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혁이 떠난 러시아 여행] (11) 오슬로 下

대형쇼핑몰이 보여 화장실을 이용하기위해서 들어갔는데 화장실 표지판을 따라가다보니 거의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서야 찾았으나 유료화장실이었다.

동전을 넣는 기계가 있는데 노르웨이어로 씌어있는 글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서 이용하지도 못하고 도로 밖으로 나왔다. 층마다 아무런 제한 없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한국의 백화점이나 마트들은 참으로 관대하고 고마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다행히 얼마 안 가 이제는 눈에 익은 중앙역이 보였고, 서둘러 화장실을 찾아갔다. 기차역같은 공공시설에서야 화장실이 개방되어 있겠지. 다시 화살표를 쫓아 간 화장실은 그러나 유료였다. 그나마 알아볼 수 있는 영어로 10크로네 코인을 넣으라고 써있었고, 옆에는 코인교환기계도 설치되어 있었다. 출입을 막는 막대 안쪽에선 키큰 흑인 한 명이 거만한 눈길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서울역이나 명동의 대형 백화점에서 꼭대기층이나 역의 외진 구석에 1000원쯤 받는 유료화장실을 달랑 하나 만들어 놓고 있다면 아마도 거센 비난을 받을 것 같은데 이곳에서는 모든 서비스에는 반드시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인식이 심어져 있다는 느낌이다.

▲ 칼 요한슨 거리의 저녁(1895). ⓒ양기혁

중앙역에서 국회의사당과 국립극장을 거쳐 왕궁까지 이어지는 길의 이름은 칼 요한슨 거리이다. 서울의 명동만큼이나 하루종일 인파로 북적이는 이 길로 왕궁까지 가 보기로 했다.

국회의사당에서 국립극장까지는 어제 저녁에 갔던 곳이라 낯설지 않았다. 거리에는 상가가 밀집해 있을 뿐만 아니라 길바닥에는 좌판을 벌여놓고 기념품이나 민속공예품 같은 것을 파는 사람들이 줄지어 늘어섰는데 주로 남미계 사람들로 보였고, 몇 사람이 모여서 혹은 한 두 사람이 모금함을 앞에 놓고 각종의 악기들로 연주를 하는가하면 자신을 조각 작품처럼 만들어 일종의 퍼포먼스를 벌이기도하며 지나가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하였다.

국회의사당 옆 고급 호텔들의 지붕에는 네 개의 국기가 나부끼고 있었는데 소위 스칸디나비아 국가라고 하는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그리고 덴마크 네 나라의 친밀함이랄까 돈독한 유대를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이 나라들도 과거에는 서로 침략하기도 하고, 정복하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다정한 이웃으로 비쳐보이는 것이 부럽기도 하다. 아직도 극동의 이웃한 나라들은 서로를 비난하고, 반목과 질시가 그치질 않으니 말이다. 

호텔 앞에 늘어선 노천카페를 지나쳐 국립극장옆을 지나갈 때쯤 두명의 젊은 남자가 길을 막아서며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자신들을 각각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온 여행객이라고 소개한 키가 큰 남자는 나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퍼부어댔다. 어느 나라에서 어디를 거쳐 왔느냐. 어디를 갈 예정이냐, 내가 묵었던 호텔 서비스는 괜찮았느냐.

내가 머릿속으로 부지런히 영작을 하면서 일일이 질문에 대답하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들었는데, 눈치라도 챈 듯이 질문을 퍼붓던 독일에서 왔다는 친구가 머리에 썻던 밀짚모자를 벗자 기다란 금발머리까지 함께 벗어지며, 짧게 깍은 머리와 손에 든 마이크를 보여주며, 마치 ‘지금까지 몰래 카메라였습니다’라고 말하듯이 그는 활짝 웃어보이며 반대쪽으로 손짓을 했다. 방송카메라를 들이대고 촬영중인 몇사람이 나를 향해서 웃어보였다. 

졸지에 방송인터뷰를 하게 된 나는 당혹스러우면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느꼈다. 짧은 영어실력이 아쉬울 뿐이었다. 그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 다음 정식으로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오슬로에서의 여행은 어땠는지, 물가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묻고, 노르웨이 사람들에게 한마디 부탁했다. 노르웨이에서 며칠 동안 느꼈던 것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물가가 너무 비싸서 여행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노르웨이는 매우 아름다운 나라이다.

실제 방송 인터뷰였는지, TV방영이 될지도 모르는 채 그들과 헤어져 왕궁쪽으로 향했다. 왕궁앞 정원은 파헤쳐 진채, 공사중이었다. 궁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옆문으로 들어가서 뒤쪽 잘 가꿔진 정원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오는 것으로 끝이다. 아름드리 정원수들 사이의 잔디밭에는 불경스럽게도 웃통을 벗어 제치고 속옷차림의 남녀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고, 신나게 뛰노는 애완견들이 실례하기도 했다.

