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홍이 만난사람> 양원찬 재외제주도민총연합회장 “서청원·김무성은 30년 지기...선택은 도민 몫”

양원찬 재외제주도민총연합회장(63.서울도민회장)은 서울 제주도민들에게 ‘해결사’로 통한다. 대한민국에서 최고 잘 나가는 스포츠 팀닥터, 안재형-자오즈민 핑퐁 사랑의 결실을 맺게 한 장본인, 김만덕기념사업회 공동대표, 세계7대자연경관선정범국민추진위 사무총장, 한양대학교 총동문회장 등등의 이력을 가진 그의 손을 거치면 웬만한 일들은 거의 해결 된다고 한다. 몇 년 전 지역 한 일간지는 인터뷰 기사에서 ‘서울은 양원찬으로 통한다’고 평했다.

‘해결사’란 칭호는 광범위한 그의 인적 네트워크와 파워에서 나왔다. 2009년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벌어진 ‘김만덕 나눔쌀 1만섬 쌓기 행사’는 단적인 예다. 제주관련 행사로 대한민국 한복판인 광화문 일대 교통이 전면 통제되기는 전무후무한 일이 받아들인다. 국무총리와 서울시장이 참석하고 KBS는 토요일 골든타임에 생중계했다. 행정의 과도한 개입 등으로 논란이 있긴 했지만 세계7대자연경관 캠페인에서 보여준 기획력과 추진력에 내로라하는 대기업 기획사도 고개를 숙였다. 의사보다는 사회운동가가 더 맞지 않나 싶을 정도다.  

그가 내년 제주도지사 선거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느낌이 언론에 포착된 것 지난 6월초. 제주포럼을 앞둔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우근민 제주도지사 ‘설화(舌禍)’로 지역사회가 한창 시끄럽던 때였다.  

지역사회 일각에서 ‘양원찬 역할론’이 조금씩 고개 들기 시작했다. 직접 선수(후보)로 나서든, 아니면 뉴페이스를 미는 메이커 둘 중 하나. 그는 중국으로 건너가 베이징에 있는 원희룡 전 의원을 만났다. ‘선수(원희룡)와 메이커(양원찬) 조합’ 가능성 타진이었다. 그리고 6개월의 장고 끝에 그는 주소지를 제주로 옮겼다. 40여년만의 귀환이다.  

과연 그가 정치를 할 수 있을까, 괸당정치가 압도하는 제주현실을 그가 넘을 수 있을지에 대해 여전히 물음표가 따라다닌다. 그 역시 ‘고향의 벽’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제주도민들이 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제주사회 발목을 잡는 이 괸당정치를 넘지 못하는 한 제주 미래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양원찬은 우근민 사람이 아닌가란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사적인 일이 아니라면, 제주발전을 위해 도와달라고 하면 무슨 일이든 도우려고 했다. 그러나 선거를 도운 적은 없다. 지난 번 선거에는 공개적으로 중립선언을 했다.”

그는 “우근민 지사의 불출마 약속을 믿고 싶다. 눈물을 흘리면서 도민과 약속을 했다. 끝까지 믿고 싶다.”고 말했다. 또 일각에서 나오는 중도 포기에 대해선 “60만 재외도민회장이자 국회의원 28명, 장차관만 50여명이 있는 동문회장이 선거캠프 참모 하겠나. 인간 양원찬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양 회장은 정당선택과 관련, “새누리당을 선호한다”는 말로 대신했다. 그리고 1월중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본인 스스로 가장 취약한 인지도 문제에 대해 “지역이 떨어져 있기에 관혼상제에 참하지 못한데서 오는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까 고민이 많다”면서 “시대정신이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만큼 (이번 선거는) 다르게 평가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한다”며 도민사회에 퍼져 있는 변화와 개혁의 바람으로 괸당정치 벽을 넘을 것임을 내비쳤다. 양원찬 회장과 인터뷰는 9일 이뤄졌다.  

