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36) 삼공본풀이 2

 

▲ ⓒ문무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천부지모(天父地母)의 덕인가. 성(sex)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인가.

<삼공본풀이>의 이야기는 다음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막내 딸 가믄장아기가 태어나자 갑자기 부자가 된 ‘강이영성’과 ‘홍은소천’이란 거지 부부는 고생하던 옛날을 까맣게 잊고 괜히 거드름을 피우고 싶어졌다.

위․아랫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자란 은장아기를 불렀다. “너는 누구 덕에 먹고 입고 행동하느냐?” 큰딸 은장아기가 대답했다. “하느님 덕이외다. 지하님 덕이외다. 아버님 어머님 덕이외다” 이 말을 듣고 흡족해 하며, 이번에도 역시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자란 놋장아기를 불렀다. “너는 누구 덕에 먹고 입고 행동하느냐?” 둘째 딸 놋장아기가 대답했다. “하느님 덕이외다. 지하님 덕이외다. 아버님 어머님 덕이외다.”

역시 만족하며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별로 받지 않고 자란 가믄장아기를 불렀다. “너는 누구 덕에 먹고 입고 행동하느냐?” 막네 딸 가믄장아기가 대답했다. “하느님 덕이요 지하님 덕이요 아버님 어머님 덕이기도 하지만 나 배꼽 아래 선그믓(陰部)의 덕으로 먹고 입고 행동합니다.”하였다.

천만 뜻밖의 대답에 부모는 화가 벌컥 났다. “이런 불효 막심한 년, 어서 당장 나가라.” 벼락같은 호통을 치며 집을 나가라고 쫓아 버렸다. 그리하여 가믄장아기는 집에서 쫓겨난 신세가 되었다.

직업의 신이며, 운명의 신인 ‘전상신’ 가믄장아기 신화 <삼공본풀이>는 ‘말녀발복설화(末女發福說話]’ 또는 ‘내 복에 산다’형 설화로 알려져 있다. 신화의 주인공 셋째 딸[末女] ‘가믄장아기’가 태어나자, 장님 거지 부부가 막네 딸로 인해 부자가 된 육지부 설화와 같은 종류의 설화로 간주하는 때문이다.

그러나 제주도는 ‘딸은 살림의 밑천’이라 할 것이 아들을 나면, 태어나면서부터 진상과 부역으로 고통을 겪는데, 딸을 나면 물질이라도 해서 살림에 보탬이 되었던 제주사람들의 생활사에 기인한다. 그리고 육지부 설화에 흔히 보이는 ‘내 복(福)에 산다’ 형의 신화의 입장에서 볼 때도 육지와 다른 점은 ‘내 복에 산다’가 아니라 ‘나의 선그믓-성(性 ; sex)-때문에 산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복은 굴러들어 오는 것이 아니라, 뚜렷한 특징으로 여자의 성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여자이며, 여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당당하고 축복 받은 것이며, 그러한 여성으로 태어난 그 장점을 적극적인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살겠다는 것이다.

▲ ⓒ문무병.

‘가믄장아기’가 주장하는 것은 “나는 여자다”이며, 그리고 여자인데 “뭐가 어째서?”이다. 여기에서 운명이 신 가믄장아기가 우리에게 주는 지혜, 주장하는 강한 의지는 여성으로서 자기 앞의 생을 적극적으로 당당하게 살겠다는 것이다.

제주도의 열두 본풀이 중 농경신 세경본풀이와 함께 여성영웅신화로 꼽히는 <삼공본풀이>에는 운명의 신 ‘가믄장아기’를 통하여 봉건적 유교적 형식주위를 거부하며, 인간 중심적 사고와 자유 의지와 남녀가 모두가 본래적으로 평등하다는 사상을 신화의 문법, 신화가 암유하는 문화적 상징 속에 담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제주 신화에 통용되는 천/지, 선/악, 이승/저승, 생/사 등신화의 이원 대립의 문법에서 한 단계 발전한 3단계 화법으로 발전시킨다. 이를 제주신화의 3단 화법이라 한다면, 신화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논리적 미적 표현방법의 3단계를 뜻한다.

아버지가 물었다. 너는 누구 덕에 사느냐? 큰딸이 대답했다. “부모님 덕에 삽니다” 둘째 딸이 대답했다. “부모님 덕에 삽니다” 막네 딸이 대답했다. “부모님 덕이 아니라 내 선그믓 덕에 삽니다.” 아버지는 화가 나서 막네 딸을 내쫓았다. 이와 같이 ‘긍정-긍정-부정’ 'TTF'형 이야기 전개 방법이다.

소위 ‘말녀발복설화’라고 하는 가믄장아기 신화는 단순한 ‘내 복에 산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적극적인 사유, 긍정과 수긍에 길들여진 순응의 원리에 근거를 둔 화법이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적극적인 삶을 살겠다는 생의 의지를 보이기 위하여 순응에서 저항으로 역전되는 부정과 변조, 파격의 미학이 담겨 있다. 그것은 창조적인 사유의 법칙이며, 제주인들의 말하기, 신화 전개의 3단 화법으로 발전한 것이다.

김녕리 신당의 본향당신 괴뇌기또 한집님은 아방눈에 골리나고 어멍눈에 씨찌난에 불효자식이라 무쇠설캅(무쇠상자)에 가두어 동해바다에 띄워버렸다. 무쇠설캅은 정처없이 떠가다가 동해용궁 산호수 가지에 걸렸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무쇠상자에서 풍운조화가 일어났다. 큰딸아기야 나가봐라. 아무것도 없습니다. 셋딸아기야 나가봐라. 아무것도 없습니다. 막네야 나가봐라. 산호수 가지에 무쇠설캅이 걸려있습니다. 이와 같이 ‘부정-부정-긍정’의 화법도 자주 나타나는 신화 전개의 3단 화법이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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