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한계시대, ‘지속 가능성의 혁명’ 시작해야
성장 한계시대, ‘지속 가능성의 혁명’ 시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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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훈의 제주담론] (28)
2014 지방선거, ‘지속 가능한 섬’으로의 미래비전의 전환을 위해④

성장은 가난을 구제하지 못한다

엄밀히 얘기해 제주도의 발전전략이 지난 40여 년간 ‘양적 성장’에 있었던 것은, 경제성장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 그 ‘성장의 과실’ 덕에 모든 도민이 혜택을 볼 것이라는 암묵적 전제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전제는 오래된 성장과 개발에 대한 지속적인 선전과 정교한 세뇌의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약속은 한 번도 지켜지지 않은 자본주의 유토피아 신화와 같은 것이다. 자본주의가 진전될수록 성장의 과실은 한 곳으로 집중되고, 부의 분배는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온 것이 2008년 세계금융위기에 이른 자본주의의 본모습이며, 한국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선진국들과 비교했을 때 더 야만적인 형태로 부의 집중과 불균형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요르겐 랜더스’는 성장과 가난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 바 있다.

가난을 끝장내기 위해서는 성장이 필요하다. 이 말은 틀림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현재 구조화된 경제 체계에서 성장이 가난을 끝내지 못한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현재의 성장 장식은 가난을 영속화하고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를 더 벌어지게 만든다. 1998년 전 세계 인구의 45% 이상이 하루 평균 2달러도 안 되는 소득으로 먹고살아야 했다. 지난 10년 동안 많은 나라에서 비약적인 소득 증가를 이루었던 1990년보다 가난한 사람이 더 많아졌다. 1930년 이래로 전 세계 산업 산출물이 14배 증가하면서 일부 사람들은 매우 부유해졌다. 하지만 그것으로 가난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따라서 성장의 열매가 정말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도록 기존 체계가 재구성되지 않는 한, 또다시 산업 산출물이 14배 증가한다고 하더라도 (지구의 한계가 그것을 허용한다면) 그것이 이 세상에서 가난을 없앨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더 나은 미래는 쉽게 오지 않는다》)

위의 인용문은 얼핏 늘 우리의 뇌리에 떠오르는 한 대목인 듯도 한 의문을 명쾌하게 해명한다. ‘성장의 열매가 정말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도록 기존 체계가 재구성되지 않는 한’ 성장이 가난을 없애지는 못한다는 이야기는 지극히 상식적이면서도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것임을 설파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분배의 시스템이 바로 공산주의니 사회주의니 사회민주주의니 하는 사회시스템을 가른다. 불행히도 인류에게는 이 분배의 시스템은 혁명이나 사회개조를 통한 다른 방법으로는 모색되기 힘들 듯하다. 붕괴가 모든 것을 삼키는 시대까지 인간들은 결코 분배의 사회학을 정립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성장이 반드시 가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성장의 과실은 결코 그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돌아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의 지표인 GDP는 오히려 많은 것은 은폐하거나 또는 경제상태의 진실을 가리는 차폐막 역할을 할 때가 더 많다. GDP는 결코 누가 돈을 버는 것인지를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정부와 경제인들, 소위 자본가들은 GDP가 오르면 제주도민 모두 잘 살 것인 양 늘 떠들어댄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은 GDP가 오르면 낙수효과로 인해 개인의 삶도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한국경제의 지난 몇 십 년간의 경험이나 제주경제의 현실은,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월가를 점령했던 뉴욕의 많은 시민들도 바로 그런 환상을 더 이상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대기업이나 재벌들의 외화벌이는 결국 그들만의 잔치일 뿐, 거기에서 흘러나온 낙수가 대다수 한국인의 삶과는 큰 괴리가 있는 것이다. 제주도의 경우도 최근 한국은행의 조사보고에 의하면 관광산업의 낙수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경제의 규모가 커졌다고 해서 결코 제주도민 모두에게 그 커진 만큼의 과실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대학나무’로 불렸던 감귤나무. 도민 전부는 아니더라도 자기 땅덩이가 있는 사람들은 묘목을 구해서 가꾸었고, 맺은 과실을 따서 내다 팔면 집안의 궤 속으로 돈이 들어왔다. 제주도민들에게 환금작물로서의 감귤은 경이로운 것이었다. 적어도 감귤산업은 전도적(물론 산남지역이 더 적합했지만)으로 돈이 되는 산업이었다.

굳이 대자본을 들이지 않아도 가내노동으로 충분히 감당할 만큼의 노동량이었고, 성수기가 되면 물 건너 간 감귤 한 알 한 알이 돈다발이 되어 돌아왔던 것이다. 아직까지 제주도는 이만큼이라도 생산과 분배가 서민사회에 골고루 뿌리내리는 산업을 발견하지 못했다. 제주를 먹여 살린다는 관광산업은 우선적으로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다.

하지만 제주도민경제의 규모로는 농원관광 정도를 벗어나는, 소위 고수익을 낳는 경쟁력 있고 규모 있는 관광산업은 손도 못 댈 일일 뿐이다. 결국은 도내자본으로 감당이 안 되는 것이기에 투자유치, 외자유치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결과는 뻔하다. 제주도의 천혜의 자원을 이용해 만들어진 돈은 대자본을 가진 자본가에게 돌아가고, 나머지는 소위 떡고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떡고물의 대표적인 것이 일자리다. 그것도 일용직이거나 계약직 정도의 노동시장이 대부분이다. 관광산업이 부흥할수록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 과실이 결코 안방의 장롱 속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감귤은 저물고 더 이상 해먹을 일이 없다 보니 대를 넘을 때쯤에는 다시 가난한 원주민으로 전락할 수밖에. 이런 경우를 앞에서 얘기했던 아랍의 석유 속담의 예에 빗대어 얘기해본다면 다음과 같이 되지 않을까? “할아버지는 땅이 없는 화전민이었다. 아버지는 일본에 밀항 가서 땅을 만들어왔다. 그 아들은 감귤과수원을 일구어 자식들을 키워냈다. 그의 아들은 그 과수원을 팔아 카센터를 만들었다. 그의 손자는 다시 땅 한 평 없는 도시빈민이 되었다.”라고 말이다.

