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도 그녀의 긍정 앞에선…, 35년 한복 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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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시장, 걸으멍 보멍 들으멍](3) 크로바한복·네나도록 대표 김순복 씨

<제주의소리>의 주말 코너 ‘걸으멍 보멍 들으멍’에서 제주 곳곳을 누비며 할망 하르방들의 소박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온 인터뷰 작가 정신지가 이번엔 제주 전통시장에서 걸으멍 보멍 들으멍 글을 쓴다. 그녀는 일본에서 12년간 유학생활을 했고, 그 사이 유목민처럼 세계 17개국을 떠돌며 사람과 사회, 지역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일본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에서 문학박사(지역연구학) 과정을 수료한 그녀가 타고난 역마살을 내려놓고 지난해 초 고향 제주로 돌아와 할망 하르방들을 만나는데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왔다. 이제 그 발길을 잠시 전통시장으로 돌려 올해 문화관광형시장에 선정된 제주서문공설시장에서 상인들과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녀의 펜 끝이 전하는 시장사람들의 사람냄새 진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 23살에 시작한 한복 일을 만 35년간 오직 긍정의 힘으로 걸어와 지금은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자신하는 김순복 씨(59). 직접 천연염색으로 물들인 우리 옷으로 '네나도록'은 세련된 디자인과 독특한 색감으로 멋쟁이들의 눈길을 한 번에 사로잡고 있다.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 제주서문공설시장 동남쪽 초입에 자리한 크로바한복 입간판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세상을 낮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 나의 장애를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 그이의 얼굴이 소녀와도 같다. 고운 미소에 상냥한 말투로 늘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김순복 씨(1955년생)는 서문시장에서 올해로 35년째 한복을 만들고 있는 크로바 한복·주단 집의 여사장님이다. 약 5년 전부턴 천연염색 우리 옷인 ‘네나도록(너와 나의 작품)’이란 브랜드를 탄생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은 그저 평범하기만 한 한복집이 아니다. 물론 여느 한복집과 다름없이 한복과 주단을 만드는 일은 하고 있으나, 사실 김순복 씨는 제주를 대표하는 천연염색가이자 생활한복 디자이너로 전국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다. 제주 갈옷을 이용한 천연염색의상과 원단을 서울 인사동을 비롯한 전국에 납품하고 있으며, 제주 벚꽃 축제 기간에 개최되는 그이의 패션쇼에는 유명한 연예인들도 참가한단다.

갈옷의 기본염색을 바탕으로 수많은 천연색을 덧입혀서 만들어진 형형색색의 의상들은, 세계적인 패션잡지에 등장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하나같이 개성 만점이다. 웬만한 멋쟁이가 아니면 소화해내지 못할 멋진 디자인과 보기만 해도 즐거워지는 색상에 오는 손님마다 감탄이 끊이지 않는 그이의 한복 집. 의상뿐만 아니라 곳곳에 놓인 장신구며 가구에도 제주의 감물 빛이 가득하다. 이런 이색적이고 다채로운 공간이 서문시장 한 귀퉁이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울 따름이다.

▲ 서문시장은 김순복 씨의 삶의 무대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이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멀리 한림읍에서 채소나 바닷고기를 팔러 왔던 곳이 지금의 서문시장이다. 지금은 그녀가 노모에게 든든한 기둥이 되고 있다. 노모와 함께 한 김순복 씨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김순복 씨에게 있어서 서문시장은 포근한 집이고, 고향이며, 커다란 꿈의 발판이자 삶의 무대와도 같은 곳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이고 어머니를 도와 농사일과 바느질일을 도왔다던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멀리 한림읍에서 채소나 바닷고기를 팔러 왔던 곳이 지금의 서문시장이다.

가난했던 집안 사정 때문에 어린 동생들을 위해 자신의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김순복 씨는 스물 셋의 나이에 제주시로 나와 서문시장에 터를 잡았고, 이곳에서 바느질 하나로 수많은 꿈을 이루어냈다. 한평생 쉬지 않고 일을 해 온 그녀이지만 단 한 번도 일하는 것이 싫었던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그이에게는 인생을 살며 잊히지 않을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두 번 있다. 자신의 ‘결혼식’과 ‘고등학교 입학식’이 바로 그것이다.

