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2004년 오렌지 혁명은 부정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재선거를 통해 다른 대통령을 뽑음으로써 막을 내렸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 또 하나의 혁명은 대통령을 추방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자국 영토의 일부를 상실하면서 막을 내릴 위험에 처해 있다.

오는 일요일로 다가온 주민투표에서 크림 자치공화국의 유권자 150만명은 받아든 설문문항 두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러시아로의 합병이냐 크림공화국 1992년 헌법으로의 복귀냐의 양자 택일이다.

1992년 헌법이란 키에프의 반대로 발효되지 못하여 사장되었던 것으로 자체 대통령도 뽑는 등 크림반도의 자치권이 독립국 수준에 준하는 헌법을 말한다.

투표결과는 비관적이다. 왜 이렇게 되었나? 시위대에 의해 현직 대통령이 추방되는 것에 가장 겁을 먹은 것은 러시아 측이었다. 우크라이나가 전 대통령의 친 서방으로 선회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예로 러시아 흑해함대 본부가 있는 '세바스토폴'에 대한 전임과 후임 두 대통령의 입장 차이를 보자. 세바스토폴은 크림 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항구도시로서 구 소련의 흑해함대의 총본부가 있던 곳이다. 사정이 바뀌어 1997년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게 2017년까지 20년간 연간 980만 달러를 지불하고 이 땅을 조차(租借)하기로 했다.

전임 유시첸코는 세바스토폴의 존재가 크림 반도 내 러시아 출신 주민들의 분리 독립 정서의 온상이 되고 있다고 보아 조차기한 연장을 하지 않을 것임을 러시아에 일찌감치 통보했다. 후임 야누코비치는 집권 첫해인 2010년 4월에 조차기한을 2042년까지 25년 연장하고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할인된 가격으로 장기 안정 공급받는 내용의 '흑해함대와 러시아 천연가스에 관한 조약'을 체결해 버렸다.

위기를 감지한 러시아의 선공

군사대국 러시아로서는 자국의 주력 해군이 남의 나라의 눈치를 보며 셋방살이를 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참이었으니 이번 사태를 역이용하여 크림 반도 전체를 먹고 싶은 욕심이 생길 만도 하다.

주민투표 결과가 나온다고 그것으로 상황 끝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의 거취다. 유럽에서 국토면적으로 최대일 뿐 아니라 유럽의 곡창이라고 불릴 정도로 밀과 옥수수 생산량이 크고 서유럽으로 공급되는 천연가스의 80% 이상이 우크라이나 송유관을 거친다. 우크라이나가 장차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느냐 러시아를 주축으로 한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 가입하느냐 하는 것도 민감한 사항이다.

우크라이나의 경제 성적은 구 소련 해체 후 소위 독립국가연합(CIS) 중 최하위다. 시장경제로의 전환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1990년대 내내, 그리고 2000년대 들어서도 2008년 글로벌 경기침체로 위기를 맞았다. 최악의 해로 기록된 2009년에는 경제성장은 마이너스 15%, 인플레이션은 16.4%에 달했다.

최근에는 다른 신생국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연준의 양적완화 테이퍼링의 영향으로 외국 자본이 유출이 벌어지고 있다. 외환보유고도 거의 바닥이 났다. 절실히 필요한 것은 돈인데 2010년 IMF로부터 받기로한 154억달러의 구제금융은 구조조정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음해에 취소되었다. 작년에는 유럽연합에 200억달러 구제금융을 요청했으나 천연가스 소비자 가격을 인상하라는 등의 조건을 걸어오자 결렬되었다. 그 틈에 러시아는 150억 달러를 '조건 없이' 빌려주겠다며 한창 시위가 격렬하던 지난 12월 우크라이나 정부 발행 유로본드 30억달러를 매입해 주었다.

돈이 필요한 우크라이나

그러나 부속약관에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을 60% 이내로 유지해야 하는 조건을 삽입하였으니 조건 중에는 까다로운 조건을 붙인 셈이다. 당시의 부채비율이 40% 대였고 GDP 규모가 약 1800억달러라고 가정하면 약정 한도 60%는 곧 소진될 것이기 때문이다. 약정위반은 유로본드의 즉시 상환을 청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우크라이나의 경우는 러시아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과는 무역이나 금융거래가 미미하여 이번 사태가 국제금융시장에 미치는 파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오히려 경제적으로 가장 영향을 받는 나라는 러시아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이를 뒤집어 보면 IMF나 EU는 우크라이나 구제금융에 적극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서방 국민의 세금으로 러시아 채권자의 손실을 막아주려고 할까?

이래저래 사태는 오래 지속될 것 같고 그 동안 천연가스와 원유 가격, 그리고 국제 곡물가격의 동요는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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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내일신문> 3월 12일자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에 실린 내용입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제주의소리>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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