여러 세대 동안 인구 증가와 자본 증가는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여겼다. 지구에 인구가 적고 자원이 풍부할 때는 당연히 그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만했다. 하지만 이제 생태계가 한계에 도달한 것이 더욱 분명해지면서 모든 성장을 나쁜 것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생겨나고 있다…. 성장에 대해서 무조건 찬성하거나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대신에 이런 물음이 필요하다. 어떤 성장인가? 누구를 위한 성장인가? 그 대가는 무엇인가? 누가 그 비용을 지불하는가? 여기서 진짜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러한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만족시키는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은 무엇인가? 얼마나 많이 만족하는가? 함께 나누어야 할 의무들은 무엇인가? (요르겐 랜더스의 《더 나은 미래는 쉽게 오지 않는다》)

제주도의 경제인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요르겐 랜더스가 지적하는 100만 인구와 GDP 증가가 제주도 경제의 발전을 가져오고, 제주도민들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기회만 있으면 부동의 신념처럼 또는 완전히 증명된 필연처럼 떠들어댄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위의 인용문은 제주경제의 진정한 발전은 뒤의 질문들에 숨어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이 이야기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현재 제주도 내에서도 벌써 몇 년 전부터 나온 이야기다. 누구를 위한 개발이냐? 누구를 위한 관광이냐? 하는 지적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지적에 정확히 답하지 못할 때 그것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진실을 은폐하는 것일 뿐이다. 어쩌면 현재 제주도에서 벌어지는 모든 개발예찬론과 투자유치론자들은 바로 이런 ‘은폐의 수사학’의 대가들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한 대로 아무리 인구가 증가하고 관광객이 늘어나고 경제규모가 커져도 도민사회에 정작 떨어지는 것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대신에 엄청난 교통난과 어메니티(amenity)가 사라지는 도시환경, 자연에 조응해 온 농촌경관의 파괴, 항상적인 경기침체와 일자리 부족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물론 가장 큰 피해자는 제주섬의 청정환경이다.

중요한 것은 보다 가난하게 살 준비를 해야 할 시대에 산다는 사실

녹색평론으로 명망 높은 김종철 선생은 올해 2월 초 제주에서 가진 강연에서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는 보다 가난하게 살 준비를 해야 한다.”라고. 또한 그는 “모든 한국사회의 지식지형은 철저하게 기존의 부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한국사회의 경제계는 물론 주류 지식생태계 역시 앞의 ‘데이비드 네메스’의 각성한 저개발의 철학이나 태도는 싹이 말랐다는 것이다. 물질적 풍요를 통한 행복 이외에는 다른 길을 모색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욕망의 지식지형에 대한 강도 높은 질책이다.

그의 일갈은 한계초과시대를 살기 위해선 물질적 욕망의 무한증식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는 더 이상 우리들에게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에 모든 자원은 순환되지 않는 한 소멸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 모든 비순환자원을 다 뽑아 쓴 우리 시대 이후 재생되지 않는 자원들은 더 이상 우리들에게 제공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일 우리가 일용할 모든 물적 자원들이 부족한 시대를 살게 될 것이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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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FOX채널 TV드라마(AMC 제작)인 좀비공포드라마 <워킹데드>. 2010년 10월 31일 방영 이후 현재까지 시즌 4가 방영되고 있다. 그들은 살아남기라도 했다.

‘워킹데드’라는 미국드라마가 있다. 이 드라마는 방영 이후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면서 현재까지 시즌 4가 나와 지속적으로 방영되고 있는 인기 드라마다. 좀비라는 흔한 소재의 드라마이나 이 드라마는 단순한 좀비 이야기가 아니라 시스템이 붕괴된 세상에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된 테마다.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시스템이 없는 사회에서 생존하는 처절한 생존담인 것이다. 이 드라마에 시시때때로 등장하여 시청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좀비군단은 사실 붕괴 이후 인간에게 닥치는 환경의 역습, 그 공포의 은유로도 읽힌다. 이 드라마에서 세상은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출구 없는” 모든 것이 달라진 그런 세상 말이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풍요의 지구에 대한 기억만 간직한, 그 폐허의 풍경이 앞으로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미래다. 그 미래는 아무리 지금 허리를 졸라매고 지구온난화를 멈춘다 해도 적어도 금세기 말까지는 지속적으로 악화될 것이라는 과학적 보고들이 잇따르고 있다. ‘워킹데드’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블랙칵테일의 파티장에서 욕망의 무한증식에 환호하고 있는 셈이다.

제주섬의 가장 큰 공유자원은 청정자연과 섬의 어메니티다

그러면 워킹데드 시대의 도래를 늦추거나 막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크게 보면 우리는 지금 개럿 하딘(Hardin)이 얘기했던 ‘공유지의 비극’의 시대를 살고 있다. 지난 40여 년간 경제성장을 위한 개발의 방식은 공유지라는 측면에서 보면, 또 다른 살결을 보여준다.

