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증언 본풀이 마당···‘한 달 8만원?’ 정부 지원 인색에 분통

 

▲ 열 세번째 증언 본풀이마당에 나선 한병생 할머니. ⓒ제주의소리

“한 달 제주도에서 주는 거 8만원이 전부라. 이거 무슨 10만원도 안되는 걸로 달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라”

66년전 고난의 세월을 고스란히 겪은 어르신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27일 제주시 열린정보센터에서 열린 증언 본풀이마당 ‘그때 말 다 허지 못헤수다’다.

증언 본풀이마당은 실제 4.3 경험자들을 초청해 생생한 육성으로 당시 시대상을 느낄 수 있는 자리다. 동시에 생존 피해자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한풀이 마당이다.

유철인 4.3연구소장은 이 날 증언을 듣기에 앞서 “완전한 치유가 어렵겠지만 어르신들이 이 자리에 와서 마음이 편안해져서 돌아가셨으면 한다”는 소망을 전했다.

처음으로 무대에 오른 것은 제주시 삼양동에서 온 한병생(81) 할머니. 한 할머니는 산사람과 경찰 양쪽 모두에게 피해를 경험한 인물이다.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마이크 앞에 앉은 한 할머니는 다소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66년전. 4.3을 진압하기 위해 내려온 2연대에 아버지는 잡혀갔고, 오빠 역시 경찰에 붙잡혔다. 그리고 그 역시 끌려간 경찰서에서 ‘백 경사’에게 뺨을 두들겨 맞아 윗니가 온통 빠져버려  고생하다 서른 한살부터 틀니를 해야 했다. 엄지발가락과 손목도 구둣발에 밟혔단다.

“4.3사건때 백 경사 이름은 안 잊어버린다. 백 경사가 하도 두드르니까 손목이 빠져나가고, 엄지발가락도 구둣발로 빡 밟았던 게 기억난다.”

겨우 풀려나 회천 드르생이 마을 동장 집에 숨어있었을 때도 고통은 계속됐다. 동장의 아버지가 우익단체 활동을 한다고 죽임을 당했고 한 할머니도 피해를 입었다. 그 때 칼에 맞은 자국때문에 다리에서 허벅다리까지 전부 흉터투성이다. 그녀의 나이 열다섯일 때였다.

한 할머니는 “산사람은 산사람대로 닥달하고, 경찰은 경찰대로 닥달해서 저의 고통은 일 년 내내 말해도 다 못한다”며 “그래도 산사람 누명 벗겨진 것만 해도 막 지꺼정하다(기쁘다)”며 웃음을 띠었다.

정부에 대해 쓴 소리를 내뱉기도 했다. 4.3생존 희생자인 한 할머니는 제주도로부터만 한 달에 생활보조금 8만원을 받는다. 세상은 변했다지만 여전히 그의 삶은 퍽퍽했다.

“나는 제일 불만인 것이 한 달에 돈 8만원이 무시건가(무엇인가). 돈 10만원도 안되는거 어린애 달래듯이 경 해도 되여?(그렇게 해도 되냐), 국민들 어시면 나라들 어떵 살암실거냐(국민들이 없으면 나라가 어떻게 살거냐)”

▲ 열 세번째 증언 본풀이마당에 나선 양정순 할머니. ⓒ제주의소리

삶이 녹록치 않은 것은 두 번째로 무대에 오른 양정순(88)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양 할머니는 친척들이 산사람이라는 오해를 받으며 죽게 되자, 그 역시도 산에 협력했다며 경찰서로 잡혀갔다.

당시 경찰서에서 몸과 얼굴 전체에 폭행을 당해 귀 한쪽의 기능이 완전히 상실됐다. 40년째 보청기를 끼고 있다. 게다가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알 수 없는 두통을 안고 살고 있다.

양 할머니는 뒤늦게 지원한 2012년 5차 4.3희생자·유족 신고의 심의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아 지원금을 받지 못한 상태. “우린 8만원이 아니라 8천원도 어렵다”고 말하는 양 할머니는 피해를 인정받아 한 달에 8만원을 받는 게 소원이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고 객석은 웅성거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지원금액이 턱없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국가가 아니라 제주도가 지원해주는 비용”이라는 제주4.3후유장애인협회 관계자의 설명이 나오자 한숨 소리가 강당을 가득메웠다. <제주의소리>

<문준영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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