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라대, 힘내라 가족회사] (8) 제주 토종 IT업체 인포마인드

지역대학과 지역기업이 ‘동반성장’이라는 목표를 향해 산·학 협력체제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산업체는 대학으로부터 우수한 글로벌 인재를 제공받고, 대학은 산업체가 요구하는 맞춤형 우수 인재를 취업시키는 상생모델로서 지역대학과 지역기업 간의 네트워크인 ‘가족회사’ 제도가 주목받는 이유다. <제주의소리>가 지난해 ‘산학협력선도전문대학 육성사업’ 전문대학으로 선정된 제주한라대학교와 업무제휴를 맺고 대학 가족회사들을 집중 소개함으로서 지역기업들의 경쟁력 제고는 물론 산학협력 선순환 환경 조성에 힘을 보태고자 한다. <편집자 주> 

"먹고 살 수 있겠냐?" 명함을 내미는 그에게 주변에선 우려를 쏟아냈다. 그의 친척들도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몰랐다. 열악하기 짝이 없던 제주의 IT업계 현실이었다. 그렇게 만 10년이 지났다. 제주의 핵심 산업과 IT를 접목시킨 결과물로 두각을 나타낸 제주 토종 IT업체 '인포마인드'의 이야기다.

지난 2000년 설립된 인포마인드는 '인포메이션(Information)'과 '마인드(Mind)'의 합성어다. 공학을 다루느라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사고방식을 인간 중심에 두자는 뜻이다. 최근 강조되고 있는 UX(사용자 경험, User experience)의 개념과 맞아떨어지는 경영 철학이다.   

▲ 강희석 인포마인드 대표. ⓒ제주의소리

강희석(50) 대표이사는 사실 창립 멤버는 아니다. 인포마인드의 출발은 제주대 컴퓨터공학과 게임 동아리에서 시작됐다. 요즘 말하는 창업동아리인 셈이다. 기술력은 좋았으나 당시 온라인게임 시장이 과열되면서 회사 사정은 점점 기울어갔다. 마침 그가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2004년 인포마인드의 대표이사 자리를 맡게 됐다. 

초창기에는 "제주에서 IT로는 성공하기 힘들다", "그걸로 먹고 살 수 있겠냐"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그의 생각은 달랐다. '오로지 1차 산업이나 3차 산업인 관광 분야만으로는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제주에서 할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IT산업은 2차 산업과 달리 물류비도 들지 않고 오로지 기획력과 기술력만 가지고도 승부를 볼 수 있는 분야였다.

척박하기만 했던 인프라도 10년 사이에 눈에 띄게 좋아졌다. 정부의 다양한 테스트 베드 사업이 제주에서 이뤄지는가 하면 유수의 IT관련 대기업들이 제주로 이전해오는 것도 반길 일이다. 제주도는 물론 제주테크노파크도 소프트웨어 산업과 콘텐츠 산업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려 인프라를 다지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인포마인드는 첨단과기단지 입주 1호 기업이기도 하다. 

▲ 강희석 대표가 인포마인드를 이끈지 올해로 만 10년. 그는 ""올해는 인포마인드의 제2의 도약기"라고 강조했다. ⓒ제주의소리

이와 맞물려 인포마인드는 RFID(Radio-Frequency IDentifiction·전파를 이용해 먼 거리에서 정보를 인식하는 기술), USN(유비쿼터스 센서 네트워크) 등 신기술을 기반으로 제품 개발에 주력해 현재까지 1차 산업과 관광산업과 연계한 다양한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엔 스마트그리드 분야에도 팔을 뻗었다.

2007년 u-IT 신기술에 기반한 양돈 HACCP(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시스템 구축, 2008년 RFID/USN 기반 제주 양돈 FCG(청정 축산물 품질인증) 관리시스템 구축, 2009년 제주마 등록 관리 정보화 시스템 구축, 2012년 쇠고기 이력시스템 고도화 구축 등 1차 산업과 연계한 다양한 시스템을 개발했다.

모바일 시장에도 일찌감치 문을 두드렸다. 지난 2008년부터 '펀 제주', '제주여행수첩', '제주여행플러스' 등 제주 관광 관련한 스마트폰용 어플리케이션을 내놓으며 호응을 끌고 있다. 특히 지난 2010년 스마트폰용 가계부 유료 어플리케이션인 '로하스머니'를 6개 국어로 출시해 30개국에 판매해 5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냈다.

그가 인포마인드를 이끈 지 올해로 만 10년. 그는 "올해는 제2의 도약기"라고 말했다. 눈앞에 닥친 일들을 해치우는데 급급했다면 앞으로 10년을 내다보는 중장기 계획을 세울 때라는 것이다.

2004년엔 5명이던 직원이 2010년에는 20명으로, 지난해엔 28명까지 늘었다. 서울지사에도 4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회사의 규모가 달라진 만큼 직원들에게 비전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동안 직원들이 적을 땐 하지 않았던 고민들이 늘어났다. 상황이 닥치면 때우듯 처리했던 인사나 포상 등 회사의 체계를 잡아가려고 한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인포마인드는 한라대와 지난 2012년부터 '가족회사' 협약을 맺고 IT인재들을 기르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인포마인드에 눌러앉은 실습생이 총 3명. 그 중에 1명은 더 공부하기 위해 제주대에 편입해 방학에만 일을 도우러 온단다.

▲ 제주 토종 IT기업인 인포마인드는 지역의 핵심 산업인 1차 산업과 3차 산업에 첨단 IT 기술을 융합한 결과물을 선보이고 있다. ⓒ제주의소리

그가 지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그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아주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서울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좋은 시절이었다. 학사경고를 받았더라도 대기업에서 모셔갈 정도였으니 취업 걱정이라는 것이 없던 때였다. 집안 사정 탓에 2년 정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 제주로 다시 돌아왔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원서를 내기만 해도 취업할 수 있었던 서울과 제주는 분위기가 달랐다. 번번이 취직에 실패했다. 한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도 했고, 컴퓨터 학원 강사로도 일했다. 그러다 전공을 살려 소프트웨어 개발 전문업체인 우보전산에 입사했지만 2000년에 부도가 나며 문을 닫고 말았다.

전공도 아닌 IT업계에 뛰어들어 도전과 실패를 거듭했던 그다. 오로지 '좋아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취미를 직업으로 택했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순탄치 않은 과정이었다. 이직과 실직, 창업을 거치면서도 줄곧 한 길을 고집했던 것은 '열정' 덕분이었다. 인포마인드의 인재상 역시 능력보다는 열정을 강조한다.

그가 청년들에게 취업보다 입사를 권유하는 것도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이다. 많은 사람들과  충분한 경험을 쌓고 난 다음에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혼자가면 빨리 갈수 있지만 같이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멀리 내다보고, 가장 밑바닥부터 시작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김태연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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