80년대 이후 이 섬에 불어 닥친 개발바람은 우선적으로 섬의 공유지를 공략했다. 대표적인 것이 탑동개발로 상징되는 ‘공유수면’의 매립을 통한 개발이었다. 또한 중산간 ‘공동목장’ 지역이었다. 자본가들과 지방행정이 성장과 개발이란 명분으로 결합했다. 각종 개발투쟁들이 공유지를 사유화시키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기본적으로 사업추진 과정에서 자본가들은 행정과 결합해, 행정편의주의와 밀실주의로 밀어붙였다. 지역주민들의 완전한 이해 노력 없이 이루어진 경우가 다반사라 당연히 해당지역의 마을들과 크고 작은 갈등요인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크고 작은 개발반대투쟁이 줄을 이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좀 더 획기적인 형태의 공유지 침탈이 이루어진다. 바로 국제자유도시 건설의 미명하에 이루어진, JDC를 중심으로 한 외지자본의 유치를 통한 외생적 성장주의 개발의 추진이다. 이전 단계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외지의 대자본과 지방행정, 그리고 국가가 결합하는 상태로 진화했다. 이들의 개발명분은 투자유치를 통한 지역개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다.

JDC는 국토교통부 산하 국영공기업으로 설치되었다. 그런 까닭에 지역에 기반을 둔 경제성장과 개발의 추구보다, 대한민국 정부차원의 테스트베드 실행기구로 작동한다. 그동안 영리병원 논란, 카지노 도입, 쇼핑아울렛 등 지역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했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지역과는 별 상관없는, 오히려 대한민국의 공공제도를 무력화하기 위한 실험들이 시도되면서 그 갈등은 지역사회에서 벌어지게 한다.

또한 외자 유치를 통한 지역개발 경제활성화 역시 처음에는 큰 성과 없이 시간을 날렸으나, 중국자본이 눈독을 들이면서(다양한 배경이 존재한다.) 중국인 투기열풍이라 할 정도의 부동산 투자가 시작되어 현재에 이른다. 그리고 이번에 타격대상이 되는 공유지는 곶자왈 등 한라산의 허파와 같은 지역들이다. 또한 ‘경관’이라는 공유지 역시 심대한 타격을 입기 시작한다. 즉, 고도완화 등으로 표현되는 경관공유지의 침탈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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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지의 침탈. 제주시 탑동. 천혜의 워터프론트였던 탑동먹돌바당, 강력했던 개발반대투쟁, 공유수면을 매운 탑동공사 현장, 호텔과 이마트가 들어선 매립지.

1968년 생태학자 ‘개럿 하딘’이 주창한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이란 이론은 다음과 같다. “100마리의 양을 기를 수 있는 제한된 공유지에서, 100마리 이상의 양을 기르면 결국 목초지는 과도하게 풀이 뜯겨 재생산되지 못하고 점차로 황폐해져 간다는 것이다. 양치기들은 너도 나도 공유지를 이용할 것이고, 자신의 부담이 들지 않는 공짜이기 때문에, 공유지에 양을 계속 풀어 놓기만 하지 줄이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풀이 없어진 초지에는 양을 기를 수 없어 축산업자들 전체가 손해를 보게 된다. 결국 개인들의 이익 추구에 의해 전체의 이익이 파괴되어 공멸을 자초한다는 개념이다.”(위키백과 ‘공유지의 비극’) 이 이론은 공유지는 그저 공짜라고 믿는 개인들의 사적 욕망에서 출발해 결국 무분별한 남획과 남벌로 황폐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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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공유지의 침탈. 현재 추진 중인 천혜의 자연경관 파괴의 우려가 높은 송악산 뉴오션타운 조감도 / 섬과 해안경관의 파괴를 불러올 라온그룹의 비양도 해상케이블 조감도 / 초고층(50층) 빌딩으로 설계되었던 버자야 그룹의 중문예래동 1차 조감도 / 신제주 최고의 도심혼잡지역 안에 지어진 연동 노형로의 롯데시티호텔.

현재까지 관광개발을 둘러싼 외지자본(국내, 국외 포함)에 의해 이루어진 모든 개발은 공유지의 비극의 한 측면을 내포한다. 최근 중국인 부동산 투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부동산 열풍에 의해 공유지(공유자원)를 점유하는 일은 더욱 빈번해지고 있으며, 특히 투자유치에 혈안이 된 행정에 의해 공유자원들의 피해는 더욱 커져 가고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는 세계적 공유물인 물과 공기, 바람, 태양 등과 같은 자연환경의 구성물들을 자본축적 과정에 새롭게 편입시킴으로써, 이들을 대규모로 사적 소유로 전환시키고, 시장가격으로 판매되고 수급이 조정되도록 상품화하고, 나아가 질적 효율성을 증대시킨다는 명분으로 이들을 가공·조작하여 산업화하고 기술화하고자 한다. 심지어 탄소배출권과 같이 자연상태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환경오염 권리에 의제적 가치를 부여하여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최병두, <신자유주의적 에너지정책과 ‘녹색성장’의 한계>)

하지만, 이런 공유지들은 사실 제주를 다른 지역과 구분 짓게 하는 제주만의 탁월한 매력도를 지니게 만드는 구성요소들이었다. ‘천혜의 자연환경’이라고 부를 때, 이 ‘천혜’, 즉 하늘이 내린 것들이 바로 이러한 공유자원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단히 이런 천혜의 것들을 부수어나가는 개발정책은 결국, 제주섬의 가장 중요한 매력도를 훼손하는 일이며, 제주도가 관광지로서의 탁월한 지위를 가지게 하는 요소들을 파괴하는 일이다. 결국 목초지의 풀들은 사라지고 양들 역시 더 이상 뜯을 풀이 없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스스로를 지속 불가능하게 하는 이 바보 같은 짓을 여전히 우리는 허용하고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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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화된 경관. 지니어스 로사이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글라스하우스가 들어선 섭지코지 부근. 경관의 사유화와 바보 같은 지방행정의 경관계획 수준을 잘 나타내는 사례다. 안도 타다오는 필자도 매우 좋아하는 건축가다. 그러나 그의 건축적 해석과 미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이 건물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결국 아무리 인간의 뛰어난 예술적 감각도 결국 자본의 폭력적 수단이 될 수도 있구나 하는 문제다. 가운데 좌우의 사진은 지니어스 로사이 건축 전과 건축 후의 모습이다. 세계유산에 빛나는 성산포와 신양리 섭지코지의 푸른 잔디 위로 펼쳐지는 비경을 이제는 볼 수 없다. 그리고 타다오의 탁월한 건축적 안목에 의해 성산포 비경의 사유화는 완성된다.

