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전신화, ‘집’이란 공간에 지극한 관심과 애정
문전신화, ‘집’이란 공간에 지극한 관심과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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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의 제주신화 이야기] (76) 문전신화와 노일저대구일의딸

**이번 글부터는 문전신화이고, 제가 집중적으로 다룰 여신은 노일저대구일의딸입니다.
**고대 신화학에서 신화 속 이름들은 속성을 나타낸다고 하는 연구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노일저대구일의 딸이 보여주는 것들을 ‘어떤 조건과 속성들’로 생각하고, ‘노일저대구의의딸’로 맞춤법,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 쓰겠습니다.
 

제주의 문전신화는 인간이 몸담고 살고 있는 집의 곳곳에, 집안으로 들어오는 첫 문전과 조왕, 울타리 안 동서남북, 집 출입문 등에 그 곳을 지켜 주는 신들이 있고 이들에게 가내의 안전과 행복을 빌었던 제주의 이야기다.

문전제는 제주도 전역에서, 명절, 기제사, 신년제, 혼례, 아이가 군대 갈 때, 누군가 외지로 출타할 때, 집을 옮길 때 등 집안의 모든 일에, 크게 작게, 다양한 방식으로 행해진다. 실제로 제주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거의 대부분 이 문전제를 지내는 절차를 밟고 있다. 문전제의 제의대상인 문전신은 제주의 신화 <문전신화>에서 유래한다.

문전신화는 ‘집’이라는 공간을 하나의 소우주로 삼고, 거기에 대우주의 음양오행의 섭리를 실현시키고 그 기본적인 구성요소인 ‘방향’들을 아름다운 오방색으로 은유 상징화시키면서 ‘집’이라는 공간에 지극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살고자 애썼던 제주사람들의 삶, 공간의 의미에 맞는 신화이야기를 창조해내었던 제주사람들의 감수성과 철학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신화다.

 

▲ 제주문화예술재단의 2013제주설화프로젝트 참석자들이 문전신화를 가지고 아이들에게 시범수업을 하고 있는 모습 (2013.12.9. 애월읍 봉성리 새별작은도서관). ⓒ김정숙
▲ 제주문화예술재단의 2013제주설화프로젝트 참석자들이 문전신화를 가지고 아이들에게 시범수업을 하고 있는 모습 (2013.12.9. 애월읍 봉성리 새별작은도서관). ⓒ김정숙

문전신화

남산고을 남선비와 여산고을의 여산부인이 결혼하였다. 집안은 몹시 곤궁하였고 어렵게 어렵게 살아갔다. 세월이 흘러 부부 사이에 차례차례 일곱 형제가 태어났다. 여전히 살림은 곤궁하였고, 아이들이 커가기 시작하자 여산부인의 시름은 날로 깊어 갔다.
여산부인이 남선비에게 말했다. 
“우리가 이리 살아 가지고는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자식들도 많아졌고 이대로는 살 수가 없으니 무곡장사나 해보기 어찌합니까?”
“아무리 그래도 밑천이 없는데 어찌 하리오?”
“걱정 마십시오. 망건과 양태를 짜서 모아둔 돈이 있습니다.”
“어서 그건 그렇게 합시다.”

여산부인은 서둘러 남선비가 타고 갈 배를 마련하였다. 남선비가 물 밖에 나가 무곡장사를 하기 시작하면, 돌아오면서 책이며 붓, 먹도 사올 수 있겠고, 그것으로 아들들 공부도 시킬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들게 되니 여산부인은 더욱 힘이 났다. 남선비는 전배독선을 잡아놓고 어린 자식과 이별하여 남선고을을 떠나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이는 대로 가다보니 오동나라 오동고을로 들어가게 되었다. 
 
