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홍의 또 다른 이야기> 지방선거에 나서려는 모든 분들께 드리는 ‘주제넘은 이야기’

 ‘청마의 해’에 여러분들은 ‘말을 타려고’ 합니다. 그건 여러분들의 영광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새삼 그럴 분들이 꽤 많나 봅니다. <제주의소리>보도에 따르면, 도의원 출마자만도 100여명이 넘으리라 합니다. 거기에다 지금 거론되고 있는, 지사와 교육감, 그리고 교육의원에 출마하려는 사람까지 합치면, 가히 그 수가 얼마나 될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 중에서 마지막까지 완주할 사람이 몇이나 될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역시 우리고장에는 여기저기 ‘인재’가 넘쳐납니다. 정말 미처 몰랐습니다. 이렇게 ‘인재’가 많은 줄을…. 퍽 고무적인 일입니다.

 피선거권에 흠결이 없는 한, 출마는 여러분들의 자유입니다. 그걸 막을 사람은 없습니다. 진정으로 지역주민을 위하고, 오로지 그것을 위해 권력을 열망할 때, 누가 그걸 탐욕이라 부르겠습니까. 그러나 분명한 게 하나 있습니다. 오늘의 상황에 겸손하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덤비다간 망신을 살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 망신뿐만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정치적 욕망이 지역정서와 합치되지 않으면, 그 충족을 위한 행태는 사회적 소모와 피로, 그리고 사회적 해악과 갈등으로 이어집니다. 초장부터 “웬 고춧가루냐”고 나무랄지 모르겠지만, 그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제주판 3김씨’가 어떻고, 지역사회가 ‘이것저것’ 어수선하니, 절호의 기회인 듯싶지만, 오늘의 지역사정은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지역의 ‘지도자’를 바꿔보자는 지역주민들의 열망이 마치 자신을 향한 일인 양 생각하면, 그건 착각일 수 있습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그것에 대한 욕망이나 집착은 결코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것에 맞장구칠 만큼 유권자는 어리석지 않습니다.

 세상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정치사회현상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통신수단의 발달로 정치에 관심 없던 사람들이 정치현장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가히 ‘1인1매체’일 정도로,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영역도 그만큼 넓어졌습니다. 공적인 영역만이 아닙니다. 사회적인 바탕으로, 개인들의 일상생활로 점차 그 틀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겐 혹 김빠지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지방정치’도 이젠 지사나, 교육감이나, 도의원들의 정치에서 ‘주민의 정치’로 그 내용이 바뀌고 있습니다. 그건 ‘권력의 정치’가 아니라 ‘형성의 정치’입니다. 지역주민들의 ‘자기실현의 정치’입니다. 그건 오로지 일상생활에서 발견될 뿐, 기존의 정치논리로부터 추론되는 게 아닙니다. 거기선 어설픈 정치 놀음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오로지 지역사회를 위해 살겠다”는, 아무도 믿지 않은 말을 늘어놓아 보았자 오히려 구차스럽기만 합니다.

 말하다가 보니 ‘뜬 구름 잡기 식’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제 능력의 한계 탓도 있지만,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늘의 상황은 매우 복합적입니다. 그러나 그게 막연한 것은 내용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 ‘빈자리’가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여러분들이 머물 곳이며, 여러분들의 ‘새로운 정치철학’으로 채워야 할 영역입니다. 거기가 전부입니다. 이제 지역사회의 낡은 과제가 소멸되고, 그리하여 새로운 과제가 우리고장에 재구성돼야 한다면, 그 새로운 과제가 무엇이며, 어떻게 정의돼야 할 것인지, 그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건 여러분들의 능력에 관한 문제입니다.

 우리 지역사회는 한 두 사람의 결단에 따라 좌지우지될 만큼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질적이나 양적으로 확장되고 분화돼 있습니다. 그러나 한 지역을 이끄는 지도자의 리더십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한 가지만은 분명히 해두고자 합니다. 한 지역의 지도자로 나서려면 ‘올바른 지역의식’만큼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건 딴 게 아닙니다. ‘제주’라는 역사적 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동안 저절로 형성된 사고방식입니다.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기준이 모두 거기서 나옵니다.

 여기서 저의 경계심은 어김없이 발동합니다. ‘지역사회를 오직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경쟁무대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지역사회를 오로지 개인들이 끼리끼리 만나는 장소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지역주민들의 정서는 아랑곳없이 여기저기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사람들’ ‘평소에는 외면하다가 선거철만 되면 부산하게 고향을 찾는 사람들’… 그들은 아닙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그들의 지역의식은 ‘허구로 위장된 주름진 의상’일 뿐입니다. 그러나 오해 없기 바랍니다. ‘제주에서 태어나고’ ‘제주에서 생활하고…’ 그건 진부합니다. 너무 폐쇄적입니다. 분명히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지역의식’의 내용일 수 없습니다. 지역정서를 제대로 이해하고, 불합리한 지역이익마저 외면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지역사회의 ‘빈자리’를 새로운 정치철학으로 채우고
     ‘올바른 지역의식’과 ‘지혜로움’ 그리고 도덕성‘을 두루 갖췄다면,
     그리하여 주민을 위해 권력을 열망할 때 누가 그걸 탐욕이라 부르겠는가.