마지막 남은 마을 땅까지 팔아먹자고?

제주도 토지의 잠식률은 이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외지인의 토지소유문제는 지역개발 갈등의 주요한 이슈이기도 했고, 당시만 해도 도민들의 외지인의 토지잠식에 대한 경각심과 위기의식이 매우 컸지만, 요즘은 토지잠식의 문제의식은 완전히 망각되고, 그 모든 것들은 소위 투자유치라는 미명하에 미화되고 정당화된다.

심지어 최근에는 제주특별자치도가 나서서 목장·임야·과수원 등 마을 소유의 토지를 활용한 개발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29개 마을의 투자유치단을 구성하고, <마을 보유토지 투자안내서>를 발간, 투자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들 ‘마을투자유치단’이 보유한 토지는 제주시 16개 마을 1천34만 5천㎡, 서귀포시 13개 마을 863만 3천㎡ 등 모두 2천167만 8천㎡다. 마을별로 평균 74만여㎡나 된다. 이제는 아예 대놓고 내 집 안방에 있는 마을 단위 공공용지마저 내다 팔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우리 마을이 잘 살게 될 것이라는 요술램프 같은 투자유치의 만병통치약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가 나서서 아예 제주도의 쓸 만한 땅은 거덜 내기로 작정한 것이다.

하지만, 투자유치라는 이 요술램프를 해부해보면 본질은 간단하다. 쓸 만한 땅은 있는데, 이를 개발할 자본이 내게는 없다. 해서 땅을 내어주고 외부자본을 끌어들여 내 땅 활용하고 이를 통해 경제적 부를 이루겠다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 간단한 논리가 제대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유지되어야 한다.

즉, 땅에 때한 지속적인 소유권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 개발의 방향과 권한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 개발을 통해서 발생하는 이윤이 적정하게 내게 떨어져야 한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 사업들 대부분이 땅의 매각을 통해 시작된다는 점에서 땅의 소유권은 처음부터 증발한다는 점, 그러므로 개발의 방향과 사업에 대한 권한 역시 외지자본이 소유한다는 점, 개발을 통한 모든 혜택은 자본의 주인인 외지자본가에게 돌아간다는 점 등이다. 그러므로 그 땅을 통해서 벌어들이는 수익의 대부분은 결국 외지자본가의 것이다.

문제는 땅을 매각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개발로 인해 그동안 없었던 문제들이 추가로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즉, 경관, 교통, 환경, 쓰레기, 물, 에너지 등의 제반 환경부담이 발생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경우 이에 대한 부담금은 당연히 원인제공자에게 부과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투자유치라는 명목으로 시작되는 사업의 경우, 소위 투자유치의 매력도를 높이고 투자자를 끌어당기기 위해, 특혜가 동원된다. 최근의 JDC가 유치한 외지자본들은 이러한 모든 부담에서 면제를 받는다. 그 결과 투자유치를 통해 도민사회에 공적으로 들어와야 하는 수익의 상당 부분이 이탈하고 만다.

결국, 남는 것은 달랑 일자린데, 제주의 토지를 이용한 외지자본에 의한 사업장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제조업은 전무하고 대부분 관광숙박업, 골프장, 리조트 등이기 때문에 그나마 이 일자리들에서 평생직장이 보장되거나 관리직급 등의 고급 일자리는 외지자본가의 측근들 또는 본사에서 차지하고 만다.

남는 일자리는 언제든 구조조정 가능한(즉, 언제든 잘릴 수 있는) 비정규직과 일용직이 대부분이다. 적어도 몇 세대에 걸쳐 자기 땅에서 부족하지만 주체적으로 경제활동을 해 온 마을의 주민들은 이제 외지자본이 경영하는 사업체의 말단 일자리 하나에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를 제주도청의 공무원들과 JDC와 정부의 개발부처의 공무원들 그리고 그들에게 우호적인 소위 전문가라 불리는 학자들은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를 위한 외자유치라 부른다.

엄밀하게 말하면 투자유치가 제주경제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라는 말은 사기에 가깝다. 본질을 은폐하는 수사학의 농간이다. ‘투자유치’는 정확히 ‘토지매각개발’이며, ‘외자특혜개발’이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전근대시대 이후부터 유지되어 온 토지점유에 대한 신자유주의 시대의 구조조정이며, 오래된 경관문화지구인 농촌의 해체와 천혜의 자연자원과 공유자원에 대한 자본의 약탈이며, 제주섬 어메니티의 남획이다. 이는 제주섬을 철저하게 자본주의 시스템에 포획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그 결과는 제주섬 서민들의 원주민화이며, 제주섬 경제활동의 중심을 외지대자본에 귀속 고착시키는 시스템의 구축으로 나타날 것이다.

도민들의 위기의식이 커져가면서 사회적 파장이 커져가고 제주특별자치도마저 한 발 물러서면서 투자자이민제도를 손 보려고 하자, 본인이 직접 한중민간경제협의회 제주지회장이기도 한 제주상공회의소(회장 현승탁)가 나서서 맞불을 놓았다. 제주상의와 한중민간경제협의회 제주지회 공동(?)으로 개최한 중국기업인 초청 간담회에서 중국인 투자자들은 '갈지자' 제주 투자·이민 정책에 대해, “투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안정성과 지속성인데 현재 제주 상황은 오히려 투자자들을 내쫓는 악수(惡手)를 두고 있는 셈”이라고 볼맨 소리들을 쏟아 냈다.