오동고을에는 간악하기로 소문이 난 노일저대구일의딸이라는 여인이 살고 있었다. 노일저대구일의딸은 일은 하지 않고 간들간들 놀고먹으면서 남의 것을 가로채고 좋은 사이 훼방 놓고 못된 짓만 골라하는 간악한 여인이었다.
노일저대구일의딸은 남선고을 남선비가 전배독선을 잡아타고 무곡장사를 하러 왔다는 소문을 듣자 뭐 긁어먹을게 없나 부리나케 포구로 달려 왔다. 노일저대구일의딸은 온갖 아양을 다 떨어대며 남선비를 꾀기 시작했다.
“남선비님, 오동나라에 처음 왔으니 우리 집으로 가시지요?”
“아, 고맙소. 그렇지 않아도 거처할 곳을 궁리하던 중이오.”
거의 끌다시피 남선비를 자기 집으로 청한 노일저대구일의딸은 다시 살랑살랑 거리면서 장기 바둑이나 두며 놀음놀이나 해보자고 권했다.
“남선비야, 남선비야, 이리 와서 우리 심심소일로 바둑 장기나 두면서 놀이나 하여 봅시다.”
“어서 그것은 그렇게 합시다.”

바둑 장기를 벌여놓고 이리 두고 저리 두고 놀다 보니, 남선비는 결국은 며칠 동안 내기바둑 한 번 이겨보지 못하고, 입고 간 명주 두루마기도 벗어주고 갓도 벗어주고 전배독선도 다 팔아먹고 가진 돈 장사 밑천을 모두 다 날려버렸다.
오도 가도 못하는 거지 신세가 된 남선비는 노일저대구일의딸을 첩으로 맞아, 거적문 수수깡외기둥 초막에 기거하면서 노일저대구일의딸에게 기대어 겨우 끼니나 얻어먹는 신세가 되었다. 노일저대구일의딸은 자기는 좋은 음식 먹고 간들간들 놀러 다니면서 남선비에게는 겨죽만 얻어 먹이고 채밥만 얻어다 먹였다. 남선비는 달려드는 개에게 겨죽이나마 빼앗기지 않으려고 겨죽 단지를 꽉 끼고 구부려 앉아 ‘이 개 저 개 주어 저 개’ 쫓으면서 끄덕끄덕 졸고 있는 꼴이 되었다. 그렇게 석 달 열흘 백일이 되자 남선비는 영양실조로 눈까지 멀게 되었다.
 
한편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여산부인은 연삼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아들 일곱 형제를 불러 앉혔다.
“너희 아버지가 무곡장사를 나갔는데 여태 안 오는 것을 보니 이상하다. 필시 곡절이 있는 듯하다. 머리카락이 안 올라오는 것을 보니 죽은 것 같지는 않으니 깊은 산 속으로 올라가 곧은 나무를 베어다가 전배독선을 만들어주면 이 어미가 너희 아버지를 찾아오마.”
“저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서 산에 올라 곧은 남부를 베어 전배독선을 한 척 짓고 짚신도 일곱 켤레를 만들어라. 아버지를 찾아오마”
“아닙니다. 어머니, 저희가 가겠습니다.”
“아니다. 내가 가마. 너희들이 가다가 바다에 빠지기라도 하면 제사며 소분벌초를 누가 할 것이냐? 나 하나 빠진 건 큰 탈 없으니 내가 가는 게 낫다.” 

일곱 형제는 어머니가 말하는 대로 깊은 산 속으로 올라가서 곧은 나무를 베어다가 전배독선을 만들어 놓았다. 여산부인은 일곱 아들과 이별하고 남선고을을 하직하여 남편을 찾아 떠났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이는 대로 가는 것이 여산부인도 오동나라 오동고을에 다다르게 되었다. 여산부인은 바닷가에 배를 대고 이리저리 남편을 찾아보았으나 도저히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이리저리 헤매며 돌아다니는데, 아이들이 이상한 노래를 하며 기장 밭의 새를 쫓고 있었다.

