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인터뷰] (2) 벨기에 피핑톰 무용수 김설진 “난해한 현대무용? 예술가가 쉽게 풀어내야”

 

▲ 김설진 씨. ⓒ제주의소리

안무가로서 벨기에에서의 삶은 한국과 너무 달랐다. ‘춤만 추고도 먹고 살 수 있는 환경’ 이었기 때문이다.

단원 중 60대와 70대 후반이 있는 점도 놀라웠다. 83살이었던 단원이 계속 같이 연습을 하다 공연을 열흘 앞두고 그만 숨을 거두는 일이 있을 정도였다.

평생 무용수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돼 있는 또 다른 세상이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다보니 자연스레 국내 문화예술계의 현실이 겹쳐졌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지원을 받는 단체의 보조금이 그 곳에서는 가장 적은 수준이었다.

“지원금이 직접적으로 안 왔다 해도, 거기는 작업을 하나 하면 먹고 살 수 있어요. 예술가를 직업으로 인정을 해줘요. 일반적으로 직장인들의 월급과 다르지 않아요. 한국은 몇 년 전에 제가 작업할 때 한 번 공연에 100만원 나왔거든요. 근데 그게 5개월 연습하고 100만원이에요. 준비기간에는 아르바이트와 다른 작업까지 몇 개씩 해야 했었죠.”

비단 지원금 뿐 아니라 문화예술계가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구조가 자리잡았다는 게 핵심이었다.

“지원금 탓만 할 수는 없는게, 그만큼 벌어요. 사람들이 많이 찾기도 하고 공연을 많이 하기도 하고 지형적 여건으로 투어도 많이 다니고. 그 쪽에서 수입도 하고. 계속 선순환이 되는 거죠. 자생할 수 있는 여건이 다른 거 같아요. 한국에서는 예술가들이 지원을 못 받는 문제도 있지만 막말로 작품을 잘 팔아줄 수 있는 기획자도 없어요. 팔려야죠 일단.”

전국에 지자체나 국가 소속 현대무용단이 2개 밖에 없는 상황 때문에 한국 현대무용가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공간이 극히 적다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역시 이 분야가 돌아가는 행태였다.

사교육만 풍부해져서 그 안으로 모두가 빨려들어가는 비정상적인 상황. 그가 가장 염려하는 부분이다.

“첫 번째 악순환은 뭐냐 하면 고액의 과외료를 내면서 입시 자체가 돈벌이가 되는 거죠. 그 거액을 들여서 학교에 들어간 친구들은 내가 들였던 돈을 뽑아야 하고 그래서 또 입시강사를 하고, 그래서 학원 차리고... 입시학원도 너무너무 많잖아요. 무용 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그거 말고는 길이 없는 거처럼 느껴지니까. 사실 그거 말고 길이 많은데.

그래서 해결 방법을 여러 사람들이 함께 찾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우리나라에 무용단체를 더 만들고 외국 단체 오디션을 지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자꾸 열어주고, 이를 준비하는 과정이 있으면 좋을텐데...”

사람들이 공연 보러 안 오는 이유?

좀 단순한 질문도 건네 봤다. 현대무용이 너무 어렵다는 인식에 관한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현대무용이 어려운 것은 관객이 무지한 탓이 아니라 예술가의 몫’라는 말을 SNS나 타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종종 해왔다.

“대중이 없으면 예술이 사라지거든요, 그걸 쉽게 전달하는 게 숙제죠. 저도 어려워요 저도 쉽다고 생각했는데 관객들은 어려워하고. 또 ‘관객들을 이해시켜줘야 한다’고 수준을 낮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건 관객들을 무시하는 태도거든요 사실. 관객들 수준을 끌어올려줘야지.

그래서 그 워밍업을 시켜줘야 한다는 거죠. 기역, 니은도 모르는데 소설책 읽으라고 하면....워밍업이 필요해요. 문학에도 보면 쉬운 동시부터 시작해 서사극까지 읽듯이. 지금 ‘갭’이 너무 큰 거 같아요.”

