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2] (8) 천지왕본풀이 4-곱가르기 1

1. 천지왕이 만든 세상은 해도 둘, 달도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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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왕이 만든 광명천지는 사람이 살수 없는 세상이었다. 천지왕이 꿈꾸던 하늘과 총명부인이 계획하던 지상의 사람이 잘 사는 세상을 다시 한 번 그려본다. 하늘 사방에 별이 떠 어둠 위에 오색구름 찬란하고, 은하수가 흐르는 하늘의 별빛 강을 만들었던 천지왕은 하늘의 찬란한 밤을 ‘꿈 보따리’에 담아두고, 잠시 꿈에 그리던 지부왕 총명부인을 만나러 ‘노각성 자부연줄’을 타고 ‘이 세상’에 내려왔다.

그러나 <천지왕 본풀이>의 시작은 천지왕이 하늘이란 ‘저 세상[저승]’에서 어둠 속에 낙서하듯 만들어놓은 밤하늘의 별들을 ‘꿈 보따리’에 담아두고, ‘이 세상[이승]’에 내려오기 전에는 그가 만든 광명천지와 우주만물이 잘못 만들어진 세상임을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세상을 만드는 과정은 꿈을 현실로 바꿔 가는 과정, 어둠을 색칠하여 알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드는 과정이었지만, 천지왕에게는 꿈을 재밌게 그려놓은 세상 이야기가 없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없었던 세상을 ‘왁왁한’ 어둠으로 그려놓고, 아는, 아니, 알 것도 같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빛을 하나씩 모아, 하나 둘 셋, 백, 천, 만, 1만8천 빛깔들을 색칠하여 결국엔 이게 세상이고 현실이라 설명할 수 있을 만한 세상은 만들었지만, 사람이 세상이라 생각하는 ‘이 세상’은 아니었다.

‘세상을 창조한 신들의 이야기’가 창세신화(創世神話) <천지왕 본풀이>라면, 천지왕이 만든 하늘 세상 ‘저 세상’은 인간이 살 수 없는 세상이었던 것을 인간 세상에 내려와서야 알게 되었다. 인간 세상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은 하늘의 천지왕이 세상 만들기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땅의 온도, 동·식물, 남·녀, 사람과 귀신, 선·악 등, 아무 것도 모르고 만든 쓸모없는 세상, ‘저런 세상도 있었냐는 실패한 세상’이었다.

아시다시피 천지왕은 광명천지를 만들기 위해 하늘에 해도 둘, 달도 둘을 내보냈다. 천지는 활짝 개벽이 되었으나, 하늘엔 낮에는 해[日光]가 둘이 뜨고, 밤에는 달[月光]이 둘이 떠서, 낮에는 만민백성들이 ‘잦아’‘타’ 죽고, 밤에는 만민백성이 ‘곳아’ ‘실려’ 죽는 세상, 낮은 낮같지 않고, 밤은 밤 같지 않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세상이었다. 천지왕은 잘못 만든 세상을 고치고 싶었다. 

2. ‘이 세상[現世]’을 곱 가를 대별왕·소별왕을 꿈에 보다.

<천지왕 본풀이>는 천지왕이 사람이 사는 인간 세상을 모르고 만든 창조 작업은 모두가 실패라는 것을 가르친다. <천지왕 본풀이>에 의하면, 전지전능한 천지왕의 만든 세상은 인간을 생각하지 않고 만든 세상이었다. 어린 아이도 살 수 없는 세상이었다. 세상을 밤낮으로 나누었을 때, 밤은 밤 같지 않고, 낮은 낮 같이 않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세상이었다.

천지왕이 새벽을 만든 첫 세상, ‘밝은 세상[光明天地]’ ‘만물을 창조’한 일은 무질서한 세상, 온갖 것이 다 ‘놉드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새도 나무도 사람도 귀신도 다 말하는 세상, 온갖 만물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파괴되는 세상, 새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 천지혼합의 왁왁한 어둠처럼 희망 없는 세상, 꿈도 꿀 수 없는 어지러운 세상이 되어 그래서 질서가 필요했다. 첫닭이 울어 새벽은 왔지만, 세상은 오늘[現在]의 끝에 쉬거나 잠들 시간, 밤이 없었기 때문에, 잠들었다 다시 일어나, 다시 일을 시작할 내일[未來]이 보장되지 않는 무질서한 세상이었다.

무질서한 광명천지 우주만물을 ‘곱 가를 맑고 공정한 저울의 신’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저 세상의 천지왕은 이 세상의 총명부인을 만나, 천부지모(天父地母)의 사랑을 이루었고, 세상을 ‘곱 가르는 일’을 맡길 아이를 얻었고, “먼저 난 아이에게 대별왕이라 이름 성명 지어주고, 맑고 공명정대한 지혜로 세상의 질서[秩序]를 잡게 하고, 아직도 질서를 잡지 못한 무질서한 소일꺼리들은 동생 소별왕의 영악한 잔꾀로 다스리게 하였다.” 그러한 계획을 가지고 천지왕은 세상에 내려왔지만, 세상은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이 뒤바뀌어 버렸다. <천지왕 본풀이>에서 천지왕과 총명부인, 그리고 대별왕과 소별왕이 이 세상을 만드는 이야기, 세상을 <곱가르는 이야기>, 세상의 질서를 잡아나가는 이야기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 그것은 대별왕도 도업, 소별왕도 도업(都業), 대별왕 소별왕 세상을 여는, 새로 시작함을 아뢰는 제(祭)를 이를 때가 된 것이다.

