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범 칼럼] 비극을 대하는 기득권의 태도, '총체적 난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어느 전직 여당의원은 “좋은 공부의 기회”라며 “꼭 불행인 것만은 아니다”라고 막말을 해서 그렇지 않아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희생자 가족들의 마음에 염장을 질렀다.

또 슬픔에 절규하는 실종자 가족들을 미개인으로 불렀던 부잣집 도련님의 철없는 한 마디도 그에 못지않았지만, 버릇없는 막내둥이의 허물에 대해 “바른 말이긴 하지만 단지 시기가 안 좋았을 뿐”이라고 덮어놓고 감싸 안는 ‘재벌’ 플러스 ‘정치인’ 사모님의 모습은 “가진 자의 사회적 의무”라는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상실한 우리네 상류층의 도덕적 공황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에 비하면 그 국회의원의 망언은 그래도 양반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책임면피에만 올인하는 정부를 볼 때, 그의 말대로 이런 재난이 교훈이 되려면 우리가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참혹한 재난들을 반복해서 겪어야 한단 말인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한 달이다. 그동안 정부가 한 것이라곤 바다 속에서 일부 주검들을 건져 낸 게 전부다. 그러나 이번 사고로 적어도 우리들은 앞으로 재난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게 됐다.

각자 알아서 챙기라

이번 사고에서 재난대처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것은 선실에 갇힌 학생들이 유리창 너머로 아우성치는 속에서도 해경이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던 부분이었다. 경찰이나 119 등 관계기관에 요청해봤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따라서 앞으로 국민들은 사고가 일어나도 각자 알아서 챙기되, 그럼에도 꼭 신고를 하고 싶다면 미리 사고위치에 대한 경도와 위도를 정확하게 파악해 놓아야 한다.

특히 밀양 송전탑 할머니들이나 강정주민들 등 ‘눈엣 가시‘ 같은 국민들은 “북괴의 지령에 놀아나 정부전복 작전을 전개하는 좌파 사이버 테러리스트”로 오해 받을 수 있으니 앞으로는 정신 바짝 차리고 본인이든, 가족들이든 그 누구라도 아예 재난을 당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또 재난을 당하더라도 가급적이면 선거철에 가까울수록 유리하다는 것이 입증됐다. 재해현장에 방문하는 정치인들이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치인들이 구조를 위해 “산소통 매고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들은 이번 사고에서 실종자 가족들도 타지 못하는 구명정과 구조헬기를 축 내는 통에 구조작업마저 많은 지장을 초래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긍정적인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선거에 출마하는 정치인들에게 일급 인명구조사 자격증을 갖추도록 의무화하는 게 어떨까. 선거만 되면 입으로는 자신들의 목숨 열 개라도 내놓을 정치인들을 재난구조에 잘만 활용하면, 세계최고의 환상적인 구조 드림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엔 단 한 가지 단점이 있다. 정치인들이 최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간은 선거철에만 한한다는 점이다.

아쉬웠던 진도체육관

피해자 가족들의 임시거처로 마련된 진도 체육관에는 대통령을 비롯해 많은 장관들과 정치인들이 방문했다. 결과적으로 단지 ‘출첵’을 위한 방문에 불과했지만, 경호준비를 위해 몇 시간동안 구조 작업을 위한 준비를 일부 중단함으로써 비난을 받았다. 그들의 방문은 사고수습에 도움이 아니라 오히려 방해만 됐던 것이다.

특히 어느 장관은 체육관에서 눈치 없이 라면을 얻어먹다가 욕도 얻어먹었다. 구조활동엔 무능했던 그들이 재해부상자들을 얼음같이 찬 바닥에 눕혀둔 채 팔걸이용 의자에 팔자 좋게 앉아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을 입김을 후후 불어가며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무척이나 얄밉게만 느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라면 한가락조차 먹을 자격이 있을까라는 야속한 질문은 더 이상 하지 말기로 하자. 다만 장관들이 더 이상 눈치 보지 않고 라면을 맘 편하게 드실 수 있도록 국회는 청와대 대변인이 ‘오프 더 레코드’로 귀띔한 것처럼 “장관은 긴급식량으로 계란을 넣지 않은 컵라면을 먹을 수 있다”라는 규정을 법령으로 제정하기 바란다. 

