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2] (5) 천지왕본풀이 1

   

제주의 창세신화 <천지왕 본풀이>는 ‘곱 가르는 물’ 이야기다. 제주 사람은 태초의 물, 하늘의 청이슬, 땅의 흑이슬이 세상을 열었다 한다. 창세신화 <천지왕 본풀이>에 의하면, 태초에 세상은 ‘왁왁한 어둠’ 바로 혼돈(混沌)이었다.

하늘 머리가 자시(子時) 방향으로 열리고, 땅의 머리가 축시(丑時) 방향으로 열려, 캄캄한 암흑은 하늘과 땅으로 금이 생겨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때 하늘에서는 청이슬이 내렸고, 땅에서는 흑이슬이 솟아났다. 하늘의 푸른 물과 땅의 검은 물이 서로 합수되어 음양이 통하자 만물이 생겨났다. 이렇게 세상은 물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제주도의 창세신화 <천지왕 본풀이>가 부화를 시작한다.

처음부터 창조신화가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굿하여 하늘 신궁의 문을 열 때, 굿의 맨 처음에 하는 청신의례로서 <초감제>를 하여 신을 부르듯, 신을 부르는 청신(請神)의 쇠북[징] 소리가 어둠을 흔들자, 태초의 어둠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태초의 어둠을 갈라 세상을 열었던 창조주를 ‘천지왕’이라 한다. 천지왕은 어둠의 빗장을 연 창조주이며, 하늘과 땅을 가른 최고신이었기 때문에 천지왕이라 한다. 천지왕은 어둠을 어떻게 열었을까.

어둡다는 형용사 ‘캄캄하다’, ‘깜깜하다’ 보다 더 어두운 느낌을 주어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알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형용사, 제주지역어 ‘왁왁하다’는 ‘캄캄하다’ 보다 더 어두워 ‘왁왁 어둡다’이다.

제주도의 창세신화 <천지왕 본풀이>의 시작은 태초의 왁왁한 어둠, 한 묶음의 어둠 덩어리를 놓고 빛의 세상을 창조하던 최초의 신, 신과 인간, 그리고 우주 자연을 만든 신중의 신(God of gods), 창조주이며, 어둠을 깨트리고 새벽을 연 빛[色]의 신, 하늘과 땅을 곱 가른[區分한] 신, 천지왕이 세상을 베포도업[배포도읍(配布都邑)]한 이야기이다. 하늘과 땅, 산과 바다, 구름과 바람 등을 그리듯 나누어 펼치고[配布], 인간세상 온갖 인문 사항들을 새로 열었으니[都邑], 이것이 천지왕의 세상을 만든 이야기다.

그러므로 태초의 왁왁한 어둠은 여러 가지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 태초의 어둠, 왁왁한 어둠은 색이 없어 검정의 무색(無色)이며, 냄새가 없어 무취(無臭)인 채로, 마구 뒤섞인 혼돈이며 무질서인데, 이 어둠의 덩어리인 여기에 빈 공간, 간극의 시간이 생겨나고, 청이슬과 흑이슬이 흘러 내려, ‘움직임’이 생겨나니, 움직임 때문에 어둠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모든 무질서한 것들에 오열(伍列)이 생겨 질서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우주자연의 질서가 잡혀나가고, 인문 사항이 하나씩 자리를 잡아나가니, 천지만물이 활짝 개벽이 되었다[天地開闢]. 이렇게 태초의 시작은 현재에서 보면 너무도 멀고 아득하였기에, 너무도 오래된 과거, 태초의 신새벽으로 기억하는 시공간의 이야기였으니, 이 태초의 새벽은 두 가지의 시작, 초감제 베포도업의 이야기. 

‘베포친다[배포配布]’의 자연을 나누어 펼치는 ‘곱가르는 이야기’이며, ‘도읍친다[도업都邑]’의 처음 시작하는 창조의 발생신화 이야기다. 정리하면, 푸른 물과 검은 물이 하늘과 땅을 가른 이야기, 하늘과 땅이 한 묶음의 어둠 덩어리 ‘혼합(混合)’에서  ‘곱이 갈려’ ‘분리(分離) 구분되어’ 하늘과 땅으로 천지가 분리되었다는 이야기이다.

▲ 모든 신들을 네 당클에 모시고. ⓒ문무병

태초에 하늘과 땅은 마구 뒤섞여 시루떡 같은 어둠 덩어리였는데 거기에 시간과 방향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방향과 움직임이 생겨나자, 갑자년 갑자월 갑자시에 하늘 머리가 자시(子時) 방향으로 열리고, 을축년 을축월 을축시에 땅의 머리가 축시(丑時) 방향으로 열려, 하늘과 땅 사이에 금이 생기기 시작했다. 금이 생겨나자 창조의 균열은 빠르게 온갖 것을 바꾸어 놓아 하늘과 땅을 가르자, 천지에는 만물이 생겨났다.

맨 먼저 하늘엔 별들이 생겨났다. 갑을동방(甲乙東方)에는 견우성(牽牛星), 경진서방(庚辰西方)에는 직녀성(織女星), 병정남방(丙丁南方)에는 노인성(老人星), 임계북방(壬癸北方)에는 태금성(太金星), 삼태육성(三太六星) 선후성별(先後星別), 그리고 하늘 천지왕의 일곱 따님아기 별자리, 칠원성군(七元星君)인 북두칠성(北斗七星)의 별자리, 대성군(太星君) 원성군(元星君) 진성군(直星君) 옥성군(繆星君) 강성군(綱星君) 기성군(紀星君) 별성군이 도읍하였고, 이어서 월광(月光) 일광(日光)님도 생겨나게 되었다.

어둠 속에서는 천황(天皇)닭이 목을 들고, 지황닭이 날개를 치고, 인황닭이 꼬리를 쳐 울더니, 동녘으로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아침이 온 것이다. 어둠이 걷히며 아침[光明天地]이 밝아왔다.[開闢→光明] 새벽은 새로운 빛의 질서였다.  천지창조의 그 다음 순서는 무질서를 바로잡는 일이었다. 그것은 자연과 인문의 발생을 말하는 청신의례 <초감제>에서 우주의 발생과 창조를 노래하는 ‘베포도업[배포도읍(配布都邑)]’이었다. 굿의 초감제는 창세신화 <천지왕 본풀이>가 완성되기 이전 우주를 곱가르는(구분하는) 과정의 발생과 배치를 설명하는 <발생신화>들이다.

▲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민속학자.

제주 굿 <초감제> 맨 처음 순서인 <베포도업>에서 심방은 천지혼합(混合)으로부터 우주개벽(開闢), 일월성신의 발생, 산수 국토의 형성, 국가, 인물의 발생 등, 지리 역사적 사상의 발생을 차례차례 노래한다. 이 자연사상의 발생에 대해 노래하는 것을 ‘베포[配布]친다’(나누어 펼치다)고 하고, 인문사상의 발생에 대해 노래해 나가는 것을 ‘도업[都邑]친다(도읍하다. 새로 시작함을 아뢰다)’고 한다. 이리하여 태초의 어둠 ‘왁왁한 어둠’을 가르고 천지를 개벽하여 세상은 신새벽을 맞이한다. /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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