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의 제주담론] (27) “배에 탄 친구들은 왜 살아오지 못했나요?”②

안전을 경시한 규제 완화가 빚은 예정된 사고

이번 사고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상황적 요인들이 존재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사건의 최종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그것은 단순히 상징적 수사가 아니다. 바로 MB정부의 기업 프렌들리와 그에 따른 규제완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우리나라도 종전에는 선령에 엄격했다. 1985년부터 노후선박의 해난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해상운송사업법’으로 여객선의 선령을 20년으로 제한했었다. 그러다 1991년 조건부로 5년 내에서 연장 가능케 했던 것을, 2009년 1월 이명박 정부는 ‘해상운송사업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여객선 선령제한을 최대 30년으로 변경, 완화했다. 그 결과 선령 20년 이상의 여객선들이 운항 가능하게 된 것이다. 여객선 사용연한이 연장되면 연간 200억 원가량의 비용절감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니까 5년 연장해주어 1000억을 벌게 해주는 것인데, 조건부 무력화까지 고려하면 어떤 회사는 2000억을 벌게 해준 셈이다. MB의 선진화정책이다. 그리고 그 결과 국민의 안전은 증발해버린 것이다. 허울 좋은 민간경제 활성화가 업주들의 금고는 채워주면서 민간의 억울한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이러한 정책 변경으로 청해진해운은 2012년 당시 일본에서는 이미 퇴역한 선령 18년의 세월호를 인수한 것으로 보인다. 2011년 국내 여객선 가운데 선령이 25년 이상 된 배는 3척이었으나, 2013년 6척으로 늘었다. 절반 이상이 자본금 10억 원 미만인 영세한 여객선 업체들이 보유한 것으로, 경영수지 악화 등을 이유로 새 여객선을 확보하지 않은 상황이다. 낮은 운임을 빌미로 안전운항에 대한 관심도 부족하다.

국토해양부가 2008년 9월 내놓은 《연안여객선 선령제한제도 개선연구 최종보고서》에는 “정부는 민간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인간의 안전과 환경을 보호하고자 하는 규제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추세다. 안전관리가 정착되면 선주의 편익을 비롯해 국민의 안전편익 또한 증대할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정작 이러한 전문가들의 연구결과는 반영하지 않고, 업주들의 로비와 편의만을 보장하는 규제완화와 퇴행적인 선진화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그 결과 이번 사고를 일으킨 세월호의 취항을 가능케 했으니, MB는 직접적인 사고의 원인제공자는 아니라 할지라도 노후화에 따른 사고의 여건을 만들어 준 광의의 공모자다. 특히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자신의 책무를 망각한 지도자인 것이다.

또한 ‘해수부의 ‘항로표지 중장기계획’의 하나로 추진되어 온 ‘등대 무인화’사업이 이번 사고의 골든타임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는 데 일조한 측면이 있다는 견해들이 많다. (물론 이런 지적에 대해 해수부는 해명자료를 홈페이지에 이미 게시해 놓았다.)

세월호의 항로였던 ‘맹골수도’ 인근의 ‘맹골죽도등대’는 4년 전인 2009년 10월에 등대지기가 없는 소위 ‘무인화등대’가 되었다. 이 사업은 항로표지 선진화사업으로 첨단 항로표지시설의 도입과 확충을 통한 선진화와 예산절감 효과를 가져왔다고 알려졌다. 무인화 이전까지는 ‘맹골죽도등대’에는 등대장과 직원 3명 등 4명이 24시간 상주하면서, 등대 관리는 물론 선박 충돌사고 예방 등의 업무를 수행해 오던 터였다.

‘맹골수도(孟骨水道)’는 조도면 ‘맹골도’와 ‘서거차도’ 사이 해역으로, 길이 6㎞, 폭 4.5㎞의 물길로 수도 안에는 암초가 없다. 평소에도 물살이 거세고 안개가 자욱하게 끼는 날이 많아 해난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해난사고 다발해역이기도 하다. 소위 명량해전의 무대인 명량해협의 울돌목을 제외하고는 대한민국의 바다 중 가장 강한 조류가 흘러 ‘맹골’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다. 맹골수도란 이름은 인근 맹골도(孟骨島)에서 유래했는데, 맹골도는 ‘맹수처럼 사나운 바다에 떠 있는 섬’이란 의미로 원래 ‘매응골도(每鷹骨島)’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지난 2002년부터 10년간 맹골수도 인근 해상에서 58건의 해난사고가 발생했다. 2007년 이후 맹골수도 인근 해역에서만 발생한 해양사고가 28건이나 돼 ‘교통안전 특정해역’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늘어, 해수부도 지정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 바 있다. 맹골수도는 하루에도 여객선, 화물선 등 수백 척이 통과하는 서남해역의 해상고속도로다.