그가 지난 19일과 20일 서울에서 일반 대중들을 상대로 한 워크숍이 떠올랐다. ‘플레이 바디’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 날 만남에서는 무용 테크닉을 전수해주는 것을 비롯해 ‘춤 안에서 얼마나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지’ 전달하는 시간이었다. 재미있는 현대무용개론이자 그가 말한 ‘갭’을 줄이는 시도였다.

이는 제주문화예술계가 공통적으로 지닌 고민과도 연결된다. ‘도민들이 돈을 지불하고 공연을 보러 오지 않는 현실’은 지역 문화계의 끊이지 않는 화두다.

“그게 갭이 커서 그리고 관심을 안 갖는 거라고 봐요. 첫 번째는 교육인 거 같아요. 교육이 안돼 있으니까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리고 학구열이 굉장하잖아요 그 교육이랑 같이 물고갈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도 좋고.

물론 예술가들이 짊어져야 할 짐이 많지만 사람들과 정말 가까이 다가가고 자기만의 다른 예술세계를 얘기할 수 있어야 사람들이 자꾸 찾는 거 같아요.”

지속가능한 지역예술계를 꿈꾸는 그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 김설진 씨. ⓒ제주의소리

“도민들 관심을 끌도록 프로그램 몇 개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워크숍을 하던지 뭐 무슨 학교 내에서 활동을 한다던지 정기적인 공연을 한다던지. 그리고 이 단체가 해외까지 수출되서, 해외까지 많이 돌아다니고, 해외에서도 관심 갖고 제주까지 찾아오면 선순환이 된다는 거죠”

그에게 지역 문화예술과 관련해 ‘적어도 이것은 있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게 있냐고 물어봤다. 기다렸다는 듯 잘 정리된 긴 답변이 돌아왔다. 우선 현대무용단이 있었으면 하고 소망한단다. 또 그는 아비뇽이나 비엔나의 예술축제를 제주에서도 충분히 시도해볼 수 있다고 제언했다.

“외국에 많이 다니다보니까 정말 볼 것도 하나도 없는 그런 도시들이 있어요. 그 도시에 어떤 한 철만 되면 정말 사람들이 북적대면서 끊임없이 와요 예술축제에요. 한 달 일한거로 일년이 돌아가게 만들 수 있는 규모거든요. 지금 제주에 중국 사람, 일본 사람, 동남아 사람들 다 불러들일 수 있어요. 공연하는 많은 분들이 그걸 배우려고 유럽까지 갈 수 있단 말이죠. 실제로 거기 몇 분을 데리고 와서 워크숍도 하고 공연도 하고 그럼 좀 더 저렴한 이 쪽으로 오면 선순환이 될 거 같아요”

실현 가능성이 있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전 질문에 관한 대답을 섞어 함께 내놓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관심이 없다고 하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여기로 불러 모으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그러다보면 관심 없던 사람들도 ‘이게 무슨 일이지?’ 하고 관심을 갖게 될 수 있거든요.”

그는 벨기에에서 비교적 편안한 삶을 살고 있지만 거기서만 머물지 않을 거란다. 특히 제주와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가지고 있단다. 그리고 정말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찾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누군가 하겠다고 하면 ‘정말 아이디어를 다 주겠다’며 의지를 나타내기도 했다.

“자리잡아야지, 자리잡아야지 그런 얘기 어른들이 많이 하세요. 그런데 자리는 한 평이면 자기 자리는 끝이거든요. 내가 자리잡는 거 보다 내가 갔을 대 누군가에게 손 벌릴 수 있는거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야지, 자기 자리를 만들어주는 건 아닌 거 같아요. 그런 팔 벌려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혼자 잘 살면 재미없잖아요?”

그래서 그는 자기 주변의 사람들이 다 잘됐으면 좋겠다고 누누이 말한다. 1월 초 다시 벨기에로 돌아가지만 그의 고민은 고향 땅을 향해있었다.

무용수인 동시에 한국과 제주 문화예술계에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김설진. 현대무용의 메카에서 주목받고 있는 그의 도전은 이제야 시작인 셈이다. <제주의소리>

<문준영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