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송경태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

1급 시각장애인인 송경태 관장은 매년 <제주의소리>가 주최하는 아름다운제주국제마라톤대회 홍보대사로 제주와 연을 맺고 있는 초인적인 모험가다. 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4대 극한 사막 마라톤 그랜드 슬램(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남극)을 달성하고, 그랜드캐니언 271km와 나미브사막 마라톤 250km, 타클라마칸사막 마라톤 100km를 완주한 바 있다. 

지난 1월에는 킬리만자로 최고봉 우후루피크(5895m)에도 올랐다. 내년 봄 한국산악회 창립 70주년을 맞아 시각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등반에 도전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이 큰 도전에 앞서 그는 얼마 전 히말라야 아일랜드 피크(6189m)를 등정했다. 고통스럽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이 여정의 생생한 순간 순간을 그의 글로 직접 만나본다. <편집자 주>

 

▲ 히말라야 아일랜드 피크(6189m)를 오른 한국산악회 원정대. 오른쪽이 송경태 관장. ⓒ양병옥

시각장애인 세계 최초 히말라야 아일랜드 피크 6189m 등정기

“헉헉, 하악, 하악”
순간 번쩍 하면서 눈앞이 하얘진다. ‘화이트아웃’이라는 기상 현상이다. 아일랜드 피크에 있는 특이한 자연현상이다. 너무 하얗게 되어서 한 치 앞이 안 보인다.

고소로 심장을 쥐어뜯는 심한 호흡곤란과 머릿속을 후벼파는 듯한 격렬한 두통 그리고 토사곽란이 수시로 찾아왔다. 손끝에 감각이 없다. 발끝에도 감각이 없다.  

아, 두렵다. 내 몸 속의 모든 에너지가 밖으로 나왔다. 이제 더 이상 못 간다. 한 발짝만 더 가서 멈추자. 그리고 쉬자. 아주 편히 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 같다.

순간 남겨 놓은 가족과, 끝을 생각하는 평소 습관대로 혹시나 돌아오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여 써 놓은 유서가 떠오른다. 이대로 주저앉으면... 아, 직장의 월요일 회의에서 나의 유서를 읽는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아아 아일랜드 ……. 이 산은 너에게 진정 무슨 의미인가? 또한 너를 아는 분들에게 무슨 의미인가? 이 산에서 너를 다스리면 너를 통해서 누군가가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여러 가지 복잡하고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로 한 발짝 한 발짝이 헉헉대는 호흡과 연결이 된다.

나와 대원들과 서로의 몸을 묶는 로프가 스쳐 지나간다. 소리를 지른다. 이마의 고드름과 나오자마자 얼어붙는 콧물이 범벅이 되었다가 고체가 되어 떨어진다. 새벽에 출발 전에 ‘영하 30도요. 체감온도는 영하 40도는 될 것 같아요. 오늘 양말 3켤레 신어요.하던 대장의 목소리 색갈이 너무 선명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춥지 않다.  

아! 나는 이미 집에 와 있구나.
아파트 현관문을 들어서자 너무 시커멓게 타고 수염이 더부룩해진 나를 알아보지 못한 아내 곁에 누워있구나.

아, 행복하다.
아침에 물로 세수를 한다는 생각에 너무 가슴이 설렌다. 어린이집에 갈려고 준비물을 챙기면서 손자와 손녀가 옥신각신 하는 모습조차도 아름답게만 보인다. 오늘 아침에는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못 할 정도로 생각을 깊이 하여 그저 과거의 한 토막 시간여행을 한 것 같다.

그렇다. 이제 나는 안전한 땅, 축복의 땅, 산소가 풍부한 곳, 생명의 풀이 있는 곳, 미끄러지지 않는 안전한 길이 있는 곳에 있는 것이다. 마냥 행복하다.

▲ 히말라야 아일랜드 피크(6189m)를 오르고 있는 한국산악회 원정대. ⓒ양병옥

아아! 이렇게 행복한 적이 있었던가?

며칠 전 까지 나는 산소가 희박하고 영하 30 도가 넘는 혹독한 추위와 사투를 벌이며 빙하와 만년설로 뒤덮인 아일랜드 피크(6189m)에 있었다. 금번 등반은 내년 한국산악회 창립 70주년 기념 ‘2015 시각장애인 세계최초 송경태 에베레스트 원정대’ 현지 적응등반이었다.

누군가 시켜서 왔다면 백 번도 더 포기를 했을 것이다. 뭔가를 생각하겠다고 의미를 두면서 참가했지만 내 머릿속은 한 걸음만 내딛어도 산소결핍으로 가슴을 쥐어뜯는 심한 호흡곤란과 금방이라도 머리가 쪼개질듯한 심한 두통과 노란위액을 쏟아내는 토사곽란과 싸우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발목을 집어 삼킬 태세로 덤벼드는 폭 30 센티미터에 양쪽 절벽이 무려 500 여 미터가 넘는 날카롭고 뾰쪽한 촛대바위를 엉금엉금 기어가고, 80 도가 넘는 가파른 만년설 200미터와 살을 에는 칼바람을 떠올리면 생각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것 같았다.