2009년 등대가 무인화될 때부터, 주민들은 선박사고 위험 및 등대 고장 시 보수작업이 장기화되는 등 문제점을 들어 반대했으나, 결국 등대는 무인화되었으며, 등대가 무인화 시스템으로 전환된 후 비상 사이렌 및 일명 ‘레이콘’(신호수신기)이라고 불리는 레이더가 탑재되지 않은 ‘소형 어선’의 경우 위급상황을 전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주민들은 항로를 찾지 못해 소형 선박이나 어선들이 바다에서 장기간 표류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등대가 무인화된 직후부터 주민들은 지난 4년간 해수부에 줄기차게 다시 원래대로 유인등대를 도입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해수부는 번번이 예산부족타령만 하며, 이를 묵살해왔다는 것이다.

이번 사고에서 민간잠수사로 활약한 장형채 씨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진정한 안전은 등대지기가 기상이 나쁠 때면 (무인 등대가 정해진 구역만 비추는 것과 달리) 뱃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먼 거리라도 정작 필요한 곳까지 불을 비춰주는 것”이라며 “늘어나는 ‘무인화 등대’가 마치 경제적이고 선진화된 정책이고, 엄청난 치적이라고 자랑하는 모습에 서글퍼진다.”라고 했다.

또한 인근인 진도 대마도에 사는 한 주민은 “맹골죽도등대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지점은 2㎞가량 떨어져 있어 육안으로 잘 보인다. 등대가 유인화로 운영돼 상주직원이 있었다면 항로 이탈 등 선박의 초기 이상조짐을 조기에 감지해, 사고 예방 및 구조작업이 원활히 진행됐을 것”(세계일보)이라고 말했다. 결국, 선진화 사업의 산물인 무인등대가 이번 사고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만들었다는 현장 사람들의 발언에는 안타까움과 원망이 들어 있다.

또 하나는 컨트롤타워의 부재다. 즉, 국가시스템의 문제인 것이다. ‘NSC(국가안전보장회의, National Security Council)’가 안보뿐 아니라 재난대응까지 총괄토록 한 참여정부와 달리, 이명박 정부는 NSC를 해체하고 그 기능을 각 부처로 분산했다. NSC를 부활시킨 박근혜 정부도 재난대응 기능을 이원화시키는 오류를 범했다.

“그래도 그건 남겨둬야지!”-보수가 해체한 국가위기관리시스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7월 김대중 정부 때 설치된 NSC 사무처에 “기본지침과 표준매뉴얼을 지속 보완․발전시키고 여러 정보와 지식을 포함하는 종합적인 세부 매뉴얼을 작성하라.”라고 지시했다. 이에 NSC 사무처는 전쟁․테러와 같은 전통적인 안보분야 외에 국민생활과 밀접한 분야에 대한 위기관리매뉴얼을 만들기 시작했고, 각 기관들과 함께 각종 위기상황 발생 시 조치사항과 행동절차, 위기경보 발령체계, 대국민 홍보사항 등을 규정한 실무매뉴얼 작성에 들어갔다.

그리고 2005년 11월 전통적인 위기관리분야인 안보 외에 자연재난, 인위재난 그리고 통신마비 등의 구체적인 매뉴얼을 만들었다. 2004년 7월부터 시작해 2005년 11월까지 33개 유형의 표준 매뉴얼과 278개 실무매뉴얼을 완료했다. 덧붙여 여기에는 소방, 방역, 제설까지 상세히 포함되어 있다.(유희인 전 NSC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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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C는 박정희 정권 초기인 1963년에 설치되었으나, 박 정권 후반기에는 중앙정보부와 국방부의 역할과 부처비중의 확대로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전두환 정부에서 김영삼 문민정부를 거치는 동안에도 이 기구의 역할은 유명무실했다. 하지만 김대중 국민의 정부는 NSC를 주목했고, 출범 직후인 1998년 NSC는 외교·국방·통일 정책을 총체적이고 통합적으로 협의 운영하기 위한 정책기구로 그 위상과 역할이 강화되었다.

특히 노무현 참여정부는 출범 직후인 2003년 국가정보원의 비중을 축소하면서 NSC를 한층 더 확대 강화했다. 기존 기구에 상임위원회, 실무조정회의, 정세평가회의, 사무처를 설치하고 그 기구들의 역할을 강화했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2005년 4월 강원도 고성 비무장지대(DMZ)의 산불사태, 2005년 3월 영남지역의 100년 이래 최고의 폭설사태 시에 실제 작동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기여했다.

