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의 제주담론] (27) “배에 탄 친구들은 왜 살아오지 못했나요?”⑤

기억은 구원에 이르고 망각은 파멸에 이른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그간 잊혔던 사건이 떠올랐다. 바로 제주도민사회는 물론 대한민국 뒤흔든 최악의 해난사고였던 남영호 침몰사고다. 필자가 어릴 적에 일어난 사건인데, 필자를 포함해 또래의 아이들 사이에서는 그 피해의 크기조차 가늠할 수 없던 제주도의 큰 사건으로 ‘4·3사태’, ‘사라호 태풍’, ‘남영호 침몰사고’가 종종 회자되었다. 이 중 어느 것도 겪어본 적은 없지만 제주사회에서 어른들의 입을 통해 들었던 가장 공포스런 재난이었기에 상상력의 진폭도 매우 컸던 일화들이었다.

1.jpg
▲ “이 돌보다 아래 지역에는 집을 짓지 말라.” 동일본 이와테현 ‘아네요시마을’의 쓰나미 경고 비석 1896년 22,000명 생명을 앗아간 대 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했었다. 그 후 1933년 또 한 번의 쓰나미가 발생해 아네요시 동네에는 4명의 생존자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비석은 그들에 의해 세워졌다고 한다.
필자도 이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뒤지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작년 12월 15일 <43주기 남영호 조난자 위령제>가 열렸다. 또한 남영호 사건을 기억하자고 세운 위령탑이 현재 상효동 ‘우리들리조트’와 ‘법성사’ 사이에 위치해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문득 3년 전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당시 알려졌던, 일본 도호쿠지방의 경계비가 떠올랐다.

경고비란 이전에 대형쓰나미를 당했던 선조들이 후대를 위해 세웠던 쓰나미 경고비로, 비면에 ‘이 비석 아래로는 집을 짓지 말 것’이라는 경고를 담고 있다. 도호쿠 지역에 300여 개 가까이 남아 있었다고 하는데, 이 경고비의 교훈을 새긴 마을들은 살아남았으나, 이 경고비의 존재조차 몰랐거나, 알면서도 무시해 해안에 집을 지었던 마을들은 대부분 쓰나미의 희생양이 되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4·3평화공원을 조성하거나 위령탑을 세우는 일들은, 망각하기 쉬운 인간의 습성을 잘 알기에, 추후에 이런 비극적인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기억의 전수를 위한 장치들을 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40여 년이 지나다 보니 당시의 기억도 희미해지고,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한 표식으로 남긴 위령탑마저 흉물스럽다고 산중에 처박았으니, 그 기억이 사회적으로 전수되겠는가?

사고 당시 최대최악의 선박침몰사고로 당시 도민들이나 유족들은 유다음해에 유난히 물이 올라 실했던 갈치고기를 먹지 않았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던 ‘남영호 침몰사고’는 벌써 우리의 뇌리에서 지워지고 말았던 것이다. 이런 문화풍토 속에서 어찌 세월호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국가의 안전 시스템과 재난 매뉴얼의 문제와는 별개로, 국민들의 경각심 역시 지속되었을 때 비로소 안전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2.jpg
▲ 선박들의 해상안전의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서귀포항 입구에 세워졌던 위령탑은 한라산 기슭으로 옮겨져 우리들 시야에서도 뇌리에서도 사라져 버렸다. <그래픽=박경훈>
애초에 위령탑은 남영호 희생자 326명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남영호 조난 수습대책위’에 의해 1971년 3월 30일 서귀포항에 세워졌으나, 서귀포항 항만 확장공사가 이루어지면서 당시 서귀포시 주요 인사들이 “서귀포항을 관광미항으로 조성하는 데, 참사라는 역사적 사실이 혐오감을 줄 수 있다.(고영철의 역사교실)”하여, 1982년 9월에 바다와 한참 거리가 먼 한라산 기슭의 산중인 현재의 장소로 옮겼다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진입로와 안내표지판 없이 장기간 방치된 채 황량하게 서 있었다. 아니, 버려지고 잊혔다고 해야 맞다. 그놈의 발전된 전시성 행정의 고질병의 발로인 셈이다. 어두운 과거는 생각하지 말고 밝은 미래만 생각하고자 하는 그 몹쓸 ‘습관성 망각증후군’ 또는 전형적인 전시행정의 결과였다. 아픈 과거일수록 경계비를 세워 그 아픈 기억이 사라지지 않도록 전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쨌든 남영호 침몰사고 43주기 추도식은 이런 연유로 엉뚱한 한라산 기슭에서 열리게 되었다. 43년 만에 처음 열리는 공식위령제였다. 그나마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동안 사회복지시설 어울림터 조인석 원장이 원혼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18년 전부터 매년 사비를 들여 불교식으로 합동위령제를 열어왔다. 원정상(남영호조난자추모위원회 위원장) 씨는 추도사를 통해 “남영호 사고는 역사 속에서 잊혀 왔고, 위령탑도 오랜 시간 외진 곳에 방치되다시피 해오면서 해마다 유가족의 마음을 다시금 아프게 하는 상처로 남아왔다.”라는 소회를 밝혔다.

