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시장, 걸으멍 보멍 들으멍](7) 할머니 순대 원조, 김청향 할머니  / 정신지

<제주의소리>의 주말 코너 ‘걸으멍 보멍 들으멍’에서 제주 곳곳을 누비며 할망 하르방들의 소박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온 인터뷰 작가 정신지가 이번엔 제주 전통시장에서 걸으멍 보멍 들으멍 글을 쓴다. 그녀는 일본에서 12년간 유학생활을 했고, 그 사이 유목민처럼 세계 17개국을 떠돌며 사람과 사회, 지역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일본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에서 문학박사(지역연구학) 과정을 수료한 그녀가 타고난 역마살을 내려놓고 지난해 초 고향 제주로 돌아와 할망 하르방들을 만나는데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왔다. 이제 그 발길을 잠시 전통시장으로 돌려 올해 문화관광형시장에 선정된 제주서문공설시장에서 상인들과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녀의 펜 끝이 전하는 시장사람들의 사람냄새 진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 서문시장의 터줏대감이자 제주순대의 대모와도 같은 김청향 할망(84)은 시장에서 평생 순대를 만들며 살아온 순대 장인. 한 시도 시장을 떠나지
않고 시장에서 늙어온 할망에게는 서문시장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도 점칠 수 있는 지혜가 한가득이다.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이디선 나가 젤 오랬주게(여기에선 내가 제일 오래 했지). 스물아홉에 왕 이제 요든 넷이난 게(스물아홉에 와서 이제 여든넷이니까). 혼 오십 년 넘었주(한 오십 년 넘었지). 젊은 때 이디 왕 원래는 월급 타멍 시장 청소해 났거든(젊었을 때 여기 와서 원래는 월급 받으면서 청소했었거든). 경허당과일도 폴고 피국도 맹글앙 폴고해나신디 몬딱 설러불곡(그러다가 과일도 팔고 선짓국도 만들어서 팔고 했었는데 전부 치워버리고), 혼 사십 년 순대 장시만 허연(한 사십 년 순대 장사만 했어). 이젠 것도 설렁 아기들 줘부러시난(이제 그것도 정리해서 자식들 줘버렸으니), 매날 이디 아장 놀암주(매일 여기 앉아서 놀고 있지). 하하하.”

할망의 짧고 굵은 자기소개다. 제주서문공설시장 일층 식당가 한구석에 자리한 그이의 보금자리는 이름 하여 ‘할머니 순대’. 1954년 개장한 서문시장과 더불어 반세기를 함께 살아오신 김청향 할머니(1930년생)는, 자타가 공인하는 시장의 터줏대감이자 ‘제주순대’의 대모와도 같은 존재다. 지금은 명예퇴직(?)하여 쉬고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여전히 할망의 보금자리는 서문시장이다.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시장 문을 열고, 시장의 마지막 문단속까지 철저히 맡아 하신다는 할망. 순대 장사를 하려면 이른 새벽부터 나와서 일을 해야 하기에, 아예 작업장 구석에 쉴 자리를 두고 줄곧 그곳에서 생활해 오셨다.

도매납품을 위주로 하는 할머니 순대는 시장 내에서 직접 순대를 잘라 팔지는 않는다. 할머니순대의 단골손님은 주로 제주시 오일시장과 도내의 식당들이다. 하지만, 맛있기로 소문난 할망의 순대를 사러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도 적지 않다고. 그런 손님 또한 할망은 마다치 않고 물건이 있으면 흔쾌히 팔아주신다. 막창 순대, 찹쌀 순대, 당면 순대, 세 종류의 순대에 제주식으로 반드시 찹쌀과 메밀이 들어가고 국내산 채소(생강과 마늘, 양배추, 파, 등) 역시 아끼지 않고 팍팍 쓰신다. 거기에 각종 향신료가 마술 같은 비율로 어우러진 그 맛은? 이것이 바로 제주식 순대! 차지고 감칠맛이 돌면서도 뒤끝이 깔끔하다. 유럽의 먹거리 장인들이 만들어내는 소시지와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을 풍부한 맛에 그 크기도 팔뚝만하다. 평생을 순대만 보며 살아왔다는 할망은 진정한 제주 순대의 장인임이 틀림없다.