2006년부터는 위기 상황을 가정해서 9개 기관이 함께 현장에서 훈련하는 ‘위기대응 통합훈련’을 매년 을지연습 기간을 활용해 시행했다. 공무원을 숙달시키고, 불합리한 점은 개선해 매뉴얼을 수정했다. 또 NSC 산하 위기관리센터는 훈련 참관도 하고 정부기관 평가도 해서, 위기 상황이 벌어지면 정부 부처가 움직이도록 격발시키는 관리를 해왔다.

그러나 ‘잃어버린 10년 청산’을 기치로 내건 이명박 정부 인수위는 NSC를 비상설 기구로 바꾸고, NSC의 존재 의미와 역할 수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무처를 폐지해버렸다. 참여정부에서 정착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위기관리 시스템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한때 완전히 사라질 위기를 맞는다. 종합상황실마저 덩달아 해체하려고 했다. 

그러나 ‘숭례문 화재사건’이 발생하면서 위기관리의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르자 급히 상황실만 되살렸다. 그러나 그 규모는 축소되었다. 상황실장 역시 비서관에서 행정관으로 격하되었다. 하지만 ‘금강산 총격사건’이 터지면서 실장의 직급은 비서관급으로 다시 돌려놨다. 하지만, 이미 NSC의 가장 중요한 시스템인 ‘통합관리체계’는 무너져 버렸다. 이는 다시 범정부 차원의 효과적인 컨트롤타워 기능이 사라져버린 것을 의미한다.

참여정부에서 정착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위기관리 시스템이 계속 작동되고 있었다면, 이번 사고에서 초동대응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나 각 부처 간 역할분담의 난맥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수많은 인명을 구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최소한 단 1명이라도 생환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MB의 근시안이 정작 지워서는 안 될 것마저 지워버린 치명적 실책을 범한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이번 사고 발생 이후 대처과정의 난맥상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어진 종북몰이와 안보 등 대북관계에만 집중해 온 정책적 오류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참여정부 시절 NSC 사무처의 역할이 강화되자, 당시 한나라당은 NSC 사무처의 역할과 기능, 인원을 축소하는 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법 개정안에 서명했다.

하지만 참여정부 시절, 그토록 NSC 사무처를 비난하고, 법 개정안에 서명까지 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12월 NSC 사무처를 설치하고, NSC를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NSC를 처음 만든 박정희 정권의 업적을, 그 딸인 박근혜 대통령은 의원시절엔 정작 그 기구를 제대로 만들려고 하니 반대하다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야 그 필요성을 절감한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외교국방에만 치중한, 민생안전이 빠진 절름발이기구로 부활해 당장의 재난에는 쓸모없는 무용지물이었다. 안보를 대북대결의 맥락에서만 파악한 것이다. 국민의 전방위적인 안전을 포괄하는 진정한 '국가안보'에 대한 생각이 너무 짧았던 것이다. 박 대통령은 4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자연재난과 사회재난 관리를 일원화해, 강력한 통합 재난 대응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국가안전처’ 신설 구상을 밝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들어간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행안부를 안행부로 부처의 이름까지 바꾸면서 민생과 안전을 가장 강조했던 박근혜 정부에서, 민생안전에 가장 큰 구멍이 생긴 것이다. 이번 사고의 발생은 어쩌면 필연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사고 발생 시 대처하기 위한 위기관리시스템은 이미 일본이나 중국에 10년 앞서서 잘 준비하고 갖추었지만, 국민의 안전을 말로만 하거나, 안중에도 없던 정권에 의해서 지워져 버린 것이다.

그 참혹한 결과를 지금 우리는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입만 열면 ‘민생 챙기기’와 ‘국민의 안전’에 대한 현란한 정치적 수사는 위기상황에서는 아무 쓸모없는 것이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것이 된다.

60년 해상참사의 온상, 해피아

그런데 또 다른 비정상그룹이 있다. 이른바 해피아들이다. ‘해피아(해수부 마피아의 줄임)’라는 그룹은 이번 사고를 통해 본격적으로 세상 사람들의 이목에 제대로 걸렸는데, 사실 모피아(재경부 마피아)나 원전마피아(핵 마피아)란 말은 익히 알려져 있었다. 해피아는 해수부 관료들의 낙하산 인사와 그들이 속한 먹이사슬구조를 말하는 것이다.

해수부가 지난 60년 동안 국토부와 농식품부 등에 흡수됐다 분리되기를 반복하면서 해수부 조직원들은 서로 끈끈하게 얽혀, 현직과 전직이 서로 돕고 챙기는 행태가 부서의 전통이 되었으며, 해수부의 규제 권한은 1,491건으로 국토해양부에 이어 정부 내에서 두 번째로 많다.