11.jpg
▲ 43주기 남영호 침몰사고 희생자 추도식. ⓒ제주의소리DB

추도식에서 서귀포시장 직무대리인 양병식 부시장은 인사말을 통해 “그날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매년 이날이 되면 위령제를 열어 고인들의 넋을 기려 나갈 것이며, 또한 현재의 위령탑도 보다 의미 있는 곳으로 옮겨 유족은 물론 더 많은 추모객들이 찾을 수 있도록 해 나감으로써 범시민적인 추모분위기를 조성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뒤늦게나마 일이 바로잡히는 셈이다. 다행이다. 기왕이면 서귀포항 선박 입출항 시 언제나 볼 수 있는 곳에 옮겨 세워 원래의 취지대로 해상사고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경계비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기억은 구원에 이르고 망각은 파멸에 이른다’는 유태인들의 홀로코스트와 관련한 경구는 이번 참사와 같은 재난과 관련해서도 의미심장하다. 바로 우리들의 망각이 결국, 제도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느슨하게 하며, 이는 관료들의 국민을 망각한 마피아 책동을 용인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결국 앞의 일본의 쓰나미 피해마을이나 20년 마다 반복되는 해난참사 역시 망각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픈 일일 수록 부당하고 억울한 죽음일수록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그런 비극적인 일의 반복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 걱정되는 다음 재난

정말 두려운 것은 대참사와 뒤의 복병이다. 앞에서 우리나라 해난사고의 연표를 복기한 바 있다. 그렇지만 더욱 충격적인 연표는 이러한 해난 참사의 사이사이에 있었던 육상에서의 대형 참사들의 기록이다.

1953년 1월 9일 창경호 침몰사고 229명 사망, 7명 구조.
1970년 12월 14일 남영호 침몰사고 326명 사망, 15명 구조.
1971년 12월 15일 대연각호텔 화재사고 163명 사망, 63명 부상.
1993년 10월 10일 서해훼리호 침몰사고 292명 사망.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사고 32명 사망 17명 부상.
1995년 4월 28일 대구지하철가스폭발사고 101명 사망, 202명 부상.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502명 사망, 부상 937명.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방화사고 192명 사망, 151명 부상, 실종 21명.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사고(진행 중)

놀라운 것은 1971년의 대연각호텔사고와 1994년의 성수대교 붕괴와 연이은 95년의 지하철방화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은 해난참사의 이듬해에 연이어 터졌다는 점 때문이다. 참사로 인한 사회적 안전 경각심이 가장 높은 상황에서도 연이어 사고들이 이어졌다는 점에서 충격적인 것이다.

정말 우리사회는 안전불감증 사회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처럼 국가적 참사분위기와 애도물결이 그저 애도와 추모, 몇몇 꼬리자르기식 처벌로 인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조만간 어딘가에서 대형참사를 맞닥뜨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5분에 일본 도쿄에서 북동쪽으로 370㎞ 떨어진 도호쿠 지방의 태평양 앞바다에서 발생한 진도 9.0의 대지진과 그로 인한 초대형 쓰나미가 강타하면서 인근 해변의 후쿠시마 핵발전소를 덮친다. 그 결과 인류 역사상 2번째로 최고등급의 핵참사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 사고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리고 이 사고는 핵에너지가 역시 죽음의 독배임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3.jpg
▲ 국내핵발전소와 100km 내 방사능오염가능범위. 국내의 어느 발전소든 하나만 후쿠시마와 같은 사고가 일어난다면, 그 인명피해와 국토면적의 불능화는 상상을 초월한다. 국가붕괴의 가능성이나 회생 불가능성의 이야기는 구소련과 일본처럼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붉은 색 원점표시는 대규모 인구밀집지역인 광역시이며, 노란 원점은 중규모인구밀집지역이다. 최대 반경을 100km로 표시했으나, 실제적으로는 국내의 모든 원전의 영향권이 300km 이상까지 간다면 전국토가 영향권 내에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그래픽=박경훈>

