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고충석 전 인재영입위원장 "합의추대 기준 납득시키는게 공당의 의무"
                                   
무엇이 그리 급한가.  죄 없이 죽어간 꽃다운 어린 아이들과 부모의 눈물이 강산을 적시고 있는데, 제주도의 새정치연합은 돌연 신구범 전 도지사를 도지사 후보로 내세웠다. 

그것도 민주적 절차 없이 예비후보들 간의 밀실에서 만들어낸 절대로 ‘아름답지 않은’ 추대방식이었다. 그 밀실회의에선 제주도지사를 원로원장 쯤으로 생각했는 것 같다. 

나는 일찍 우근민, 김태환, 신구범 세 분의 지사가 제주도를 이끌어온 지난 23년을 제주판 3김 시대라고 비판하면서 이 분들의 퇴장을 주장한 바 있다. 

이미 김지사는 정치무대에서 퇴장했고 우지사는 퇴장 중에 있다.  그런데 어쩌자고 새 시대, 새로운 정치를 지향하겠다는 새정치연합이 신 전 지사를 도지사 후보로 내세웠을까. 

도민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점은 우선 두 가지다.

첫째는 신 전 지사가 그의 능력과는 별개로 새 정치의 새 인물론에 맞지 않는다는 여론이 있고, 그동안 여론조사에서도 새정치연합 후보들 중 비교열세였는데, 어떻게 해서 ‘갑자기’ 새정치연합 후보로 올라섰느냐 하는 점이다.

둘째는 고희범 위원장이나 김우남 의원은 그동안 강한 의지를 갖고 선거전을 뛰었는데, 어떻게 해서 땡볕에 나물 말라비틀어지듯 어이없이 하차했으며, ‘꿀먹은 벙어리’가 된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새정치연합은 도민 유권자들에게 이 두 가지 의문에 대한 납득할만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공당의 의무다.

이 두 가지를 제대로 납득시키지 못할 경우 새정치연합이 내건 ‘새정치’는  공허한 정치 수사(修辭)가 되고 이때부터는 ‘헌정치’, ‘헌정치연합’이란 말을 듣게 될 것이다.
 
고희범, 김우남이 신구범 전 지사보다 역량이 떨어진다는 말인가, 후보 적격도에서 부족하다는 말인가. 아니면 도민 유권자의 지지도가 낮다는 말인가.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만큼 이 두분의 역량과 한계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김우남 의원은 3선 국회의원이고 5월 이후에는 국회 상임위위원장으로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의정활동도 열심히 했고 책도 많이 읽는 사람이다. 선수(選數)가 매우 중요한 국회이고 보면 김 의원은 제주의 큰 자산이다. 그래서 인재가 부족한 제주이기 하기 때문에 김 의원은 고향발전을 위해 국회에 남는 것도 좋은 것아니냐는 조언도 한적 있다. 

고희범 후보는 한국의 진보적 수재들이  모인 한계레 신문사 사장을 역임했다. 서울대학 출신도 아닌 제주의 몽생이가 한계레신문사 사장으로 뽑힌 것을 두고 나는 고희범이가 크게 사건을 쳤다고 하면서 축하해줬다. 사장하는 동안 많은 업적을 남겼고 무엇보다도 영혼이 맑은 사람이다. 재정적으로 매우 어려운 가운데서도 정치하면서 많은 고생을 했다. 민주당 도당위원장도 맡아서 무리없이 잘해냈다.

그래서 새정치연합의 이번 도지사 후보 합의를 그 경위가 어떻든 ‘밀실’ ‘야합’ 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싸다고  본다.
 
‘밀실’ ‘야합’이라는 비판의 핵심은 후보 합의의 기준이 무엇인지 도민 유권자들에게 알리지도 안을뿐더러 도무지 알 수도 없다는데 있다.

당사자들도 어찌된 영문인지 유구무언이다. 여러 가지 억측만 난무할 뿐이다.

이런 식으로 도민의 후보를 선정해도 ‘새정치’라는 이름을 달고 유권자들 앞에 설 수 있는가.
 
지금은 유신시대가 아니다.

새정치연합이 새누리당 정권의 시대 퇴행적 작태를 비판해왔지만 이번 도지사후보 ‘밀실’ ‘야합’ 작태를 볼 때 오히려 퇴행을 하고 있는 측은 제주도의 새정치연합이다.
 
새누리당은 중앙당이 원희룡 후보를 전략적으로 낙점하고 싶었지만 최소한 그런 방식은 택하지 않았다. 후보자들 끼리 선출기준을 합의하도록 했고 그 기준에 따라 여론조사를 하고 도민의 뜻을 물어 원 전 의원을 도지사 후보로 확정했다. 이 점에 있어서 새누리당이 훨씬 새정치연합보다 진보적이고 민주적이다. 

