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라대 '늦깍이 대학생' 은영스님 파란만장 인생역정 "주변 어르신도 보필" 

▲ 약사암 은영 스님. ⓒ제주의소리

14일 2013학년도 졸업식이 열린 제주한라대. 졸업생들 중 유난히 눈길을 끄는 이가 있었다. 물리치료과 은영 스님(속명 변성옥, 58.여)이다.

스님의 졸업이 각별한 이유는 뒤늦은 학문의 길이 부모님을 위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배경에는 고난의 가족사가 있었다.  

아버지 변일종씨는 한국현대사 최대 비극인 4.3 당시 갈쿠리로 머리를 맞아 지독한 후유증을 앓게 됐다. 아버지가 운동신경 마비, 뇌경색과 중풍으로 오랜 기간 앓아누우면서 은영 스님은 ‘내가 직접 치료에 도움이 되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출가한 후에도 스님은 1993년 중국 문화원에서 전통의학연구회 침구 과정을, 1997년에는 중국 요녕성 중의 연구원 부설 종합병원에서 중의 전통 요법을 배웠다. 이후 현대척추교정연구학회에서 척추교정과 침구과정을 수료했다. 하지만 이 사이에 아버지는 이미 숨을 거두고 말았다. 2004년의 일이었다.

은영스님은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제주한라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해 2011년 졸업했고, 같은 해 곧바로 같은 대학 물리치료과에 입학했다. 어머니 양숙열(88)씨 마저 몸져 눕자 ‘직접 간호해야겠다’는 생각에 학업에 더욱 정진했다.

50대의 나이에도 성적 우수 장학금과 국가장학금을 받기에 이르렀다. 2009년에는 전국 비구니회 법계 장학금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결과 의료기공양생사, 요양보호사, 치료레크리에이션 1급, 심폐소생술 처치원, 보육교사, 청소년 지도사 등 8개 자격증을 취득했고 지난해 12월에는 물리치료사 자격 국가 시험에 합격했다.

동료학생이었던 박세진(26)씨는 “모르는 게 있으면 서슴없이 물어보고 가장 늦게까지 남아 공부에 열중하는 고집스런 모습이 어린 학생들에게 본보기가 됐다”고 전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도 했다. 이 사이에 좋은 소식도 생겼다. 2008년 급성췌장암 수술을 받고 중풍까지 앓던 어머니가 건강을 조금씩 회복한 것. 자신이 문을 연 제주시 조천읍 양천동 약사암에서 직접 어머니를 모시고 그 동안 배운 침과 뜸, 물리치료와 정성으로 간호에 전념한 결과였다.

스님의 이런 얘기가 더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온 인생 역정 때문이다.

4.3 당시 갈쿠리로 머리를 맞은 아버지는 운동신경 마비와 정맥혈전까지 겹치면서 가족들의 생계유지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결국 스님은 초등학교를 졸업하지도 못한 채 12살의 어린 나이에 친척의 소개로 부산의 한 철강업체 합숙소 식당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식모와 가정부를 전전하는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렇게 3남 3녀 중 둘째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스님이 출가한 것은 1982년. 여행사에서 일을 하던 때였다. 당시 여행사에서는 숙소로 사찰을 사용하던 게 일반적이라 자연스럽게 스님들과 친해졌고 불교에 심취하게 됐다. 그러다 ‘부처님처럼 마음을 닦고 싶다’는 마음에 출가를 결심했다. 그렇게 스님은 약사암의 주지 스님이 됐다.

역경이 많은 삶이었지만 향학열을 꺾지는 못했다. 두 개의 졸업장을 받아든 스님은 행복한 모습이다.

‘쉽지 않았을 것 같다’는 질문에 스님은 “왜 어려움이 없었겠냐”고 웃으며 답했다.

“사회복지학과에서 생전 만져본 적 없는 피아노를 치고 시험을 통과해야 했을 때, 또 물리치료과에서 근육이나 신경의 이름을 영어로 써야하는 데 겨우겨우 합격한 일이 정말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어려운 단어마다 백번을 넘게 쓰고 책을 보기위해 앉아있느라 여름에는 욕창이 생길 지경이었다.

스님은 “1학년때부터 교수님들이 제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할까봐 계속 챙겨주셨다”며 “너무 감사하고 이에 보답을 하려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학에서 현 시대의 흐름을 느끼다보니 수행하는 것 못지않게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다”며 “항상 공부하는 마음으로 정진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커졌다”고 했다.

물리치료사 시험에도 합격한 만큼 더 세상을 밝게 만드는 데 함께하고 싶다는 뜻도 전했다.

스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어머니께 그 동안 배운 것들을 활용해 보필해드리니 차도가 있었다”며 “마침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있으니 여건이 된다면 복지시설에 있는 어르신들을 보살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문준영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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