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기의 간을 내어 먹으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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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의 제주신화 이야기] (77) 문전신화와 노일저대구일의딸 2

남선비가 여산부인의 팔목을 부여잡고 그간의 서러운 회포를 풀며 만단정화를 나누고 있는데, 노일저대구일의딸이 어디 가서 남에게 품팔이를 하였는지, 치맛자락에 겨 한 되를 싸 들고 먼 올레로 조로로 들어서다가 이 광경을 보고는 마구 욕을 해댔다.
“이 놈 저 놈 죽일 놈아, 나는 어디 가서 죽을 듯 살 듯, 겨 한 되라도 빌어다가 죽이라도 쑤어대면서 배불리 먹여 놓으니 길 넘어가는 여자를 데려다 놓고 만단정화나 나누고 있구나.”
“무슨 만단정화 말이오. 여산 고을 큰 부인이 찾아왔소.”
그러자 본부인인 여산부인이 온 것을 안 노일저대구일의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살살거리며 여산부인에게 말했다.
“아이고, 그러니까, 우리 형님이 오셨구나, 아이고, 형님!”
“그동안 남선비를 잘 거두어줘서 고맙네.”
“아이고, 설운 형님, 오뉴월 한 더위에 이곳까지 찾아오느라 얼마나 고생을 하셨습니까?

코맹맹이 소리를 섞어가며 노일저대구일의딸이 여산부인에게 아양 떠는 것을 보고 있다가 남선비가 말했다.
“큰부인이 왔으니 나는 전에 살던 내 집으로 돌아가겠소.”
“나도 같이 가겠습니다. 제발 나도 같이 가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같이 가고 싶으면 같이 가세.”
“아이고, 형님 고맙습니다.”

“설운 형님! 이 더위에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오십시오, 우리 주천강에 가 시원하게 목욕이나 하고 와서 저녁밥이나 지어 먹고 노는 것이 어떻습니까?”
“어서 그것은 그렇게 하시게.”

“설운 형님! 옷을 벗으십시오. 등에 물이나 시원하게 놓아 드리겠습니다.”
“자네나 시원하게 놓게. 난 아니 놓겠네.”
“아니 형님, 이게 무슨 말입니까? 물도 다 차례가 있는 법입니다. 형님 아니 놓은 물을 어찌 내 등에 먼저 놓을 수 있습니까? 형님 먼저 물을 놓으십시오.”
여산부인이 적삼을 벗어 허리를 굽히니 노일저대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형님, 바지도 벗어 물팡 위에 던져두십시오. 바지에 물 들어 갑니다. 치마도 벗어 물팡 위에 던져두십시오. 치마에 물 들어갑니다.”
“….”
“버선도 벗으십시오. 신도 벗고 소중이 하나만 입고서 굽으십시오.” 
큰부인은 노일저대가 시키는 대로 소중이 하나만 입고 허리를 굽혀 등을 내 밀었다.

노일저대는 물을 한 줌 쥐어 여산부인의 등을 적셨다.
“아이고 내 속이 다 시원합니다. 시원하지요?”
“그러네.”
노일저대는 다시 물을 한 줌 쥐어 등을 미는 척하다가 주천강 속으로 여산부인을 확 떠밀어버렸다. 여산부인은 푸푸푸푸,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물 밖으로 나오려 하면 꾹 눌러버리고, 다시 나오려고 하면 또 꾹 눌러버리니, 얼마 후 물속으로 가라앉아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다. 여산부인의 감태 같은 머리가 여기저기 흩어졌다.

 

▲ 제주문화예술재단의 2013제주설화프로젝트. 참석자들은 여러 방법으로 문전신화를 아이들에게 알려 주었고,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이 문전신화 속의 주인공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13.12.9. /애월읍 봉성리 새별작은도서관). ⓒ김정숙

 

▲ 제주문화예술재단의 2013제주설화프로젝트. 이야기를 나눈 후, 문전신화 속의 주인공들을 닥종이 인형으로 만들고 있다. (2013.12.9./ 애월읍 봉성리 새별작은도서관). ⓒ김정숙

노일저대구일의딸은 흩어진 여산부인의 옷을 입고 휙휙 주워 입고, 큰부인으로 변장을 한 다음 남선비에게 돌아갔다.
“설운 낭군님, 노일저대 행실이 하도 괘씸하여 등을 미는 척하다가 주천강 연못에 확 빠트려 죽여 버리고 왔습니다.”
“어, 그 년 잘 죽였다. 겨죽이나 주면서 날 눈 멀게 한 년. 큰부인, 갑시다. 우리 고향으로 돌아갑시다.”