 이왕 말이 나왔으니, 몇 말씀 더 드리고자 합니다. 일전에도 본란을 통해 이야기했지만, 지방정치는 ‘실용의 정치’입니다. 그러나 한 지역의 지도자의 덕목은 정치적 테크닉이 아니라, ‘인격’ 즉 ‘인간적 됨됨이’입니다. 저는 항상 그것에 방점을 찍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다그치면, 막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어쩌면 요즘 같은 다원화 시대에, 그 목록을 작성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인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것을 두 가지로 압축합니다. 우선 ‘지혜로움’입니다. 주역의 말씀처럼, 그건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총명예지(不瑕遺)’입니다. 지역주민들의 실천적 욕구를 위해 우리의 염원을 도식화할 수 있는 ‘솔직한 안목’, 이해관계가 난마처럼 얽혀있는 현실에 규칙과 형식을 부여할 수 있는 ‘정직과 용기’도 바로 그것에서 비롯됩니다.

 지혜롭지 못함은 바로 어리석음입니다. 어리석은 마음은 이처럼 무지의 상태에서 일어나는 의식적 활동입니다. 그게 항상 일을 그르칩니다. 높은 자리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그것은 편견과 환상을 낳고, 그게 지역사회의 역사와 미래를 훼손합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급기야 조바심과 원한, 독단의식으로 이어지고, 그리하여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으로, 과거의 기억에 현재를 묶고, 심지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생명 없는 언어로 장밋빛 환상을 겁니다. 우리가 지금 그걸 뼈저리게 확인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른 하나는 ‘도덕성’입니다. 그건 ‘허물없음’입니다. 이 세상에 흠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선거에 나서려면, 그리하여 유권자의 평가를 받으려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도 다르지 않습니다. 친한 벗도 사심으로 중용하지 않는 ‘공명정대한 마음(朋亡)’도 그 내용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도자들은 어쩐 일인지, 그 지위 안에 들어 있는, 이와 같은 도덕적 신념과 의무 등이 그 자리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게 항상 어깃장을 놓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야기하는 도덕성은 좀 더 앞으로 나아갑니다. ‘도덕’이라면 으레 시공을 초월한 가치로 평가되지만, 제가 생각하는 그것은 그 자체 가치를 갖지 않습니다. 제가 주장하는 도덕은 ‘지역사회 전체에 대한 협력’입니다. 그건 지역사회의 상황과 현실을 떠나 절대적 권위를 갖지 않습니다. 지역사회 전체에 대한 여러분들의 기여의 양(量)으로서만 가치를 얻습니다. 그렇습니다. 도덕이란 여러분들의 사고(思考)와 감정, 그리고 행동이 지역사회에 가져 온 이익의 양(量)으로 계산되는 ‘어떤 것’입니다. 이쯤에서 혹 너무 천박하다고 지적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야기하는 ‘이익’은 경제적 이익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분열과 갈등으로 잔인해진 우리 지역사회에서 서로 감동을 나누고, 화합을 도모하는 모든 가치 생산을 의미합니다. 오히려 우리에겐 그것이 더 중요합니다.

 옛 사람이 이야기했습니다. “권력을 잡은 사람이, 재주도 덕도 없이 당면한 현실에 어둡다면, 나라에 독을 끼치는 것이, 누구나 알 수 있는 소인들의 폐단보다 심하다”고…. 그렇습니다. ‘나라’를 ‘지역사회’로 바꾸면, 아직도 그 말은 현실에 살아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재주가 없으면 실상을 제대로 보지 못해 일을 그르치고, 덕이 없으면 지역주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합니다. 그 ‘재주와 덕’이 제가 이야기하는 ‘지혜로움’과 ‘인격’이며, 그게 바로 여러분들의 새로운 정치철학에 포함돼야 할 주요 내용입니다. 그게 바로 여러분들을 판단하는 기준이기도 합니다.

 너무 장황스럽습니다. 그러나 말이 많은 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저만의 생각입니까. 지방선거에 나서려는 여러분들의 새로운 정치철학이 지역사회의 활력소가 되고, 그리하여 우리고장의 좀 더 정의로운 사회가 됐으면 참 좋겠습니다.

 

▲ 강정홍 언론인

 ‘청마’는 희망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말의 고삐를 단단히 잡고, 바른 길로 힘차게 달려 소원성취하기 바랍니다. 그러나 노파심에서 강조합니다. “지역주민들은 순전히 어리석음 때문에 여러분들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고…” 유권자들은 그렇게 만만치 않습니다. 이 설날 연휴에 다시금 스스로 자신을 냉철하게 되돌아보기 바랍니다. 그게 바로 여러분들의 ‘최소한의 양심’입니다. 선거일에 유권자의 마음을 얻으려면 그 정도는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 강정홍 언론인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