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려와 함께 비난을 드립니다.
정부에서는 현재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더라도 한국 영화의 역량을 감안하면, 우리 영화계가 충분히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스크린쿼터를 축소해서 대미 무역마찰을 줄이는 것이 오히려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리고 한국처럼 강고한 스크린쿼터를 유지하는 나라가 없다는 미국 측 주장을 일부 대변하고 있다.
반대로 시민단체와 영화계에서는 현재의 스크린쿼터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영화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스크린쿼터의 축소는 곧바로 영화산업의 몰락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거대한 자본공세로부터 국내 영화산업을 지키기 위해 문화 분야를 FTA 협상분야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쪽 주장에 모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우리 영화의 역량을 감안한다면 스크린쿼터 축소가 진행된다 하더라도 국내 규모가 큰 일부 영화 제작사들은 물론이고 그 제작사들과 생존을 같이하는 유명 영화인들의 생존에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국내 군소 영화 제작사들이나 무명 배우들, 그리고 박봉과 비정규직 신세를 면치 못하는 영화 제작진들에게는 치명적인 충격을 가져다 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영화계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반영하듯 안성기씨를 시작으로 스타급 영화인들이 바쁜 시간을 할애하며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하는 1인 시위 릴레이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시위가 그들이 애초에 의도한 대로 국민적으로 큰 관심을 이끌어 내고 있다.
인기 영화배우들이 추운 날 시위를 이어가는 것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이성과 감정이 분리되는 느낌을 경험하였고, 그들에게 응원과 비난을 동시에 쏟아내고 싶은 묘한 느낌을 체험하였다.
사회 일각에서는 스타급 배우들의 1인 시위에 대해 '쇼맨십'이나 '배부른 자의 넋두리' 정도로 치부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물론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절대 동의하지 않고, 오히려 인기 배우들의 노고에 찬사를 보낸다.
그들의 시위가 커질 대로 커져버린 그들이 밥그릇을 지키기 보다는 그들의 불우한 동료들의 생존을 지켜줄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 희망이 있기 때문이요, 한미 간 FTA 협정은 비단 영화계에만 해당된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스크린쿼터 유지를 주장하는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한미간 FTA 협상에서 산업기반이 약한 분야가 생존을 모색하는데 적잖이 영향을 주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이성이 그들에게 보내는 격려의 메시지는 여기서 끝난다.
어제(7일) 인기 배우 최민식씨는 공식적으로 정부에서 받은 훈장을 반납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한다. 어디서 많이 듣던 멘트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재작년 탄핵정국 때 가수 윤도현씨가 국회를 대상으로 한 번 써 먹은 멘트였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정부에게 배신감을 느꼈다'는 다소 비장한 말까지 남겼다. 그의 연기가 영화 밖에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고 그에게 숨어있었던 정치성까지 엿볼 수 있는 귀한 기회였다.
그런데 시장개방 정책에 대해 정부를 강하게 비난하는 최민식씨를 포함하는 영화인들은 자신들의 주장과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까?
최근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살피던 중 최근 개봉된 영화들 중 가장 명대사로 뽑히는 부분이 모 영화에서 남겼다는 '오렌지를 영어로 하면 델몬트'라는 대사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대사가 원인이 되었는지 결과였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안방에서 매일 '맛있는 오렌지 주스를 영어로 하면?' '델몬트'라는 멘트의 광고를 본다.
난 개인적으로 영화인들이 영화를 제작할 때 농민들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일말의 배려만 있더라도 우리 농촌의 생존을 위협하는 미국의 메이저 농산물 회사를 광고하는 대사가 영화의 명대사로 뽑히는 비극은 초래하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한다.
특히, 영화뿐만 아니라 광고계까지 인기를 휩쓸고 있는 최민식씨의 경우는 델몬트 주스를 광고하면서 아침에 델몬트 주스를 식탁에 올려놓지 않은 아내에게 '여자가 집에서 하는 일이 뭐냐?'고 핀잔을 주는 멘트까지 남긴 적이 있다. 그러면서도 문화산업 운운하며 '정부에 대해 배신감' 운운하는 그의 염치없음에 솔직히 짜증이 난다.
난 이 대목에서 최민식씨에게 솔직히 한 마디 남기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 농민들은 최민식씨가 정부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것 이상 수백 배의 배신감을 최민식씨를 포함한 영화인들에게 느껴왔다고….
여기까지가 내가 영화인들을 감정적으로 비난하는 이유다.
난 이번 스크린쿼터 축소문제 뿐만 아니라 한미간 FTA 자체가 국내 기반이 취약한 산업분야에 대해 치명적인 위해를 가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스크린쿼터 사수를 주장하는 영화인들의 목소리에 동의한다.
다만 그들의 노고가 그들 자신들만을 위한 것이 아닌 것처럼, 농업 분야의 생존권 문제도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고통 받고 상처받는 우리 농촌의 활력을 위해서도 그들의 갖고 있는 큰 힘을 보태고, 영화로나마 우리 농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가져다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장태욱 시민기자
taeuk3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