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2] (1) 담론 1. 하늘 길

 

▲ 신들이 내리는 우주목 큰대. ⓒ문무병

신화가 생겨나기 전, 태초의 세상은 왁왁한 어둠이었다. 하늘의 신화 <천지왕본풀이>는 어둠을 거둔 이야기다. 신화를 꿈꾸는 사람들은 끝없이 하늘의 어둠을 가르고, 땅에 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빛을 발견하고 놀랐다. 그들은 어둠을 가르는 빛을 설명하는 ‘별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그리하여 이런 빤짝이는 별 얘기들이 태초의 창세신화가 되었다.

이와 같이 어둠 속에 반짝이는 별에 대한 인간의 상상력은 반짝이는 별과, 별을 바라보는 관찰자 사이에 ‘하늘 길’을 그려내게 되었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빛줄기는 빤짝이기 때문에 침들이 돋아있는 직선을 생각했고, 거기에 생명 있는 줄기, 타서 올라갈 수 있는 박 줄을 상상하였다.

어둠에서 돋아난 빛줄기, 광명(光明)이 만들어낸 ‘볽 사상’의 지혜를 얻어낸 신화가 창세신화 천지왕본풀이였다. 사람들은 최초의 언어로 세상은 이렇게 만들어졌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빛이 내리다.” “별빛이 빤짝이다.”는 발견에서 ‘빤짝이는 별빛’ ‘가시 돋은 직선’은 하늘 향해 감아 올라가는 생명의 줄기, 박 줄이 되어 드디어 하늘 길은 완성되었다. 하늘에서 내리던 빛이 생명을 얻어 땅으로부터 감아 올라가 하늘 천지왕의 옥좌 오른쪽 모서리에 칭칭 감겨있는 박 줄, 이 하늘 길을 노각성자부다리 또는 노각성자부연줄이라 불렀다.

그러므로 창세신화로 노래하는 천지왕본풀이의 박 줄 하늘 길은 빛에 대한 명상, 어둠을 지우는 빛의 이야기이며, 광명(光名)이 세상을 비취는 진리임을 암유하는 다리, 신이 가는 길이다. 다시 말하면, 하늘과 땅 사이에 길이 있어, 그 하늘가는 길을  ‘노각성자부다리’라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올레’에서 무엇보다 먼저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 노각성자부다리의 의미를 배우는 것을 신화공부의 시작으로 삼고 싶다.

창세신화 <천지왕본풀이>에 의하면, ‘하늘올레’는 하늘로 가는 땅의 출발점, 땅[地府]을 다스리는 여왕 ‘총명부인’이 새로 태어날 아이, 저승왕 대별왕과 이승왕 소별왕이 하늘을 다스리는 아버지 천지왕을 찾아갈 수 있게 박 씨를 심어 만든 다리, 땅의 출발점인 우주목이 서 있는 본향당 ‘하늘올레’부터 하늘 옥황의 임금, 천제(天帝) 천지왕의 옥좌를 칭칭감고 있는 박 줄로 만든 길, ‘노각성자부다리’를 풀이하여 이 하늘 길을 신이 내리는 길[下降路], 바른 길이라 하는 것이며, ‘바르다’는 뜻의 ‘자부’를 붙여 ‘바른길’을 ‘자주다리’라 한다. 그러므로 “하늘 길을 가다.”는 “신 길을 가다.” “신(神)의 다리를 놓다.”고 풀이하게 된다. 이 의미는 굿을 하여 “신길을 바로 잡는다.”는 것이며, 이를 제주어로 ‘신질을 발루다’고 한다.

“신질을 발루다.” 그리고 ‘다리를 놓는다’고 할 때, ‘다리’는 신이 걸었던 길이다. 그러므로 “다리를 놓는다.”는 것은 신이 걸었던 길, 즉 신길을 바로잡다, 신질 발루다, 신이 걸었던 길을 바르게 고친다는 의미가 된다. 다리를 놓는다는 것은 신이 걸었던 바른 길을 간다는 것이다. 다리는 길이다.

그런데 다리에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노각성 줄다리’와 같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길, 굿을 시작할 때 처음에 하는 청신의례 초감제에서 ‘신궁에 문을 <군문열림>을 하여 하늘의 문이 열리면, 신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수직하강로(垂直下降路)가 있고, <군문열림>을 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신들을 오리 밖에 있는 본향당의 신목(=우주목)에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 신들을 집안의 제청까지 모셔오는 순서인 <오리정신청궤>를 하여 어느 한 지점에서 어느 한 지점으로, 예를 들면 하늘에서 내려온 신들을 오리 밖 까지 가 제장으로 모셔 오는 수평이동로로서의 길이라는 두 가지 의미의 ‘길(다리)’가 있다. 이 모두가 신길, 하늘에서 현실세계에 내려와 신당에서 굿판으로 신들이 왕래하는 길이다.