당시 집권 민주당의 간 나오토 전 일본총리는 독일 ZDF와의 인터뷰에서 “이 원자력 패거리는 도쿄전력, 정부, 그리고 대학의 학자들로 이루어져왔습니다. 그들이 중요한 결정을 전부 내리는 것입니다. 전력회사 또는 원전 제조회사가 그리고 원자력전문가 그것에 관련된 관청, 언론도 전력회사가 많은 광고를 내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영향 아래 있었고, 문화활동과 스포츠 활동에도 자금을 대고 있었기 때문에 원자력 발전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 생겼습니다. 사고 자체를 인간이 일으켰다기보다는 사고가 일어났을 때 그것이 큰 사고가 되기 전에 끝낼 수 있도록 하는 대비가 없었다는 의미에서 이건 인재입니다.”라고 하면서 그들의 행태와 그로 인한 사회적 현상의 배경에 대해 설명한다. 일본의 핵마피아와 그에 연계된 사회적 공생구조가 결국 파국을 몰고 왔다는 일본 집권당 총리의 고백이었다. 결국 일본의 핵발전소 사고도 세월호처럼 관료마피아들에 의해 예정된 인재였던 것이다.

후쿠시마사태가 터지고 나자 우리 정부는 서둘러 우리 원전은 안전하다는 선전에 열을 올렸다. 사고 직후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국내원전은 후쿠시마 원전과 그 구조가 달라 방사능 누출에 대한 안전성이 훨씬 높다.”고 하면서 애써 후쿠시마의 불똥이 우리의 원전으로 옮겨 붙을 것을 우려하여, 시종일관 우리 원전의 안전성을 강조하는데 진력을 다했다. MB는 한 술 더 떠 그 와중에 원전비즈니스를 펼치다가 세계인들로부터 빈축을 샀다.

바로 코앞에서 체르노빌사고와 동급의 핵발전소 폭발사고가 일어난 상황에서 국민들의 안전이나, 이후 후폭풍처럼 번질 방사능 누출의 영향이나 대책 마련은 차치하고, 우리나라 원전의 안전성 홍보에 열을 올린 꼴이나 원전비즈니스니 뭐니하며 돌아다닌 MB의 행보는 누가 보아도 국가적 차원의 대응으로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것이었으며, 한마디로 한국 원전전마피아들의 속 보이는 밥그릇 챙기기쇼에서 열연을 벌인 것이다.

국민은 애초에 안중에 없던 것이다. MB정부의 이러한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안전불감증은 박근혜 정부 와서도 변함이 없다. 박근혜 정부 역시 원전 확대정책으로 가닥을 잡았다. 여전히 한국의 원전마피아가 좌지우지하는 ‘적폐’는 계속되는 상황에서 말이다. 원전마피아에 대한 특별한 수술이나 조처도 없었다. 마치 세월호가 터지기 전까지의 상황과 비슷하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지난 4월 16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고리 핵발전소 1호기의 재가동을 승인했다. 이 원전은 지난 2013년 4월, 176일간 정비를 받고 그 해 10월 5일 재가동했으나 50일 만에 다시 고장을 일으켜 멈추어 섰다. 그동안 사고‧고장이 확인된 것만 130회라고 반핵부산대책위는 주장하고 있다.

고리1호기는 1978년 운전을 시작한 국내 최고령 핵발전소로 이미 2007년 설계수명이 끝났다. 수명 30년을 꽉 채운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결정으로 가동수명이 10년 연장됐다. 바로 20년 선령의 여객선을 30년으로 완화했던 것과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이다. 2일 일어난 지하철추돌사고도 내구연한 철폐가 사고의 주된 원인이라고 알려졌다. ‘해피아’와 ‘철피아’가 부른 사고였다. 원전사고는 한번 발생하면 재앙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지금처럼 현장으로 달려갈 수도 없다.

사실, 이번 세월호 사고를 보면서 후쿠시마핵발전소 사고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우리보다 훨씬 선진적이라는 일본의 사고 후 대처상황을 보면서, 국제적 공분과 함께 인접국으로서의 위기감까지 겹쳐서 그들의 작태가 참 한심하다 했는데, 불현듯 “만약 우리나라의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난다면?”, 세월호 사고에 대처하는 이런 수준의 국가시스템과 재난 대비시스템이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참으로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원전마피아들은 관료마피아들 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마피아그룹으로 알려져 있다. 해피아라는 말은 이번 사고로 인한 신조어에 해당하지만, ‘원전마피아’는 그동안 ‘모피아’와 함께 꽤 유명세를 누려온 관료마피아다.

