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장관 기용으로 본 서울대 카르텔

80년대 후반 대학에 입학하고 1학기를 마친 여름방학에 고향에서 만난 친구가 나에게 유시민의 '항소 이유서'를 한 번 읽어 보라고 권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대학 1학년생이었던 자신이 왜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학생운동에 몰입하는지 설명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리 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당시 그 장문의 항소이유서를 읽고나서 어린 마음에 '항소에도 이유를 달아야 하는 거구나'라고 느꼈다면 너무 철이 없었던 걸까?

대학 1학년 2학기 때 서점에서 '푸른나무'라는 출판사에서 출간한 김진명 선생의 '스스로를 비둘기라고 믿는 까치에게'라는 책을 읽고 비로소 고등학교까지 잘못된 학교 교육을 강요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서점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된 그 책이 나에게는 학교 교육은 물론이고 사회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한 최초의 책이었다. 그런데 그 책의 뒷면에 '푸른나무'에서 시리즈로 출판한 다른 도서명들이 들어 있어서 한 권씩 사서 읽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읽게 된 책 중 한 권이 유시민이 정리한 '거꾸로 읽는 세계사'이다. 유시민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유시민에 대한 또 다른 기억들

90년대 긴 시간동안 기억에서 사라졌던 유시민을 다시 보게 된 것은 2000년대 어느 시점부터 신문에 칼럼을 쓰고, 'MBC 백분토론'의 진행을 맡던 그가 칼럼 쓰는 일을 멈추고 방송활동을 포기하는 희생을 감수하면서 까지 '노무현 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서부터다. 당시 노사모 회원으로서 후단협의 비행에 분노하던 나는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 유시민의 용기와 행동에 적잖이 감탄했었다.

유시민의 용기는 신문 활동과 방송 활동을 중단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개혁당을 창당하고 활동을 주도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들자는 그의 호소에 감동받은 나는 개혁당 당원이 되었고 개혁당이 노무현을 지지후보로 추대하던 날 문성근이 후단협을 향해 "당신들 뭐하는 사람들입니까?"라는 왜치는 연설을 동영상으로 보면서 성인이 된 후 흘려보지 않았던 눈물을 혼자 펑펑 쏟아내었다. 그 후 나는 일반인들에게 얘기하면 그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개혁국민정당'의 당원임을 한없이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녔다.

유시민에 대한 새로운 느낌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고 난 후 유시민의 보궐선거 출마가 개혁당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속한 민주당과 개혁당의 후보단일화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유시민은 평소 그가 민주당을 지역주의에 기댄 구태정당이라 표현해왔던 것에 걸맞게 민주당과의 연합공천은 없다고 공언했다. 당선이 될지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민주당 중앙당은 2002년 대선에서 유시민의 공로를 인정해서 지역에서 후보를 내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그런데 고양시 덕양구의 민주당 당원들은 이미 경선으로 후보를 정해놓고 있었다고 했다. 민주당 당원들은 반발했고 연합공천은 없다고 공언했던 유시민은 연합공천을 통해 당선되었다.

유시민이 국회에 처음 등원해서 의원 선서를 하는 날 평상복차림으로 국회에 등원했다. 의원석에서 "거긴 뭐야!"라는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지만 유시민은 그들의 야유를 가볍게 웃음으로 받아쳤다. 그가 나중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과연 모든 국회의원이 똑같은 복장으로 등원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냐"고 반문한 뒤, "국회는 일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일하기 편한 복장으로 등원했다"고 답하는 것을 보고 과연 유시민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날 이후 유시민이 평상복 차림으로 등원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에게 평상복보다 더 일하기 편한 양복이 생겼는지, 아니면 일 할 마음이 없어졌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국회의원이 된 다음 그는 어느 대학교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갔을 때, 서울대학교의 문제를 지적했다. 서울대학교는 소수를 위해서 존재하며, 서울대에 입학하지 못하는 다수들에게 상실감만 안겨주고 있기 때문에 존재가치가 없다고 했다. 꽤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후 그가 서울대 졸업장을 반납했다든가 서울대 동문회에서 공식적으로 탈퇴했다는 소문은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경력 뒤에는 항상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 훈장처럼 따라 다녔다.

정치인 유시민

2005년 열린우리당 당의장 선거에 유시민이 출마했다. 그를 극렬 지지자하는 사람들이 총궐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시민은 고전했고 그를 떠나는 의원들이 많아졌다. 팔은 역시 안으로 굽는 것일까? 그렇게 서울대의 가치를 폄하했던 유시민이 선거 국면에 도움을 청한 곳은 그의 서울대 선배인 김근태였다. 난 개인적으로 지난 대선 정국에서 김근태가 보여준 기회주의적 행동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있다.

2005년 황우석 돌풍이 나라 전체를 휩쓸고 지나갔다. 황우석 박사 팀과 'PD수첩'의 대치가 극에 달했을 때 유시민은 이런 말을 했다. "MBC가 황우석 박사를 부당하게 조지니 죽게 되는 것"이라나? 그리고 "방송국에서 줄기세포를 검증하느니 차라리 내가하는 게 낫다"고. 그런데 유시민의 기대와는 정 반대로 황우석 박사의 연구 발표는 대부분 조작되었음이 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이쯤 되면 의원으로서 어느 정도 반성의 기미가 보일만도 하고 주위에서 자숙을 권할 만도 한데 상황은 정 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서울대 출신 이해찬 총리는 유시민을 그의 김근태 선배님의 후임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추천하고 대통령은 그를 장관으로 내정했다고 했다. 국정이 서울대 중심으로 굴러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듯 하다. 심지어는 그동안 유시민에게 '인생 똑바로 살라'거나 '입으로 생리하는 남자'라는 독설을 퍼부었던 진중권도 유시민 장관 만들기에 일조하고 있다. 유시민에게는 도덕적인 하자가 없고, 업무를 추진하기에 큰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 진중권의 주장이다.

그동안 황우석 박사의 연구 조작과정에서 보여준 조중동의 행태를 비난하는 '잘난' 서울대 출신 '자칭' 진보지식인들 중 그 누구도 유시민의 행동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유시민은 이미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서울대 카르텔의 중심에 서 있음이 보여주고 있다.

우연히 '타임(TIME)' 아시아 판 1월 9일호에 황우석 박사에 대한 내용이 머리기사로 나왔기에 읽어보았다. 거기에는 황우석 박사의 업적으로 분류되었던 복제개 SNUPPY(스너피)의 복제의 사실여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데 스너피가 '서울대 강아지(Seoul National Univesity Puppy)'를 상징하는 이름이라는 설명이 곁들어져 있었다. 서울대 출신들은 강아지 이름도 모교의 권력 유지를 위해 활용한다는 생각에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한때 이해찬 유시민 진중권이 개혁적이라 믿으며 저들의 헌신이 대한민국의 주류 교체에 기여할 것이란 기대를 해 본적이 있다. 그러는 사이 저들은 저들끼리 또 다른 질서와 특권을 만들고 유지하고 있었다. 난 황우석 박사가 자신이 복제했다고 주장하는 서울대 강아지 스너피를 보면서 유시민의 얼굴을 떠올린다.스너피는 과거에, 유시민은 현재에 '서울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활용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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