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은 ‘소방대장님’ 남편은 ‘환경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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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시장, 걸으멍 보멍 들으멍](4)학사식당 대표 윤치영·임연수 씨 부부 / 정신지

<제주의소리>의 주말 코너 ‘걸으멍 보멍 들으멍’에서 제주 곳곳을 누비며 할망 하르방들의 소박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온 인터뷰 작가 정신지가 이번엔 제주 전통시장에서 걸으멍 보멍 들으멍 글을 쓴다. 그녀는 일본에서 12년간 유학생활을 했고, 그 사이 유목민처럼 세계 17개국을 떠돌며 사람과 사회, 지역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일본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에서 문학박사(지역연구학) 과정을 수료한 그녀가 타고난 역마살을 내려놓고 지난해 초 고향 제주로 돌아와 할망 하르방들을 만나는데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왔다. 이제 그 발길을 잠시 전통시장으로 돌려 올해 문화관광형시장에 선정된 제주서문공설시장에서 상인들과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녀의 펜 끝이 전하는 시장사람들의 사람냄새 진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서문시장에는 저렴한 가격에 맛있고 다양한 메뉴를 볼 수 있는 맛 집이 줄줄이다. 몇 해 전부터 서문시장 표 ‘원스톱 메뉴’(시장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다가 원하는 식당에서 반찬값을 지불하고 식사하는 스타일)가 붐을 일으키면서, 양질의 제주산 흑돼지와 한우를 먹기 위해 시장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사실 맛있는 것은 고기뿐이 아니다. 거의 모든 식당마다 30년 이상씩 이어져 오는 각각의 메뉴가 있다. 얼큰한 순대국밥, 구수한 고기국수, 마음까지 뜨뜻해지는 매운탕, 제주 토속요리 새끼회, 때 되면 나오는 신선한 자리물회며 가오리회 등등. 어느 식당을 골라 들어가도 후한 인심과 손맛을 맛볼 수 있는 서문시장 식당가는 전부터 제주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온 정겨운 곳이다.

▲ 35년째 학사식당을 운영 중인 임연수 씨(64). 식당을 찾는 중년의 아저씨 단골들은 그들이 학생이었을 시절 주린 배를 달래주던 사장님을 아직도 어머니라 부른다. 학사식당은 이렇듯 서문시장 주변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이들의 추억이 담긴 명소. 임연수 씨의 푸근한 미소는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그 한구석에 자리한 학사식당은 서문시장 식당가의 터줏대감 중의 하나다. 학사식당, 이름만 들어도 추억이 모락모락 솟지 않는가? 올해로 35년째 식당을 경영하신다는 임연수(1950년생) 씨는 제주대학교 캠퍼스가 과거 용담동(현 사대부고 교정)에 있었던 1979년에 학사주점이라는 이름으로 장사를 시작해, 줄곧 배고픈 대학생들의 배를 채워주시던 어머니와도 같은 사장님이다. 그이가 꺼내 놓는 그 시절 옛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마치 70~80년대가 배경인 한 편의 드라마라도 보는 느낌이다.

“아이구 그러게. 그땐 나도 얼마나 젊었다구! 식당을 갑자기 맡아서 하게 되는 바람에 얼마나 웃긴 일이 많았는지 몰라. 서울서 갓 시집온 내가 뭘 할 수 있었겠어? 처음엔 족발 삶는 법도 몰라서 털도 잘 안 벗기고 그걸 대충 삶아내면, 학생들이 깔깔 웃으면서 지들끼리 다시 요리해다 먹고 그랬어. 제주도 요리하는 법은 학생들이 다 가르쳐준 거야. 어디 그뿐이야? 돈 없는 대학생들이 막걸리 시켜놓고 콩나물 반찬만 잔뜩 집어먹다가는, 내가 화장실이라도 가면 돈도 안 내고선 학생증 달랑 하나 두고 줄행랑이지. 그땐 주점이었으니까 제주대학교 과 파티는 우리 집에서 늘 했었어. 재미는 있었지만 다들 돈이 없으니까, 솥에 밥 한가득 해 놓고 잠시 자리 비우면 이것들이 맘대로 밥솥 뚜껑 열어서는 깨끗하게 먹어 치우고 가고…… 어휴, 말도 말어(웃음). 학생증에 가방에, 모자에, 별 좋지도 않은 시계에, 학생들한테 돈 대신 받은 물건이 아주 수두룩했지. 지금도 가끔 그 시절 학생들이 오면 그래, ‘어머니 그때 그 시계, 이제랑(이젠) 돌려줍서(돌려주세요).’라고. 하하하.”