남선비가 변장한 여산부인과 함께 전배독선 잡아타고 오동나라를 하직하여 남선고을 수평선에 가까이 와 가니, 남선비 아들 일곱 형제는 부모님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선창가에 마중 나왔다. 
정성으로 부모님을 맞으려 큰아들은 망건을 벗어 다리를 놓고, 둘째 아들은 두루마기를 벗어 다리를 놓고, 셋째 아들은 적삼 벗어 다리를 놓고, 넷째 아들은 잠방이를 벗어 다리를 놓고, 다섯째 아들은 행전을 벗어 다리를 놓고, 여섯째 아들은 버선을 벗어 다리를 놓았다. 그런데 똑똑하고 영리한 막내 녹디생이는 칼날을 위로 세워 다리를 놓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여긴 형님들이 말했다.
“어떤 일로 부모님이 오시는데 칼선다리를 놓느냐?”
“설운 형님아, 아버님은 우리 아버님이지마는 어머님은 우리 어머님이 아닌 듯합니다.”
“어떻게 하여 알아지겠느냐?”
“어머님이 우리 어머님이 아닌지 맞는지 알려면 배에서 내려 집을 찾아가는 것을 보면 알 도리가 있을 것입니다.”

부모님이 선창가에 내리고 부모 자식 간 그동안 고생한 만단정화를 나누었다. 과장된 몸짓을 해대는 어머니를 보고, 막내 녹디생이는 아무래도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인데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가 아닌 듯하다고 여겼다.
부모님을 앞세우고 집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눈이 멀고 어머니는 어머니가 아닌 지라 집으로 가는 길을 알 리가 없었다. 이 올레도 기웃, 저 올레도 기웃, 이 올레로 쑥 들어섰다 나오고, 저 올레로 쑥 들어섰다 나오곤 하는 것이었다.

“어째서 우리 집을 모르십니까?” 녹디생이가 물었다.
“말도 마라. 너의 아버지 찾아오느라 너무 오래 배를 타고 와서 속이 확 뒤집히고 어질어질 하다. 큰 놈아, 뭐하냐? 길 가리켜라.”
집에 도착한 아들들은 마당 구석에 모여 막내 녹디생이가 생각한대로 아무래도 우리 어머니가 아닌 듯하다고 수군덕거렸다.

노일저대는 수군덕거리는 일곱 형제들을 못 본 척하고 집안으로 휙 들어가서 여기도 휘휘 , 저기도 휘휘,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았다. 
“큰놈아, 열쇠 꺼내거라.”
“어디 열쇠 말입니까?”“어디 열쇠긴 어디 열쇠냐? 고팡 열쇠 말이다.”
“제가 어찌 압니까? 어머니 놔둔 데를 보십시오.”
“너의 아버지 찾으러 갔다 오느라 속 섞어져서 기억이 하나도 안나니 그런다.”
겨우 열쇠를 찾아 고팡으로 들어간 노일저대구일의딸은 이 항아리도 열어보고 저 항아리도 열어본 뒤에야 보리쌀을 찾아내어 저녁밥을 지었다.

“큰놈아, 간장 어디 있느냐?”
“어머님 놔 둔 데 있을 겁니다.”
“너의 아버지 찾으러 갔다 오느라 셈이 다 섞어져서 그런다니까!”
이 항 저 항 다 열어보고 나서야 간장도 겨우 찾아내어 밥상을 차리는데 밥상을 차려 놓는 것을 보니, 아버지께 가던 상은 자식에게 가고, 자식 밥상은 아버님께 가고 있으니, 필시 어머니인 여산부인이 아님이 분명했다. 그날부터 일곱 형제는 진짜 우리 어머니는 어디 가서 무슨 고생을 하고 계실까, 하는 생각으로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 제주문화예술재단의 2013제주설화프로젝트. 토론 후 문전신화 속의 주인공들을 닥종이 인형으로 만들고 있다. (2013.12.9./애월읍 봉성리 새별작은도서관) ⓒ김정숙

눈치 빠른 노일저대는 남선비의 일곱 아들이 자기의 정체를 알면서도 가만히 있는 것이 두려웠다. 이러다간 일곱 형제에게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 어떻게든 이 아들들을 없애야겠다고 생각했다. 
일곱형제가 어머님 생각을 하면서 슬프게 울고 있던 어느 날 노일저대는 갑자기 마루로 뛰쳐나와 남선비에게 배가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며 네 방구석을 뱅뱅 구르기 시작했다. 
“아이고 배야, 아이고 배야!”
노일저대구일의딸이 죽을 사경이 되어 가자 남선비가 혼겁을 집어먹고 말했다.
“아이고 이게 뭔 일이냐? 어쩌면 좋겠느냐?.”
“설운 남인님아, 내 병은 주사 맞고 약 먹어 낫는 병이 아닙니다. 나를 살리려거든 이리 저리, 요리 저리 가다 보면 대로 노상에 망텡이를 쓰고 앉아 점을 치고 있는 점쟁이가 있으니 문복이나 한 번 봐 주십시오. 잘 아는 심방이라고 합디다.”

