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해곤 섬아트문화연구소장

축제가 과거에는 신성한 의식이나 공동체 결속력을 위한 종교적 형태로 이용되었으나, 현재에는 즐겁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하나의 놀이문화로 변화되고 있다. 올해로 17번째를 맞은 제주들불축제가 지난 3월 9일에 끝났다.

중산간 초지의 해묵은 풀을 없애고, 해충을 구제하기 위한 풍습에서 유래된 들불축제는 오름 하나를 태우며 한해의 액운을 쫓고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축제로 변화되어, 매년 관람객들에게 아름다운 추억과 에피소드를 남겨준다.

필자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들불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오름불 놓기를 보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또는 매스컴을 통해서만 접해오다가 지난해와 올해 전 과정을 직접 지켜보게 되었다. 사실 그 동안 제주에서 열리는 수많은 축제들을 보며, 흥미를 잃었던 터다. 그리고 어느 축제장을 가도 위압적으로 와 닿는 몽골천막들과 먹고 마시며 요란스럽기만 하는 분위기로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

그러나 들불축제에서 타 축제들과 다른 모습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불을 다루는 축제라서 자칫 대형 화재나 인명사고로 직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준비과정부터 실행까지 상당히 예민하고 조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면서도 들불을 어떻게 스펙터클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진지한 고민들을 보았다.

바람코지인 새별오름엔 축제 첫날부터 거센 바람이 불어댔다. 오름에 불을 붙이는 마지막 날에는 제주바람의 위용을 과시라도 하듯, 태풍급 돌풍이 몰아쳐 불을 놓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관객들도 날씨가 궂어서 불을 붙이는 게 힘들겠다고 수근 거렸지만 예정된 시간이 되자 불이 점화되었다.

새별오름을 집어삼킬 듯 타오르는 거대한 불길은 모든 사람을 열광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관객들은 두 손 모아 합장하고, 소원을 빌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여기저기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고 외국인들도 수없이 원더풀을 외쳤다.

52만 제곱미터의 새별오름은 순식간에 붉은오름이 되었고, 그 안에는 1만여명의 소원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지난해의 묵은 기운은 활화산 속에 녹아 사라지고, 대신 풍요와 행복 그리고 희망이 가득찬 힐링의 시공간으로 바뀌었다.

“누가 그랬던가! 불구경은 어떤 것보다 가장 볼만한 것이라고”
제주들불은 어떤 볼거리나 이벤트와는 견줄 수없는 강한 에너지 그 자체를 지니고 있었다.

필자는 한동안 두려움 반, 감동 반으로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화려한 불빛 과 대조된 어둠 속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또 다른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공무원과 소방관들이었다.

만에 하나 인재사고와 화재에 대비해 수백명이 인간 방화선(?)을 만들어 이 현장을 지키고 서 있었던 것이다. 누구보다 가슴 조아리며 도민과 관광객의 무사와 안녕을 지켜주려는 이 사람들이 있었기에 아름다운 추억과 감동을 자아내며, 사고 없이 축제를 마무리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직업상 그곳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필자는 오히려 이 사람들이야말로 화려한 불꽃 뒤에 가려서 보이지 않은 축제의 진정한 주역들이라고 생각한다.

▲ 김해곤 섬아트문화연구소장. ⓒ제주의소리

축제를 즐기러 온 관람객들에게 감동을 만들어주기 위해 1년 내내 축제를 준비한 제주시와 작은 사고 하나도 막아내겠다는 신념으로 모든 것을 불사하고, 칼바람 속의 현장을 지킨 소방관들 그리고 축제 관계자들에게 따뜻한 격려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열정과 노고가 클수록 불꽃은 화려한 법이다. /김해곤 섬아트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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