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찮으신 어머니의 집안일을 어떻게 말릴까요

어머니가 많이 나아졌습니다. 어제는 퇴근하고 바로 가슴이 아프다고 하셔서 또 가슴이 덜컥 했습니다. 병원에 가니 다행히 경미한 위경련이라고 당분간 소화 잘 되는 죽 종류로 드시게 하라고 했습니다. 딴에는 어머니를 위한답시고 점심에 고등어조림을 드시게 했는데 그게 화근이었나 봅니다.

이래저래 며칠째 병원에 다니니 참 기분이 안 좋습니다. 어쨌든 병원에 가서 좋을 일 하나 없습니다. 다시는 병원 갈 일 없었으면 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되는 것 뻔히 알면서 헛 없이 소망해 봅니다.

그런데 어제 저녁 병원에 다녀와서 어머니와 또 한바탕 실랑이가 있었습니다. 다들 그렇겠지만 아침에 출근 준비로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것 같습니다. 일어나서 아내가 애들을 깨우고 세수를 시키고 저는 아내와 저의 도시락을 챙기고 늘 아침은 부산하기 마련입니다. 꼭 "앗 늦었다!" 하고 한마디가 나오고요. 그러다 보면 거의 집안 정리를 못하고 가게 됩니다.

압력밥솥도 씽크대에 그대로 두고, 도시락 반찬을 하다 보면 도마 위에 칼이랑 야채 등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채로 황급히 출근을 하게 되는 거지요. 아내는 딸 지운이를 챙기고 저는 원재를 챙기고 어린이집 차가 아파트단지 앞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추려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저와 아내 원재, 지운이 이렇게 넷이서 간밤에 잤던 이불도 개지 않고 가는 때도 많으니까요. 물론 그깟 이불 개는 게 얼마나 걸리느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그렇게 되네요.

   
 
▲ 아침에 설거지를 하지 않고 출근할 때 바로 찍었습니다. 기사 올리는 날에도 어김없이 이렇게 두고 출근했습니다. ⓒ 강충민
 
이렇게 정신없이 출근을 하고 저녁에 퇴근을 하면 저나 아내 둘 중 집에 먼저 오는 사람이 아침의 잔해를 치우게 됩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집에 오신 후부터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저나 아내가 출근하고 난 뒤 어머니가 우렁각시처럼 깔끔하게 설거지를 하고 당신의 아들내외가 안 개고 간 이불까지 이불장 안에다 깔끔하게 정리를 하는 것이지요.

처음 며칠 간은 어머니에게 별 생각 없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많이 적적하시니까 그러겠거니 했는데 안방 이불까지 정리해 놓는 데에는 그냥 넘어갈 수는 없더군요. 그냥 두라고 하고 어떤 경우는 제가 조금 서둘러 미리 설거지를 하고 이불을 개어 놓고 가기는 했지만 어머니가 오시기 전의 습관에서 바로 벗어나는 것은 솔직히 어렵더군요.

그런데 문제는 어머니의 이런 행동이 당신이 아플 때에도 멈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문제의 발단은 어제 병원을 다녀온 후였습니다.

제가 어머니와 병원에 다녀 온 사이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퇴근을 했고 깔끔하게 치워진 싱크대를 보았던 거지요. 바로 퇴근하자마자 어머니와 병원을 간다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던 터라 그 짧은 순간에 아침에 어지럽혀진 싱크대를 말끔하게 치우기는 무리라고 생각을 했던 거구요.

   
 
▲ 정말 우렁각시가 한 것처럼 깔끔하게 설거지가 되어 있습니다. 또 보일러 아낀다고 찬물에 맨손으로 했을 것입니다. ⓒ 강충민
 
"아침 먹은 거 설거지 자기가 했어?"

아내가 저녁을 다 먹은 후에 뜬금없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엄마갉."

아내의 말에 저는 솔직히 얘기했습니다.