이미 캐나다 등은 이러한 제도의 시행과정에서 문제가 보이자 즉각적으로 위기 대응에 나섰다. 캐나다의 경우는 1989년부터 운영해 온 투자자이민제도를 올해 2월 11일(현지 시간) 전격적으로 폐지했다. 그동안 중국 부자들의 투자이민 신청 폭증으로 심각한 비자 심사 적체 현상을 겪어온 캐나다가 결국 투자비자 제도를 폐지한 것이다.

캐나다는 그동안 160만 캐나다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5년간 캐나다에 80만 캐나다달러를 무이자 보증대출 방식으로 투자하는 사람에게 투자 비자를 발급해왔으며 지금까지 이 제도를 이용해 18만5000여명이 캐나다로 이주했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 부자들이 대거 투자이민 신청에 나서면서 심각한 비자 심사 적체 현상이 빚어졌다. 투자비자 심사를 기다리던 5만9000여 신청자 중 70%인 4만6000여명이 중국인이었다. 이 때문에 투자비자 신청 접수를 중단했다가 결국 제도 자체를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강철준 한국금융연수원교수는 제민일보 칼럼을 통해 “현행제도는 부동산투기를 부추길 수 있으며 콘도 등 영주권 부여대상이 되는 특정 부동산개발만을 조장하는 허점이 있다. 홍콩도 부동산투기붐이 일자 지난 2010년에 부동산투자만을 하는 경우는 영주권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바람직한 것은 제주지역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를 만들어서 이 펀드에 투자하는 경우에 영주권을 주도록 하는 것이다. 제주기업투자가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결점은 일정부분 국채나 제주지방채를 편입하고 투자의무기간을 현행 5년보다 2~3년으로 짧게 하는 것으로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제도운영을 제주도에서 직접 하지 말고 영주권 전문 민간 기업을 육성해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12년 11월 호주 정부는 500만호주달러(약 57억원)를 투자하면 호주 영주권을 부여하는 `주요 투자자 비자` 제도를 실시하기로 했다. 호주 비자를 발급받으려면 500만 호주 달러를 호주 정부나 지방채권, 호주 민간기업이나 호주증권투자위원회가 4년간 감독한 호주 자산투자 펀드에 투자하면 된다.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최소 160일을 호주에서 거주해야 한다. 호주 정부의 이 같은 영주권 프로그램은 주로 중국인을 겨냥한 것이다. 최근 들어 해외 부동산에 투자하는 중국인이 급증하고 있고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등으로 투자이민을 선택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월스트리트저널)

‘지속 가능성 혁명’의 시대를 준비하는 제주비전의 정립을 위해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제주도의 국제자유도시라는 비전은 정확히 생태계의 한계초과 위에서 진행되는 지속 불가능한 프로젝트다. 여전히 판글로스들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아니, 주류 학자나 정책가들은 어리석은 생각이라 할 것이다. 원자력이 어쩌고 타르샌드가 새로운 대안이라는 둥, 북극해가 열리는 것이 새로운 시장의 개화라고 하는 둥, 거개의 경제학자나 이론가들은 대부분 판글로스들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판글로스들의 천국이다. 그러나 이러한 판글로스들 중에서도 치명적인 고백들이 나오고 있다.

2013년 11월 9일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연례회의는 자본주의 미래에 대한 강력한 파장을 일으켰다. “자본주의가 더 이상 개선될 수 없고, 자본주의 자체가 장기 침체의 함정에 빠졌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라는, 행사에 참석한 한 은행가의 질문에, ‘로렌스 서머스(Lawrence Henry Summers)’가 “우리는 성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다 시도해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시스템이 예전처럼 다시 작동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한 대답 때문이었다. 이 한 사람의 대답이 큰 충격을 몰고 온 것은 다름 아닌 그가 자본주의 시스템을 가장 열렬히 옹호한 사람 중의 한 명으로 1999~2001년 클린턴 2기 행정부의 재정부 장관이었고, 버락 오바마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으로 임명하여 2010년까지 위원장직을 맡은 인물이며, 하버드대 총장을 지낸 로렌스 서머스였기 때문이다. 그는 장관 재직 시 은행규제 완화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이름을 날린 열렬한 신자유주의자이기 때문이다.(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사정이 이러한데도 현재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나서서 “규제는 원수”라는 섬뜩한 표현까지 써가면서 신자유주의의 막장으로 달려가는 모양새다. 물론, 좋은 규제, 나쁜 구제에 대해 명목상 언급은 했지만, 사실 이런 규제 철폐가 궁극적으로는 KTX흑자노선 민영화로 상징되는 MB정부에 뒤이은 대대적인 민영화의 바람과 대기업과 재벌을 위한 규제 철폐로 귀착될 것임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세계의 시계는 자정에 이르렀는데, 여전히 정오의 착각에 빠진 것이다. 글로칼리즘의 시대에 전혀 감이 없는 시간을 휘적대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의 사정 역시 마찬가지다. 규제를 완화한다는 것은, 기실 자본의 유동성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 공공영역의 규제들은 시장의 독점을 막고, 공공성을 보존하기 위한 장치들이 대부분인데, 이러한 규제 장치들을 해체한다는 것은, 결국 1%를 위한 정책일 뿐인 것이다.

제주도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한 치도 비켜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앞장서서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라 할까? 최근 투자진흥지구지정제도는 대표적인 공공성의 해체를 위한 제도인 것이다. 투자유치라는 명목하에 제주섬의 공공자원을 도민 저항 없이 공략하는 철저한 자본의 자원 장악을 위한 제도인 것이다.