▲할망표 순대에는 반드시 제주식으로 찹쌀과 메밀이 들어간다. 국내산 채소 역시 아끼지 않고 팍팍 쓰시고, 거기에 각종 향신료가 마술 같은 비율로 어우러진 그맛은? 안 먹어본 사람은 모른다. 유럽의 소시지 장인 저리가라인, 제주순대 장인의 손맛이다.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가난한 시절 먹을 것이 없어 먹기 시작했던 순대는 사실 손이 엄청나게 많이 가는 음식이다. 내장을 깨끗이 손질하고, 여러 가지 속 재료를 준비하는 일, 삶아내고 잘라 내는 과정까지 합치면 순대 하나가 만들어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은 의외로 복잡하다. 할망에 의하면, 신선한 내장을 얼마만큼 깨끗이 정성 들여 씻어내느냐가 좋은 순대를 가름 짓는 가장 큰 핵심이란다. 그러니 순대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새벽 2~3시에는 가게에 나와서 일을 시작해야 아침 장사를 하는 고객들에게 순대를 가장 맛있는 상태에서 배달할 수가 있다. 할망 역시 한평생을 하루에 3~4시간만 자며 일을 해 오셨다는데, 일을 물려받은 아드님 역시 어머니와 똑같이 새벽부터 나와 일을 하신다.

할망은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이 된 열여섯에 부모님과 함께 제주로 귀향하셨다. 해방 직후, 고향 한림으로 돌아오던 밀항선이 큰 풍랑을 만나 대마도에서 아무 먹을 것 없이 일주일을 살아남았다는 이야기, 4.3사건을 겪으며 힘들었던 이야기, 영화를 만들어도 몇 편은 만들 수 있음 직한 스토리가 쏟아져 나온다.

   
▲ 욕심내지 말고, 자신이 하던 것에 충실하며 가던 길을 꾸준히 걷다보면 성공하신다고 할망은 말한다.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끊임없이 두 손을 움직여 84년의 인생을 걸어오신 할망의 두 손. 파란만장했던 지난 날이 손 위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듯하다.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 도매납품을 위주로 하는 할머니는 시장 내에서 직접 순대를 팔지는 않는다. 하지만 맛있기로 소문난 할망의 순대를 사러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도 있다. 그런 손님에게는 물건이 있으면 흔쾌히 팔아주신다고.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그때, 야미배(밀항선)를 타고 제주도로 오람신디(오는데), 대마도에서 배가 고장이 나부런(났어). 혼 일주일 되실걸?(약 일주일 됐을걸?) 게난(그러니) 그 고생을 해도 죽여분댄 허난 고생허멍 왔주게(죽여버린다고 하니까 고생하며 왔지). 친정어머니가 고구마 같은 거 쪙(쪄서) 담아 오난(오니까) 그것 하나 쓱 먹고. 또 도망 오잰 허난(도망 오려고 하니) 양식을 가졍(가지고) 왔거든. 그디서(거기서) 밥을 해먹잰 허난(지어 먹으려 하니), 바닷물이라서 못 먹어. 경허영(그렇게) 삼 일을 못 먹으난(못 먹으니) 결국엔 아무거나 먹어지더라고. 배고프난게(배고프니까). 옷이고 뭐고 살림살이는 다 일본에 내불고 와서(내버리고 왔어). 허이고, 사람들이 핫주(많았지), 그 배에. 우리 가족은 어멍 아방하고 나뿐. 나는 외딸이니까. 남동생이 이서나신디(있었었는데), 일본서 열차에 치엉 죽어부런게(치어 죽어버렸어)….”

