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근대건축 산책] (18) 이승만 대통령과 국립제주목장, 그리고 특호관사 上

이승만 대통령과 제주는 그다지 좋은 인연을 맺지 못한 것 같다. 가장 큰 원인은 4․3사건 당시 국정최고 책임자였다는 점과 사태수습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이 뒤따른 결과에 대한 책임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승만 대통령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휩싸여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었던 제주에 대하여 다른 시각으로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이승만 대통령은 제주도를 목장개발지역으로 최적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그의 제주 방문 당시 연설 내용에서 엿볼 수 있다.

▲ 제주도청이 자리했던 관덕정 광장에서 거행된 이승만대통령환영대회 및 연설모습 (왼쪽사진=맨앞 최승만지사와 뒤편에 이승만대통령, UN 총사령관 밴폴리트 장군 일행 모습이 보인다) (세번째 재주도 방문인1952년 8월17일로 추정된다) <인용=(사)제주도지방의정연구소(2006), 도백열전1>

이승만 대통령은 1957년5월23일 해군 군함을 이용하여 진해에서 제주에 도착한 후 목장후보지를 시찰하며 도민환영대회에서 했던 첫마디가 “하와이는……”이었다. 또한 1952년 제주도청사 준공식에서도 도민환영대회에서도 “길을 잘 닦기만 한다면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와서 제주도는 10년 이내로 육지부보다 더 잘 살 수 있는 하와이 같은 관광지가 될 것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이승만 대통령은 제주의 땅과 풍경이 아주 독특함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개발의 지향점을 미국의 하와이에 두고 있었던 것 같다. 이는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였던 곳이 하와이라는 점과도 깊은 관련성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수립된 계획이 <국립제주도 송당목장>이었다.

이승만대통령이 1960년 4월26일 하야(下野)시까지 제주도를 방문한 것은 총7번이었다. 그중에서 4회의 방문이 <국립제주도 송당목장>건설과 관련된 것이었다.

연도 목적 비고
1949년 4월 9일 정부통지권의 회복을 대내외적으로 과시 및 좌익세력 견제

프란체스카 영부인

이윤영 보사부장관 대동

1949년12월22일 관덕정광장 도민환영대회 참석 불명
1952년 8월17일
피난민수용과 전쟁고아들의 생활 시찰
UN군 총사령관 밴폴리트 장군 대동
1952년12월16일 제주도청사 준공식 참석 및 제주도산업전시장 시찰 프란체스카 영부인,밴폴리트 장군부부, 백선엽 육군참모총장 등 대동
1956년 5월23일
제주도에 목장 건설을 위한 후보지방문(서귀포 북쪽 지역 및 감귤원, 관광지 시찰)
한미재단 이사장 밴폴리트(전 미8군사령관) 대동
1957년 5월23일 목장지 후보지로 결정된 송당목장 시찰 3월28일 한미재단 이사장 밴폴리트 및 스틴슨 수의사 대동. 제주방문 3일간 안덕면 서광리, 한림읍 금악리, 구좌면 송당리 후보지 3곳 시찰
4월4일 이형근 전육군참모총장과 육국공병감과 목장후모지 방문.건설지원에 필요한 사업검토
4월15일 농림부 「국립제주도송당목장」계획발표
1957년 10월31일 1차준공
1957년 12월6일 송당목장 재시찰(숙박함) 정재설 농림부장관, 백선엽 육군참모총장 등 관련국장 대동
1959년 8월4일 송당목장 방문(숙박함) 내무부장관, 농림부장관,축정국장 대동

#. 윤곽을 보인 ‘국립제주목장’의 비전

<국립제주도 송당목장> 건설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56년 5월23일 제주도를 방문하면서부터였다. 이승만대통령은 미8군 사령관 전역 후 한미재단(韓美財團)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밴폴리트와 함께 제주도를 방문하여 도민환영대회에서 제주도에서의 목장건설 구상을 밝히고 이후 1957년 3월28일 밴폴리트 이사장이 미국인 수의사 스틴슨과 함께  3일간 제주에 머물면서 안덕면 서광리, 한림읍 금악리, 구좌면 송당리 후보지 3곳 시찰한후 송당목장을 최적지로 결정하였다.
 
1957년5월23일에는 이승만대통령이 직접 방문하여 송당목장을 직접 시찰하여 최종하게 되는데 이에 앞서 1957년4월15일에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국립제주도 송당목장>건설계획을 발표하였다.

▲ 제주를 방문한 송당목장 건설을 위해 방문한 수의사 스티슨 일행환영모습(1957년 3월28일 전후로 추정됨)<인용=(사)제주도지방의정연구소(2006), 도백열전1>
▲ 미국인 수의사 스틴슨(앞줄 왼쪽)으로부터 송당목장에 대한 현황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앞줄 중앙) (1957년 5월23일 전후로 추정) <인용=(사)제주도지방의정연구소(2006), 도백열전1>
▲ 목장건설 후보지였던 송당목장을 시찰하고 있는 이승만대통령(중앙)과 길성운지사(이 대통령 왼쪽), 미국인 수의사 스틴슨(이대통령의 오른쪽)(1957년 5월23일 전후로 추정) <인용=(사)제주도지방의정연구소(2006), 도백열전1>

<국립제주도 송당목장>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건설담당 : 육군공병단
-건설기간 : 1957년4월15일-1957년7월12일(실제 1차완공은 1957년10월31일됨)
-건설비용 : 총사업비 1억5천만환
-목장규모 : 9백만평(3천정보)
-세부내용 : 목장도로 15㎞, 목책 45㎞ 설치
            축사 1백5동, 관사 8동(대통령 전용특호관사(43평) 1동, 귀빈용 갑호관사     (20평) 2동, 을호관사(10평) 1동 포함)

1차공사는 3,540만환이 투입돼 1957년10월31일 준공하게 된다. 하루 평균 150명이 투입돼 연인원 8000여 명에 이르렀다. 축사 7동, 창고 1동, 특호관사 1동, 을호관사 3동이 건설되었고 60kw자가발전시설과 구내전화 등 최신설비로 갖춰졌다.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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