사하라에서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다짐한 인터뷰가 채 잊혀지기도 전에, 또 다시 아일랜드 피크에 다가가는 경비행기 안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이곳은 많은 생명들이 사라져간 곳’이라는 표현이 엄습한다. 아, 돌아갈까? 방법만 있다면, 자신에게 포기하면서 살고 싶다면 돌아가라는 의미 없는 대화를 해본다.

하이캠프(5600m)에 도착하여 텐트를 치고 설레는 마음으로 저녁을 맞았다. 기온은 급강하하여 영하 40도를 가리킨다.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자야 하는데 큰 고통이다.

삼중화 신발을 제대로 신으려면 10분 이상 걸리고, 소변장소까지 가는데도 산소결핍으로 고통을 당할 것이 분명한데. 밖으로 나오니 몸이 얼었다. 어렸을 적 우물가에서 세수하고 들어갈 때 문고리를 잡으면 손에 쩍 들러붙던 기억이 떠오른다.

▲ 히말라야 아일랜드 피크(6189m)를 오르고 있는 한국산악회 원정대. ⓒ양병옥

우리 팀은 크레바스(빙하 속에 생기는 깊은 균열)를 조금이라도 더 피하기 위해 새벽 3시에 이동하기로 했다. 스노우라인 5850m정도 아래까지는 이렇게 작전을 세우고 야간에 이동을 한다. 낮보다 야간에 이동하니 더 춥다는 것이다. 머리 위에 고드름이 열렸다. 혀를 내밀어 나에게서 나온 수분이 고드름이 된 것을 미각으로 더듬어 본다.

옆으로 크레바스가 입을 쩍 벌리고 있다. 크렘폰(신발 밑에 덧신는 강철 등산용구)으로 전달되는 눈 바닥이 속이 빈 것처럼 울리는 때는 가슴이 철렁하다.

오르막에선 뒤에서 못 올라가게 잡아끈다. 아래로 내리막길이 있으면 뒤에서 육중한 무게가 여지없이 쾅 하고 발뒤꿈치를 찍는다. 이런 것을 조절하면서 극한 환경을 이겨내려면 뭐가 필요할까?

팀워크다. 생명을 자일에 묶고 서로의 몸을 돌보아주면 제대로 된 등반을 할 수 있다. 자일은 10m 앞의 대원의 상태를 가늠하는 통신 더듬이다. 거의 텔레파시의 수준이다.

등반 중에 소변이 생각나면 큰 낭패다. 주위 사람들의 눈이 문제가 아니다. 생리적 해결을 하는데 10분 이상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높이 오르면서 기압이 내려가면 평지에서 하는 일들을 기대할 수 없다. 거기에다 맨 살이 노출되면 금방 얼어버릴 것 같다.

아아, 꾹 참자. 어차피 세수도, 속옷도 보름 여간은 포기했다. ‘여행의 끝은 당신이 떠나온 자리를 다시 인식하는데 있다’는 누군가의 말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역시 가족이 계속 맴돈다. 눈물이 글썽인다. 대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가족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이제 잘 해 줘야지. 아이들에게 잔소리도 안하고 아내와 아이들과 대화를 더 많이 하고 아이들의 의견을 많이 들어야지 등등……. 많은 생각들이 마음속 깊이 우러나는 것 같다.

고드름이 앞을 가린다. 과거를 다시 돌아본다. 정녕 너의 사명이 제대로 가는 길인가? 너는 너의 사명에 얼마나 가치를 부여하는가? 내면에서 답이 없다. 계속해서 자신에게 질문을 해본다. 무겁게 가지고 온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책을 다시 떠올린다. 이 책은 다른 팀원에게 크레이지(crazy) 소리를 듣고 있지만 나에게는 삶을 바꾼 커다란 의미다. 무게를 줄이려면 묻어야 하나? 가지고 가야 하나. 갈등이 헉헉대는 호흡 속에 묻힌다.

▲ 히말라야 아일랜드 피크(6189m)를 오른 한국산악회 원정대. 가운데가 송경태 관장. ⓒ양병옥

고도계는 계속 오름을 표시한단다. 10시간 동안 계속 만년설의 급경사를 오른다. 나는 왜 이런 행위를 하는가? 의문이 든다. 자신에게 물어본다. 답이 없다. 돌아갈 수 없으니 일단 올라가자는 생각이 유치하다. 이 생명을 끝까지 유지하여 가족과 만나야 된다는 생각이 몸 속 깊은 곳에서 꿈틀댄다.