지상에 내려오기 이전에 천지왕은 ‘꿈 보따리’에서 총명부인과 약속된 사랑의 꿈 하나를 꺼내 보았다. 천지왕이 꿈을 꾸기 전에 미리 보았던 꿈에는 총명부인과의 사이에 태어날 아이들에게 맡겨질 일, ‘세상을  가르는 일’, 세상의 질서를 세우고, 세상을 제도할 온갖 숙제들이 적혀 있었다. 꿈에 본 대별왕·소별왕의 꿈은 천부 천지왕·지모 총명부인[天父地母] 사이에서 태어날 쌍둥이 아들 대별왕·소별왕의 태몽이 적혀있었다.

3. 쌀을 삼 세 번(3×3=9) 씻으며 돌을 고르다.[善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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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왕의 실패한 세상 만들기는 땅의 여신 총명부인의 지혜를 빌려서 완성된다. <천지왕 본풀이>는 “땅의 여신, 이 세상[이승此生]의 신, 총명부인이  쌀을 삼 세 번(3×3=9) 씻으며, 돌을 골라 밥을 지었던 이야기”를 흘려버리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맑고 공정한 굿법’, 세상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로 ‘가난하지만 착하게 사는 이승 법’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쌀을 삼 세 번 씻는다.” (3×3)는 “여러 번 계속 씻는다.”이고, 이는 ‘물에 의한 정화(淨化)’라는 ‘깨끗하게 씻는다.’는 착하고[善] 총명한[知慧] 몸짓 이야기로 완성된다. 총명부인이 만든 ‘이 세상’은 가난하지만 청결하고 착하게 사는 땅의 현실세계다.

‘천지왕이 돌을 씹은 이야기’를 살펴보자. 앞의 글 <천지왕 콤플렉스>에서 다루었던 이야기, 전지전능한 천지왕도 혼자서 할 수 없었던 두 가지 콤플렉스, 인간이면 누구나 먹는 밥을 먹어보지 못했고, 혼자서 사랑할 수 없었기에 지니게 된 콤플렉스를 채우기 위해 지상에 내려왔다. 천지왕은 정성으로 지은 밥을 능숙하게 잘 먹을 수 없었고, 그래서 첫 숟가락에 돌이 씹혔다. 인간 세상 일에 미숙했기 때문이다.

“부인님아, 어째서 첫 숟가락에 돌이 씹히는 거요?”
“천지왕님아, 집안이 가난하여, 쌀이 없어 수명장자 집에 장리쌀 한 되 꾸러 갔더니, 백모래를 섞어 주었지요. 꾸어온 장리쌀을 삼 세 번을 씻어 밥을 지었는데도 돌이 씹혔군요.” 이 말을 듣고 천지왕은 화가 치밀었다.
“수명장자, 이놈아, 괘씸하구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쌀을 꿔줄 때, 반은 모래를 섞어 쌀을 꿔주고 부자가 됐구나.”

천지왕이 들어보니, 수명장자의 악독한 행실을 끝이 없었다. 수명장자의 아들딸도 심보가 아비처럼 고약하기 그지없었다. 천지왕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수명장자, 괘씸하다. 벼락장군, 우뢰장군, 화덕진군을 불러라.” 하늘에 명을 내리니, 수명장자의 으리으리한 기와집은 번개가 내리꽂히고 벼락이 내리쳤다. 집은 불에 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불탄 자리엔 수명장자가 죽어 있었다. 천지왕은 장자의 아들딸들에게도 벌을 내렸다.

가난한 사람을 괴롭힌 딸들은 꺾어진 숟가락을 하나씩 엉덩이에 꽂아 팥벌레로 만들었고, 아들들은 말 모르는 짐승을 목마르게 했으니 솔개 몸으로 환생시켜 비 온 뒤에 꼬부라진 주둥이로 날개의 물이나 겨우 핥아먹는 신세가 되게 했다. 악의 징치가 이루어진 것이다. 수명장자의 ‘쌀에 돌을 섞는 악행’을 천지왕의 하늘의 징벌을 다룬다. 가난한 총명부인의 정결[美]과 부자 수명장자의 더러운[醜] 악행을 이야기한다. 벼락, 우뢰, 번개를 내려 부자의 악행을 징벌하는 것이다.

‘쌀을 세 번 씻으며 돌을 고른 정성’은 ‘너무 곱고 아까운 일’이었다. ‘밥을 짓다’와 ‘돌을 고르다’는 선의 덕목이지만 돌을 섞어 장리쌀 꿔주고 부자가 된 수명장자의 악행은 징벌의 대상이었다. 총명부인의 질서를 위한 노력, 삼세번(3×3)의 반복, 가난하지만 착하게 사는 총명부인의 선과 악덕한 부자 수명장자의 악이 대립하고 공존하는 ‘이 세상’은 천지왕의 하늘의 법, 우뢰, 번개, 벼락을 내려 악을 징치하는 하늘 법과는 다른 법, 쌀을 삼 세 번, 계속 깨끗하게 씻고 물로 정화하는 맑고 공정한 굿법, 가난하지만 선하게 살게 하는 이승법, 질서 만들기 곱가르는 법, 대별왕·소별왕의 도업 이전에 쌀 씻고 돌 고르는 ‘이 세상’ 삶의 헌장이었다. 그것은 신화로 말하는 굿법이었다.

“큰굿 하여 ‘신길 발루기 전’은 맑고 공정한 세상이 아니주.”
소별왕이 만든 무질서한 세상을 대별왕의 맑고 공정한 저승 법으로 다스리는 굿법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모든 게 거꾸로 돌아가고 있었다. 질서의 신 대별왕이 저승의 굿법으로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기 전에는 그랬다. /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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