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2] (2) 신의 본(本)을 풀며, 신과 놀다.

1. 신을 기다리는 세상에

▲ '본을 풀다' ⓒ문무병

신이 없는 세상의 날은 365일 중 7일, 대한과 입춘 사이의 일주일, 태초의 어둠 같은 시간을 제주에서는 ‘신구간’이라 하여 신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므로 신들의 갈리는 신구간부터 신화 이야기의 물꼬를 트겠다. 신화는 신(神)의 본(本)이다. 본(本)은 근본 바탕이며, 뿌리이니, 본풀이는 신의 근본을 푸는 신의 이야기이다.

이 세상[이승, 此生]의 시간, 1년 중에는 신이 없는 세상, 신들의 부재기간(不在期間)이 있다. 연중에 신의 간섭을 받지 않는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승을 살고 있는 현실세계 인간들에게 신의 준 여유이고 자유이며 축복이다. 신들이 없는 세상에서는 병도 죽음의 공포도 없다. “동티가 나지 않는다.” ‘동티’는 건드려서는 안 될 땅을 파거나 돌을 치우거나 나무를 베었을 때, 이것을 관장하는 지신(地神)의 노여움으로 받는 재앙인데, 신이 없는 때라면, 신이 내리는 재앙도 없으니, 동티가 나지 않는 것이다.

지상의 현실계 ‘이승’에는 연중 신이 없는 ‘동티나지 않는’ 이 기간은 신이 주재하지 않는 땅이며 하늘이기 때문에, 이 태초의 시간, 창세의 왁왁한 어둠 같은 태초의 시간에는 아무 것도 없다. 인간에게 새로운 시작을 예비하는 그것은 어둠이고, 밤이다. 무명(無明)이다. 신들이 없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대자유의 시간, 이 1년 중 일주일, 신구간이다. 신구간은 ‘신구세관(新舊歲官)이 갈리는 기간’이며, 그 기간은 24절기의 마지막에 놓인다.

“1년 중 제일 춥다는 대한(大寒)”이 지나 5일 되는 날(1월 26일)부터 “새봄 새 절기가 시작되는 입춘(立春)” 2일 전(2월 1일)까지 일주일(7일)동안을 말한다. 신의 없는 시간 ‘신구간’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는 일은 신화의 세계를 여는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신구간은 지난해를 마감하고 새 해를 여는 지상의 통과의례이다.

세시풍속으로서 <신구간>은 신을 만나기 위해 준비된 시간여행이다. 지난해 인간사를 관장하는 신들[舊官]은 24절기 세시에 따라 인간세상의 생활과 농사에 필요한 세사(世事)를 다 마치고, 마지막 절기인 대한(大寒) 지나 신구간이 시작되기 전 4일 동안, 신들은 땅의 임무를 마치고 ‘말을 타고’ 하늘에 오른다. [신들은 昇天한다.].

구관을 송신(送神)하여 하늘로 보낸 세상의 사람들은 2월 1일까지 신 없는 신구간 일주일을 보내고, 신을 기다리는 2일(입춘 전 이틀) 동안에 신들은 하늘길, ‘노각성자부다리’란 박 줄을 타고 입춘 전야에 하늘에서 지상에 내려온다. 그러므로 새로운 신[新官]들이 새로운 임무를 맡고 새로 부임하는 “신들이 下降”하여, 입춘춘경(立春春耕)하는 입춘굿은 신년의 하례의식이다.

땅을 떠나는 신들[舊官]은 말을 타고 떠나고, 새 신들[新官]은 하늘에서 ‘노각성자부다리’ 박 줄을 타고 내려온다. 신관과 구관이 갈리는 기간, 옛신[舊官]도 없고, 새신[新官]도 없는 그야말로 우주천지가 창조되기 전의 ‘태초의 어둠’ 같은 신구간이 있기에 올해도 세상의 문을 열수 있는 것이다.

 

▲ 삼형제를 뜻하는 <육고비 육항렬>. ⓒ문무병

2. 신의 본을 풀면, “신나락 만나락 한다.”

그렇게 여기저기서 신을 찬양하여 본(本)을 푸니, 사방에서 뾰족뾰족 봄풀 돋아나듯, 내 몸에서 신 살아나듯, 신이 내리는 듯 하는 구나. 그리하여 제주 사람들은 ‘신명이 난다’ ‘신 난다’는 신명(神明)의 뜻을 본풀이를 창하며 배웠으니,  “귀신의 본을 풀면, 신나락 만나락하고, 사람의 본을 풀면, 백년원수 되는 법”을 알았다. “신의 내력을 들춰내어 찬양하면 할수록 신명이 나지만, 사람의 얘기는 들춰내 얘기했다가는 서로 원수가 된다”는 이치를 배웠다.

간단히 말하면, “신과 놀면, 신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주사람들은 굿을 통하여 ‘신명’은 이런 거라 배웠다. 춤추는 ‘심방의 몸짓(춤)’과 악기를 치는 ‘소무(악사)의 장단’의 관계는 무조 삼형제(젯부기 삼형제)와 악기의 신 삼형제(너사무너도령 삼형제)가 의형제를 맺었던 사연, ‘육고비 육항렬법(죽은 어머니의 속옷의 두 가랭이를 두 삼형제 여섯이 차례로 통과함으로써 한 배 형제가 되는 의식)’에 의한다.

이 법은 무(巫)와 악(樂)의 관계, 춤과 연물 소리[악기]가 둘이 아니라 하나(=한 배 형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춤이 악기소리에 맞춰 추어지는 것도 아니고, 소리가 춤의 동작에 맞춰지는 것도 아닌 춤과 악이 하나처럼 되는 것이 신명이란 것이다. 춤과 소리가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되는 경지, 이를 ‘신명’이라 했다.

신화 초공본풀이의 내용으로 보면, 신명은 팔자 그르친 춤추는 무조 젯부기 삼형제와 악기를 치는 악기의 신 너사무너도령 삼형제가 어머니의 속옷 속을 통과하는 의식을 통해 의형제를 맺었던 ‘육고비 육항렬법’으로 설명한다. 이와 같이 제주 사람들은 본풀이를 통해서, 굿을 통해서 신명을 이야기 했다. 그러므로 ‘신이 내린다’는 것은 신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뜻만을 이야기하지 않고, 신나는, 신명이 ‘신나락 만나락’한 경지는 ‘신이 내린 듯 만 듯’, ‘내가 신이 나는 듯 마는 듯’ 또는 ‘인간이 신이 다된’ 아니면 ‘신도 인간처럼 신난’ ‘춤과 소리가 하나가 된’ 신나는 경지인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세상 이승[此生]의 현실계는 신이 내리고, 하늘에서 강림한 신의 본을 푸니, 신들의 세계, 저 세상[저승 彼生]의 신들을 깨운다. 신을 깨우는 일은 신길을 닦는 일, 질치기(길닦음)이며, 신의 본(本)을 푸는 일이다. 신의 본을 풀면, “신나락 만나락 한다.” “신과 인간이 함께 즐긴다”는 신인동락(神人同樂)은 “신과 인간이 모두 신명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늘의 신들이 인간을 다스리기 위하여 땅에 내려온다.[地上降神]는 것이며, 땅의 신들도 ‘하늘 어궁(御宮)에 올라가 신의 자격을 얻어 신이 된다’[天界上昇]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신들과 인간이 하나 되어 즐긴다는 것이다. /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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