이들은 특히 원자력세력이라는 가장 폐쇄적인 그룹의 일원으로 역대 정부는 이들을 옹호해 왔으며, 그들의 논리를 무조건 수용해왔다. 정부와 한수원 등이 선전해댄 ‘대한민국 무사고 안전원전’의 실체도 ‘1978년 가동 이후 2013년 4월까지 무려 총 ‘672건’의 사고·고장으로 원전가동이 중단됐던 것‘이 밝혀지면서(국회 무소속 강동원 의원실) 허울 좋은 기만이었음이 드러난 지 오래다. 

박근혜대통령은 “마피아와의 전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인류의 재난사고 중 복구 불능의 재앙에 가까운 사고가 원전사고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우리는 그 가공할만한 실제가 어떠함을 이미 알고 있다. 박대통령의 관료마피아와의 싸움에서 해피아와의 싸움보다 더 깊게 더 근본적으로 우선적으로 싸워야 할 대상은 바로 원전마피아이며,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재가동승인을 취소하고, 당장 원전 가동을 멈추는 일이다.

마치며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고, 그럼에도 일어날 수밖에 없던 사고,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사고 수습의 난맥상, 세월호 침몰사고. 어떤 나라에선 화성에 이주하기 위한 우주선 개발에 들어선 시대, 그런 세상에서 우리는 너무나 후진적인 사고를 목도했다. 그것도 중계방송 보듯이 말이다.

그리고 치졸하고 지리멸렬하고 우왕좌왕하는 사고수습의 모습, 재난에 직면한 국가시스템의 실종, 재난 매뉴얼의 부실 그리고 부재, 지도자들의 책임회피와 면피용 사과, 이어지는 후안무치한 행보와 게걸스러운 철밥통들의 부패와 비리의 단면들, 생명을 담보로 한 비즈니스와 욕망의 카르텔들. 한마디로 뼈 속까지 병든 대한민국의 상처가 진도 앞바다에서 속살을 드러냈고, 이는 고스란히 전 세계에 중계방송 되었다.

여전히 세월호 침몰사고는 진행 중이고, 상황의 수습은 아직도 갈 길이 먼 듯하다. 침몰사고의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주류언론의 보도행태는 여전하며, 정부는 여전히 과거의 관성을 되풀이 하는 상황이고, 연일 생중계되던 현장보도도 점차 줄고 있으며, 잠시 주춤했던 선거운동도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으며, 결방되었던 개그프로그램도 정상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분향소를 찾는 전국의 조문객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아직도 차가운 바다 속에 아이들을 남겨 놓고 우리는 잠을 청한다. 매운 잠이다. 어쩌다 아이들의 동영상이라도 보면, 그들이 남긴 마지막 목소리를 듣다 보면 눈물이 앞을 가리고 가슴이 아리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이들을 물속에 남겨 두는 이 밤에 필자 역시 부끄럽기만 하다.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이 글 한 편이 그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싶지만, 그 억울하고 황망한 죽음이 정말 무의미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몇 자 적어야겠다는 마음에서 써내려 왔다. 지난 60여 년간 지속된 사고의 고리를 끊기 위해 정부는 혁명에 가까운 쇄신의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너무 오랫동안 고착되어 온 이 땅의 기득권 세력들, 특히 새누리당을 포함한 지배세력들은 사실 이런 관료마피아들과 오랫동안 공생해 온 관계다. 그러므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리라. 몇몇은 여전히 도마뱀 꼬리만 자르면 “이 일도 다 지나가리라.”하고 한껏 몸을 낮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박 대통령은 그들에게 다시는 어제와 같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세월호 사고는 이념의 문제도 종북의 문제도 아니다. 어린 생명을 지키지 못한 무능한 국가와 정부에 관한 이야기다. 썩은 시스템을 개혁해내지 못한, 오래된 미래를 오늘 비로소 만난 일이다.

“기다리래!”
세월호가 물속에 가라앉은 지난 16일 오전 10시 17분, 세월호에서 보낸 단원고 학생의 마지막 카카오톡 메시지다.

그들은 기다릴 것이다. 이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다워지기를, 다시는 이 나라의 이 엉망진창인 시스템으로 인해 자기들과 같은 어린 넋들의 희생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다시는 무책임한 지도자들이 없는 세상이 오기를. 다시는 생명을 경시하는 대한민국의 풍토가 사라지기를. 아이들은 구천에서도 이 대답을 기다릴 것이다.

이제 어른들이 대답할 차례다. 국가가 대답할 차례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