 다음은 양원찬 회장 인터뷰 전문. 

 

▲ 양원찬 재외제주도민총연합회장이 내년 제주도지사 선거에 나선다. 그는 '해결사'로 통할 정도로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이 자원을 제주발전을 위해 일하겠다는 거다. ⓒ  제주의소리

# 출마한다
  고향을 위한 내 생에 마지막 정성과 봉사라고 생각한다
  원희룡 의원에게 출마를 권유했었다

   
- 결론부터 이야기하자. 도지사 선거에 나서는 건가. 
“그렇다. 출마한다.”

-  집 주소도 옮겼다고 하던데. 어디에 살고 있나. 또 몇 년 만에 왔나.
“지금은 두 분 다 돌아가셨지만 부모님이 계시던 집이 동문통이다. 지금은 조카만 기거하고 있지만 여섯 형제 이름으로 돼 있는 집이 있다. 어머니와 아버님이 생활하시던 방에서 지내고 있다. 1968년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9년 말에 서울도 주소를 옮겼으니 40년이 넘었다. 선거와 무관하게 제주도에 옮겨오려고 살 집을 지을 집터를 미리 사 놓았다.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깨끗한 집이라도 지어서 모시려다가 조금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 저는 언제나 고향에 돌아오려고 마음먹었다. 집도 곧 지을 예정이다. 자식들에게도 이야기를 해뒀다.”

- 그동안 주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사실 정치에 관심이 없었지 않았나. 
“늘 생각하는 것이 60세 이전까지는 의사의 길로 열심히 일해야지 마음먹었고, 열심히 일했다. 의사하면서도 사회 활동 많이 했지만 한 번도 진료시간 이외의 밖에 나가본 일이 없다. 심지어 친인척 결혼식도 진료시간에는 다녀본 적이 없다. 60세가 넘으면 더 적극적인 봉사활동을 하려던 것이 제 인생의 목표였다. 정치라는 단어가 낯설고 그 자체가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 그런데 왜 정치에 나서게 됐나. 계기가 있었을 텐 테.
“올해 제 나이가 만 63세다. 정치를 할 거라면 일찍 시작을 했을 것이다. 아시다시피 제주도내외 120만 도민이라고 이야기한다. 제가 (재외제주도민회총연합회) 회장을 맡으면서 느낀 건 밖에 있는 도민들은 (고향 제주를) 친정으로 본다. 친정이 편해야 나도 편하고, 친정이 자랑스러워야 나도 자랑스럽고, 친정이 부끄러우면 나도 부끄럽다. 주변으로부터 ‘당신 고향을 위해서 이런저런 봉사활동 많이 하지 않았냐, 그렇지만 지금 방식으론 한계가 있다. 제주도를 올곧게 하는 진짜 봉사를 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왜 내가 해야 되느냐고 물었다. ‘20여년 편 가르기로 제주사회 갈등이 더욱 심한 것 같은데, 당신이 소위 말하는 (어느 편에도) ‘묶이지 않는 사람‘이니 갈등을 해소하는 주역이 될 수 있지 않냐. 지금의 봉사만으로는 하지 못할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도지사로의 권한을 갖고 당신이 추구하는 가치관을 한번 펼쳐보는 고향 제주를 위한 마지막 봉사다’란 말씀들이 계셨다.”

- 선거란 게 무척 힘든 일이어서 결정이 쉽지 않았을 건데.  
“선거에 나온다는 두려움, 도민들이 저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두려움이 많았다. 1~2년 전부터 제가 도지사에 나온다는 이야기가 나와도 제 길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늘 사양하고 지냈다. 그런데 말이 씨가 된다고 근래에 와서 내자 선거에 나온다는 이야기가 설(說)로 퍼지면서 제가 정말 존경하는 선후배들로부터 심한 압박을 받았다.  ‘제주사회가 오순도순하게 신명나게 살아볼 일이 없겠냐. 당신이 나서면 대통합이 될 것이다’ 이 이야길 들으면서 괴롭고 힘들었다. 서울에 주재기자들이 인터뷰하러 왔을 때 고민을 털면서 정리를 했다. 제가 도지사를 나가겠다. 최후의 선택은 도민들이 하겠지만 대통합과 제주의 미래비전에 대해 내 생애 마지막 정성과 봉사라고 하는 정열을 가지고 말이다.”