그만큼 산하 기관이나 관련 기업에 ‘갑’의 횡포를 부릴 여지가 많고, 이를 악용해 퇴직자들을 위한 ‘낙하산 인사’를 당연시하는 관행이 자리 잡았으며, 해수부의 업무인 해양과 수산 분야는 ‘해양대’와 ‘수산대’ 등 소수의 특수 대학에서 배출된 인력이 주로 담당하게 되면서 선후배관계가 업무와도 연결되어, 특정 대학 출신들이 끼리끼리 밀어주고 당겨주는 두터운 학맥이 형성되면서 해피아라는 공생집단이 만들어졌다.(채널A 기사 요약)

‘해양수산부’로부터 선박 안전검사와 인증을 위탁받은 <한국선급>과 여객선 안전운항관리업무를 위탁받은 <한국해운조합> 등이 대표적인 해피아조직으로 언론과 세상의 이목을 끌고 있으며, 이번 사고와 관련하여 책임논란의 중심에 있다. <한국선급>은 역대 회장(이사장 포함) 11명 가운데 8명이 해수부 출신인 ‘낙하산’ 논란으로 눈총을 사고 있다.

<한국해운조합> 역시 ‘국토해양부’ 2차관 출신으로 주성호 이사장을 포함해 역대 이사장 12명 가운데 10명이 해수부 전직 관료 출신이어서 이 두 조직은 ‘해수부 마피아’의 본거지로 지목되고 있다. 또한 현재 해수부 산하 및 유관기관 14곳 중 11개 기관장(한국선급, 한국해운조합 포함)을 해수부 출신이 독점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뉴시스, 4. 27.)

전영기 한국선급 회장과 주성호 해운조합 이사장은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허술한 점검에 대한 비판과 유착의혹이 집중 제기된 데 따른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하지만 이들이 그냥 사퇴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인정할 국민들은 없을 것이다. 이들을 스스로 사퇴하게 할 것이 아니라, 이번 사고와 관련한 책임을 물어 사법조치까지 가야 한다.

이들 조직은 공직자윤리위 심사제도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통상 고위공직자가 퇴임 뒤 2년 안에 재취업하려면 퇴직 전 5년 동안 맡았던 업무와 관련성이 있는지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해수부 출신 고위공직자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도 심사를 받지 않은 것은 이 조합이 정부 위탁업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직자윤리법 시행령은 정부 위탁사업을 하는 곳에 재취업할 때는 심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 공직자윤리법 자체가 관료마피아들을 위한 구멍을 만들어 놓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그 구멍을 최대한 활용해왔고, 이는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에게도 떡값 상납 등을 통해 전방위 로비를 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무능한 대한민국의 시스템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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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피아 관련 보도<출처=채널A 화면 캡처>

<한국선급>은 1960년 6월 민법 제32조에 의거해 창립된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선급검사업무(선급 등록, 유지 관련 선박 도면심의, 기술검토 및 승인, 선급 검사, 선박재료, 기자재의 제 승인 및 검사) ▲정부대행검사업무(선박안전법 제60조에 의한 선박 검사, 해양환경관리법 제112조에 의한 해양환경오염방지검사, 해사안전법 제48조에 의한 안전관리체제 인증심사업무, 국제항해선박 및 항만시설의 보안에 관한 법률 제38조 제1항에 의한 항만시설, 보안심사업무), ▲선박용기자재검사, ▲해군/해경 업무(기자재, 장비, 설비 검사권, 해군/해경 함정 검사권) 등 선박과 관련한 거의 대부분의 업무를 정부를 대신해 관할하고 있다. <한국해운조합>은 2,100여 개 선사를 대표하는 해운 단체로, 해수부로부터 ‘여객선 안전운항관리 및 선박 안전관리체제에 관한 사업(한국해운조합법(법률 제10800호, 2011. 06. 15. 개정)에 근거)’을 위탁받아 ▲탑승인원 및 화물적재 상태 점검 ▲구명장비·소화설비 점검 ▲여객선 운항관리규정 확인 등 선박 안전운항 관리·감독을 해왔다. 이들 두 조직은 사실상 선박과 연안여객선과 관련해 거의 모든 업무를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소관부처인 ‘해양수산부’의 전관들이 이 조직을 장악하고 있으니, 제대로 된 관리감독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60년 해상사고의 부끄러운 역사는 바로 이 해피아조직의 태내에서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사고를 통해 드러난 모든 부실의 1차적 원인은 다름 아닌 해피아시스템에 의한 것이다.

