안 먹었었어. 게다가 우리 집사람은 제주가 고향이어도 부산에 오래 있었으니 육짓말을 썼었거든요. 나는 전라도 사람이고 하니까 적응하는데도 시간이 걸렸고. 처음 일 년은 하루에 한 10마리나 팔았었나? 한 마리 팔아봤자 남는 것이 700원 정도였으니까 하루에 돈 만 원 벌기가 얼마나 힘들었었다고!”

당시 서른도 채 되지 않은 동갑내기 부부는 잘살아보겠다고 아내의 고향인 제주에 터를 잡았다. 그러나 모든 일이 처음부터 순조로울 리는 없었다. 그도 그런 것이, 젊은 시절 드넓은 태평양바다를 항해하며 몇 개월씩 배를 타고 뱃일을 하던 아저씨에게 있어 시장 골목의 닭집은 그야말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 지옥과도 같았다. 장사가 잘되면 또 모를까, 망망대해를 누비던 커다란 스케일에서 조그마한 닭집으로 삶의 공간이 바뀌자 아저씨는 ‘욱’ 하는 성격에 늘 화만 났었다. 당시를 회상하며 김형주 씨는 말씀하신다.

“도저히 장사를 해도 안 되는 거야. 이런 식으로 어떻게 먹고 사느냐고 만날 집사람이랑 싸우고, 몇 번이나 다시 육지로 가자고 설득을 했는데 안 가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마지막에는 정말 화가 나서 내가 집을 나와 버렸어. 그 길로 다시 원양어선 배를 타고, 한 6개월을 또 바다에서 일을 하게 됐죠. 당시 나는 그 동네에선 가장 나이가 어렸지만, 선장자격도 있었거든요. 선장으로 일하면서 말레이시아 어딘가를 항해하고 있는데, 어느 날 제주도에서 무선연락이 온 거에요. 받아보니까, 아내가 일하다가 손가락을 잘렸다고. 장사를 더 이상 못 하니까 집으로 오라고 그러는데, 아주 심장이 벌컥 했지! 그래서 그 길로 제주도로 돌아왔는데, 이건 뭐…”

하면서 아저씨는 수줍게 킥킥 웃으신다. 이야기의 결말인즉슨,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더니 아내의 손가락은 아주 멀쩡했었다는 거다. 칼에 살이 베어 작은 상처가 나 있었을 뿐, 태산 같은 걱정을 안고 바다를 건너 제주로 돌아온 아저씨는 아내의 아무렇지도 않은 열 손가락을 보고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고…. 배 타고 나간 고집쟁이 남편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 손가락이 잘렸다는 귀여운 시나리오를 꾸며낸 아주머니 역시, 지난 시절을 회상하시며 크게 웃으신다. 그렇게 제주에 돌아온 것이 마지막 항해. 그 후로 아저씨는 선장 일을 관두고 서문시장 백양닭집에서 뼈를 묻을 결심을 하셨단다. 다시 크게 마음을 먹고 가족들과 함께 살아갈 결심을 굳히고 나니, 일도 순조로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맘때 즈음, 고향 선배이던 지인이, 양념 통닭에 관한 아이디어도 내 주었고, 맛있는 닭을 튀겨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거듭한 결과 성과가 하나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 김형주(55) 씨는 원래 바다 사나이다. 원양선 선장 출신의 그가 배의 '키'를 놓고 닭집에서 '칼'을 잡은지 어언 28년이다. 부인이 닭 튀기는 달인이라면 그는 닭을 손질하는 도사다.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 백양닭집 안주인 김애옥 씨(55). 그는 바삭하고 고소한 닭을 튀겨내는 달인이다.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당시에는 한림읍에 호프집이 많았었어요. 신제주에 사람들이 몰리기 전엔 한림읍에 사람들이 많이 와서 살았으니까. 거긴 항구도 있고 뱃사람도 많고 하니 술집에도 늘 손님이 많았거든요. 그렇게 어느 날 부턴가 한림 호프집에서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우리가 닭을 튀겨서 택시로 배달하기 시작했죠. 지금 말하는 퀵서비스처럼. 그렇게 손님이 늘어나고 호프집에서 우리 닭을 사기 시작한 후로 하루 매상이 엄청나게 오르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10마리도 안 팔리던 것이 한 2~3년 넘어가니까 100마리 정도가 팔리데요. 저희 부부에게는 기적 같은 일이었죠. 그러니 집사람도 더 자신감을 얻고 가게에 신경을 쓰고 어떻게 해야 맛있게 하는지 늘 연구를 했어요. 그 후엔 소문을 듣고 손님이 계속 찾아왔고. 그때부터 오기 시작한 사람들이 아직도 단골로 이어지고 있죠.”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손님 한 분이 오셔서 정겹게 김형주 씨와 말씀을 나누신다.
“우리는 큰 아이가 다섯 살 때부터 여기서 통닭을 사 먹었어요. 그 아이가 벌써 스물여덟이니까, 아이고 23년이나 여기 온 거네. 시장 오면 꼭 여기 들려서 닭 한 마리 튀겨가고 그래요. 아무래도 닭이 신선하니까, 여기 것을 먹다가 다른 곳에서 치킨 먹으면 맛이 하나도 없어. 살도 딱딱하고, 뭔가 속는 것 같고. 여기 맛이 제대로 된 닭 맛이지. 게다가 우린 달걀도 꼭 여기서 사요.”