- 결심한 이후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가족들은 혹 반대는 없었나.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주변의 진짜 가까운 사람들은 ‘하지 말라’고 했다. 지금껏 올곧게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진흙탕에 들어갈 이유가 뭐냐고 저를 말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당신 여태까지 많은 인맥을 구축하지 않았느냐, 당신이 가져온 네트워크라면 정부나 정치권을 동원해서 제주도를 충분히 발전시킬 수 있는 여력이 있지 않느냐’는 과찬의 말씀을 해주시더라.

제 직업이 의사여서 그런지 모르지만 지금껏 살아오면서 개인적으로 누구에게도 사적인 부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주변에서 ‘당신에게 신세진 사람들이 빚을 갚으려고 할 거다. 그것을 제주 발전에 승화시켜 달라’는 이야기에 제가 적격자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이왕 마음을 먹은 이상 의지를 굽히지 않고 고향 발전과 화합, 신명나는 제주 사회를 만들었으면 하는 소망을 담아보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아이들에게는 이야기하니 ‘아버지 고향을 너무 좋아하시잖아요. 아버지께서 고향을 좋아하는 그대로 존중하겠습니다’ 이런 말을 했다. 괜찮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 본인이 나서기에 앞서 원희룡 전 의원을 만나 출마를 권유했단 이야기가 있다.   
“시대를 바꾸고 세대를 바꾸는데 (원희룡 전 의원이)적격하다는 판단에 중국에 가서 원희룡 전 의원에게 출마를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앙정치에 더 있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더 이상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고 해서 돌아왔다. 원 의원과는 아주 친하면서도 조심스러운 사이다.” 


# 우 지사가 ‘고향 위해 도와 달라’면  뭐든지 노력했다
  눈물까지 흘린 ‘불출마 약속’ 마지막까지 믿겠다
  ‘중도포기?’...‘인간 양원찬’을 잘 모르시는 분들 이야기다
   

- 양 회장은 우근민 지사와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고 있다.
“제가 우 지사를 안 건 그분이 총무처 과장으로 계셨을 때부터다. 처음 봤을 때, 어려운 시절을 보낸 분 치고는 사고가 긍정적이어서 좋아했다. 우 지사친구들과 제 친구들도 가까운 사이라 어울릴 기회가 많았다. 저는 주변에서 다 아시다시피 공과 사를 굉장히 구분해 사는 사람이다. 단 둘이 정치 이야기를 하거나, 우 지사가 제게 의논해본적도 없다. 지지난 선거 때도 기회 있을 때마다 ‘떠나는 모습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드리곤 했다. 도민들이 아쉬울 때 떠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지 그려본다는 이야기를 해봤다. 공무원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그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 제가 (우 지사 주변에서) 몇 안 되게 쓴 소리를 제일 많이 한 사람일 거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우 지사께서 제주도 발전을 위해 도와달라고 하면 사적인 것이 아니라면 뭐든지 도우려고 노력했고 그 과정에 교훈도 있었다. 가까운 사이인 건 맞다.”

