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후 칼럼>  ‘코스프레는 진실을 담고 있지 않다’

지방선거가 4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정치권은 흥행몰이에 바쁘다. 지방선거를 맞아 지난 대통령 선거를 되돌아 보면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을 못내 떨치기 어렵다. 대선에서 제시한 공약의 파기논란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갖고 있는 약속의 아우라와 무게는 다른 정치인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다. 박대통령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면 공약도 안했을 것이다”, “국민께 드린 약속은 반드시 실천하는 민생 대통령이 되겠다”라고 강조하면서 ‘신뢰와 원칙의 정치인’ 이미지를 극대화해 선거에서 이겼다.

그러나 경제민주화, 기초연금제, 검찰개혁, 전시작전권 환수, 기초선거 공천제 폐지 등 주요 선거 공약의 불이행은 임기동안 두고 두고 논란이 될 것이다. 경제성장의 둔화와 일자리 감소, 재원부족, 보수진영 등 지지층의 요구를 공약 파기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 자랑스러운 불통,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주장하면서 개혁적 공약은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있는 실정이다.

표만 얻으면 그만이라는 사기성 코스프레에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정치인은 선거 때만 시민에게 아첨하고 평상시에는 시민을 조종한다’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화장발을 벗고 민낯을 드러낸 모양새다. 정치인이 공공심과 책임·신뢰라는 미덕보다는 상황논리와 사적 이기심을 우선시한다면 공동체에 속한 우리 모두의 행복이 아니라 지지층만 행복할 뿐이다. ‘국민행복시대’는 겉만 화려한 말잔치로 끝날 공산이 커졌다.

선거는 철저하게 기획되고 연출된 상태에서 치러진다. 준비된 일정에 따라 메시지를 던지고 미디어가 이를 보도하게 함으로써 유권자의 지지를 획득하는 것이 선거전의 핵심이다. 선거에서 ‘코스프레’가 필요한 이유다. 코스프레(Cosplay)라고 칭하는 코스튬 플레이(Costume Play)는 만화ㆍ애니메이션 및 게임의 캐릭터나 인기 연예인 등을 의상·소품·동작 및 상황묘사를 통하여 재현, 공연하며 즐기는 일련의 행위를 일컫는다. 대중미디어를 통한 이미지 정치가 극성을 부릴수록 정치인의 코스프레 경쟁은 치열해진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의 일상은 코스프레와 함께한다는 말이 과장은 아니다. 레드 콤플렉스가 강한 우리 사회에서 붉은색을 당의 상징으로 사용한 새누리당, 한복과 외국어 연설로 부각된 박대통령의 정상외교, 오뎅을 먹거나 막걸리를 마시는 전직 대통령의 모습은 잘 연출된 코스프레라고 할 수 있다. 코스프레는 대중의 관심과 환호를 불러 일으키고 이미지와 환상을 만들어내는 정치적 미장센이자 연금술이 되었다. 정치인의 이미지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조작되고 연출된 것이라는 지적이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코스프레 정치는 실체가 없고 포장만 요란하다. 문제는 코스프레가 이루어질 수 없는 과도한 기대와 욕망을 갖게 하고, 다수 시민의 생각을 지배하여 선거 결과로 직결된다는 점이다. 코스프레는 미디어와 결합, 사람들의 마음속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환상과 실체를 식별할 수 없게 한다. 가짜가 진실을 압도하여 많은 사람들이 거짓을 더 믿고 추종했던 사실들이 대선 공약의 파기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것이 정치의 본래 모습이라면 할 말은 없다.

“철인들이 왕이 되지 않는 한 유토피아는 실현될 수 없다”고 플라톤은 말했다. 오늘날 시민들은 자기들이 직접 뽑은 인물이 유토피아를 실현시킬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본질을 가린 코스프레와 상품 마케팅ㆍ광고 전략이 적용되고 있는 선거 과정을 들여다 보면 ‘철인왕’ 같은 대표를 뽑는 일은 시시포스의 신화처럼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보수가 진보를 가장하고 진보가 보수를 가장하는 카멜레온 같은 변신, 미사여구로 포장된 정치언어는 어김없이 등장할 것이다. 선거 때마다 묻지마 투표를 조장하는 연고주의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지 관심사다. 경마중계식 보도, 이미지 메이킹에 주력하면서 코스프레 정치를 부채질할 것으로 보이는 언론의 보도행태도 주목된다.

▲ 권영후 소통기획자.

정치인의 코스프레는 날로 진화하기 때문에 간파하기가 쉽지 않다. 코스프레 정치는 유권자들이 불가능한 것을 원하는 욕망과 기대심리를 먹고 자란다. 거짓 이미지와 환상을 몰아내기 위해서 정치인에게 거는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다. ‘코스프레는 진실을 담고 있지 않다’는 경구를 직시한다면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 권영후 소통기획자

<제주의소리/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