“1985년 5월 1일에 결혼을 했어요. 너무나 날씨가 좋고 유채꽃이 만발했던 날이었죠. 나이 먹고 뒤늦게 방송통신고등학교에 들어갔기 때문에, 당시엔 시장 구석 세 평짜리 방에서 동생과 먹고 자고 하면서 정말 밤낮없이 살았었어요. 그런데 제가 결혼 하던 그 날 하루만큼은 정말 아무 일도 안 하고 모든 사람이 나만 축복해주었던, 세상에 하루밖에 없던 날! 살면서 처음으로 모든 일을 내려놓고 웃고 행복해하기만 했던 하루였으니까요. 아이들 아빠도 나와 결혼하기로 해 놓고 집안의 반대도 심했었고, 둘 다 맘고생 참 많았었던 시절이었는데, 그런 것 다 무릅쓰고 결혼에 골인한 날이니까 평생 잊을 수 없죠.”

▲ 갖가지 아름다운 빛을 뽐내는 한복 주단과 김순복 씨의 손끝에서 물들여지고 바느질로 탄생한 작품들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또래 친구들이 모두 학교에 다니는 어린 나이에 공부 대신 일을 해야 했던 그이였지만, 비록 자신은 학교에 못 가더라도 대신에 동생들이 학교에 갈 생각을 하면 일을 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고생하는 어머니가 조금이나마 편해질 것을 생각하면서 일을 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었다.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 했다기 보다, 그이에게 있어 지난날의 노동은 지금의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준 가장 큰 발판이 되었다고. 그렇게 밤늦게 까지 좁은 서문시장 가게 안에서 바느질을 하다가도, 라디오에서 나오는 방송통신 고등학교의 강의를 들으며, 언젠가는 고등학교에 꼭 가겠다는 다짐을 굳혔다. 결국, 그 꿈이 이루어져 막냇동생과 나란히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그 날을, 그이는 잊을 수 없다.

“사실 나는 내가 고등학교에 가더라도, 직장에는 분명 못 들어갈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몸도 약한데다가 이렇게 척추 장애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때는 장애인에 관한 사회  의식도 미약했었잖아요. 어머니도 나 때문에 많이 울었고, 주변 사람들도 내 걱정을 많이 했었거든요. 저 역시 사춘기 때까지는 스스로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고등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내리고 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나에 관해  알아가기 시작한 거죠.

하나하나씩, 꾸준히 한 길을 걸어오면서 꿈을 꾸고 그것을 차곡차곡 이루어 오면서, ‘모든 것은 내 의지에 달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어려운 일도 실패도 많았지만, 늘 마음속에 1년 후, 2년 후, 3년 후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 지금 당장 어렵다는 사실에 연연할 여유조차 없어지거든요.

지금 현재에 힘이 든다는 건 사실 나중을 위한 꿈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당연한 증거니까. 뭐든지 해서 안 되는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정말 그냥 하면 되는 건데, 안 하고 두려워만 하니까 안 되는 일들이 대부분이죠. 모든 게 다 내 인생인데, 해서 안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지! 결국, 바느질해서 학교 보낸 동생들은 대학까지 갔고, 그중 하나는 아동문학 작가가 되었어요. 정녕 글 쓰는 걸 좋아했던 것은 나였는데 동생이 작가가 되었어요, 하하하.  게다가 바느질도 꾸준히 하다 보니 그걸로 가게규모도 넓히고, 그렇게 계속 배우면서 조금씩 하나씩 일구어 나가다 보니 오늘이 온 거죠.”

▲ 서문공설시장에서 크로바한복을 운영 중인 김순복 씨(59)는 척추장애로 지체4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이다. 그러나 23살에 시작한 한복 일을 만 35년간 오직 긍정의 힘으로 걸어와 지금은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자신하는 그녀다. 그녀가 직접 천연염색으로 물들인 우리 옷으로 '네나도록'이란 브랜드도 만들어 인정받고 있다.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그이가 만든 의상들의 색은 천차만별, 고운 명주 원단에 감물을 들이고 그 위에 천연염색을 반복해 이루어낸 색이니 어느 하나도 같은 빛깔의 것이 없다.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많으면 열 번도 넘게 염색을 반복한다는 설명을 들으니, 김순복 씨의 인생철학이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결, 한결 정성을 다해 염색을 하고, 한 땀 한 땀 차곡차곡 쌓아올린 바늘땀의 노력이 맞물린 결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근사한 옷이 완성되는 것을 김순복 씨는 지난 35년간 서문시장에서 몸소 체험해 왔다.
 