반면 제주도의 새정치연합은 국회의원 세 사람을 가지고 있는 정당이라고 보기에는 도민들에게 그 자화상이 너무 초라하고 옹졸해 보인다.
 
새정치가 무엇인가. 상대당은 50대 원희룡 후보를 내세웠다. 원 후보에 관한 찬반 양론과 무관하게 우리가 인정할 것은 그가 일단 젊은 후보라는 점이다. 새누리당의 원 후보는 세대교체라는 함의를 포함한다. 그 세대교체 속에는 시대정신의 교체라는 뜻도 포함된다. 거기에는 제주판 3김시대에 대한 도민들의 피로감과 분노도 응축되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원 후보를 등판시킨 장본인은 우 지사다. 우 지사의 제주판 3김시대 연장시도만 없어도 원 후보가 등장할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시대는 개발연대에 요구되는 토목공사나 대단위 리조토 사업보다는 문화나 환경, 복지가 중요시 되는 시대다. 갈기갈기 찢겨진 도민사회를 통합시켜야 되는 시대적 요청도 세대교체 요구 속에 내장되어 있다. 

그런데 새정치연합 제주도당은 세대와 시대정신의 교체를 바라는 도민의 요구를 외면하고 지난 23년 제주판 3김 시대를 연장하려고 한다. 이번에 선정된 후보와 그 선정 결과만을 보면 어느 쪽이 보수이고 어느 족이 진보인지 헷갈린다.

후보자격을 나이로 구분하자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그 경위가  어찌됐던 이제 제주도지사 선거전은 50대의 원희룡 후보와 70대의 신구범 후보의 대결로 압축됐다.

그 가운데 제주도의 60대는 이 대결의 한판에서 ‘낀 세대’가 되면서 그 정치적 역할을 잃어버렸다. 이번 선거에서 60대의 도지사 후보 지망생들이  무대뒤로 소리없이 쓸쓸히 사라지고 있다. 이들이야 말로 23년을 견고하게 지탱한 제주판 3김 구조의 가장 큰 희생자들이다. 신, 우, 김은 이들에게 부채를 지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안철수에 실망한다. 그리고 새정치연합의 낡은 정치연합 방식에 실망한다. 나는 이제 새정치연합에 관한 지지와 협조를 철회한다. 원희룡후보의 등장으로 초췌해진 제주도의 새정치연합에 조금이라도 힘을 실아주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당적을 갖지 않은 채 새정치 새인물영입추진위원장 위촉을 수락한바 있다. 지식인은 약자에 더 동정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이제 그 위원장직도 사임했다. 새정치 제주연합이 이번 보여준 작태에서 전혀 비전과 희망을 찾기가 난망하기 때문이다. 노스탈자의 파산이라 할까 그런 것이다. 

과거 도로 민주당은 그렇다고 치고, 안철수는 더 이상 새 정치가 아닌 구태정치의 표본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그의 지지도 저하가 바로 이런데서 비롯된다.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새정치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새로운 생각, 또 하나는 새로운 사람이다.

다른 건 타협하고 절충해도 이건 양보할 수 없다고 할만큼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 바로 ‘새로움’이다.

이런 ‘새로움’을 도외시하고 어떻게 새 정치를 펼쳐낼 수 있을까.  이러한 의구심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다. SNS에는 봇물처럼 새정치에 대한 해학적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다만, 지금은 그야말로 전국이 어린 학생들의 죽음에 조의를 표하는 침묵의 시간이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벌어지는 이같은 해괴한 일에 아직은 관심이 덜할  뿐이다.
 
제주의 새정치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일단은 제주판 3김 청산을 종결시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신구범 전지사는 재임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제주판 3김으로 분류되는 것에 대하여 억울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제주판 3김의 갈등구조의 맹아는 신지사 때부터 시작되었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갈등구조는 여러차례 지사 선거를 거치면서 또 제주판 3김이 후보자로 나서기도 하면서 내연되고 강고해졌다.

제주판  3김은 적대적 상호 의존 관계를 형성하면서 세력을 규합하고 자기세력에 이권을 몰아주고  제주도민을 사분오열시켰다. 제주판  3김 청산이야 말로 6.4 지방선거에 부여된 사명이다. 물론 개인적으로야 신후보에게 능력이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이미 시대가 흘렀다. 흘러간 물로 어떻게 방아를 돌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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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충석 전 제주대 총장
제주도민을 위해 불행한 일이다. 선택은 다가온다. 선택의 방향도 분명한 것이기에 나는 이렇게 공론의 장에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으로 모든 국민들이 비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새 정치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얼굴 두껍게 졸수(拙手)를 두어놓고 ‘아름다운 합의’ 운운하고 있는가. 

더 이상 새정치라는 헛된 이름으로 포장하지 말고 도민들이 지금 무엇을 희구하는지를 직시하기 바란다.

내 사랑하는 고향, 제주가 이처럼 부끄러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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