노각성자부다리와 같은 하늘의 수직하강로가 아닌 수평이동로로서 ‘길(다리)’는 <맞이굿>에서 신이 오시는 길을 딲는 ‘질치기(길닦이)’의 대상이 되는 아직 닦지 않은 길 가시덤불[荊棘]이며, 이 길을 잘 치우고 닦아 광목천을 깔아놓은 것을 ‘다리’라 한다. 제주도의 굿에서 ‘일월맞이’, ‘불도맞이’, ‘초․이공맞이’라 할 때, ‘맞이’라 하는 굿은 ‘신을 맞이하는 굿’[迎神儀禮]이다.

신이 오시는 길, 영혼이 떠나는 길을 닦고 신을 맞이하거나 영혼을 저승으로 고이 보내는 굿이다. 맞이굿에서 신을 맞이하기 위하여 길을 닦는 굿을 특히 ‘질침굿’ 또는 ‘질치기’라 한다. 이러한 길을 닦는 의례는 ‘신 길을 바로잡는’ 것이며, ‘다리를 놓는’ 것이다. 신 길을 바로잡는 것은 신이 오시는 길, 인간이 죽어서 저승으로 가는 길을 닦는다는 것이다.

이 길을 닦아 하얀 광목천을 깔았을 때, 길은 완성된다. 그 길은 신과 인간이 만나는 길이며, 망자가 이승의 미련을 버리고 저승으로 고이 갈 수 있는 길이다. 그러므로 다리를 놓는 질치기(길닦이)는 신길을 바로잡는 일, 신의 질서를 쫓아갈 수 있는 이승의 질서를 회복하는 과정이다.

 

▲ 마당에 세운 큰대는 신들이 내리는 하늘길. ⓒ문무병

앞에 가는 신의 길을 인간이 차례차례 밟아 가는 이치는 백범 김구 선생이 눈길 위에 남긴 발자국 같은 것이다. 다리를 놓는 다는 말에는 차례와 순서를 밟는다는 뜻이 있다. 동시에 과정을 밟는 다는 뜻도 있다. 그리고 신과 인간이 만날 수 있는 길을 놓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 길을 밟는다는 것은 질서의 회복이면서 동시에 신과 인간이 더불어 사는 상생의 의미를 지닌다. 신인동락(神人同樂)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다리의 또 다른 의미는 순서를 뜻하는 ‘젯다리’이다. 굿을 하려면,   “곱을 잘 가르라”,  “다리(橋)를 잘 가르라”하는데, 다리는 굿의 절차를 말하는 것이다. 한계를 구별하라는 말이다. 이와 같이 ‘젯다리’의 다리는 제를 치르는 순서를 뜻한다. 큰굿의 모든 제순(祭順)은 당클[祭棚]과 제순 대로 진행된다. 그러므로 큰굿이 굿에 쓰일 깃발 지전류 ‘기메’를 만들어 앞에 놓고 제를 지내는 <기메고사>를 하고, 이어 <초감제>를 시작하여, 굿의 맨 마지막 제순인 <도진>에 이르기 까지 모든 작은 제차의 진행방법은 ‘젯다리’의 신들의 위계[位階]에 따라, 제1당클 천제석궁 [三千天帝釋宮]당클, 제2당클 열두시왕[十王]당클, 제3당클 문전·본향당클, 제4당클 마을·영신당클까지 순서대로 진행되기 때문에 큰굿을 ‘차례차례 재 차례 굿’이라 한다.

다시 말하면 ‘차례차례 재 차례 굿’이란 모든 굿의 절차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굿법에 어긋남 없이 행하는 굿이며, 이러한 굿의 완성은 가정에서 하는 큰굿이나 심방집의 큰굿인 신굿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이런 다리도 있다. ‘상청(上廳)다리’의 상청은 제일 윗 계보의 신을 뜻하고, ‘다리’는 신이 하강하는 길이라 하여 굿할 때 밟아 오도록 깔거나 걸어 놓은 긴 무명의 다리를 뜻한다.

그리고 ‘할망다리’라 할 때 다리는 삼싱할망이 지나갈 다리(긴 무명)를 뜰에 차린 할망상에서부터 방안 벽장의 할망상까지 걸쳐 놓고 수심방이 철쭉막대를 짚고 그 긴 무명다리에 기대어 잡아 추끼며, 무섭고 위엄을 갖추었지만, 늙은 할머니 걸음으로 어정어정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할망다리 추낌>이라 하는데 이 다리를 ‘할망다리’라 한다.

▲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 문학박사.

이외에도 ‘다리’는 모든 맞이굿에 나온다. 칠원성군다리, 일월다리, 초공다리, 이공다리, 시왕다리, 본향다리, 당주다리 등이다. 신길로서의 다리와 제순(祭順)으로서의 다리, 젯다리를 아는 것은 신화와 굿 공부의 출발이다. /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민속학자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