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다가온 제주의 꽃들(24)

숲의 봄은 어디에서 부터 시작할까요?
활엽수들의 이파리가 나기 전에 키가 작은 오밀조밀한 꽃들이 먼저 서둘러 봄을 맞이하고, 이어 생강나무나 산수유같이 이파리보다도 꽃을 먼저 피우는 것들이 봄이 왔음을 알립니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늦게 봄을 맞이하는 듯 하지만 멀리서 보아도 연한 초록의 빛 말고 은은한 꽃으로 숲을 물들여 가는 것들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올리는 개복숭아꽃도 그 중 하나입니다.
복사꽃이라고 해도 되는 꽃, 꽃의 모양새만 보아서는 복숭아꽃과 전혀다르지 않은데 열매를 자잘하게 맺으니 개복숭아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별볼일 없는 열매일지 모르겠지만 산짐승들에게는 여전히 좋은 먹거리가 될 것입니다.

봄의 길목은 아주 짧습니다.
겨울인가 싶다가 봄이고, 봄인가 싶으면 여름으로 넘어갑니다.
짧은 것이 긴 여운을 남기는 묘미를 봄은 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석양이 지는 순간, 해돋이를 하는 순간, 그리고 새벽 미명에 아주 잠깐 바다가 푸른 빛을 내는 순간들 모두가 짧습니다.
특히 미명의 바다에서 푸른 빛은 대략 15초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라서 바다에 사시는 분들도 놓치기 쉬운 풍경이거나 보지 못했던 풍경일 수도 있습니다.

그 짧은 봄을 조금이라도 붙잡아 두고 싶은 욕심에 하도철새도래지를 서성였습니다. 철새들이 불청객의 방문에 후두둑 날고, 올망졸망 작은 새싹들이 봄을 준비합니다.

지난 가을에 피었던 꽃들의 흔적도 있고, 새봄을 맞이하는 흔적들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하도철새도래지는 아침안개가 피어오를 무렵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그 어느 날도 보여주지 않던 풍경을 매일 내어놓는 자연 앞에서 경외감을 느끼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도철새도래지를 천천히 돌아 근처에 있는 수풀이 우거진 야산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곳에는 사람이 범접할 수 없을 만큼의 덩쿨식물들이 가로막고 있었는데 개복숭아가 새악시의 부끄러운 붉은 빛으로 은은하게 피어있습니다.

'아, 저게 자연이구나!'

제주의 자연은 볼 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하게 합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인간의 욕심으로 매일매일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 어딘가는 포크레인에 의해서 파헤쳐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당장의 편리와 쾌락을 위해서 개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단지 자본의 논리로 자연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저의 이런 말이 한가한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주가 아름다운 이유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반해서 제주를 찾고 또 찾고, 이 곳에서 삶의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들이 도시와 똑같아졌을 때 제주는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그 때에도 매력이 있을까요?

개복숭아꽃이지만 복사꽃이라고 부르렵니다.
그렇게 부르면서 어린시절 과수원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곳에서 부르던 노래를 부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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