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의 긴장완화를 위해 서로 협조하기로 한 4월17일의 제네바 약속이 수포로 돌아가자 미국의 재무부, 상무부 및 국가안보위원회는 합동으로 헤지펀드, 뮤츄얼펀드 등 자산운영사들을 워싱턴으로 소집하여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制裁)가 임박했으니 각별히 조심할 것을 당부했었다. 그러나 막상 지난 28일 발표된 제재 내용을 보면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이다. 미국 내 자산동결 및 미국인과의 상거래가 금지되는 명단에 7명의 개인과 17개 기업을 올려 놓았는데 막상 러시아의 천연가스회사 '가즈프롬'과 석유회사 '로스네프트'는 누락되었다.

러시아 국가에 대한 제재라기보다 러시아 대통령 개인의 인맥에 대한 제재라는 지적이 적절해 보인다. 이 솜방망이 발표 직후 러시아 국채 가격은 오히려 상승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아시아 4개국 순방 때 기자들의 집요한 질문에 답하며 "무력 행사로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며 자기의 속마음을 드러냈다. 나아가 "나의 조심성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던 사람들"이라는 어법도 서슴지 않았다. 미국의 이런 자세에 대한 서방의 반응은 크게 갈린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와 미국 블룸버그 뉴스의 반응이 대표적으로 그렇다.

이코노미스트지의 비난은 극에 달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를 빼앗고 중국은 필리핀의 영해를 잠식하고 있으며 시리아는 자국민을 학살하고 있는데 군사 대국 미국은 '전쟁이 두려워' 슈퍼 파워가 되기를 포기했다. 부시 대통령 시절의 미국의 군사적 헤게모니 행사는 때로 폐단이 없지 않았지만 종합적으로는 슈퍼 파워에 걸맞은 것이었다. 너무 강한 나머지 실수도 하는 미국과 조심스럽지만 나약한 미국, 두 가지 중 어느 쪽이 더 위험한가를 따지자면 지금의 미국이 두 배는 더 위험하다"는 격앙된 사설을 5월 3일 실었다.

미국 정부의 솜방망이 제재

반면에 블룸버그 뉴스는 "우크라이나에 대해서 서방과 러시아가 원하는 것은 각각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접근한다. 나아가 일단 서방과 러시아가 상호 적대적이라는 가정을 하였을 때 우크라이나를 상대방 측에 빼앗겼을 때의 안보위기감이 서방과 러시아 중 어느 쪽에 더 클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러시아라고 답한다. 따라서 서방이 러시아를 코너로 몰고 가는 것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로부터 지키기 위해 필요하면 무력으로라도 러시아에 대적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갖고 있지 않는 한" 무책임한 것이라고 선을 긋는다.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해서도 러시아를 적대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서방과 가까워져야 하며 EU 및 NATO 회원국이 되는 것은 우크라이나 국익을 위해 최선책이 아니라고 처방한다.

바야흐로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 주말, 무장세력들이 장악 중인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을 탈환하기 위해 군 병력을 출동시키기에 이르렀다. 친러 반군뿐 아니라 민간인들의 희생도 늘어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비합법적인 임시정부가 러시아 계 주민을 무력으로 핍박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요구하고 나섰다. 푸틴은 유도 고단자답게 러시아의 개입의 구실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다가오는 5월 25일,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을 정식으로 뽑는 선거가 러시아의 방해로 좌절되면 제2단계의 경제제재 즉, 푸틴 개인이 아니라 러시아 산업전반을 겨냥한 제재에 돌입한다. 이 경우 경제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될 독일도 이 방침에 동의하고 나섰다.

실(失) 우크라이나 위기감 러시아가 더 커

작년 내내 월평균 19만 명 증가에 그치던 미국의 신규 고용이 4월 중에는 29만명을 기록했고 실업률도 6.7%에서 6,3%로 크게 개선되었다. 우크라이나 사태만 아니라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슈퍼 파워 미국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에 보유핵무기를 전면 폐기하고 비핵화를 실천했다. 그것은 우크라이나의 국경을 지켜주겠다는 주변 강대국들의 약속이 전제된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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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바마의 온건한 외교 원칙은 이라크 전의 트라우마가 남아 있는 미국민의 반전 정서와 맞아 떨어지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그 길이 옳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 내외의 또 다른 세력들의 논리적 압박 또한 만만치 않다.

글로벌경제가 국제정치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시점이다. 또한 북한의 핵 포기를 설득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사태이기도 하다.

* 이 글은 <내일신문> 5월 7일자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에 실린 내용입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제주의소리>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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