"그럼 어제도?"
"응."

아내는 지운이에게 우유를 먹이는 것을 잠시 멈추고 어머니와 저를 동시에 봅니다.

"어머니. 누가 어머니보고 설거지 하래요? 또 몸도 안 좋은데 기어이 설거지를 왜 하세요? 그러다 몸이 더 안 좋아지시면 어떡하구요. 설거지 하다 보면 남는 음식 버리기 아까워서 그걸로 점심 때우고 그러니까 몸이 더 안 좋아지죠."

아내가 평소답지 않게 꽤 말이 길어졌습니다. 그러다 화살이 저에게 왔습니다.

"자기는 나보다 늦게 출근하면서 좀 치우고 가지 어머니가 그걸 하시게 하냐?"

어머니가 없다면 저도 같이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싶은데 꾹 참았습니다. 일이 이상하게 꼬입니다. 저도 어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문제의 원인제공자는 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 안 방도 말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아침에는 정말 볼만합니다. 정리 되지 않은 모습은 차마 올리지 않습니다. ⓒ 강충민
 
저는 잠시 뜸을 들이다 비로소 한 마디 했습니다.

"그러게 내가 엄마에게 하지 말라고 몇 번을 했어? 해도 다 낫거든 해. 엄마가 우렁각시냐구? 참 엄마처럼 다 늙은 우렁각시가 있다는 말 처음 들었다."
"그냥 누워 있기 그래서 좀 움직인 거지 뭐… 힘 드는 일도 아닌데… 아무것도 안하면 오히려 병나."

비로소 어머니도 제 말에 저와 아내를 번갈아가며 얘기합니다. 늙은 우렁각시란 말에 아내도 소리내며 웃었습니다. 어머니도요.

"아빠, 우렁각시가 뭐야?"

원재가 어른들의 대화에 끼어 듭니다.

순간 저도 모르게 "넌 몰라도 돼!"라고 하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습니다. 언어 습관은 어릴 때부터 형성되는 것이다, 라고 절대적으로 생각을 하니까요.

"옛날에 어떤 결혼하지 않은 아저씨가 밭에 일하러 가면 매일 예쁜 아줌마가 나와서 밥해 놓고 빨래 해 놓고 청소해 놓고 그랬대. 근데 그 아줌마가 밤에는 우렁이 속에 살다가 낮에는 예쁜 아줌마로 변신을 했대."

이렇게 말해 놓고 잠시 숨을 고릅니다.

"그럼 할머니가 우렁각시야?"

그 말에 더 이상 말해 주기기 귀찮아집니다. 그래도 꾹 참고 이해하기 쉽도록 얘기해 줍니다. 속에서는 열불이 나고 있었고요.

"우렁각시는 힘이 센데 할머니는 많이 아프시잖아. 그래서 아빠가 우렁각시처럼 일하지 말라고 한 거야. 그렇게 일하면 할머니 또 아프실까봐…."

그 말에 정말 이해를 했는지 더 이상 원재는 묻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어머니가 아프시기 전에도 설거지를 하고 이불을 개키는 것에 제가 참 편하다고 느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말로는 어머니에게 위한답시고 그때 상황에 따라서 항상 달라지는 것일지도요.

아니면 차라리 어머니가 좋아지시면 밥 짓는 당번을 하라고 할까 생각 중입니다. 나머지는 저희가 하고요. 그게 어머니가 편하시다면요. 그러면 싸울 일이 좀 줄어들 것 같은데 도무지 우리 어머니는 그러자 해놓고도 쌓인 설거지와 이불 두고 나간 방을 그냥 두지 못할 것 같습니다.

못하게 하는 방법은 아무래도 제가 아침에 조금 더 서둘러야 하는데 워낙에 제가 느려 터져서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 이 글은 강충민 님이 직접 운영하는 제주관광안내사이트 '강충민의 맛깔스런 제주여행(www.jeju1004.com )'과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