이 섬이 다음 세기에도 살아남을 지속 가능한 문명의 섬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한계 초과된 상황의 상쇄, 즉 섬 환경용량의 적정수준을 회복하는 것이다. 또한 경제성장과 발전의 지수를 경제성장률에서만 측정하고 지표로 활용할 것이 아니라 한계초과 내의 적정성 확보와 행복지수를 중시하는 것으로 방향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새로운 평가지표들을 개발하고 그에 맞추어 장단기 발전전략 및 정책들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경제적 목표 역시 무한증식의 양적 확대와 증식이 아니라 섬 주민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는가의 계량적 지표를 개발하고 이를 측정의 단위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이제 제주는 ‘공유지의 비극’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경제에 있어서 감귤나무 경제를 회복시키고, 전 지구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한계초과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제반 조치들을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 단기적 성과에 조급한 나머지 장기적인 위기의 시대를 준비하는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구조의 재배치, 환경정책의 포괄적인 재검토, 섬에 닥칠 위기에 대한 과학적 정보의 확보와 예측치 확보, 또한 그에 따른 사회적 총량으로서의 위험부담률과 위험부담금의 산출 등이 현실적으로 파악되어 있어야 한다. 누가 이 일을 할 것인가? 바로 이번 도지사 선거에서 우리는 이 일을 할 만한 후보자를 선출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번 선거는 단순히 세대교체나 정당이 바뀌는 정권교체가 아니라 위기의 시대를 살기 위한 전환의 선거라고 불러야 옳다. 적어도 새로 선출되는 도정에서 앞에 열거한 일들이 준비되어야 한다. 수련이 연못을 덮을 시간은 하루밖에 안 남았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사회로 가는 길목, 준비해야 할 일들
 
안정되고 지속 가능한 경제는 자급자족경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세계화된 세상에서 어떤 한 지역만의 자급자족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자급자족경제는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금세기 내에 만나야 하는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과학기술의 또 다른 요술램프가 현재의 세계무역망과 시스템을 유지시켜 주리라 믿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나, 이 시대의 마지막 카산드라들은 그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책임한 생각인지를 알라고 경고한다.

기원전 6000년에 살았던 인류 최초의 농부들이 지금의 아이오와 주에 펼쳐진 옥수수와 콩밭을 예견하거나, 서기 1800년의 영국 광부가 자동화된 도요타 조립 공장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오늘날 누군가가 지속 가능성 혁명으로 발전된 세계를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가올 지속 가능성 혁명도 앞서 일어난 위대한 다른 혁명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표면과 인간 정체성의 기반, 제도, 문화를 바꿀 것이다. 그것도 앞선 혁명들처럼 그 위업을 완성하려면 여러 세기가 걸릴 것이다. 혁명은 이미 진행 중에 있다. 무엇보다도 오직 옛 정보에만 귀를 기울이도록 구조화된 시스템에서 새로운 정보를 들이미는 일은 어렵다. (요르겐 랜더스)

그렇다면 어떻게 지속 가능한 사회의 전환을 이룰 것인가? 지속 가능성은 어떻게 발견해낼 것인가? 요르겐 랜더스의 제안대로 우선 지속 불가능성을 줄여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즉, 지속 불가능한 것들을 하나하나 없애 나간다면 결국 그 과정과 그 시간들이 지속 가능한 사회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들에는 우선 성장주의 패러다임을 지속 가능주의라는 큰 틀에서 바꾸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은 무엇보다 의식의 변화를 요구하는 가장 거시적인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러한 성장주의에 기반해 있는 물량주의의 인식과 정책을 적정주의로 바꾸는 일이 필요하다. 이는 상호 결합되어 있는 일이기도 하다.

또한 산업별로 본다면 현재의 1000만 관광객 유치에서 다시 2018년 2000만으로의 도약이 아니라, 제주의 환경총량에 맞춘 적정관광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1997년 제주도가 펴낸 《환경지표설정》 보고서에 의하면 제주섬의 수용 가능한 환경총량에 가장 적정한 관광객 수는 2020년에 500만 명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현재 그보다 6년 앞당겨 1000만 명의 관광객이 오가는 시대를 맞았다. 그만큼 현재 우리의 다량관광은 환경을 한계초과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는 지속 불가능한 관광산업인 것이다.

김의근 제주국제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이제 관광객 수를 양적으로 늘리는 일보다 질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절실한 시기가 되었다고 한다. 즉, 제주관광이 고작 2박 3일인데 반하여 하와이의 경우 평균 7일간 체류하며, 발리의 경우는 평균 2주간 체류한다고 한다. 전체 방문객 수를 늘리는 일보다는 오히려 체류일 수를 늘림으로써 경제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이제 제주관광의 경제적 혜택이 지역주민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보완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개별관광객을 위한 수용태세를 갖추는 일이 시급하다면서 지역밀착형 관광산업으로 변화․발전시킬 것을 주문하고 있다. 또한 양적인 관광성장을 위해서는 제주도가 감당할 수 있는 적정한 관광수용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이드라인을 각 부문별로 선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환경적, 사회문화적, 시설적 적정수용력을 모두 고려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향후 지속 가능한 제주관광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 지속 가능한 미래자원의 보고, 제주섬

석유종말시대에도 지속 가능한 사회가 되기 위한 불변의 기초산업(자원)이 있다. 이것은 마치 과거 농본사회에서 자연농업이 기초산업이었던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식량, 에너지, 물 이 세 가지다. 이는 인간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을 위한 기초적인 토대다. 제주도는 토질이 부박한 탓에 예로부터 항상 ‘척박한’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도작문화(稻作文化)에 관한 이야기일 때만 타당한 이야기다. 21세기, 부박했던 변방의 절도(絶島) 제주는, 이제 미래의 지속 가능한 삶을 가능케 하는 ‘자원부도(資源富島)’다. 그것은 앞에 열거한 세 가지 기초자원, 즉 물, 식량, 에너지의 원천자원이 지속 가능하게 부존하기 때문이다.