이들에게 위탁된 업무의 중요성으로 볼 때, 정부가 이들 업무를 민간의 이익단체에 위탁한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또한 같은 선박검사 업무를 하면서도 소형 어선이나 영세 선박을 검사하는 ‘선박안전기술공단’이 공공기관으로 지정돼 운영되고 있는 것과 비교해도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 일찍부터 이들 조직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어왔으나 번번이 해피아들이 이를 막아왔다고 한다.

해양수산부는 사고 발생 이후인 27일에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나섰다. “여객선의 안전운항을 감독하는 선박운항관리자를 여객선사의 이익단체인 해운조합이 채용하면서 제 기능을 수행하는 데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안전운항관리 업무를 해운조합에서 독립시키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해수부는 그동안 여객선 안전관리는 민간(선사)이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민영화논리를 펴오다, 이번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여객선사들의 이익단체인 해운조합에 더 이상 안전을 맡길 수 없다는 국민여론이 비등해지자 태도를 바꾼 것으로, 운항관리자를 정부가 직접 뽑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공단 등 독립된 조직을 신설해 업무를 위임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등 떠밀린 부분적인 개선책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두 조직의 공공위탁업무를 독립된 공공기관을 신설해 맡기는 것이 최선의 방안일 것이다. “재난관리 부문 등은 민간에 맡기면 규제가 제대로 기능을 못해 이번 세월호 참사 등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된다.”라고 지적한 박정수 이화여대 교수의 의견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마피아 관료국가,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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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에 미국으로 건너간 시실리 마피아 멤버들의 모습.

마피아(Mafia)는 19세기 이탈리아 시실리 섬을 근거로 하는 강력한 범죄 조직으로, 200년이 넘는 긴 역사를 가진 미국지하경제의 주범이다. 이들 조직의 일부가 19세기 말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시카고 등 대도시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세를 확장했는데, 이들은 마약·도박·매춘 등 불법행위를 일삼으며 법과 정의를 비웃었으며, 현재까지도 그 존재는 이어지고 있다. 당연히 정부와 법은 그들을 색출하여 소탕하는 데 힘을 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마피아는 정부의 요처에 포진하고 있다는 데 차이가 있다. 이미 언론과 방송에서 익히 알려진 모피아를 비롯해, 원전마피아·철도마피아·산피아·국피아·교피아에 이어 이번 세월호 사고로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있는 해피아까지, ‘관료 마피아’들이 수두룩하다. 정부 고위관료들의 마피아라는 점에서 이탈리아나 미국과는 다른, 한국 사회만의 변종(變種) 마피아인 셈이다.

고위관료들은 퇴직 후 유관기관·단체에 재취업을 한다. 전관예우를 통해 관료들이 대를 이어 자리를 챙기고, 관련업계와 공생을 한다. 이 과정에서 대형 사고와 부실·부패·비리의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 관료들은 퇴임 후 관리 감독 기관으로 자리를 옮겨 방패막이가 되기도 하고, 때론 민관 유착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난해 적발된 대규모 원전 비리 뒤에는 ‘원전 마피아’가 있었다. 지난해 5월 신고리 원전 부품 시험 성적 위조사실이 드러나면서 시작된 ‘원전비리’ 수사결과, 원전 부품업체와 검증기관이 두루 연결된 검은 고리가 드러났는데, 부품업체들은 부품 시험 성적서를 위조해 납품했고, 감시해야 할 한국수력원자력 등의 임직원들은 돈을 받고 눈을 감아주었다. 원전 관료들은 퇴직 후에는 전관예우에 따라 이들 업체로 자리를 옮겨가기도 한다. 이런 구조에서 정부의 제대로 된 관리 감독이 이뤄질 리 없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금융·증권 분야에는 ‘모피아’(옛 재무부(MOF)+마피아)가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들로 이루어져 있고, 산업부 산하 60개 협회·재단·진흥회·연구원에는 ‘산피아’(산업통상자원부+마피아)가 포진해 있으며, 대한건설협회, 건설공제조합, 한국주택협회 등에도 ‘국피아’로 불리는 국토교통부 퇴직 공무원들이 핵심 보직을 차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출신들도 제약업계와 식품업계 협회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전직 관료들이 소관부처 산하단체들에 재취업하면서 카르텔을 형성해나가는 것은 모든 한국의 관료계에 퍼져 있는 고질적이고 전통적인 관행이다.