4.3 사건이 끝나고 스물둘에 제주시로 시집온 할망은 그 시절의 모든 제주여인이 그러했듯 닥치는 대로 일하며 폭풍처럼 살았다. 밥 지을 겨를도 없이 이것저것 바쁘게 일하다 보니, 이제 와 가장 후회가 되는 것은 남편을 올바로 모시지 못한 것이라 하신다. 조금 살만하다, 싶더니 할망은 마흔셋의 나이에 홀어멍이 되었다. 건강을 잃고 먼저 하늘나라에 가버린 할아버지 생각을 하면 지금도 한숨이 난다. 미안한 마음은 세월이 흘러 아무런 걱정 없이 살고 있는 지금도 할망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인지, 돌아가신 남편을 떠올리는 그이 얼굴에 잠시 그림자가 드리운다. 오늘날의 성공과 행복은 ‘자식들이 잘 자라주었기 때문’, ‘착한 손님이 많이 와주었기 때문’이라며 공덕으로 돌리고,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것은 자신이 잘 못해서 그런 것이라 자책하는 할망. ‘잘 되면 내 탓, 안 되면 남 탓 조상 탓’이라는 옛말을 정반대로 살아온 그이는 마음이 애잔해질 정도로 커다란 인간이 아닐 수 없다.

할망은 살아계신 서문시장의 역사다. 그러니 문득 그이가 기억하는 50년 전 서문시장의 모습도 궁금해진다. 한 시도 시장을 떠나지 않고 시장에서 늙어 오신 할망에게는 서문시장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도 한눈에 점칠 수 있는 지혜가 있다. 한가로이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거나, 뒷짐을 지고 천천히 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할망은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할 일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몸이 전 같지 않으니 가만히 앉아있기는 하지만, 할망은 끊임없이 시장을 관찰하고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하고 계신 것이다. 지혜가 가득 담긴 할망의 말씀 하나하나에 서문시장의 과거가 있고 미래가 있다. 할망의 지혜는 이와 같은 말들 속에 주옥같이 담겨있다.
 
<할망의 지혜 하나, 무조건 새롭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
“옛날에는 시장바닥에 사람들이 아주 많이 앉아 있었어. 닥그네(*현재의 용담 3동에 위치한 수근동의 옛 지명으로, 포구가 자리하고 있다)에서 온 생선 장시(장수)가 몬딱 이디 아자난(전부 여기 앉았었어). 야채 장시도 앉고 생선 장시도 앉고 하니까 시장이 엄청 잘 되어나서. 겐디(그런데), 새집 지성이네 시장이 달라젼(새 건물을 짓고부터 시장이 달라졌어). 묵은 집(옛날 집) 이실 때(있을 때)가 장사 더 잘 되어서. 집은 금방 맬라짐직해도(부서질 듯했어도) 사람들은 와글와글. 이 집 지성(지어서) 얼마 안 됭(안 되어) 사람들이 솔솔 돌아난 거라(사람들이 살살 사라진거야). 닥그네 마을도 묵은 집을 뜯어불지 안해샤게(닥그네 마을의 집들도 철거해버렸잖아)? 게난(그러니까) 그 손님들이 동문시장더래(으로) 가불었주게(가버렸지). 묵은 집을 설러분(철거한)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지만, 호끔 영(좀 어떻게든) 뒷날을 잘 생각 행이네(해서) 건물도 지서야주(지어야지), 경 행이네(그렇게 해서) 쫓겨난 상인들이 사실은 서문시장 돈 벌게 해 주는 상인들 이어나서(이었어).”

