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째 ‘핸드메이드’ 가방 만드는 남자
30년째 ‘핸드메이드’ 가방 만드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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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시장, 걸으멍 보멍 들으멍](6) 갈아트제주 이완성 대표 / 정신지

<제주의소리>의 주말 코너 ‘걸으멍 보멍 들으멍’에서 제주 곳곳을 누비며 할망 하르방들의 소박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온 인터뷰 작가 정신지가 이번엔 제주 전통시장에서 걸으멍 보멍 들으멍 글을 쓴다. 그녀는 일본에서 12년간 유학생활을 했고, 그 사이 유목민처럼 세계 17개국을 떠돌며 사람과 사회, 지역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일본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에서 문학박사(지역연구학) 과정을 수료한 그녀가 타고난 역마살을 내려놓고 지난해 초 고향 제주로 돌아와 할망 하르방들을 만나는데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왔다. 이제 그 발길을 잠시 전통시장으로 돌려 올해 문화관광형시장에 선정된 제주서문공설시장에서 상인들과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녀의 펜 끝이 전하는 시장사람들의 사람냄새 진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 서문시장 갈아트 대표 이완성 씨(63)는 상인회 부회장이다. 그는 늘 새로운 대화와 교류를 환영한다. 일이 바빠 자리를 떠날 수 없을 때가 많지만, 젊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이들과의 교류를 무엇보다 꿈꾸시는 그다. 절대 안 웃어주실 것 같은 그이지만, 가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끊임없이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온다.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서문시장 2층 포목점 사이를 걷다 보면 재미있는 이름의 점포가 있다. ‘자파리, 그리고 방둥이’란 이름의 작은 간판이 붙여진 이곳은 이완성 씨(1951년생)의 작업실이자 매장이다. 그는 제주의 대표적 천연염색인 감물염색으로 가방을 만드는 ‘갈아트 제주’의 대표다. 매장 안에는 그가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가방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고, 그 한구석에는 아담한 작업공간이 있다. 전통 멍석의 매듭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기 시작한 그의 가방은, 이완성 씨만의 독특하고 개성 있는 디자인이다. 가볍고 튼튼한데다가 색상이 은은하면서도 신비롭다. 감물염색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천연 매염제로 염색하는데 모든 과정을 그가 혼자 한다.

 

   

서문시장 포목상가의 청일점으로, 가방 만들기만 30년째인 그는 2007년에 서문시장에 입점한 새 식구다. 제주출신으로, 군 제대하고 상경해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에 우연히 이 일에 뛰어들게 되었고, 그 후 그는 십수년 간 외국에서도 가방업계에 종사했었다.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좋았다고는 하지만, 단 한 번도 정식적으로 디자인을 배워본 적은 없다. 관심이 있고 의지가 있으면 스스로 방법을 찾아 무작정 될 때까지 해 보는 것이 그의 성격이다.

“어릴 적부터 무언가 만드는 것을 아주 좋아했었어요. 시골에 살았었기 때문에 장난감이 없으니까 이것저것 종이로 만든다든가, 영화 보는 것이 꿈이었던 시절에는 상자로 영사기를 만들어 그 안에 촛불을 켜 놓고는 모형처럼 가지고 놀기도 했었어요. 어머니가 밭에서 고구마 캐 오시면 그걸 먹다 말고 조각을 한다든가, 좀 엉뚱한 짓을 많이 하던 아이였지요. 뭐든지 만드는 거면 다 좋아했었어요. 이것저것 잡다한 것을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이나 그런 행동을 제주말로 ‘자파리’라고 하죠. 그리고 그렇게 손을 꼬물거려 만든 자신의 애장품, 장난감이라든지 정성 드린 작업의 결과물을 ‘방둥이’라고 하지요. 할망들이 손자를 보면서 ‘아이고 내 방둥이, 내 방둥이’, 하시는 것처럼, 뭔가 애정 어리고 애착이 가는? 제 작업실 이름이 그래서 ‘자파리와 방둥이’에요. 놀면서 생각하고, 만든 거 보면서 좋아하는 게 제가 일하는 스타일이니까요.”