이들 한국의 관료마피아들은 저마다 각자의 분야에서 철밥통을 굳게 지키며, 전관예우 관행을 통해 은퇴 후에도 자신들의 배를 채워왔다. 어떤 정부가 와도 잠깐의 폭풍이 지나간 것일 뿐이다. 한번 마피아는 영원한 것이다. 변화란 그들에게 불온한 것이다. 결국 이번 세월호의 침몰사고를 만나고서야 그들이 한국사회를 얼마나 망가뜨려 놓았는지를 빙산의 일각이나마 노출시키게 되었다. 이런 사고가 날 때마다 정부와 국회는 적극적인 쇄신과 개혁을 약속했지만 번번이 무산되고 만 이유는, 바로 이들이 정부라는 조직 속에 포진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양이 앞에 생선을 맡기는 격인데, 쇄신과 개혁이 가능할 리 만무할 것이다.

그러므로 관료마피아를 개혁한다는 것은 어쩌면 해방 후 구축되어 온 관료조직의 관행과 인맥과의 전면적인 전쟁을 의미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들 ‘마피아와의 전쟁’을 예고하고 나섰다. 4월 22일 “세월호 사고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당수 비리와 사고는 마피아에서 비롯된다.”라며 “마피아는 (군대 내 사조직이던) 하나회와 마찬가지인데, 일단 이번 사고를 수습하고 나면 (마피아 문제를) 전반적으로 정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관례로 보았을 때, 국민들의 강력한 혁명적 요구와 대통령의 의지, 국회의 뒷받침이 없으면 또다시 물거품이 될 것은 뻔한 이치다. 또한 각종 마피아를 집어넣을 검찰은 검피아, 법원은 법피아 아니던가? 삼성 앞에 검찰이 작아지는 것, 대형로펌 앞에 서면 검찰이 작아지는 것도 다 이런 마피아적 구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 표명과 정부의 근절 약속을 쉬이 신뢰하지 못하는 배경이다.

국가를 재구성하자고 한다면

박인숙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의외로 프레시안에 기고한 “국가 대 개조운동을 시작해야 한다.”라는 글에서, 집권 여당 국회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바라보는 시선이 따갑고 의원 배지를 달고 다니는 것조차 부끄럽게 느껴진다며, 이번 일을 다음과 같이 진단하고 그 대안을 제안하고 있다. 다소 길더라도 인용해 보자.
      
이제는 땜질 처방보다 국가 대 개조운동 차원의 근본적인 자기혁신과 변화가 필요하다. 정치권과 사회지도층이 먼저 통철한 내부 반성과 함께 기득권을 내려놓고 기본 의무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대한민국 대 개조운동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놓는’ 방식이어야 한다. 즉, 기득권 세력부터 모든 것을 내려놓는 ‘톱다운’방식의 개혁이 위로부터 자발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중략) 대한민국의 침몰을 막으려면 국가라는 배의 ‘선박직’인 각 분야 지도자들부터 자기혁신과 도덕적 책무를 되돌아보면서 내부로부터의 뼈를 깎는 개조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철저한 자기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전관예우나 특권 나누기 같은 행태를 과감히 내려놓아야 하고 부패, 비리와의 검은 연결고리를 과감히 끊어야 한다. 이제 눈치보기식 미봉책은 대형 사고의 반복을 막을 수 없다. 이번 사고 이후에도 그런 조짐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당국의 우왕좌왕 대응, 공직자들의 생각 없는 언행, 기관들의 책임 떠넘기기 공방. 이젠 더 이상 용납돼선 안 되는 일들이 또 벌어지고 있다. 당장 선거가 다가오고 여론의 소용돌이가 걱정되더라도 이번만은 뿌리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모든 기득권 세력들, 필자를 포함한 정치인들, 특히 집권 여당과 관료들이 국민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뼈저린 반성을 한 뒤 국가 대 개조운동을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구구절절 맞는 이야기다. 그것도 집권여당의 국회의원의 글이라는 점에서 돋보이는 견해다. 글에서 밝혔듯이, 이번 기회에 대한민국의 대 개조를 시작하지 않는다면, 이런 참사는 지속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의 실현방식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해결책으로 “모든 기득권 세력들”의 톱다운 방식의 내려놓기라는 방법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과연 이 나라의 기득권 세력들이 그렇게 스스로 내려놓을 수 있을까? 그렇게 내려놓을 양반들이라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준섭(국제관계학 박사) 역시 이번 사고에 대한 프레시안 연재 글에서, 단순히 재난청을 신설한다거나 관련책임자들을 처벌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보다 근본적인 처방은 관료들의 문제임을 지적한다.

국가를 재구성해야 할 시점이다. 무엇보다도 이 땅의 관료가 참으로 문제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이 우리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사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언론에 요란하게 소개되고 사회적 이슈가 되는 몇몇 문제에 대해서만 ‘일시적으로 반짝’ 정치권이 결정할 뿐이다. 평소 일상적인 거의 대부분의 국가 업무는 관료 혹은 공무원들이 지속적으로 담당한다. 