- 선거도 도와준 적도 있고, 세계 7대 자연경관도 범국민위 사무총장을 맡아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해 오면서 우 도정 성공을 위해 도와줬다.
“7대자연경관은 우 지사로부터 ‘양원찬이 나서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라며 도와 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워낙 힘에 부치는 일이라 시간을 달라고 말씀드렸다. 한 달 가량 고민을 했다. 서울에 있는 대한민국에 뭐 좀 하신다는 분들을 다 만났다. 언론계나 문화계 인사들도 만나면서 얻은 결론은 ‘제주도를 위해서 참 좋겠다’는 말에 제가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잘될지 말지는 나중에 문제고, 의사를 하면서는 못 한다는 말에 그때부터 진료를 보지 않고 후배들에게 맡겼다. 그 이후 1년 반 동안, 제 일생에 제일 바쁜 시기였다. 아침 9시에 출근해 밤 12시 이전에 가지도 못했고 아이들과도 밥 한 번 밖에서 먹지 못했다. 그때 제가 많은 도움을 얻고 신세를 졌다.”

- 선거와 관련해서는 어떤가. 
“제가 가만히 있어도 우 지사와 친하다고 하면 저를 아는 사람들이 ‘양원찬은 우 지사를 돕지 않겠냐’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렇게 느낄 수는 있지만 제가 누구의 선거운동에 나서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아마 4년 전 기억할 분도 계실 테다. 저는 중립을 지키겠다고 선언한 적도 있다. 저의 가족이나 동생, 형님께도 조심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가족들의 이야기가 내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말씀 드렸다. 이것만큼은 그 때 두(우근민-현명관)  캠프에서도 인정할 거다.”

- 결국, 이제는 우근민 지사와 정치적으로 등을 돌리게 됐다. 라이벌이 될 수도 있다. 얼마 전 인터뷰에선 우 지사가 ‘불출마 약속’을 지킬 것으로 믿는다는 이야기도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 지사께서 나오신다는 이야기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라고는 읽고 있다. 그러나 우 지사께서 도민과 약속을 하시지 않으셨나. 선언을 하셨다. ‘지도자가 도민과의 약속을 어기면서까지 과연 할까’하는 생각이다. 그 분의 인격을 믿고 싶다. 눈물을 흘리면서 도민과 약속을 했으니까. 본인이 발표하기 전까진 우 지사의 선언을 믿겠다. 지도자의 거짓말은 그 사회의 미래를 혼탁하게 하는 것을 전 세계에서 보고 있지 않나. 지사를 한두 번 하신 분이 아니기에 그런 통찰력은 갖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렇기에 미리 논평을 내는 건 좋지 않다. 만일 그런 일(출마)이 있다면 이런 분을 제가 상대했었나, 스스로 자괴감이 들 것 같다”

- 양 회장께서 뜻을 굳힌 후 이와 관련해  우근민 지사와 어떤 형태로 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나.
“전혀 정치적 소통은 하지 않았다. 정치적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는다. 이것은 분명히 말씀드리겠다. 우 지사와 가깝다고 하더라도 ‘내가 다시 나온다’ 하는 이야기를 제게 한 번도 하신 적이 없다.”

- 일각에선 양 회장께서 중도에 우근민 지사 지지선언 하고 포기할 것이란 이야기도 나돈다. 
“그런 이야기가 있다고 하는데, 그건 ‘인간 양원찬’을 잘 모르시는 분들의 이야기다. 제가 제주도외 60만 도민 대표다. 그들이 지켜보고 있다. 또 제가 모교27만 총동문회장이다. 동문회 가운데 국회의원 28명, 1급이상 공직자와 공기업 사장 등이 50여명, 청와대 비서관도 많다. 제가 어느 선거캠프 참모로 들어간다고 하면 그분들이 저를 용납하려고 할까. 저를 어떻게 보겠나. 그 말로 대신 하겠다. 저는 결정할 때까지 고민하지, 그 이후에는 옆이나 뒤로 물러서지 않는 사람이다.” 

