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범 칼럼> 광역단체의 수장 자리는 ‘마지못해 먹는 떡’이 아니다

# 비상 걸린 도권(道權) 가도

어떻게 얻어낸 입당이었던가. 총알이 빗발치듯 온갖 비난을 홀로 온몸으로 받아내고 외로운 전쟁을 벌여가며 드디어 여당 입성에 성공한 것이 아니던가. 그동안 일궈낸 괸당들에다 여당의 ‘묻지마‘ 표까지 합치고 거기에다 현직 프리미엄까지 감안하면 비록 요즘 여론조사에서 선두로 나서지 못하더라도 그리 염려할 일이 아니었다.

전국 광역단체장 직무평가에서 꼴찌를 차지했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터였다. 민선 치적 홍보대사들이 대거 활약하고 뜬금없는 생활 도지사로 변신하는 등 현직의 이점을 맘껏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어디 한 둘이던가. 관권 동원이라는 비난과 오해가 귀와 양심에 조금 성가실 뿐이지.

# 급조된 강적의 출현

그러나 ‘순풍에 돛달듯’ 순항하던 그분의 도권(道權) 가도에 비상이 걸렸다. 최근 제주출신 중앙 정계 인사가 그간 도지사 출마를 부인하는 수차례의 발언을 뒤집고 일말의 여운을 남겼기 때문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했는가. 공언을 번복하는 것에 미리 여론의 간을 보는 듯 지나가는 발언에 복선을 까는 솜씨가 그 인사가 평소 비판하던 이른바 구태 정치인들 못지않다. 어쩌면 우리의 ‘그분’보다 한 수 위다. "사실 절대로 안 된다는 게 어디 있느냐. 1% 정도의 여지는 있다고나 할까"라는 그분의 말씀. 출마는 1%의 가능성만 있으니 말 바꾸기는 99% 아니라는 것인가. 하지만 그분의 출마가 과연 단지 1%의 가능성으로 끝날지는 끝까지 지켜볼 일이다.

공언(公言)을 공언(空言)으로 만들면,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만드는 것은 ‘식은 죽 먹기’가 된다. 정치인이 개인적 자질과 능력이 뛰어나느냐는 차후의 문제다. 도민들에게 여러 차례 불출마를 공언한 것은 나름대로 자신의 확고한 정치 신념에서 나왔을 것인데 번복 가능성을 중앙당의 집요한 종용 때문이라고 말한다.

공언 번복에 대한 도민들의 눈총이 민망스러웠을까. 처음부터 출마포부를 당당하게 밝히지 못하고 ‘말 바꾸기’ 책임을 자신이 아니라 당으로 떠넘기려는 듯 어정쩡한 자세가 떳떳치 않게만 보인다. 또 출마여부에 대한 중앙당과의 줄다리기로 언론들의 스포트라이트가 그분에게만 집중되는 것도 무시 못 할 짭짤한 부수입이다. 

그러나 광역단체의 수장 자리는 ‘마지못해 먹는 떡’이 아니다.

정치적 소신과 도민들에 대한 공언을 접고 당의 지시를 철석같이 따르는 정치인이라면 진정 도민을 위한 도정을 펼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해군기지 건설을 비롯해 환경 및 복지 정책, 그리고 4.3 평가 등 중앙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수도 있는 사안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갑작스럽고 마지못한 출마라니 도내 현안들을 제대로 생각할 시간이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MB 정권 시절 여당이 4대강 공사에 수십조를 펑펑 쓰더라도 학교 무상급식이나 주민복지에는 단 몇 백 억의 예산도 아까워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연하다.  

# 연목구어(緣木求魚)에 나선 여당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았다는 여당은 추웠던 지난 세월의 교훈은 깡그리 잊어버렸는가.  당강령처럼 굳어버린 듯 공약 (空約)과 불통 정치는 고칠 생각은 않고 지방선거 승리에만 급급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지방선거는 글자 그대로 지역의 자치단체 수장을 뽑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행사로 끝나야 한다. 지방 선거에 정권의 사활을 거는 듯한 분위기는 그야말로 “코끼리 사냥총으로 모기를 사냥하는 격”이다.

본래 출마의사도 없다고 잘라 말했던 인물들의 등을 여당이 억지로 떠미는 모습이 마치 전시체제 자원총동원령을 연상케 한다. 실정(失政)을 급조된 인물들로 때우려는 것은 구시대의 철지난 상투적인 수법이다. 지방선거를 빌어 민초들의 의식 수준을 시험하는 것인가.

출마에 압박을 받는 그분들도 어떻게 보면 정권의 희생양이다. 당선되면 본전이고 낙선되면 자신들의 미래에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선거후가 더 걱정이다

이번 정권도 정책들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민주적인 의식 자체가 문제다. 4대강 공사나 철도 민영화 추진과정에서 보듯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려는 자세 전환이 보이지 않는다. 내실 있는 정치에 아무리 죽을 쓰더라도 국정수행지지율은 언제나 50%를 넘는 것에 안주하고 있는 것인지.

그러나 여론조사에 대한 응답률이 10%대에 불과하다는 조사결과가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겠는가. 외국에서는 응답률이 낮으면 조사 자체를 무효로 한다는데, 그들은 그것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느낌이다.

지지율이 과반이 넘는다면 정말로 축하할 일이지만 본인들도 확신하지 못하는 여론조사를 일반국민인들 믿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도 이토록 필사적인 것인가. 그러나 현 정권의 문제는 지지율이 아니라 소수의 의견이라도 적극 수렴하고 화합의 장으로 이끌어내려는 겸허한 자세에 있다.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간호학과 조교수.

이번 지방 선거에서 여당이 승리라도 한다면 지방정치는 차치하고라도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변함없는 지지로 확대 해석하고 국민들이 반대하는 정책을 이른바 ‘다수의 폭력’으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여댈까 우려된다.

그나저나 온갖 수모를 겪어가며 간신히 입당에 성공한 우리의 ‘그분’은 어떻게 되나. 워낙 ‘오뚜기’ 같으신 분이라 공천을 못 받아도 끄떡없겠지. 적어도 괸당 공천은 남아있으니. 꿈은 꾸는 자의 것이니까.

* 뱀발 : 이 글은 며칠 전 작성된 것이다. 그동안 송고에 늦장부리는 사이 그분이 출마를 본격적으로 고려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설마‘가 ’사실‘이 돼가는 것에 씁쓸할 따름이다. 진정으로 큰 인물은 아직도 더 기다려야 하는가.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간호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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