실종자 가족들은 체육관에서 사고현황 방송을 볼 수 있는 대형 TV를 요구한 바 있다. 진도 체육관은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은 오직 구조를 위한 정부의 최선의 노력을 소망했을 뿐 자신들을 위한 것에는 오히려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허름한 진도 체육관의 빈약한 시설에 대해 가장 아쉬워했던 사람들은 사고현장에서 기념 촬영을 즐기는 유별난 취미를 갖고 있는 장관들이나 정치인들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앞으로 재난 대비를 위해서 전국의 체육관에 최고 설비를 갖춘 사진촬영실을 긴급히 보완할 것을 제안한다. 아울러 실종자들이 눈물 대신 화장품을 바르고 정치인들과 함께 행복한 모습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분장실도 함께 설치하면 좋을 것이다. 

진도체육관을 방문한 어느 지사님은 구조에 일초 일각을 다퉈야 하는 급박한 시각에 한가하게 허접한 시 몇 구절을 즉석에서 지어내 읊었다가 감동이 아니라 오히려 빈축을 샀다. 하지만 넋을 잃은 실종자가족들에게 분위기도 파악 못하고 “체육관에 대통령님이 방문하셨습니다”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던 눈치 없는 여당의 한 광역단체 후보보다는 차라리 나았다.

“그래, 우리보고 어쩌라고.”

고래도 춤추게 하는 칭찬

정부는 이번 참사에서 비록 구조 활동에서는 무능했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유족의 번거로움을 덜어드리기 위해 애를 많이 쓰신 부분도 없지 않았다.

대통령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계속해서 구조활동에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자 대통령에게 직접 항의하기 위해 실종자 가족들이 팽목항에서 청와대로 찾아가려고 했을 때였다. 비록 구조에는 무성의한 경찰이었지만 이 때 만큼은 어디서 나왔는지 몇 배가 넘는 인원들이 잽싸게 그들의 길을 막아섬으로써 “실종자들은 죽어가도 공권력은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실종자 가족들이 고단한 몸을 이끌고 장거리 여정을 나서야 하는 노고를 덜어드리기 위한 경찰의 각고의 노력에 머리가 저절로 숙연해지는 장면이었다.

대통령 조문 때도 마찬가지다. 그렇잖아도 슬픔에 겨운 유족들이 대통령을 맞아야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아침 일찍 대통령이 문상을 해서 유족들 대신 미리 섭외해 둔 일반 조문객을 포옹하고 위로한 것은 쇳덩이 보다 무거워진 유족들의 발품과 팔품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한 세심한 배려였다.

또 안전행정부가 작년 초 이름을 바꾸는데 만도 수십 억 원의 거금을 들이면서 봉급생활자들로 하여금 세금 폭탄을 걱정하게 만든 바 있었다. 하지만 재난대책 담당 최고부서인 안전행정부는 이번 재난사고를 TV 방송을 통해서 보고를 받았다는 얘기가 있으니, 앞으로는 그 부처에는 예산으로 TV 몇 대의 구입비용만 배정하면 충분하다는 점이 밝혀진 것도 무척 고무적인 일이었다.

가만히 있으라

이번 사고는 또 정부 기관들의 소속변경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계기도 됐다. 119 구조대는 실종자 구조 보다 윗사람들 의전에 더 신경을 썼다고 하니 이참에 아예 119 의전대로 이름을 바꾸고 청와대 부서로 예속시키면 국민들의 혼선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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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또 세월호가 선내방송을 통해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했는데 선실의 학생들만이 아니라 해경까지도 구조작업을 중단하고 가만히 있었으니, 본연의 임무보다 기업의 명령을 더 잘 따르는 해경을 ‘청해진 해경’으로 민영화 하면, 현 정부의 민영화 시책에서 유일한 민영화 성공사례로 남게 될 것이다.

이번 사고의 가장 큰 교훈은 서두에 꺼낸 재벌 정치인의 철딱서니 없는 도련님의 말처럼 “대통령만 신적인 존재가 돼서 국민의 모든 니즈를 충족시키길 기대한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끝으로 그 긴급한 와중에도 산등성이에 버려진 문짝을 북한무인기라며 호들갑을 떨었던 정부와 언론들의 유비무환의 우국충정에 깊은 존경의 염을 보낸다.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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