 

▲ 양원찬 재외제주도민총안협회장. 그는 이번 선거를 통해 제주사회가 괸당정치를 넘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고 했다. 고향을 떠난 지 40여전. 괸당정처는 그의 도전에 버티고 서 있는 가장 큰 벽이다. ⓒ 제주의소리

# 의견 수렴중이나 새누리당 선호...내년 1월중 입당
  시대정신은 ‘변화와 개혁’...‘괸당정치’ 변하지 않으면 제주미래 없어    
  서청원 김무성 ‘30년 절친’...선택은 도민이 하는 것

 

- 정당 선택과 관련해선, 박근혜 대통령과 국정 철학을 같이한다고 말했다. 그럼 새누리당인가.
“선호하는 건 사실이다. 우선 첫 번째,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과 신뢰에 대한 저의 철학과 맞다. 그리고 제주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집권당이 낫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그러나 의견 수렴은 하고 있다. 제주도 발전에 어느 길이 좋은지, 새누리당으로 가는 게 도민과 정반대의 생각은 아닌지 말이다. 종교계 인사들 이야기도 들어보려고 한다. 최종 결정은 1월에 할 생각이다. 현재로선 선호하는 것이 맞다.”

- 정치 일정을 보면 늦어도 1월에 입당해야 하는 것 아닌가.
“2월 4일부터 예비후보로 등록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느 당에 입당하고 활동하려면 그 전에는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는 말씀은 확실히 드리겠다.”

- 인지도가 아주 낮다. 입당 후 가장 급한 게 경선준비다. 지지세력은 물론 인지도를 높이는 게 기본인데 준비를 하고 있나. 
“맞다. 저는 지금 이 상태가 제주도 정치 실험의 대상이라고 느껴진다.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제주도에 전통적인 수눌음 문화 가운데 괸당문화나 관혼상제가 있다. 제가 아무래도 지역이 떨어져있기에 관혼상제에 참여하지 못했다. 이런 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고민이 많다. 이 문제가 제일 화두라고 생각하고 있다.”

- 괸당정치 벽을 넘지 못하면 힘들 것이란 걸 인정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 벽을 넘을 건지 궁금하다. 
“시대정신이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고 있으니 지금과는 다르게 평가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감히 이야기하겠다. 그런데 변화에 대한 항상 리스크는 있다. 제주어로 ‘그냥 살면 좋주게’ 이런 것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던 세계 속의 제주도가 되고 있다. 이 상태로 변화하지 않고 있을 것인가? 이미 도민들이 느끼지 않나. 제가 괸당 문화나 수눌음 문화에 참여하지 못하면서 대중성과 호흡하지 못한 부분을 이런 것으로 해소할 수 있지 않나. 제 바람일 수도 있다.
제주도에서 양원찬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두렵기도 하다. 어떻게 저를 예쁘게 봐주시지 않을까하는 바람인지도 모르지만 저는 지금까지 고향을 져버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제주도 촌놈이 대학 사회에서 싸움도 많이 했다. 저의 모든 사회활동의 대부분이 고향을 위한 일이었기에 이런 걸 이해해 주시리라 본다.”

- 새누리당 유력 정치인들과 사이가 아주 막역한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서청원 의원, 김무성 의원은 새누리당을 이끌 빅투다.  
“가까운 사이란 건 맞다. 저는 지금까지 정치인이고 기업인이고 무슨 목적을 가지고 만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두 의원도 국회의원이 되기 이전에 만난 분들이다. 그 인연이 지금껏 이어져온 것이다. 이분들과는 정치적인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출마한다고 아직 말씀도 못 드렸다. 남 일은 뻔뻔할 정도로 부탁을 잘 드리는데 제 일에는 어쩐지 그렇게 못한다. ‘저 도지사 나올 거니 도와주십시오’ 부끄러워서 제 이야길 하고 다니지 못한다. 김무성 의원과는 동문으로 YS 초기부터 인연이 있다. 서청원 (전)대표와는 제가 학교 다닐 때 학생운동을 하면서 알게 됐다. 그때 그룹들과는 아직도 형제처럼 지낸다. 알고 지낸지 한 30년 된다. 정치와는 관계없는 사이다.”