왕궁을 나와 왼쪽 길 건너편을 조금 걸어가자 입센 박물관이 보였다. 입센이 사망하기 전 약10년간을 살았던 집으로 2006년 사망 백주년을 맞아 완전히 보수되었다고 한다. 헨릭 입센은 근대 노르웨이의 정신이며, 노르웨이 문학과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노르웨이 국민 작곡가 그리그는 입센의 희곡 ‘페르귄트’를 음악으로 옮겼고, 노르웨이가 자랑하는 화가 뭉크도 입센의 소설과 희곡을 모티프로 삼아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대부분 노르웨이어로 전시된 그의 삶과 작품들은 나에게는 생소하고, 관심을 끌 만한 것이 없었다.

▲ 오슬로 시청 근처에 있는 노벨 평화 쎈타. ⓒ양기혁

발길을 옮겨 바다 쪽으로 향했다. 얼마 안가 노벨 평화 쎈타가 나왔다. 오슬로 패스로 무료 입장했으나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의 사진을 다소 환상적으로 꾸며서 전시해 놓은 것을 보는 것 외에 눈길을 끌거나 볼만한 내용이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위안이랄까

다시 바닷가 끝에 있는 현대 미술관으로 향했다. 건물 주위로 해변과 작은 조각공원, 오슬로시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탑을 갖추고 있는 데, 지어진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현대식 건축물로서 이탈리아 출신의 유명 건축가의 설계로 지어졌다고 한다. 입센박물관이나 노벨 평화쎈타보다 나의 호기심을 끌기는 했으나 아쉽게도 월요일인 오늘은 휴관이라서 들어갈 수 없었다.

▲ 현대미술관이 있는 해변쪽에서 바라본 오슬로. 멀리보이는 쌍둥이 탑이 있는 붉은벽돌 건물이 오슬로 시청이다. ⓒ양기혁

해변에는 날렵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요트들이 해안을 가득 메우고 뜨거운 햇빛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지나는 길가 양편으로 늘어선 고급 레스토랑과 선상 카페들에는 손님들이 북적이고 햇빛을 두려워않는 이곳 사람들은 따가운 햇빛에도 아랑곳않고 내리쬐는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온 길을 되돌아가서 노벨 평화쎈타 건물앞의 노천카페에 앉아 저녁식사겸해서 새우 한접시와 맥주 한잔으로 오슬로 시내 관광을 마감했다.

6월 18일 (화요일)
지난 밤 잠이 든 사이에 방에는 두명의 투숙객이 들어왔는데, 내 옆 침대를 썼던 백인은 날이 밝자 곧 짐을 챙겨 나갔고, 건너편 침대의 흑인은 소말리아 출신이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그는 곧 핀란드로 가야한다고 말하고는 혼자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허공에 손짓을 하며 조금 크게 말했다.
   ‘Everythings will be OK.’

러시아 가는 비행기는 저녁 9시 50분 이고, 오전과 낮시간에 오슬로 항에서 배를 타고  근처의 피요르드 관광을 할 수도 있고, 버스를 타고 시내투어를 하는 관광을 할 수도 있었으나 어쩐지 아침부터 기분이 우울해지며 흥미를 잃어버렸다.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러시아에 다시 들어가서 일이 순조롭게 풀려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지 걱정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살인적인 노르웨이 물가로 인해서 생각했던 것보다 지나치게 비용이 많이 든 것도 마음을 편치 않게 했다. 

12시가 다되어 유스호스텔에서 배낭을 챙기고 나와서 바로 근처에 있는 중앙역 광장으로 갔다. 광장에는 구슬픈 피리소리가 아련하게 울려퍼지고 있었는데 아마도 저 남미의 페루나 볼리비아쯤에서 온 것으로 생각되는 구릿빛으로 그을린 얼굴의 노인이 광장 한 구석에 앉아 작은 리코더를 쉴 새 없이 부르고 있었다.

피리소리는 아주 멀리까지 선명하게 들렸는데, 극장을 가득 채우는 오케스트라 소리처럼 드넓은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 오슬로 중앙역 광장 한쪽 편에서 모금함을 앞에 놓고, 리코더를 부르고 있는 노인. ⓒ양기혁

책을 꺼내 좀 들쳐보기도 하다 멍하니 지나는 사람들을 쳐다보기도 하다 몇시간이 흘렀다. 광장 한 가운데 급조된 간이 천막에 대형 앰프를 동원하여 홍보이벤트를 벌이는 행사팀에 밀려서 리코더를 부르던 노인은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애절한 음조의 은은하게 울려퍼지던 노인의 리코더 소리가 갑자기 젊은이들의 소란스런 소음으로 바뀌고나자 나도 일어서서 좀 이르지만 공항으로 가기로 하고, 중앙역 광장을 떠났다. 소말리아에서 온 흑인 뚱보가 중얼거리듯 한마디 읊조리면서
   ‘Everythings will be OK (다 잘 될 거야)!’ /양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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