물은 지구 생물 존재의 제1의 필수불가결한 자원으로 앞으로도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특히 세계는 이미 물 부족의 시대에 진입했으며, 앞으로도 항상적인 물 부족의 시대를 살 것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 물 부족 상황은 점차 심각해져 국가 간의 전쟁까지 일어나는 물자원의 위기가 도래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속 가능 시대의 블루골드인 물자원이야말로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자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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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굿네이버스 식수지원 캠페인 화면 캡처>

천연 암반의 필터링을 거치는 거대한 물주머니를 차고앉은 한라산과 그 주변으로 이루어진 섬 땅은 양질의 바람과 다양한 생물종으로 이루어진 식물자원을 가진 자원의 보고다. 무엇보다 삼다수로 상징되는 제주의 물자원은 제주섬을 신산유국으로 만들어 줄 정도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생태자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제주도의 물 자원정책은 여전히 약탈적이다. 여전히 물자원의 이용에 있어서도 공유지의 비극을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때만 되면 어린애 사탕 달라는 듯이 졸라대는 한진의 지하수 증산 요구는 공유자원의 사적 점유의 단초로 제9대 도의회에서 가장 극심한 공세에 시달렸다. 도의장이 버텨준 탓에 이를 막아냈지만, 의원들의 동요는 매우 컸다. 10대 의회에서는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또한 제주개발공사의 증산 역시, 현재 지하수의 정확한 수량에 대한, 또는 지하수 작동원리에 대한 지식정보가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직도 얼마든지 증산해도 문제없다는 식의 논리로 증산을 감행한 것은 명분도 과학성도 결여한 것이었다.

현재 제주도에 들어서는 모든 관광시설에 대한 특혜를 없애고 물값을 산업용․가정용 구분 없이 현실화해야 한다. 그리하여 지하수 사용을 최대한 억제해야 할 것이다. 먹는 물 취수량 역시 적정 취수량으로 제한해야 한다. 갈수록 갈수기는 길어질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앞에서도 살폈듯이 대규모 물사용량을 필요로 하는 대형숙박시설이나 리조트 등의 확대를 억제해야 한다. 특히 골프장들인 경우, 100%지표수 활용을 의무화해야 한다. 그리고 삼다수의 집수장지역인 중산간지역이나 곶자왈지역에 대한 전면적인 토지이용을 불허해야 한다. 오히려 부도난 골프장 등은 도에서 재구입해서 원래의 초지대로 복원시키는 일이 앞으로는 필요할 것이다.

농업-식량
신석기시대의 농업혁명은 인류가 지구상의 수적 다수를 점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혁명이었으며, 지속적으로 인구를 증가시킬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정착, 문명, 도시가 시작되었다. 농업혁명 이래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식량이다. 그것도 경작을 통해 얻어 낸 재배작물로 이루어진 대량 식량의 존재다.

이는 미래에도 인류에게 물과 함께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인류가 종의 번식과 유지를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자원이 곧 식량인 것이다. 최근 금융자본주의의 단계에 이르러 인간들은 또는 많은 정책담당자들은 착각한다. 돈만 있으면 식량은 언제나 구입 가능한 상품으로. 그러나 2008년의 세계 식량 파동은 돈이 먹을 수 없는 것임을 입증한 최초의 사례를 만들었다.

농업은 전근대식 산업이 아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인류의 생존에 꼭 필요한 기초산업이다. 이 기초산업 위에 다른 산업이 지금 전 세계의 선진국들과 강대국들은 하나같이 농업대국이며 식량강국들이다. 세계의 곡물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이들도 이들 국가의 다국적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의 곡물시장은 석유문명의 총화다. 국제유가가 요동칠 때마다 뒤이어 급락을 오가는 것이 곡물가격인 것은 그 이유다. 세계의 어디에서 생산되든 생산과 유통에는 막대한 석유가 소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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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하시기와 기온, 바람의 영향을 조절할 수 있는 가온시설 안에서 키우는 하우스감귤. 하지만 이러한 생육조건을 유지하기 위해선 석유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석유농법이 활용된다.

제주의 감귤 역시 일찍부터 석유로 빚은 것이었다. 특히 비닐하우스 가온농법은 모두 석유농업이다. 또한 비료를 사용하는 화학농업 역시 석유농업이다. 종자 생산부터 수확에 이르기까지 농사의 전 과정을 석유에 의존하는 현재의 농경법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러한 농업은 석유가 종말을 맞으면 그 상태로 붕괴하고 만다.

그러므로 석유농업에서 자연에너지농업으로 신속한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이와 함께 화학농업 역시 생태농업, 친환경농업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이러한 전환은 개별농가에만 맡겨 둬서는 결코 이루어지지 못한다. 공공적 차원에서 이행전략을 마련하고 여기에 다양한 지원을 통해 전환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이제는 부족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 미래에는 더 이상 24절기에 맞추어 열심히 검질 매고 농약 잘 뿌려서 소출을 기대하는 그런 농업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지표의 상태는 이제 방사능과 폭염, 슈퍼태풍, 엘니뇨 등으로 인해 환경변수가 예측 불가능한 지경이 되고 말았다. 농업은 이제 이런 예측 불가능한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좀 더 기술적이어야 하고, 좀 더 과학적이야 한다.

과거의 전통농법은 모두 4000년 가까이 축적되어 온 경험적 지식에 기반한 기술들이다. 신석기시대 이후, 즉 1만 2천년 동안 변함없이 4계절의 운행을 고착시켜온 대지와 기후환경의 소산이다. 하지만, 이제 토지들은 점점 낯설어지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따라 급속한 기후변화가 일어나면서 대지의 속성이 바뀌고 있으며, 농사의 기법을 복잡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식물개화시기부터 연간 강우량 등 기존의 각 지역의 토착적 농업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세상으로 전이해 가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대량생산을 위한 과학의 적용이 아니라, 적정생산을 위한 과학의 적용이 필요한 시대가 되고 있으며, 과학기술을 활용한 기후변화 적응 농경법과 시스템을 개발해야 할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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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공장이라 불리는 빌딩농업의 모습. 계절, 날씨, 지역, 토질에 구애받지 않고 친환경 채소류를 최적조건으로 재배해 소비자에게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 농업으로, 이른바 수직공간 활용기술인 다단적층 베드시스템과 LED 광원을 이용해 채소를 재배하는 ‘빌딩형 식물공장’이 개발돼 극한상황에서의 농업생산이 가능한 기술집약형 차세대 농업방식이다. 이런 농업형태가 바라는 바는 아니지만, 당장 이산화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인다 해도 향후 100년간 진행될 기후변화는 어쩌면 이런 식의 농업방식을 일반화시킬지도 모른다.