- 그래도 그 분들이 도와주거나, 도움을 받지 않겠나.
“중앙당의 도움을 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제주도민의 마음은 도민들이 결정해야 한다. 빽을 쓰거나 누구를 통해서는 원하지 않는다. 제주도당에서 양원찬의 모습을 그대로를 평가해줘야지, 누구 힘을 빌려서 하겠나. 절대 누구를 동원해서 하고 싶지는 않다. 분명히 말씀드리겠다. 제가 이렇게 살아왔다. 간접적으로는 이 분들이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을 수도 있지만 그저 역할일 뿐이다. 제 성격을 아시는 분들은 이해하실 부분이다.”

 # 재선충, 소나무 넘어 ‘청정제주’ 이미지 무너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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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동안 밖에서 제주를 지켜보셨다. 밖에 계셨지만 누구 보다 제주 속내를 많이 안다. 밖에서 본 제주 어떤가.
“밖에선 친정의 아름다운 이야기만 듣고 싶을 거다. 근래 재선충 문제를 들겠다. 이것은 단순히 소나무 문제가 아니다. 제주가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단어가 ‘청정’ 아니냐. 재선충 문제는 청정을 저해하는 가장 큰 훼손이다. 소나무만이 아니라 제주도 전체 이미지에 먹칠하고 있다.
또 ‘청렴도 꼴찌’ 소식엔 정말 자존심이 상한다. 청렴도는 부패지수를 말하는 거다. 어느 언론에선 ‘신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표현도 하더라. 종합 청렴도, 내부 청렴도, 밖에서 보는 청렴도 꼴찌라고 비꼬는 기사를 보면서 밖에서 정말 자존심 상했다. 사람도 도정도 자연도 청정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제주도민들은 순수하고 청정하다. 때 묻지 않은 순수성을 어떻게 하면 바르게 가게 할 수 있을까, 이것이 지도자와 제주도 유지들, 오피니언 리더들의 몫이다. 수눌음 문화도 그런 맥락이다. 같이 어울려 살자는 것을 잘못 이용하는 사람들의 문제다. 화합하지 못하고 분열로 가고 갈등을 만들어 낸다. 제주가 이것을 정리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 분열. 갈등, 왜 이렇다고 보나.
“20여 년 동안 이런 것들이 전해져 오다가 최근에 더 노골화, 양샹화되는 분위기다. 이게 지나치면 하나의 규범으로 자리 잡는다. 그러면 제주의 미래가 없어진다. 악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악이 악인 줄을 모른다. 도둑질을 매일 하다보면 도둑질인 줄 모른다. 열 명의 경찰이 도둑 한명을 못 지킨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런 것들이 도민 사회에서 공감대를 형성해버리면 미래가 없어지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가치가 없는 세상이 만들어지는 거다. 그런 면에서, 저를 도지사에 나오라고 종용하는 분들은 거기에 가치관을 두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 제주사회는 이른바 ‘한동주 게이트’로 시끄럽다. 서울에서 어떻게 비쳐지고 있나.
“부끄러워서 말할 것도 없다. 분명히 제가 말씀드릴 것은 (줄서기에) 익숙해진 공직자들은 도지사의 공복에서 도민의 공복으로 돌아오라고 것이다. 유력 신문, 중앙 방송 메인 뉴스에 보도되면서 제주도민이나 재외도민의 부끄러움과 창피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공직자로서 해야 하는 기본적인 게 있다. 아무리 중립은 없다고 하더라도 노력은 해야 하는 것이 공직자다. 그 가치를 무시했을 때 제주도 사회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변화를 바라는 도민이 있다면 부탁을 드리고 싶다. 제가 제주도정과 일해보고 정부와도 일해 보니 다른 것이 있다. 지자체는 이런 게 있다. 어떤 단체나 기관이 보조금을 받으면 도지사나 시장, 동장이 주는 것으로 오해한다. 이것은 개인이 주는 것이 아니다. 도민들이 돌려받아야할 혈세다. 제주말에 ‘잔칫집에 가면 도감 잘 만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고기 주인은 도감이 아니다. 감사의 뜻은 혼주에게 해야 하는데 도감한테 하라고 한다. 제주도민들이 이렇게 순박하다. 도정으로부터 도움(보조금)을 받았다고 하면 혈세를 받았으니 도민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보조금은 개인 쌈짓돈이 아니다. 도지사, 시장, 동장에게 이런 것을 집행하라고 위임한 것이다. 받은 사람이나 준 사람이 불평불만이 없어야한다. 친한 사람을 준다고 하면서 분열이 되는 것이다.” 