게다가 김순복 씨는 지금껏 살아오며 자신보다 불우한 처지에 놓인 이웃을 돕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종일 시장 한 편에 보따리 하나 들고 나와서 행상을 하는 할머니들은, 지금도 물건이 팔리지 않아 처치 곤란해지면 김순복 씨를 찾아오신다고. 그러면 절대 거절하지 않고 무작정 물건들을 사들이신다. 한복집에서는 팔기 힘든 물건까지 대신 팔아달라고 부탁하는 할머니, 싸게 줄 테니 다 가져가라는 할머니들의 요청을 그이는 단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

그렇게 사들인 과일이며 채소를 또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살아왔다. 그 결과, 그런 어머니를 보고 자란 1남 2녀 역시 꼭 어머니를 닮았다. 아직 학생이라 용돈을 받아쓴다는 막내아들도, 용돈을 타는 족족 미혼모 가정, 북한 어린이, 아프리카 어린이를 돕는 자선단체에 후원금을 보낸다는 말씀을 하시며 김순복 씨는 웃으신다. 결국, 자신의 돈이긴 하지만 어머니는 그런 아들이 마냥 기특하신가 보다.

▲ 매듭은 잘 풀면 술술 풀리지만 꼬이면 한없이 꼬이는 법이다. 김순복 씨는 자신의 인생에 닥친 매듭을 차근차근 풀어가는 재주가 있다. 어렵고 힘들어도 노력하면 안되는 것이 있으랴란 생각으로 차곡차곡 풀어간다. 디자인이나 염색을 전공한적이 없지만 그만의 노력과 열정으로 모두가 인정하는 '네나도록(너와 나의 작품)'의 이름으로 우리옷과 천연염색 작품들을 알리고 있다.  그녀가 직접 물들여 만든 매듭 목걸이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늘 가슴에 꿈을 안고 끊임없이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 그이는, 사실 디자인이나 염색을 전문적으로 전공한 적도 없다. 그렇다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멋진 디자인과 색감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비결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하신다.

“여자들은 뭐든 다 할 수 있어요. 디자인이나 염색은 결국 집안일하고 똑같은 거. 그냥 제가 매일 하는 일이잖아요. 밥하듯이 하는 거예요. 하하하. 매일 밥 지을 적에, 거기 가끔 현미 쌀 넣는다고 방법이 달라지고 맛이 완전히 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염색도 디자인도 그렇게 하는 거예요. 틀릴까 봐 망칠까 봐 무서워하지 말고, 그냥 어차피 내가 하는 내 일이니까 이렇게 저렇게 구사하면서 다른 방법을 찾고, 시도하고 하다 보면 재미도 있고 늘 새롭지만 내 입맛에 맞는 것들이 만들어지는 거죠. 반찬하고 밥 짓듯이, 저는 그렇게 일해요.

자질구레한 것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집안일 하면서 엄마들이 어디 잔머리 굴리나요? 자기 아이들 밥 지어 먹이는 것이 최우선이고, 건강하게 다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목표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도 받아들이면서, 쓰러지면 털고 또 일어나면서. 여자는 다 할 수 있어요. 남자라면 또 모를까, 하하하.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내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열심히 사는 거죠.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면서.”

이렇듯 너무나 당당하면서도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걷고 계신 김순복 씨를 만나고 나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든든하고 따스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더 큰 곳을 향해 큰길 위로 걷고자 할 때, 시장 한 모퉁이에 뿌리를 묻고 살면서도, 남들보다 조금 낮게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 장애 아닌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슴에 커다란 세상을 품고 살아온 그이는 참 아름다운 사람이다.

오늘도 크로바 한복집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가게 한편에서 딸이 만든 감물 퀼트 이불을 따스하게 덥고 앉아 귤을 까먹는 그이의 노모 얼굴에는 무지개와 같은 행복한 주름살이 깊게 파여 있다. 김순복씨를 도와 한복집 일을 돕는 작은 딸과, 어학원 강사로 일하는 큰딸의 가슴에도 더 큰 세상을 배워 멋진 여성으로 독립하고 싶다는 꿈들이 돋아나고 있고, 아드님 역시 열심히 공부 중이다. 그러니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으랴. 김순복 씨 역시, 곧 천연염색 박물관까지는 못 될지언정 제주의 천연염색을 세계에 알리는 작은 보금자리를 마련하고자 또 다른 꿈을 준비 중이시다. 꿈으로 가득한 서문시장 한 귀퉁이의 크로바 한복집은 오늘도 형형색색의 즐거움이 모락모락. 서문시장에는 보물도 참 많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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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1
하영환 2013-12-01 20:42:27
순복씨! 오랫 만입니다. 항상 부지런히 사는 모습 정말 존경 스럽습니다. 앞으로도 건강 하시고 쭈~~~욱 화이팅 하시길.../...
27.***.***.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