관료와 공무원들의 수준은 국민 생활과 직결되며, 전체 국가의 수준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번에 우리 관료들의 수준은 너무도 잘 드러났고 대한민국의 수준도 밝혀졌다. 기본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나라. 물론 그간 고도 성장기에서 우리 사회에서 관료들이 수행했던 순기능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관료들의 무능과 무책임이 우리 사회의 진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막아서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무엇보다 철밥통 관행이 깨져야 한다.

기실 철밥통 제도란 정치권력의 압력에 굴하지 말고 오직 국민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라는 전제 하에 제공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지금 본래의 존재의미를 상실하고 주객전도되었다. 또 잘 알려진 대로 이번 ‘중대본’에도 정작 전문가는 전혀 배제된 채 구성되었다. 사실 현재의 공무원 체계에서 전문가는 대부분 계약직 혹은 승진이 되지 않는, 즉 일종의 ‘육두품’일 뿐이다.

이번에도 관료조직은 ‘생사여탈권’을 쥔 대통령이 다녀가고부터 그나마 움직였다. 국민에게 관료조직에 대한 견제 장치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간답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라도 분명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들에 대하여 국민들은 당연히 퇴출 명령 혹은 소환령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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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여행 간다며 재잘거리던 꽃다운 아이들이 꽃이 되어 돌아온 교실 풍경.

소준섭 박사는 국가 개조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관료조직의 개조가 최우선임을 밝히고 있다. 그는 이에 대해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함을 요구하고 있다.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는 27일자 한겨레에 쓴 칼럼에서 보다 구체적인 개혁의 내용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관료개혁의 첫걸음을 확실히 내디뎌야 한다. 관료개혁 없이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이번 사고의 주무부처인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 그리고 늑장 구조에 책임이 있는 해양경찰청은 해당 지방해양경찰청을 통째로 폐지하고 그 소속 공무원들을 전원 직권 면직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진 관련기관은 기관 전체가, 그리고 소속 공무원 전원이 공동책임을 지도록 해야 앞으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공무원들의 철밥통을 깨지 않는 한 절대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못한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선급 등 책임 있는 관련조직도 모두 해산하고 소속 직원을 모두 해직해야 한다.

이 교수는 “몇 명의 문책과 경질로 끝내선 안 된다. 이 문제는 선박안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가행정 전반에 걸친 고질적인 문제가 세월호 침몰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라고 밝히고, 위와 같이 주문하고 있다. 그렇다. 앞서 살폈듯이 지난 60여 년간 이 나라의 대형선박사고가 20년 간격으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터지고, 그때마다 근본적인 대책을 약속했지만, 이번 사태에서 보듯이 총체적 난국으로 실타래가 얽힌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은, 항상 면피용 꼬리 자르기만 반복되어 왔기 때문이다. 철밥통이 유지되는 한 이 고질적인 관료시스템은 바뀌지 않을 것이기에, 이 교수의 지적처럼 공동운명의 책임을 지게 하는 전면적이고 강력한 쇄신책을 취해야 그나마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관료들은 철밥통으로 정년퇴임까지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도 더 지속적인 기득권 확보를 위해 소위 보험까지 든다. 즉, 은퇴 후 취직이 보장되는 조직과 유착관계를 갖고 인맥관계를 쌓으면서 각종 업무에서 눈감아주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부패와 비리의 유착관계가 사라질 수 없는 것이다. 이는 한국사회 전반에 걸친 현상이다.

지방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방은 지방대로 토착세력을 중심으로 한 지연 학연 혈연의 소마피아구조가 똬리를 틀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유착과 부패비리의 공생관계를 끊기 위해선 고위공직자의 관련업계 재취업을 완전히 봉쇄하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특히 낙하산인사로 대표되는 전관들의 소위 ‘보험 들기’ 자체가 불가능하게 해야 할 것이다.

사실 고위 공직자들은 급료만으로도 고액이어서 정년을 마친 후에도 다시 생계를 위한 취업을 하지 않고도 여생을 먹고살 수 있다. 굳이 장수시대에 사회참여를 하고 싶다면, 자원봉사 등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노년의 삶을 살아도 충분한 연금 등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퇴임 후 전관으로서 공공기관이나 유관기간 및 기업에 대한 재취업을 원천봉쇄한다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는 셈이다. 이러한 유착관계를 끊어야만 한국의 관료사회가 마피아의 온상이 되는 것을 뿌리부터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극적인 처방을 법률로 만들고 이를 철저하게 실행하지 못한다면, 이번에도 수백의 억울한 생명을 잃고서도 외양간도 못 고치는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또다시 20년 후 어느 날, 우리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도 배움이 없는 몽매한 국가로서 국제적 망신을 당하게 될 것이다. 국민의 가슴을 찢는 아픔은 말할 것도 없다.