“요 새 저 새
너무 약은 체 말아라.
남선비 약은 깐에도
노일저대구일의딸 호탕에 들어서
전배독선 다 팔아먹고
비조리초막에 앉아
겨죽 단지를 옆에 놓고
요 새 저 새 주어 저 새”

노래를 듣던 여산부인은 정신이 번쩍 나 기장 밭에 새를 쫓는 아이에게 말을 하였다.
“아까 너희들 한 노래가 무슨 노래냐? 방금 한 노래를 한 번 더 들려주면 영초댕기나 해 주마.”
“아무 노래도 안 했습니다.”
“그리 말고 조금만 해 주어라. 남선비 어쩌고저쩌고 했잖느냐”
“아까 이 새 저 새 너무 약은 척 말아라. 남선비 약은 깐에도 노일저대구일의딸 홀림에 들어서 전배독선 다 팔아먹고 겨죽 단지 옆에 차고 앉아 노래를 부르면서 요 새, 저 새 주어 저 새 쫓았을 뿐입니다.”
“설운 아기야, 그 남선비가 어디 살고 있느냐? 남선비 있는 데를 가르쳐 주어라.”
“요 재 넘고. 저 재 넘어서 가십시오. 넘어서 가다 보면 거적문에 나무돌쩌귀 달린 비조리초막에 살고 있습니다.”

여산부인은 기장밭에서 새를 쫓는 아이에게 영초댕기를 달아주고, 이 고개 넘어 저 고개 넘어 걸어갔다. 가다 보니 대동대단 홑치마 저고리에 은가락지 놋가락지를 낀 한 여자가 일천 한량들이 어우러져 호호 하하 놀고 있었다. 남들 다 열심히 일하는 시간에 참 팔자도 좋구나, 생각하며 비껴 지났다.

거적문에 나무돌쩌귀 달린 비조리초막이 보였다. 여산부인이 들어가면서 말을 걸었다.
“길을 넘어가는 사람입니다. 날이 다 저물어서 하룻밤 머물고 가게 해 주십시오.”
“아이고, 설운 부인님아, 우리 집은 집도 좁고 손님이 머물 수 없습니다.”
“아니, 사람 외방 다닐 때 집을 지고 다닙니까? 부엌이라도 좀 빌려주십시오. 밥이라도 해 먹게.”
“난 모르오. 노일저대구일의딸이 오면 마음대로 사람을 들였다고 욕할 거요.”
못이기는 척 겨우 남선비가 허락하니, 여산부인은 부엌에 들어서서 솥을 열어 보았다. 솥에는 겨죽이 바싹 눌러 붙어 있었다. 여산부인은 솥을 한 번 두 번 세 번 닦아 놓고 나주영산 은옥미를 씻어 저녁밥을 짓고는 남선비에게 가져갔다.

남선비는 눈이 어두워 그 때가지도 여산부인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 밥상 받으세요.”
“설운 부인님아, 이게 어떤 일입니까?”
남선비가 첫술을 들면서 눈물을 다르륵 흘렸다.
“아니 어찌 첫 술에 우십니까?”
“나는 본래 남선고을 남선비가 됩니다. 무곡장사를 왔다가 노일저대구일의딸 홀림에 빠져 전배독선을 다 팔아먹고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나도 옛날에는 이런 밥을 먹었었습니다.”
한 참 동안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며 하소연하던 남선비가 번뜩 무슨 생각이 났는지 불쑥 말했다.
“요거, 한 입 남겼다가 우리 노일저대 주었으면 좋겠는데….”
“아따, 헛걱정 말고 어서 들기나 하세요. 보아하니 뻔한데, 그렇게 당하고도 노일저대 타령이니…. 아이고 설운 남선비님아, 정말 날 모르겠습니까? 여산부인입니다. 당신 첫 부인입니다.”
“아니 뭐요? 여산부인이 왔다고?”(계속) / 김정숙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참고: 현용준「제주도 무속자료사전」, 문무병「제주도무속신화」, 제주문화원「제주신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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