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몰랐다, 아버지가 먹던 배추의 맛을
그때는 몰랐다, 아버지가 먹던 배추의 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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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섬의 숨, 쉼] 입맛이 추억으로 이어질 때

열흘 전, 눈발 휘날리는 오후 다섯 시 무렵이었다.

일하는 사람들에게 오후 다섯 시는 길모퉁이 같은 시간이다. 아침부터 씩씩하게 열심히 일하다 낮에는 마음에 한 점을 찍고, 다시 오후 일을 하다 만나는 오후 다섯 시. 발등에 불 떨어진 일이 없는 다음에야 오후 다섯 시 즈음이면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묻는다. 저 길모퉁이를 도는 내일을 기약할 것인가, 남은 두어 시간을 더 알차게 쓰기위해 직진할 것인가,

그런 오후 다섯 시 즈음인데다 짧은 겨울 해는 똑 떨어져 벌써 어스름이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낮 잠깐 동안의 햇볕에도 겨울을 깜박 잊었던 몸이 간간이 휘날리는 눈발에 적응 못해 나는 옷깃만 수시로 여몄다. 어찌할까. 잠깐 고민하다 어린이집 한 곳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가니 우선 따뜻한 온기가 좋았다. 원장님, 원감선생님은 세상에…. 냉이를 다듬고 있었다. 봄 처녀가 캐어야 할 냉이가 눈발 휘날리는 날 싱싱한 흙냄새를 자랑하며 한 컨테이너 가득 담겨있었다. 따뜻한 바닥에서 올라오는 온기가 오그라든 가슴을 싹싹 다림질해주는데 냉이 향까지 더하니 도랑 치고 가재 잡은 기분.

그날의 압권은 퍼런 배추 한 포기였다. 이제 들어가려고 일어서는 나에게 원감선생님이 잠깐 기다리가 하더니 텃밭에서 캐온 퍼런 배추 한포기를 안겨주셨다. 물론 냉이도 함께 가득.

▲ 겨울 배추.

눈 맞은 퍼런 배추.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겨울만 되면 아주 사랑하던 눈 맞은 배추. 야무지게 끝을 여민 김장배추와 달리 눈 맞은 퍼런 배추는 마음가는대로 배춧잎을 휘날린다. 겨울바람을 닮은 배추는 단단하게 속살을 익히며 가고 싶은 길을 무심하게 간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렇다는 것이고, 어린 시절엔 참 알 수 없었다. 아버지가 왜 그렇게 달고 맛나게 아삭아삭 배춧잎을 베어 무셨는지를….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나도 돌아가신 아버지의 나이와 비슷해져 가기 시작하니 비로소 그 맛을 알게 되었다. 눈 맞은 퍼런 배추를 멜 젓에 똑 찍어 입안에 넣을 때 퍼지는 그 시원하고 달콤한 맛을. 추억의 입맛이 적절한 때가 되니 대를 이어 살아나는 것이다.

그 추억의 입맛을 만끽하며 배춧잎을 아삭 아삭 먹어대다 문득 떠오르는 질문 한 가지. 그래도 나는 용케 그 입맛을 물려받았지만 우리 아이들도 몇 십 년 뒤 이 입맛을 물려받을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의 아이들도 이 추억의 입맛을 물려받을 수 있을까

우리 아들, 딸이 눈 맞은 배추의 입맛을 이어가려면 우선 그 싱싱한 배추가 계속 자랄 수 있어야 한다. 배추 맛의 절정은 눈 맞은 순간을 간직할 수 있어야 하니 대형 마트에 곱게 포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공간에서 바로 캐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우리가 사는 공간 주변 주변에 크고 작은 많은 땅이 있어야 한다. 땅도 있어야 하고.. 씨앗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 땅과 씨앗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냐고.
나는 전문가가 아니기에 잘 모르겠지만 살아온 경험에 의지해 말한다면, 그 일이 앞으로는 참 어려운 일이 될 것 같아 걱정이다.

2001년, 도서출판 창비에서 안미란의 장편동화 ‘씨앗을 지키는사람들‘이란 책이 나왔다. (한 번 읽어보아도 절대 후회 없기에 책 내용은 소개 안한다) 당시 그 책을 읽으며 친구와 나는 이런 얘기를 했었다.

"야, 이러다가 나중에는 소나무 향 나는 터널을 산책하며 잡곡밥맛 캡슐과 된장국 맛이 나는 캡슐을 먹고 살게 되는 것 아니야. 진짜 살아있는 농산물은 너무 비싸서 보통 사람들은 먹을 수 없는 거지."
우스갯소리처럼 주고받았지만 그 후 많은 세월이 흐른 만큼 걱정과 우려는 더해지고 있다.

이런 걱정은 사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고민이기도 하다.

김병익 선생님(문학평론가)은 지난 2월 7일 한겨레신문에 실린 '성장 없는 발전을 향하여'라는 특별기고문에서 의미 있는 말들을 잘 정리해 주셨다. 이날 기고문의 소제목으로 뽑힌 글은 공감되면서도 약간 섬뜩했다.

"로널드 라이트의 진보의 함정에 의하면 인간은 1960년대 초 자연의 연간산출의 70% 가까이 이용했지만 1980년대 초에 100%에 이르렀고 1999년에는 125%를 넘어섰다. 인류의 발전이 지구의 자원과 에너지의 본전을 파먹어 들기 시작했다는 애기다."

김병익 선생님은 기고문을 이렇게 정리했다.

"진보란 인간의 자멸을 위한 함정이란 위기의식에서 '제로 성장의 문명'이란 대전환을 찾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18세기 산업혁명의 거대 변화에 대응한 애덤스미스의 '국부론' 체제를 극복하고 21세기적 행복 추구의 새 경제- 윤리학 구도가 나와야한다. (중략) 그런데 정작 성장 없는 발전이라는 그 모순어법의 과제가 쉽게 해결될 것 같잖은 아포리아인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이런 전환점의 시기를 살고 있는 것이다. 오랜 시간 익숙했던 가치관으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으면 크게 잘못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앞으로 더 나아가지 않는 것이 발전이라는 말, 참 낯설지 않은가. 하지만 이젠 이 말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다시 배추로 돌아오자. 눈 맞은 배추의 입맛을 물려주려면 땅과 씨앗을 잘 지켜야 한다가 정답이다. 그런데 땅과 씨앗을 잘 지키는 문제는 '모순 없는 성장'처럼 어려운 문제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열심히 나아가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제주가 변하는 속도는 단연 으뜸인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모두가 한 번은 되짚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어느 길로 갈 것인가.

내가 물려받은 추억의 입맛을 아이들에게도 물려주는 길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만의 바람일 것인가.

그날 저녁 오랜만에 내가 눈 맞은 퍼런 배추를 맛있게 먹고 있으니, 그 모양을 보고 호기심으로 우리 아들 딸이 같이 한 입 먹어본다.
그러곤 이구동성으로 "어라, 생각보다 맛있네."

▲ 바람섬(홍경희 제주교재사 대표). ⓒ제주의소리

하지만 한 번 먹고 더 이상은 먹지 않는다. 아이들이 몸으로 그 맛을 알려면 좀 더 많이 먹어 보아야 할 것이다. 입맛을 물려주기 위해 어른들의 보다 많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한 이유다.

이렇게 입맛이 추억으로 추억으로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추억의 입맛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제주도가 되었으면 좋겠다. /바람섬(홍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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