▲ 늘 진지한 표정으로 작업실에서 일을 하는 이완성 씨. 천에 염색을 하는 일 부터 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 맡기에 정신 없이 바쁘고, 항상 진지하다. 자신의 일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그것을 큰 긍지로 여기고 있는 그는 서문시장상인회 부회장이면서, 포목상가의 청일점이자 떠오르는 스타 CEO(?).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재봉틀을 어떻게 쓰는지조차 몰랐을 시절, 우연히 들어간 직장에서 가방을 만들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고 무작정 가방 만들기를 시작했다. 상경 후 서울에서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던 그였으나, 어느 날 찾아온 ‘가방’이라는 찬스가 그의 삶을 커다랗게 바꾸어놓았다. 바쁘게 사느라 잊고 있던 그의 자파리 기질이 그때부터 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내야겠다는 생각에 오로지 가방 만들기에 전념했다. 바느질부터 시작해 모든 기술을 스스로 익혔고 그의 기술은 나날이 좋아져 갔다.

그러다가 지인의 제의로 외국에서까지 가방 일을 하게 되었고, 십수년을 한국을 떠나 살았다. 그리고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제주도로 돌아왔을 때,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중 눈에 들어온 것이 제주의 갈옷이었다. 생활 한복으로 갈옷을 입는 사람들은 늘어났으나, 늘 그들이 든 가방이 이완성 씨 눈에는 거슬렸었다. 비슷한 소재로 가방을 만들면 더욱 근사할 것이라는 생각에 갈옷에 잘 어울리는 가방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감물염색부터 또다시 독학의 길이 시작되었고, 많은 시행착오 끝에 스스로의 브랜드를 만들게 되었다.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죠. 천을 사다가 직접 염색을 했으니까.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고, 산속에 들어가서 지인의 빈 창고를 빌려서는 그냥 무조건 시작한 거예요.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이니까 될 때까지 스스로 해보는 거다’ 하고 무작정…, (웃음). 그렇게 배운 거예요. 그러니 당연히 시행착오도 많았죠. 물 배합이라든지, 기술적인 부분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실패를 많이 했어요. 그래도 이제는 기술적인 면은 거의 갖춰진 것 같고, 디자인을 어떻게 해서 더 좋은 상품으로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느냐가 꾸준한 문제지요.”

남이 정해놓은 매뉴얼에 따라가지 않고, 늘 자신만의 길, 자신만의 것을 만들려는 이완성 씨. 그러다 보니 넉넉잖은 벌이 때문에 가족들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란다. 늦깎이 결혼으로 얻은 그의 외동딸은 현재 고등학생이다. 아직 아빠가 하는 일에 관한 큰 이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만든 가방을 보며 “우와, 이거 정말 우리 아빠가 만든 거야?” 하고 마냥 신기해하는 따님의 모습에 힘을 얻는다고. 그리고 그런 그에게 힘이 되는 또 한 가지는 자신이 만드는 가방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들이다.

▲ 이 가방들이 바로 지난 해 제주 세계보전총회 행사장에서 내 놓자마자 모두 매진되어버린 가방들이다. 당시 없어서 못 팔정도가 되자 그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세상에 하나 밖에 없고, 제주다운 물건을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앞으로도 더 좋은 '핸드 메이드' 가방을 만들겠단다. (사진 위).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박음질하고 그것을 멍석 매듭처럼 꼬아서 만드는 것은 이완성 씨만의 독특한 가방디자인의 모티프다. 보기에도 좋거니와 뭐니뭐니해도 튼튼해서 좋다. 그가 들이는 정성과 시간을 감안하면 수입 명품가방 부럽지 않을 만큼의 제주 장인 명품가방이다. (아래 사진)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작년 제주에서 열린 ‘WCC’, 즉 세계자연보전총회 때 약 만 명이 넘는 사람이 제주에 왔었잖아요. 총회 행사장에서 저도 조그마한 코너를 얻어서 물건을 가져다 놨는데, 글쎄 가방이 순식간에 다 팔렸어요. 결국, 없어서 못 팔정도였으니까. 외국손님들한테는 그게 제주다운 것으로 보인 것이고, 역시 외국인들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물건에 관심이 많았죠. 제가 만드는 것은 모두 ‘핸드 메이드’이니까요. 제가 외국에 15년 정도 있다가 한국에 와서 실망한 부분은 그런 거였어요. 가방을 만든다는 것, 손으로  일한다는 것에 관한 인식이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으로 아직 천대받는 직업에 속하거든요. 가방 만드는 것이 직업이라고 하면 외국에서는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중요시해주고 가르쳐달라고도 하는데, 우리 문화는 그렇지 않죠. 아무튼, WCC 행사를 통해서 오랜만에 내가 만든 가방을 인정해 주는 외국손님들을 보고 상당히 기분이 좋았어요. 그리고 국내에서도 가끔 길을 가다가 내 가방을 든 사람을 볼 적이 있는데 그럴 때면 정말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웃음). 이런 기분 때문에 힘들어도 이 일을 포기할 수 없는 거 같아요.”