 

▲ 앙원찬 회장은 제주사회의 가장 큰 갈등이자 아픔인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문제와 관련해 강정마을 공동체 복원과 찬반을 떠나 마을주빈 모두에 대한 명예회복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 제주의소리

- 강정 문제가 최대 현안이다. 두 분의 도지사를 거치면서도 아직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했다. 전임 김황식 국무총리와 이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였던 것으로 안다.

“지난해 봄에 제가 도민회장 되기 직전 총리실에서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받고 제주도 분들 몇 분 모시고 갔다. 그 자리엔 국방부장관, 행자부 장관도 계셨다. 김황식 총리께서 ‘제주도민들을 찬성 쪽으로 설득하고 이해시켜 달라’고 하시 길래 ‘저부터 이해 안되는 부분이 있다. 저를 먼저 설득 시켜 달라’고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선언하셨다.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도가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인 남방해상 제해권인데다 이곳에 물동량의 90% 지나간다니 이걸 지키고자 해군기지를 만들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은 제주도에 미안하니 크루즈항을 만들어주겠다고 하신 것 아닙니까?’ 물으니 맞다고 말씀하셨다. ‘크루즈항은 무엇이냐, 민간항인데 왜 해군이 나서냐. 울릉도를 봤더니 해군기지 만들면서 크루즈항은 국토해양부 예산으로 하는데 제주는 왜 해군이 기자회견도 하느냐. 제주도민들은 관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다. 4.3에 대한 애환이 있고 두려움이 있다.’고 따졌다. 그랬더니 김 총리께서 ‘없던 것에서 (크루즈항이) 플러스가 되다보니 이왕 맡은 해군에서 하는 것이 낫다고 해서, 행정 편의주의가 없지 않아 있었다고 대답하셨다. 제가 도민들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찬성과 반대는 다원화 시대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정부의 역할이라고 본다. 지도자의 덕목이기도 하다

- 도민회장 자격으로 강정마을도 방문하고, 구속자도 면회한 것으로 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제가 7대경관 사무총장할 때 강정마을 출신 아주머니들 10여명이 저를 찾아오면서 눈물을 흘렸다. 고향에 갔을 때 작은 아버지댁을 찾아갔더니 ‘너희 오빠가 반대했으니 내 집에 찾아오지 오지 말라’고 했다는 거다. ‘국책 사업 때문에 왜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하는지, 누구의 탓이냐’며 눈물을 흘려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귀포공무원 상대로 세계7대경관 강연을 할 때, 강정마을 대표자들이 오셔서 ‘자연을 훼손하는 해군기지를 찬성하느냐’고 묻기에 이런 답변을 드렸다. ‘제가 범국민회 사무총장이지만 사적으로 의견으로 대답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보전이냐 개발이냐, 보전에 가까운 사람이다.’라고 말씀 드렸다. 공사 현장도 같이 봤고, 대화도 나눴다.