괜히 아일랜드 피크에 왔나보다. 악마의 발톱으로 변한 쇠조각 같은 촛대바위와 상어의 이빨로 변한 울퉁불퉁한 만년설은 내 발바닥을 꿰뚫고, 내 발목을 집어 삼킬 태세다.

고도계와 온도계를 쳐다본다. 차라리 모르면 더욱 좋았을 것을! 고도 5.995 미터, 온도 섭씨 영하 35 도를 가리켰다. 이런 곳을 한걸음 한걸음 전진 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안내한 도우미와 원정대원 그리고 머리 깊숙이 새겨진 가족과 친구, 지인들의 이미지도 에너지가 되었다.

한 걸음만 움직여도 심한 호흡곤란과 심한 두통으로 노란위액까지 토하고,  사방을 둘러봐도 차가운 만년설을 피할 수 없는 아일랜드에서 가족을 떠올리니 눈물은 어찌 그리 펑펑 흐르던지. 옆에 있는 셰르파 도우미 모르도록 소리를 죽이고 머리로 마음으로 내내 눈물을 흘렸다.
온 몸을 금방이라도 얼게 하는 아일랜드에서의 눈물은 시원한 물을 마시는 것처럼 갈증을 풀어주는 청량제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매서운 칼바람에 흙먼지가 들어가지 말라고 만들어진 고글은 나의 눈물을 가두어서 얼음눈물덩이를 만들었다. 가끔 고글을 들면 '툭' 하고 얼음눈물덩이가 떨어진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보다 가슴으로 느끼고 그 동안 조금이나마 잘못 살았던 삶을 반성해 본다. 특별한 것이 아니고 평범한 것이었다. 가족들 부모님, 친구와 지인들 등 내 곁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돌아간다면 잘 해주어야지 하고 다짐을 해본다.

멍한 순간이다. 도우미 배낭과 내 손에 쥐어 있던 생명줄이 갑자기 당겨진다. ‘헉!’ 쓰러진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딱 5분만 잤으면 소원이 없겠다. 엉덩이가 너무 차갑다. 나도 모르게 내 몸은 용수철처럼 하늘로 튀어 오른다.

지옥의 구간이라 불리는 정상부근의 80 도가 넘는 깍아지를 듯한 절벽과 가파른 크레바스는 가는 내내 '내 몸에 숨통이 왜 존재하나?' 라는 생각이 든다. 입속서 내뿜는 뜨거운 열기가 금방이라도 고철덩이마저 녹여버릴 기세다. 송곳보다 뾰쪽하고 톱니보다 날카로운 빙하조각과 만년설을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머리가 쭈뼛 서고 발목이 후들거려 숨통이 터질 지경이다.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폭설을 걷고 또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포기냐? 강행이냐? 현기증이 돈다.

순간 가족생각이 혼미한 뇌리를 스친다.
"아빠! 여보! 힘내세요!" 하는 소리가 고막을 강하게 때린다.
정신이 든다. 재빨리 배낭을 벗고 귀중한 생명수를 꺼내 마신다. "아! 차디찬 살얼음 물이다. 몇 초 지나야 차가움이 따뜻함으로 바뀐다.
커피를 그냥 넣어서 흔들면 냉커피로 바로 마실 수 있고, 설탕물을 그냥 넣어두면 아이스 바로 먹을 수 있는 온도로 보온병의 따끈한 물이 얼어 있었다.

▲ 히말라야 아일랜드 피크(6189m)를 오른 한국산악회 원정대. 왼쪽에서 세번째가 송경태 관장. ⓒ양병옥

손과 발은 이미 내 것이 아니다. 발가락도, 손가락도 만년설과 날카로운 바위조각에 노출되어 엉망이다. 꼭 어릴 때 할머니가 챙겨 주던 광주리의 홍시감처럼 변했다. 손과 발은 물렁거리는 순서대로 터지고 있었다. 꼭 구멍 난 자전거 튜브처럼 여기저기 실로 꿰매고 밴드로 땜질하였다. 동상에 걸려 탱탱 부은 곳은 칼집내 죽은피를 뽑아냈다.

설상가상, 주마로 로프를 타고 올라오다 날카로운 빙하에 양어깨를 부딪쳐 한동안 입을 벌린 채 숨을 못쉬었고, 하강도중 단단한 만년설과 오른쪽 엉덩이를 세 차례나 강하게 충돌해 탈이 났다. 70 도가 넘는 가파른 만년설과 칼바위를 절룩거리며 올라오고 내려가는데 온몸은 이미 에너지가 완전 방전된 상태다.