시행착오도 많았고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는 이완성 씨. 하지만 그런 실수와 실패 없이는 아무것도 변화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신조이다. 현재 상인회 부회장을 맡시장 살리기에 열심인 그는, 서문시장의 활성화에 관해서도 같은 입장이다.

▲ "제주 땡감으로 제주 정신을 넣어 제주 사람이 정성껏 만든 토종 제주 가방사세요!" 가격보다 가치를 소중히 여겨 줄 수 있는 멋진 손님을 기다리는 이완성 사장님이 직접 만든 가방을 두 손에 번쩍 들고 환하게 웃어 보이신다.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모든 것이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죠. 그래도 계속해야만 길이 생기니까, 당장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꾸준히 해 나가는 길밖에는 없죠. 시장이 고령화하고, 어르신들은 집에 있느니 나와서 뭐라도 팔자는 식으로 시장에 나와 계신 분들도 있어요.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지만, 이렇게 가다가는 공멸하거든요. 다 같이 변해야 산다고 제가 주장하는 이유가 그거에요. 늘 오는 단골손님만 받는 시장의 시대는 지났어요. 손님 층이 다양해지고 여러 사람이 모이다 보면 자연히 상인들도 상품도 그것에 맞춰서 재구성되기 마련 아니겠어요? 우선은 사람 북적이는 시장을 만들어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누가 오든 간에 말입니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을 접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러지 않으면 시장도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에요. 그러니 저부터 스스로 변화를 과감히 시도하고 받아들이면서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

30년이 넘도록 같은 일에 매달려 오면서도 그는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 노력해왔다. 쓰러지면 쓰러지는 대로 다시 일어나 배우고, 돈 안 되는 가방 따위 뭐 하러 만드느냐 천대를 받아도 그는 늘 당당하게 한 길을 걸어왔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브랜드 가방을 선호하고 그것을 사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자신만의 명품을 만들기 위해 늘 노력하는 그는 진정한 장인이다.

“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그런 거 같아요. 포기하지 않는 것. 후회야 많죠! 하지만 후회하지 않아요. 그러면 자꾸 포기하고 싶어지고, 포기하면 몇십 년분의 노력이 한 번에 다 날아가 버리거든요. 비록 꿈꾸었던 것처럼 크게 성공을 못 하고 도중에 쓰러진다고 해도, 이 길밖에 없다고 믿으면서 꾸준히 걸어가는 거죠 뭐.”

 

▲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그의 작업실 입구에는 예쁜 액자에 그가 만든 가방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지인이 자신을 위해 만들어준 것이라며 자랑처럼 입구에 걸어놓으신 액자다. 거기에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가장 제주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감히 제주인이 아니면 흉내 낼 수 없는 제품을 만들려고 한다.
하얀 광목천에 제주 땡감만 있으면 된다.
한라산 등성이에 걸린 사정없이 내리쬐는 햇살은
너무도 아름다운 갈색을.
제주 아낙네들은 물 허벅과 차롱,
그리고 구덕에 희노애락을

…여인의 길을 걷는다.

이완성 씨는 언제나 대화와 교류를 환영한다. 모든 일을 혼자 맡아 하시느라 자리를 떠날 수 없을 때가 많지만, 젊고 신선한 ‘자파리’들과의 만남과 교류를 무엇보다 중요시하신다고. 그러니 서문시장에 들렀을 적에는 꼭 한 번 그의 작업실에 찾아가 보자. 언뜻 무뚝뚝하고 깐깐해 보이는 첫인상이지만, 알고 보면 즐겁고 부드러운 그다. 즐겁게 일하는 사람 중에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오늘도 그의 작업실에서는 ‘드르륵 드르륵’ 하는 경쾌한 재봉틀 소리가 한창이다. <제주의소리>

<정신지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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