▲ 제주서문공설시장의 직전 상인회장을 역임하셨던 임연수 씨의 남편 윤치영 씨(65). 지금은 건강 때문에 은퇴하여 쉬고 계시지만 그는 소문난 괴짜 환경운동가다. 시간이 날 때 마다 길거리에서 주어오신 담배꽁초를 무려 백만 개나 모아다가 도청 앞에 쌓아놓고 환경운동 시위도 하신 적이 있다. 그가 옛날 이야기를 하다 말고 함박웃음을 터뜨린다.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중년의 아저씨들이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그이를 ‘어머니’라 부르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지만, 얼마나 고마웠으면 지금껏 어머니 대우를 하겠는가? 배고팠던 그 시절을 함께 난 그들은 지금도 가족처럼 서로 위하며 지낸다. 지난 날, 제주시까지 유학(?)을 와 자취하는 학생들이 몰래 훔쳐간 숟가락이며 그릇은 헤아릴 수 도 없었지만, 그 후 어엿한 아저씨가 된 이들이 식당 어머니를 위해 가져다준 선물 역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가끔 쌀도 한 포대씩 보내주고, 과일도 한 상자씩 보내온다는 그 시절의 학생들을 떠올리며 임연수 씨는 환하게 웃는다.

“이 아줌마 이렇게 보여도 대단한 양반이에요. 직책이 소방대장이라고! 저기 걸린 저 상장들을 좀 봐요!”
손님처럼 앉아 계시던 아저씨가 대뜸 말문을 연다. 알고 보니 그는, 서울서 곱게 자란 아가씨를 제주도까지 시집오게 한 그이의 남편 윤치영(1949년생) 씨다. 서문시장의 직전 상인회장을 역임하셨던 분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식당 한쪽 벽에 걸린 사진이며 상장이 눈에 띈다. 오래 전부터 의용 소방대원으로 활동해 오신 임연수 씨는, 시장에 크고 작은 화재가 있었을 때마다 몸을 아끼지 않고 불을 꺼 왔다. 그러다가 제주시 여성의용소방대의 대장직까지 오르셨다. 식당일로 바쁜 와중에도 여러 가지 사회봉사를 해 오고 계신 그이는 남을 돕는 일이라면 뭐든지 앞장선다. 아내가 받아온 표창이며 상장을 자랑스럽게 벽에 걸어 놓으시고 그것을 늘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저씨. 임연수 씨 역시 일이 힘들고 고될 적마다 벽에 걸린 사진들을 보며 자신을 응원하신다고.

▲ 두분은 아저씨가 군에 있을 적 펜팔로 만난 사이다. 서로를 아끼고 위하는 마음이 남달라 보고만 있어도 흐뭇해진다. 그렇게 늘 웃는 모습으로 시장에 건강한 활력소를 제공하는 두 부부의 앞날에 앞으로도 즐거움이 가득하기를!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 식당 한 쪽 벽에는 임연수 사장님이 봉사활동을 하며, 혹은 의용소방대원으로 활동하며 받아오신 여러가지 상장들이 나란히 진열되어있다. 식당일로 바쁜 와중에도 그이는 남을 돕는 일이라면 뭐든지 발을 벗고 앞장서 왔다. 자랑스런 아내의 상장을 보며 아저씨는 늘 흐뭇해하신다고.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하지만 학사식당의 자랑거리는 비단 아주머니뿐이 아니다. 환경운동을 위해서라면 뭐든 발 벗고 나서기로 유명하신 아저씨의 취미는 쓰레기 줍기다. 몇 해 전에는 시간이 날 때 마다 길거리에서 주어오신 담배꽁초를 무려 백만 개나 모아다가 도청 앞에 쌓아놓고 환경운동 시위도 하셨단다. 피우지도 않는 담배꽁초를 주우러 다니며 화상을 입기도 하고, 이상한 사람 소리도 많이 들었지만, 자신의 작은 행동으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다는 것을 커다란 보람으로 여기신다. 아주머니는 그런 남편을 바라보며 ‘사람이 너무 좋아서 자기 것 하나 챙길 줄 모르고 남에게 다 퍼다 주는 인정 많은 사람’이라는 칭찬을 하신다.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이들 부부는 아저씨가 군에 있을 적에 펜팔로 만난 사이다. 부대에서 서신검열을 담당하고 있던 아저씨가 다른 사람에게 온 임연수 씨의 위문편지를 낚아채면서부터 둘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평소에 글 쓰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의 생각들을 편지로 쓰며 힘든 군 생활을 이겨나갈 수 있었다고. 그렇게 펜팔로 맺어진 두 사람은, 천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은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하지만 서울 새댁이었던 임연수 씨에게 있어 낯선 제주도에서의 시집 생활은 너무나 고된 것이었다고 말씀하신다.