이제 시간이 많이 흘렀다. 이 상태에서 공사가 안 되거나 할 시기는 지났다. 반대하는 분들 의견이 틀린 게 아니다. 다른 것이었다. 이분들을 명예스럽게 해드려야 한다. 찬반을 떠나 어떻게 서로 화합하고 명예스럽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우선 수백년 이어져 온 마을공동체부터 복원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나 제주도정은 이분들과 충분한 이야기를 통해 물질적 보상뿐만 아니라 마음의 보상까지도 맡아야 한다. 지난 추석 때 강정마를 주민들이 찬반을 떠나 화합 축구시합 하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위정자 들은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옳았다고 인정해야 한다. 다른 의견이 있었을 뿐이다. 이걸 존중하고 지켜주면서 가치관을 일궈야 한다.”

 # 니편 내편 안 가르는 ‘정조 탕평책’ 귀감
   싱가포르 발전은 원칙과 훌륭한 지도자 있기에 가능
   공익을 위한 정치-통합의 리더십 발휘할 것
 

    
- 양원찬 회장이 생각하는 정치란 무엇인가.
“도지사는 엄격히 이야기하면 정치보다 행정가에 가까운 자리다. 그런데 중앙 정치의 공천을 통해 정당 선거로 때문에 정치인이 되는 것이다. 제주도는 새 정치가 와야 한다. 세대가 바뀌고 시대가 달라졌다. 이제 세대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 함께 갈 수 있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갈 수 있는 길이 급선무라고 본다. 이것이 지도자의 덕목이기도 하다.”

- 지난번 제주대 강연에서 바람직 한 지도자 상으로 ‘정조’를 꼽았다.
“정조 임금은 목숨을 걸고 개혁을 하신 분이다. 사대부들도 썼고, 길거리의 선비도, 천한 기생 출신인 김만덕도 발탁했다. 목숨을 건 투쟁이었다. 정조 대왕의 위대한 탕평책이었다. 이게 바로 화합이다. 그의 리더십이 제주도에 필요한 리더십이라고 본다. 누구를 편 가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아버지를 죽였던 사람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탕평책, 함께 가는 탕평책이 필요하다. 제가 김만덕 보다도 더 존경하는 분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분이 계시지 않았다면 김만덕도 없었다. 제가 말하는 통합이다. 지금 이 시기가 기회다. 이 기회를 놓치면 후퇴한다. 우리보다 잘 산다는 싱가포르, 절대 우리보다 좋은 조건이 아니다. 원칙과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 도민들을 많이 만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어떤 이야기를 듣나.
“지도자를 바꾸어야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오피니언 리더들에겐 제가 통할지 몰라도 상황이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는 통하지 않을 거란 이야기도 듣는다. 변화를 원하는 이들을, 어떻게 구슬을 꿰느냐가 관건일 거다. 힘내라는 말씀들 많이 해주신다. 그분들로부터 많은 용기를 얻고 있다. 무엇이 중요하냐. 지도자의 덕목과 제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서 120만 도민, 전국 1%를 어떻게 묶느냐다. 이게 흩어지면 모래알일 따름이라는 인식이 도민들 사이에 점점 퍼지고 있는 듯하다. 그런 명제 덕분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지 않았냐는 생각이다.” 

 

 양원찬 누구인가?

<경력사항>

                       재외제주특별자치도민회총연합회 회장
                       한양대학교총동문회 회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2011.11 ~       세계7대자연경관선정범국민추진위원회 사무총장
2011.02 ~       한양대학교 제13대 총장 후보자 추천위원회 위원
2010.02 ~       김만덕기념사업회 공동대표
2006 ~           서울제주도민장학회 이사
2000 ~ 2004   서울특별시 의사회 고문
1995 ~ 2000   스포츠조선 편집자문위원
1985 ~ 1998   두산베어스 팀닥터

<학력사항>

1979 ~ 1983   한양대학교 대학원 의학 박사
1976 ~ 1979   한양대학교 대학원 의학 석사
1969 ~ 1975   한양대학교 의학 학사
1965 ~ 1968   제주제일고등학교

 

 

<제주의소리>

<이재홍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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