남선비가 지팡이를 짚고 집을 나서는 사이에, 노일저대는 먼저 울담을 활딱 넘어 지름길을 휙휙 가로질러, 망텡이를 뒤집어쓰고 점쟁이인양 앉아 있었다. 
남선비가 다가와 말했다. 
“일을 잘 아는 어른입니까?”
“무슨 일입니까?”
“문복이나 하나 지어 주십시오.”
“어떤 문복이 됩니까?”
“우리 부인님이 삽시간에 몸에 병이 들어 사경에 당했습니다.”
노일저대는 손까락을 꼬부렸다 폈다 하면서 점쟁이 흉내를 냈다.

남선비가 걱정이 되어 물었다.
“내 부인이 어디가 아파서 그럽니까?”
“남선비님, 아들 일곱 형제가 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살릴 방법은 딱 한 가지입니다. 딱한 일이긴 하나 일곱 형제의 간을 내어 먹어야 좋겠습니다. 이 방법밖엔 도리가 없습니다.”

남선비는 청천하늘에 날벼락 같은 말을 듣고 반쯤 넋이 빠진 채 집으로 돌아왔다. 
거짓 점괘를 내놓은 노일저대는, 남선비가 돌아오기 전에 지름길로 휙휙 집으로 돌아 와 배를 잡고 뒹굴며 외쳐댔다.   
“아이구 배야, 아이구 배야. 하늘같은 낭군님아, 그래 문점 하러 가니 어떤 점괘가 나옵디까?”
“응, 그게….”
“나 다 죽어서야 말하시겠습니까? 빨리 말해주십시오.”`
“아들 일곱 형제 죽여, 간을 내먹어야 병이 낫는다고 합디다.”

“어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애기들 간을 어떻게 먹을 수가 있습니까?”
“그러게 말이오.”
“그럼 여기로 해서 여기로, 요기로 해서 요렇게 가 보십시오. 거기서 구덕을 쓴 점쟁이가 점을 친다고 합니다. 거기서도 같은 점괘가 나오는지 한번 물어보고 오십시오.”
남선비가 나가자, 이번에도 노일저대가 먼저 도착하여 구덕을 쓰고 점쟁이인양 앉아 있었다.
“어찌 오셨습니까?”
“일 잘 아는 어른입니까? 부인이 아파서 왔습니다.”
이번에도 노일저대는 손가락을 꼬부렸다 폈다 하면서 점을 치는 흉내를 내다가 말했다.
“아들 일곱의 간을 내어 먹으면 좋을 일이로다만, 어찌 에미가 자식의 간을 먹는단 말이오. 하지만 자식들도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번에도 노일저대는 다시 지름길로 남선비보다 일찍 돌아와, 더 죽어가는 시늉을 하며 배를 잡고 뒹굴었다. 또 점쟁이에게 다녀온 남선비가 이번에도 일곱 형제의 간을 내어 먹어야 좋겠다는 점괘가 나왔다고 했다. 노일저대구일의딸은 시치미를 떼다가는, 난감해 하는 모양으로 말을 했다. 
“제 아기 간을 어떻게 먹습니까? 그래도 서방님아, 모든 일은 삼세번이라 했으니 마지막으로 뒷집에나 가 보십시오. 거기에도 삼태기를 쓴 점쟁이가 점을 치고 있다고 합니다.”
남선비는 삼태기를 쓴 점쟁이 앞에 도착했지만 막상 앞에 가서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아 제자리를 맴돌기만 했다.
“어떻게 오신 손님인데 서성거리기만 하십니까?”
“집에 부인이 아파서 왔습니다.”
남선비는 나날이 심해져가는 아픈 증세에 대해 소상히 말했다. 노일저대는 다시 손가락을 꼬부렸다 폈다, 꼬부렸다 폈다,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기를 반복했다.
“점괘가 안 나옵니까?”
“아니요…. 다만 어려운 일입니다.”
“뭘 해야 합니까? 못할 일입니까?”
“…. 아들 일곱 형제의 간을 내어 먹으면 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 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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