“제주도에 시집왔더니, 여자는 무조건 강해야 한다는 거야. 해보지도 않은 장사도 하라면 그냥 해야 했었고, 서울이랑은 사람 사는 방식이 달라도 너무 다른 거야, 모든 게. 처음엔 힘들어서 친정에 몇 번 도망을 갔었어. 갑자기 시장에서 음식장사를 하라기에 확 도망간 거지.(웃음) 그랬더니 남편이 친정으로 나를 데리러 와서는, 장사 같은 거 안 시킬 테니 다시 돌아가서 아이만 기르고 같이 살자고. 그래서 하는 수 없지 돌아왔지. 그땐 살 곳이 마땅치 않아서 서문시장에서 아이랑 남편이랑 살았는데. 이건 뭐, 장사를 안 한다고 했지만, 눈 뜨고 일어나면 이미 집 안에 손님이 바글바글 거리는 거야. 밥 달라고. 하하하. 그러니 어째! 밥해서 팔아야지! 그러다 보니 여까지 왔어. 이제 제주도 사람 다 됐지(웃음).”

   
▲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시는 집 반찬과 다를 것이 없는 그이의 메뉴는 정성어린 손길에 담긴 손맛이 일품이다. 가족을 위해 요리하듯 음식을 만들고 늘 즐거운 얼굴로 상을 차리는 임연수 씨의 모습.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 원하는 부위의 고기를 시장 내 정육점에서 구입해다가 반찬값 만원만 내고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서문시장 표 원스톱고기메뉴. 테이블당 반찬값 만 원만 내면 저렴한 가격으로 양질의 고기파티를 즐길 수 있다. 이른바 '정육형식당' 아이디어의 원조식당이 바로 학사식당이란다.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운명처럼 낚아챈 위문편지 한 장으로 시작된 그들의 인연은, 많고 많은 삶의 고비를 함께 넘기며 중년을 맞았고 이제는 꼬마 손주를 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다. 아주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저씨가 말문을 여신다.

“제가 지금 좀 몸이 아파요. 사람은 살 만 하면 간다고들 그러잖아요. 대장에 암이 전이 되어서 오랫동안 지금 투병생활을 하고 있거든요. 나 때문에 지금 우리 마누라가 고생 많죠. 남편 잘못 만나가지고…… 결혼하고도 쭉 고생만 시키고. 그래도 저렇게 상도 많이 받고 사람들 돕고 그러는 모습이 장하고 대견해서 업어주고 싶은데 몸이 이러니 업어줄 수도 없고(웃음)! 살다 보면 맑은 날도 있고 흐린 날도 있는데,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해질 찬스를 놓치지 않는 거 같아요. 누구에게나 똑같이 찬스가 오니까 그걸 잘 포착해야지. 행복은 누가 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만드는 거니까.”

서로의 자랑을 아끼지 않고 하시는 부부의 모습이 유독 사랑스러워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렇듯 서로의 좋은 점을 보듬고 칭찬하며 서문시장 한 모퉁이를 든든히 지켜 오신 학사식당은 오래되었지만 늘 새로운 행복들로 가득하다. 그도 그런 것이,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파리만 날리던 서문시장을 ‘고기식당’(정육형식당) 아이디어로 부활시킨 주인공도 사실은 임연수 씨다. 그러면서도 서문시장의 모든 상인이 예전처럼 다 함께 활기를 찾을 수 있도록 힘쓰고 있는 그이는, 자랑스러운 아내이자 어머니, 의용소방대의 멋진 여대장님, 그리고 학사들의 영원한 ‘어머니’가 아니던가? 서문시장이 있어 지금의 자신이 있다고 당당히 말씀하시는 그이와 그런 아내를 너무나 자랑스러워하시는 이들 부부의 앞날에 앞으로도 늘 건강한 미소가 가득하기를!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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