바로 튀겨낸 닭을 봉지에 담아 건네고, 그것을 즐겁게 받아가는 모습이 참으로 정겹다. 이들 부부에게 있어서 손님은 가족 같은 존재. 그날그날 잡아온 신선한 닭고기를 오래된 노하우와 비법으로 맛있게 튀겨내어 손님에게 내고, 모든 맛 하나하나에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끼신다는 김형주 씨. 그 언젠가 배를 타고 태평양을 항해하던 선장님의 마음처럼, 작은 가게일지언정 커다란 책임감과 성실함으로 백양닭집을 오늘까지 이끌어왔다. 물론 그 곁에는 공동사장님이신 아내 김애옥 씨의 사랑스러운 손길이 늘 함께였다. 시장 안에서는 아직도 ‘닭집 젊은 부부’로 통하는 그들이지만, 큰딸이가 손주를 낳아 이제 그들은 ‘닭집 젊은 할머니 할아버지’다. 일 년 365일 쉬는 날 거의 없이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바쁜 부부이지만,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모습으로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을 커다란 보람으로 느끼신다고.

▲ 김형주·김애옥 부부는 작은 가게일지언정 커다란 책임감과 성실함으로 백양닭집을 오늘까지 이끌어왔다. 신선한 제주 닭과 계란을 파는 부부의 닭집에선 "제주산 맞아요?"라는 질문이 무색하다.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 백양닭집에는 유난히 단골들이 많다. 28년을 한결같이 신선한 닭을 튀겨오면서 2대, 3대가 단골인 손님들도 있다. 안주인 김애옥 씨가 단골 꼬마손님들에게 푸짐한 튀김 닭을 싸주면서 기념포즈를 취했다. '치~~~킨'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여기저기 치킨집이 생기고, 이제 닭을 사러 사람들이 대형마트로 발길을 돌릴지언정, 아는 사람만 아는 좋은 닭집으로 언제나 기억되면 좋겠어요. 닭을 언제 누가 잡아서 누가 손질하고 튀겼는지, 과정이 눈에 보이는 그런 관계를 계속 손님들하고 유지해 왔으니까. 그렇게 신용으로 믿어주는 손님만 와 주어도 감지덕지해요. 가끔 젊은 사람들이 와서 제가 튀긴 닭이 왜 갈색이냐고 물어보는데, 그건 저희가 오만가지 양념을 아끼지 않고 많이 바르기 때문에 그런 거에요. 기름이 나빠서 그런 것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희는 기름에도 무척 신경을 쓰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흔한 체인점이나 마트에서 튀겨 파는 닭은 눈으로 봤을 때 맛있어 보이는 노란색이지만, 중요한 것은 튀김의 색깔이 아니란 말이죠. 무엇보다 고기 자체가 얼마나 신선하고 맛이 있는가를 사람들이 더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노랗게 튀겨서 맛깔나게 포장하는 것은 일도 아니거든요! 어디서 왔을지도, 얼마나 되었을지도 모를 냉동 통닭들을 아무런 의심 없이 먹는 것이 더 안쓰러운 일이죠.”

그들이 파는 닭은 마트보다 신선하고 맛이 풍부한데다가 가격도 저렴하다. 닭이 맛있어서 백양통닭을 찾기도 하지만, 골목 시장의 맛좋은 닭집에는 마트에는 없는 정겨움이 있다. 지글지글 닭이 튀겨지는 모습을 눈앞에서 바라보며 애교 만점인 아주머니와 수다를 떠는 즐거움도 있다. 빠르고 화려한 것을 먹고 보고 듣는 것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서문시장 표 원조 프라이드치킨은 힐링이고 향수다. 한 10여 년 더 이 일을 계속하고 은퇴하겠다는 부부에게 은퇴 후 계획을 물으니 아주머니는 세계 각국으로 여행을 다니고 싶다고 하신다. 그렇다면 아저씨는? 망망대해를 누비던 선장이 되어 다시 바다로 돌아갈 작정이냐 장난삼아 물었더니, 부끄러움 많은 아저씨는 침묵하고 아주머니가 대신 답하신다.

 

▲ 정신지 인터뷰작가.  ⓒ제주의소리

“애들 아빠는 이제 긴 여행을 잘 못해요. 이상하게 비행기를 오래 못 타. 그래도 미국에는 한번 가보고 싶다고 그랬던 거 같아요. “
“미국 가셔서 정통 켄터키 프라이드치킨하고 튀김 통닭으로 한 판 승부 붙어보시려고요?”
하고 묻자, 아저씨가 대뜸,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이 뭐야?” 라신다. 28년 통닭을 튀겨오셨지만, 아직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을 모르신다는 튀김 통닭의 달인. 하긴, 모르면 또 어떤가! 자신만의 방법으로 28년을 갈고 닦아 온 그 맛이기에 다른 것과 비교될 필요조차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금술 좋은 부부의 ‘서문시장 튀김 통닭’을 아직 맛본 적이 없다면 틀림없이 당신은 손해다. 오늘도 어김없이 즐겁고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기는 서문시장 한편에, 자랑스러운 ‘진짜 제주표’ 프라이드치킨이 있다. <제주의소리>

<정신지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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