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강정이다. 지금도 강정마을에는 노란색 ‘해군기지 결사반대’ 깃발들이 대나무에 높이 매달려 7년째 나부끼고 있다. 그 사이 마을공동체는 완전히 붕괴됐고, 전과자가 된 주민도 백명이 넘는다. 일부는 이들에게 ‘종북’딱지까지 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공정률 60%를 넘기면서 사실상 원상회복은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출구전략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세 차례에 걸쳐 ‘강정의 눈물’을 닦아줄 해법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주]

   

[왜 또 강정인가] <하> 정치적 합의 사면복권부터 '치유를 통합으로'

2013년 11월4일 황기철 해군참모총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제주를 찾았다. 나흘 뒤 강정마을은 세장짜리 건의서를 해군본부에 서한문 형태로 우편 발송했다.

강정마을회는 이전에도 국무총리와 국회의장 등에 서한문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날 우편에는 과거와 달리 단순 논쟁이 아닌 대화 국면으로 가기 위한 기대감이 담겨 있었다.

주민들은 해군기지 입지선정 과정에서 의견수렴 절차가 미흡했다는 점을 공식 사과하면 기꺼이 대화에 나서겠다는 뜻을 전했다. 갈등을 끝내고 대화 국면으로 가기 위한 구체적 조건도 제시했다.

그 중 하나가 '사면조치'다. 2013년 12월16일 현재 해군기지 반대운동으로 경찰에 붙잡힌 주민과 활동가는 2007년 4월 이후에만 649명이다. 이중 재판에 넘겨진 인원은 589명.

현재 확정되거나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의 벌금 총액은 2억6000만원에 이른다. 이마저 약식명령으로 부과된 벌금은 제외한 금액이다. 소송비용까지 합치면 3억원을 훌쩍 넘어선다.

파출소 문턱을 넘어본적이 없는 평범한 강정 주민들은 8년 내내 경찰서와 법원 수시로 오갔다. 한때는 주민과 활동가 60여명이 한꺼번에 법원을 찾아 법정에 서는 모습이 보도된 적도 있다.

   
법정에 선 주민들은 정부의 잘못된 절차와 선택으로 마을이 두동강이 났다고 주장했다. 그때마다 재판부는 주민들의 해군기지 반대운동이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참작했다.

해군기지 반대활동이 단순 개인 이익 때문이 아니라 국책사업 결정으로 빚어진 점을 인정한 것이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 시절 제주 건설이 확정된 해군기지는 부지 선정부터 매끄럽지 못했다. 서귀포시 화순과 위미를 오가던 후보지가 2007년 느닷없이 지금의 강정으로 정해진다.

절차상 문제투성인 마을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결정을 내리자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했고, 결국 유치를 이끈 마을회장이 주민들 손으로 바뀌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후 마을 내부 갈등은 극으로 치달았다.

유치 당시 마을주민들의 최대 고민은 생존권 문제였다.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수백년간 조상대대로 이어온 땅과 강정 앞바다를 내어주고 마을 문화도 뿌리채 뽑힐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공사가 진행될수록 반대운동은 격렬해졌다. 정부와 해군의 일방식 공사강행으로 맞섰고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갔다.

해군은 그사이 8층 아파트 높이의 대형 케이슨 수십여개를 바다에 투하해 방파제를 만들었다. 수많은 중장비와 해상설비가 강정 앞바다를 들쑤시면서 해안은 이미 본모습을 잃었다.

땅이 파이고 바위가 깨지면서 마을 갈등은 더 심해졌다. 전국에서 활동가들이 강정을 향했고 종교계 정치인들도 강정마을을 찾았다. 그때마다 갈등해소를 외쳤지만 아픔은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후 정부는 지역과 계층 이념에 따라 갈등과 분열을 중재하기 위해 2013년 6월에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제주에서도 해군기지 갈등해소의 기대가 컸다.

청와대는 당시 위원회 역할에 대해 ‘우리 사회에 내제된 상처와 갈등을 치유하고 공존과 상생의 문화를 정착하며 새로운 대한민국의 가치를 도출하기 위한 정책 제시’라고 설명했다.

출범 취지와 달리 통합위원회는 해군기지 해결에 소극적이었다. 계속되는 공사에 주민들은 다시 아스팔트를 내달렸고 공사차량을 막아섰다. 그때마다 공권력 투입은 반복됐다.

갈등해소를 위한 제주도사회협약위원회는 갈등해소와 도민통합의 해법으로 반대운동을 하다 형사처벌 된 이들에 대한 특별사건을 건의했다. 지역 정치권도 여야 없이 화답했다.

우근민 제주도지사도 나서 당정협의회를 열고 강정주민 특별사면을 정부에 건의했다. 지역 국회의원들도 강정 '특별사면'을 외쳤다. 모처럼 지역사회와 정치권이 한 목소리를 냈다.

도민의 바람과 달리 올해 1월 박근혜 정부 첫 특별사면에서 강정은 빠졌다. 정부가 엄격한 실정법의 잣대만 들이대고 조금의 온정도 베풀지 않았다는 지적이 몰아쳤다.

해군기지 갈등의 명쾌한 해법은 찾기는 어렵고 복잡하다. 그러나 쉬운 것 부터 차근차근 풀어야 한다. 정치적 합의가 이뤄진 사면복권을 실행시키는 것에서부터 얽힌 실타래부터 풀어가야 한다. 그것을 단초로 또다른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가야 한다.

강정 주민들의 가슴에 난 깊은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통합과 치유를 위한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면 8년을 이끌어 온 강정문제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수 있다. 쉬운 것부터 찾아야 한다. 그 첫 단초는 특별사면이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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