특히 스노우 바(만년설이나 빙하에 박아놓은 쇠말뚝)가 꺾인 줄도 모르고 하강하다 간만의 차로 추락사를 면한 소름끼치는 순간도 있었다. 사방은 온통 뾰쪽하고 차디찬 빙하와 만년설로 뒤덮여 앉아 쉴만한 공간도 거의 없다. 애처롭게 가야하는 이유는 뭘까? 유난히 추위를 타는 나는 배낭에서 우모복을 꺼내 몸에 뒤집어썼다. 타는 목마름은 만년설을 씹어 먹으며 갈증을 해소했다.

이렇게 까지 하면서 가는 의미가 무엇일까?
과연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을까? '빅터프랭클' 의 '죽음의 수용소'가 생각난다.

아, 새벽이 두렵다. 오늘도 얼마의 고문을 나 자신에게 시켜야 될지? 오늘은 얼마나 가슴을 쥐어뜯는 고소와 사투를 벌이고 머리가 쪼개질듯한 심한 두통을 견뎌내야할지? 오늘도 악마의 발톱 빙하와 울퉁불퉁한 만년설이 얼마나 나의 살을 도려낼지? 칼바람이 얼마나 나를 냉동인간으로 만들어 버릴지. 밤에는 지축을 뒤흔드는 돌풍이 얼마나 잠을 설치게 할지?
아무튼 확실한 건 이것들은 나의 힘과 의지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극한 상황이다. 더듬거리며 아침밥을 입에 억지로 밀어 넣고, 동료들 눈치 봐 가며 생리현상 해결하고 그날 필요한 식량과 장비를 점검하고 복장착용하기도 왜 그리 바쁜지? 나는 삶에서 누구를 광명의 세계로 인도 하였는가?

누가 바른 길로 가도록 고무시켰는가?
나로 인하여 올바른 삶을 살도록 영향력을 미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다시 한 번 자신에게 물어본다.

오늘도 최소한 2000kcal 이상의 영양이 공급 돼야 한다. 그러나 심한 고소와 60도가 넘는 기온차로 식욕마저 떨어진 상태에서 허기를 만년설을 씹어 먹으며 배고픔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아내는 "왜, 고생을 사서하느냐?, 여자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후회가 된다.

많은 갈등과 아픔과 희열 속에서 피오줌이 나왔다.
그래도 시간은 간다고 위로해 본다. 밤하늘은 별이 쏟아질 것 같이 선명하다.
솜털처럼 푹신한 폭설에 누워 그대로 잠들고 싶다. 올 4월 ‘손자의 육아일기.”가 출간되는 그곳으로…….
등반 마지막 날이다. 희비가 엇갈리기 시작한다.
"오늘이 끝" 이라는 생각은 이미 육체의 고통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

이내 정상에서 병선친구와 부둥켜안고 엉엉 울며 아일랜드 피크 6189m를 두 발로 넘었다. 시각장애인이 세계최초로 아일랜드 피크를 등정한 것이다.

나는 드디어 해냈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핑 돈다. 이제 삶의 의미를 다시 새기자.
죽음의 문턱이 삶과 바로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맑은 산소와 푸른 산야를  가진 조국에게 감사한다.

다시 새로운 삶, 더 정직한 삶, 더 친절한 삶, 더 성실하고 약속도 잘 지키고, 아이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삶을 살자고 다짐해 본다.

힘든 고통과 어려움이 많을수록 등정후의 성취감이나 도전하는 의미가 그 만큼 크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무조건 잘 먹고 천천히 걸으면 고소는 극복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는 좋은 기회였다.

끝까지 불평 없이 안내해준 도우미 셰르파 틸레, 앙게르, 팍상과 물심양면 지원과 자문을 아끼지 않은 ‘2015 시각장애인 세계최초 송경태 에베레스트 원정대’ 양병옥 원정대장, 최병선 부단장, 신동우 이사, 나관주 촬영기사와 한국산악회 장승필 회장님과 임직원 그리고 열심히 응원해준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들, 한국산악회 전북지부회원과 친구와 지인들에게 감사드린다.

 

▲ 히말라야 아일랜드 피크(6189m)를 오른 한국산악회 원정대. 오른쪽이 송경태 관장. ⓒ양병옥

▲주요 등반 개요

등반 기간 : 2014년 3월 4일~20일 (16 박 17일)

등반 대원 : 5 명
              원정 대장 : 양병옥 한국산악회 기술이사
              대원 : 최병선 치과원장, 2015 에베레스트 원정대 부단장
              대원 : 신동우 한국산악회 이사
              대원 : 나관주 촬영기사, 에베레스트 5 번 등정
              기타 : 셰르파 3 명, 키친 5 명

아일랜드 피크 높이 : 6189m

주요 등반계획 : 2014년 9월 남미 최고봉 아콩카쿠아 (7100m) 등반 예정
                            2015년 3월 에베레스트 8848m 최고봉 등반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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