▲ 지금은 명예퇴직(?)하여 쉬고있지만, 여전히 할망의 보금자리는 서문시장이다. 지금도 누구 보다 일찍 일어나 시장 문을 열고 마지막 문단속까지 철저히 맡아하신다는 할망은, 살아있는 서문시장의 역사와도 같은 존재다.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할망의 지혜 둘, 다양함으로 승부하고, 소통하라! >
“……폴래(팔러) 온 사람이 이서야(있어야), 구색이 이서야(있어야) 장사도 잘 되지. 구색이 어서부난(없으니) 어떵 헐 거라(어떻게 할 거야)? 지금도 오라리(제주시 오라동)에서 자기가 직접 농사지엉(지어서) 이틀에 한 번씩 이디(여기에) 야채 폴래 오는 사람이 이서. 그 어른 같은 상인이 댕겨야지만, 많아져야지만 시장이 잘 되어. 그 어른 물건은 쌀 때도 있고 비쌀 때도 있지만, 그 사람이 오면 식당 사람도 손님도 다 거기로 몰려가. 몇 푼이라도 싸고, 자기가 직접 책임을 졈시난(지니까) 물건이 믿을 만하지 않허냐게(않겠어). 물건이란 것은 당연히 좋지 않을 때도 이시난(있으니까), 경헐 때는(그럴 때는) 값을 내령 폴고(내려서 팔고), 게민 싼 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왕 좋댄 행 사곡(좋아하며 사고). 경허는(그러는) 게 시장이라. 정성껏 물건을 행 왕(해 와서) 정성껏 파는 곳이 시장이여게.
 
<할망의 지혜 셋, 아끼고 싶거든 전통시장으로 오라! >
“…… 편하고 싼 것만 촞당 보난(찾다 보니) 다들 마트에 감주만(가지만), 거 알아져(그거 알아)? 마트에 가민(가면) 돈만 더 써진다(쓰게 된다). 예를 들엉(예를 들어) 시장서 2만 원이면 사질 것을 마트에 가민(가면) 꼭 2만 원 보다 더 써져(쓰게 돼). 필요 어신 것도 사부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 겐디(그렇지만) 역으로 2만 원만 쓰잰(쓰려고) 마음먹고 시장에 오민(오면), 2만 원 보다 덜 쓸 수도 이서. 요망지게(야무지게) 값도 깎아보곡(깎아보고), 단골가게 가민 싸게도 해 주곡, 경허민(그러면) 남은 돈으로 국밥이라도 먹고 기분 좋게 집에 돌아가고, 얼마나 좋으냐? 게난 요망지게 아꼉(아껴서) 잘 살잰 허민(살려면) 시장에 와야 허곡(와야 하고). 시장 상인들도 잘 되잰허민(잘 되려면), 다들 마음을 혼디로 모앙이네(한곳으로 모아서) 손님들이 좋아할 만한 일을 촞앙 해사주게(찾아서 해야지). 허이고, 겐디(그런데) 나가 이런 걱정 해봤자 다 헛걱정이라! 누게가(누가) 이 늙은 할망 곧는(하는) 말 들을거냐게?”
 
목청을 높이며 할망이 숨은 지혜를 털어놓는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오래된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 발돋움해 나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어제가 있기에 오늘이 있는 만큼, 과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굳이 새로워지려고 발버둥 치지 않아도 나아갈 길이 보인다. 무조건 새롭다고 좋은 것이 아니고, 같은 모양으로 획일화된 것이 결코 합리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할망 말씀. 오거니 받거니 하며 물건을 사이에 두고 소통함으로써 더욱 인간다운 경제활동을 누릴 수 있다는 명언. 그 어떤 경제학자가 할 수 있는 강의보다 가슴에 와 닿는 지혜가 아닌가?

몇 해 전 아들에게 가게를 물려주면서 할망은 아들에게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단다.
“이녁 어멍 허던 것만 해도 밥 먹엉 산다(네 어머니가 하던 것만 해도 밥 먹고 살 수 있다). 욕심 내영(내서) 놈(남)의 것 빼앗지 말라. 두렁청하게(바보같이) 이녁(네) 것도 뺏기지 말라. 경만 허당 보민(그렇게만 하다 보면) 성공해진다.”
 

▲ 정신지 인터뷰작가

지당하신 말씀이다. 어머니 말씀 잘 듣는 아드님께서는 이제 훌륭한 사장님으로 할머니 순대의 가업을 물려받으셨다. 성공이란 욕심을 부린다고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남의 것을 빼앗아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누군가가 시간과 공을 들여 이루어 놓은 만큼의 오늘을 소중히 이어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할망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가장 커다란 메시지가 아닐까. 삶 냄새 솔솔 풍기는 할망의 작은 보금자리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 정신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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