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근 칼럼> 김영관 전 지사님의 출판기념회를 다녀와서

며칠 전 내가 존경하는 김영관 전 제주도지사님의 자서전 “제주 개발 50년의 서막을 열다”의 출판 기념회에 다녀왔다.

당시 해군 준장이시던 김영관 지사님은 1961년 5월부터 1963년 12월까지 2년 7개월 동안 제 12대 제주도지사를 지내시는 동안 제주도 개발의 든든한 초석을 놓으셨다. 이 기간 동안 김 지사님이 이룩한 업적은 내가 보기에 그 후 30년 동안 15 명의 도지사들이 이룩한 업적보다 더 크면 크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그 업적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물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었다는 것이다.

우리 제주도는 독특한 자연 환경으로 말미암아 강이 없는 관계로, 해안 가에서는 용천수로, 중산간 지역은 봉천수로 식수를 해결하여 왔다. 봉천수는 가뭄이 들면 금새 말라버리고, 용천수는 바닷물과 하루에 두 번 섞이는 관계로 오염이 되어 주민의 건강에 많은 해를 끼쳐왔다.

이것을 하와이를 벤치 마킹하여 지하수를 개발하는 것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풀었다. 이 지하수의 개발이야말로 어승생댐의 건설과 함께 제주도 물 문제를 혁명적으로 해결한 쾌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물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다면 오늘날 제주도의 발전은 꿈도 꾸지 못 했을 것이다.

둘째는 5. 16 도로의 건설이다.

당시 5.16 도로를 건설하려고 하자 “사람 다니는 길도 포장이 안 되었는데 소나 다니는 길을 포장하려고 한다.”며 대다수의 도민들이 반대를 하였다. 물론 중앙 정부 관료들도 반대 하였다. 그러나 김 지사님은 5. 16도로를 뚫어야 제주도 관광이 활성화 되고, 그리 되어야 일반 도로들도 포장이 될 것이라는 혜안을 가지고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설득하였다. 이 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 되었으며, 이 도로가 포장되면서 비로소 제주 관광은 시작 되었다.

셋째는 4. 3 사건 이재민 원주지 복귀 사업이다.

당시만 하여도 4.3 사건 당시 토벌대에 의해 불살라진 중산간 마을은 폐허로 남아 있었고, 중산간을 고향으로 두고 있었던 도민들은 해안가에서 피난살이를 하고 있었으며, 고향으로 돌아가 살 궁리도 못 하고 있었다. 이 때에 김 지사는 용단을 내려 이 분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살 길을 마련해 준 것이다.

넷째는 감귤원 조성이다.

지금 우리 제주도의 경제를 떠받치는 데에 있어서 감귤의 역할을 모르시는 분은 아마 없을 것이다. 38세의 젊은 군인이 당시에 감귤이 장차 제주도의 중요한 사업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 일은 놀라울 따름이다.

다섯째는 제주대학을 국립으로 전환한 것이다.

발간 기념회 때에 축사를 하신 부만근 전 제주대학교 총장이 언급한 바와 같이 제주대학이 국립으로 승격되어 제 1회로 입학한 부 총장을 비롯한 학생들이 저렴한 학비로 대학을 다닐 수가 있게 되었으며, 오늘의 제주대학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김형옥 전 제주대학교 총장께서 축사에서 말씀 하신대로 제주대학교는 이제 의학대학원과 법학대학원을 함께 가지고 있는 몇 개 안 되는 국립대학교 중 하나가 되었다.

여섯째는 그 동안 단절되었던 재일교포들과의 교류를 활성화 하여 교포들께서 고향 나들이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교포들의 자금이 고향의 발전에 요긴하게 쓰여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그 후 제주도의 발전에 재일 교포들의 도움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는 나이 드신 제주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일곱째는 여객선 현대화와 관광 호텔의 건립으로 제주 관광의 기초를 만든 것이다.

1950년 대에는 화물선을 개조한 이리호와 평택호가 주된 연륙 교통 수단이었고 그 후 덕남호와 황영호라는 여객선이 투입 되었으나 목선이었는데 도라지호라는 여객 전용 철선이 새로 투입이 되어 뭍 나들이가 한결 편해졌다. 그리고 제주관광 호텔이라는 이름으로 첫 호텔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지금의 하니관광호텔이다.

여덟째는 보이 스카우트와 절 스카우트 제주 연맹을 창설하신 것이다.

청소년은 나라의 보배이며, 그들을 장차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동량으로 키워야 한다는 데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들이 올바로 자라는 데에 있어서 건전한 야외 활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 어려운 시절에 청소년 단체를 만들고 활동을 펼쳐 나가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김 지사님이 떠나고 난 후 바로 이 활동들이 위축이 되었다는 것이 웅변적으로 증명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김 지사님의 아내이신 현병화 여사님께서는 서울에 가신 다음에도 제주 걸 스카우트 육성회를 조직하여 오늘날까지 지원을 하고 계심에 거듭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옛날을 되돌아 보면 이 모든 일들이 제주의 발전에 든든한 초석이 되었다는 사실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고작 2년 7개월 동안의 김 지사님의 공적은 30년 후 신구범 지사가 부임할 때까지 계셨던 15명의 제주도지사들의 업적을 합친 것보다 결코 적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다. 우리 제주 도민들은 김영관 지사님의 은공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느 나라든, 조직이든 그 지도자가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흥망(興亡)이 결정된다. 옛날에는 뛰어난 지도자가 나라를 세우든가 또는 세습에 의해 나라의 지도자가 결정 되었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지도자를 국민이 직접 뽑는다. 그러므로 이제는 국가의 흥망이 국민의 손에 쥐어졌다. 1960년 대에만 하더라도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살았던 필리핀이 이제는 우리의 발 뒤꿈치에도 따라오지 못 하게 되었다. 그 차이는 박정희와 마르코스라는 두 지도자의 국가 경영 철학과 공직자로서의 마음가짐에서 비롯되었다..

▲ 이유근 제주시자원봉사단체협의회 명예회장.

이제 지방 선거가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 모두 두 눈을 부릅뜨고 과연 누가 진정한 지도자 감인가, 누가 진정 의회 민주주의를 위하여 일할 사람인가를 가려 신성한 한 표를 적극적으로 행사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한 중 FTA의 파고를 가벼이 뛰어넘고,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어 방황하지 않아도 되며, 고품격 관광이 이루어지고, 깨끗한 자연 환경이 제대로 보존이 되어, 도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도록 뜻과 힘을 모으자. / 이유근 제주시자원봉사단체협의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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