“규제는 원수”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 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창조경제도 그렇고 우리 경제가 혁신을 해서 정말 성장이 멈추지 않게 하려면 쓸데없는 규제는 아주 우리의 원수라고 생각을 하고 우리 몸을 자꾸 죽여 가는 암 덩어리라고 생각한다.”라며 “이건 아주 적극적으로 들어내는 데에 온 힘을 기울여야만 경제혁신이 이뤄지지, 웬만한 각오 갖고는 규제가 혁파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우리가 쳐부술 원수라고 생각을 하고 우리 몸에서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 몸이 죽는다는 암 덩어리로 생각을 하고 규제를 반드시 아주 겉핥기식이 아니라 확확 들어내는 데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박 대통령은 3월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로 나눠 좋은 규제는 개선하고, 나쁜 규제는 뿌리를 뽑아야 한다.”라며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는 우리 경제의 암 덩어리지만, 복지와 환경, 개인정보보호와 같이 꼭 필요한 규제들도 있다.”라고 강조했다. 합리적인 ‘규제관리’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보면서 박근혜 정부의 규제 완화가 과연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의 옥석을 가리는 방향으로 이루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MB정부 역시 기업 프렌들리 운운하면서 규제완화가 곧 선진화인 양 떠들면서 몰두했지만, 오늘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MB의 규제 완화에 따른 결과가 참담하게 국가를 국가답지 않게 해체해 놓은 실체다.

MB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소위 보수정권의 기간 동안 이루어진 우리나라의 규제완화가 기업들의 투자유치와 사업에 도움을 주어 결과적으로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국민들의 안전과 복지는 그 규제 완화의 제물이 되었음을 오늘 우리는 뼈저리게 확인하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번 사고가 발생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불행히도 MB정부의 선진화를 위한 규제 완화 조치들이다. 여객선의 선령 규제를 완화해 20년에서 30년으로 늘려준 결과, 20년 된 노후선박이 버젓이 승객들을 태우고 정상 운항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만약 이 규제완화만 없었다면 애초에 이 사고의 배경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선박의 노후화와 임의적인 개조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대형여객선이 복원력을 쉽게 상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 전체의 공공성은 생각하지 않고 행한, 해운업계를 위한 경제적 배려가 결국 세월호의 아이들을 삼킨 것이다.

지난 2일 발생한 서울지하철 추돌사고 역시 MB정부의 규제완화에 따른 작품이다. 현재 사고 원인을 둘러싸고 경찰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철도의 ‘내구연한’을 없앤 것이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MB정부 때 법이 개정되면서 전동차량의 내구연한 규정을 폐기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철도 및 전동차량은 일정 기한이 지나면 자동으로 폐차시키는 규정이 있었다. 개정 전 ‘철도안전법’ 37조는 “철도 운영자 등은 국토해양부령으로 정하는 내구연한을 초과한 철도차량을 운행할 수 없다.”라고 규정한 뒤, 시행규칙에도 철도차량 내구연한을 고속철도 30년, 일반철도 20~30년으로 못 박았었다. 2012년 ‘철도안전법’이 대폭 개정되면서 이 같은 내구연한 규정은 슬그머니 삭제됐고, ‘도시철도법’도 전철에 대한 내구연한 조항(22조)이 비슷한 시기에 삭제돼 지난 3월 19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번 사고 역시 예고된 사고나 마찬가지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 객원연구원은 “관리 감독 기관들은 이런 내구연한을 없앴다 하더라도 충분한 안전관리라든지 정기점검을 통해 안전성이 확보됐다고 하겠지만, 세월호도 침몰하기 전에 받은 검사는 모두 양호했다.”라고 말했다. 공공규제의 완화 전제조건이었던 관리감독시스템이 그렇게 법의 취약점을 보완할 정도로 완벽할까? 그렇지 않았다는 걸 세월호는 웅변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박근혜 정부가 이번 사고가 수습된 후에도 이전처럼 ‘규제는 원수’라는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진정 중요한 것은 무분별하게 규제완화를 서두르기 이전에, 어떤 규제는 꼭 필요한데 없는지 또는 너무 약하게 완화시켜 버렸는지, 어떤 규제가 진정 불필요한 규정인지를 철저히 검토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지금 내가 무엇을 풀어버려 몇 년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전혀 예측 못한 채 규제라고 다 풀어 버린다면, ‘적폐’를 타파하는 것이 아니라 ‘참사’만 누적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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