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볼커 미국 연준의장이 고금리로 인플레이션을 잡으려 했던 1979년과 1987년 사이 미국의 기준금리는 한때 20%까지 치달았다. 금은 당연히 인기가 없었다. 시중 금리가 두 자리 숫자인데 금에서는 이자가 한 푼도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제 금값은 트로이 온스 당 300달러 전후에 머물렀다. 볼커의 뒤를 이은 그린스펀은 수 차례 금융위기에서 양적완화로 고비를 넘겼다. 기준금리 인하는 그의 전가의 보도였다. 그가 물러난 2006년에 금값은 이미 700달러 선으로 올라 있었다.

그린스펀의 후임 버냉키도 서브 프라임 사태를 양적완화로 맞섰다. 금값은 2011년9월에 1900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런데 여기서 금값이 꺾이기 시작한다. 양적완화가 한참 진행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013년 한해 동안에만 28%나 폭락했다. 금값의 급락을 가져온 이유 두 가지를 추려 본다.

첫째, 특히 미국에서 발생할 것으로 우려됐던 인플레이션이 불발되었다. 미국의 과거 40년 평균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4.3%인데 이것보다 훨씬 낮은 1%대를 기록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헤지라는 금 보유의 중요한 목적 하나가 성립되지 않았다. 둘째, 주식시장이 유례없는 호황을 맞았다. 2013년 중 미국뿐 아니라 MSCI 전세계지수도 19.9% 상승했다.

그 이유들은 지금도 유효한가? 우선 돈이 어마어마하게 풀려 나가고 있음에도 소비자물가가 오르지 않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자체 조사는 개인소비지출 증가율 전망을 매우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2014년에는 1.4%에서 1.6% 사이, 2016년에 가서도 2%를 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한다. 대중들이 소비를 늘리지 않으니 물가는 낮을 수밖에 없다.

인플레이션 불발로 금값 꺾여

그러나 전 메릴린치 수석 이코노미스트 데이비드 로젠버그 같은 논객은 경기 회복의 조짐이 보이는 대로 세계 원자재 가격이 급등, 전반적으로 물가가 오를 것이라고 말한다. 카네기 멜론 대학의 앨런 멜처 교수도 공산품 인플레이션 이전에 금융자산의 가격이 새로운 균형을 찾아 아주 높은 수준에 오르는 자산 인플레이션을 예견한다.

주식시장의 호황은 미국의 제3차 양적완화(QE3)의 영향을 부인할 수 없다. QE3도 2008년 12월부터 단행한 제로금리만으로는 부족하여 2012년 9월부터는 채권 매입에 들어갔는데 이것은 유럽 중앙은행이 행했던 채권매입과 달리 소독(sterilization)되지 않은 채권매입이었다. 유럽의 채권매입은 저평가되고 있는 몇몇 국가들의 국채 가격을 떠받쳐주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같은 크기의 다른 채권들을 매각하여 시장의 통화량이 늘어나지 않도록 했다. 미국의 경우는 채권 매입의 목적이 시중의 통화량을 증가시키는 것, 즉 돈 찍어내기에 있었던 것으로 그 효과는 주식시장의 호황으로 즉각 이어졌다.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테이퍼링'은 양적완화의 제4국면이라고 보면 되겠다. 월별 채권매입의 크기를 조금씩 줄여가는 단계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 국면이다. 즉 매입했던 채권들을 다시 시장에 내놓아 연준이 보유하는 채권의 크기를 현재의 4조달러에서 금융위기 이전의 1조달러 이하로 끌어내리는 단계다. 양적완화의 출구는 여기서 매듭될 것이다. 이렇게 하는 동안 대중의 소비지출이 회복되어 양적완화의 빈자리를 메워 주어야 하므로 저금리는 그 때까지 지속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금값 재 상승의 조건들

지난 달 시드니 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동도 선진국들의 통화정책 기조를 수용적(accommodative)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하는 코뮤니케를 발표하고 막을 내렸다. 그러나 미국 연준의 우두머리에 이제 막 앉은 옐렌 의장이 이머징 국가들의 사정을 보아가며, 양적완화의 출구전략을 늦출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은 적다.

정리하면 물가 상승은 시간 문제이며 저금리는 유지 될 것이다. 그리고 양적완화는 이제 반환점을 돌아섰다. 국제 금값 재 상승의 조건들이 구비되고 있다. 런던 현물 시장의 금 시세는 금년 들어 어제까지 11.2% 올라 1341달러를 기록했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중국 중앙은행은 최근 3년 사이에 금을 집중적으로 매입하여 프랑스에 이어 세계 5위로 올라섰는데 금년에도 저가에 금 매입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우리 한국은행은 13년의 공백 끝에 2011년부터 금 보유를 늘리기 시작해 세계 순위를 56위에서 34위로 끌어올렸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 이 글은 <내일신문> 2월 26일자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에 실린 내용입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제주의소리>에 싣습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