에너지
19세기 산업혁명은 석탄을 이용해 동력을 얻게 만들었다. 그 이후 전기가 발명되고, 이 문명은 현재에 더욱 개화해 이제 전기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어떤 에너지원을 동원해도 궁극의 에너지형태는 전기로 전화된다. 어찌 보면 현대문명은 전기에너지문명이라고 부를 만하다. 산업혁명 이래 인류는 이제 전기에너지 없이는 붕괴될 수밖에 없는 문명이 된 것이다. 이 전기를 얻기 위해 인류는 그동안 부단히 영속적인 에너지원을 찾는 데 고심해 왔다. 석탄, 석유에 이어 원자력까지 왔으나, 석탄이나 석유 등의 화석연료는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밝혀지면서 몰락의 길을 재촉하고 있으며, 원자력은 가공할 만한 재앙의 불로 인간과 결코 함께할 수 없는 에너지원으로 판명되면서 선진국들은 이미 탈핵의 시대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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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해답은 언제나 그랬듯이 자연에 있다. 연일 쏟아지는 무한의 에너지는 자연의 순환 가능한 에너지원들이다. 햇빛, 바람 등 지구라는 행성에 과거에도 존재했고, 미래에도 존재하는 지속존재의 에너지원인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석유와 원자력 등 지속 불가능한 에너지원들이 경제의 주요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답이 나왔지만 이를 선택하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자연에너지로의 전환은 필연이다. 구미 선진국들은 이미 저만치 앞서 나갔고, 원전국가들인 미국, 중국 등도 이 자연에너지원에 엄청난 투자를 늘려나가는 상황이며, 독일처럼 자연에너지원만으로 전기를 생산하겠다는 혁명적 발상마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시대가 되었다. 다만, 우리나라만 여전히 원자력에 의존한 에너지정책을 펴고 있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현재 정부나 정책 담당자들 그리고 이 분야의 전문가들은 즉각적인 재생에너지는 비현실적이고 경제적이지 않다는 토를 단다. 하지만, 목마른 자에게 물 이외의 것이 필요할까? 이건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러한 ‘자연순환에너지’로의 전환은 빠를수록 좋은 일이다.

에너지의 문제는 물과 식량 다음으로 인간의 생존을 지속시키는 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로 부각되었다.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전 세계의 통신망은 전기로 운영된다. 지구촌이 좁아지는 데 결정적으로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전기에너지의 사용에 의한 것이다. 그만큼 전기는 사회 전 분야에서 21세기 문명이 가능케 하는 키스톤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발전에너지원을 확보하는 것은 오랜 역사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엉뚱한 길을 걸어 왔고, 이제야 주요 국가들이 원자력을 넘어선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택하며 본격적으로 에너지 대체 정책으로 돌아서고 있는데, 그 전환은 느리고 매우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다. 불행한 것은 그러한 행렬의 맨 꼴찌에서 우리나라가 비비적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중 불어대는 바람의 섬, 제주. 억센 바람은 섬 주민들에게 농사는 물론 말하는 억양까지 변화시킨 생활의 장애물이었다. 하지만, 이 바람은 이제 하늘이 내린 혜택이다. 즉, 연중 제주섬에 불어 닥치는 바람은 풍력에너지원으로 제주에 최적의 에너지원이다.

최근 바보 같은 도정에서 민간사업자들에게 참여의 길을 터주는 바람에 삼다수와 같은 공공자원인 바람의 공풍권 확보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그렇잖아도 각종 혜택으로 돈을 버는 민간전력기업들인데, 공공자원인 바람이 다시 그 자본 포식자들 먹이사슬의 덫에 내몰린 것이다.

또한 태양열과 태양광 역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대체 에너지원이다. 태양광에 대한 일조량 부족 운운하는 논리는 독일의 사례에서 보듯이 이미 불필요한 논쟁임이 증명됐다. 태양광 패널을 전국의 고속도로에서 활용하면 된다는 《한국탈핵》의 저자 동아대 김익중 교수의 제안처럼, 제주도의 경우 번영로와 평화로의 분리대에만 깔아도 제주의 에너지는 어느 정도 상쇄될 것이다. 또한 대규모 해상풍력단지를 풍력 조건이 좋은 곳에 설치한다면 가까운 시기에 현재의 CO2 배출을 줄이고 석유의존도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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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의 태양광자전거도로 지난 3월 31일 세종시에서 대전 유성-세종시 간 중앙분리대에 설치된 자전거도로 개통식과 태양광설비 제막식이 열렸다. 태양광설치 길이는 자전거도로 9km 중 4.6km이다.

도시, 건축물
도시계획에 있어서도 대규모 집중건물의 신축을 줄여나가고, 기형적인 제주시의 인구분산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건축에 있어서는 고층건물을 줄여 나가야 한다. 고층건물은 그 자체로 대규모 에너지를 사용하는 애물단지 건축물이다. 자원의 한계를 고려할 때 몇 배의 에너지 소비와 환경부담을 발생시키는 대규모집적건축물은 그 자체로 환경공해이기도 하다. 자본규모가 커서 대형고층건물을 짓는 것은 자본가 마음대로겠지만, 그 빌딩이 들어서서 발생시키는 모든 부산물들(교통체증, 대규모 에너지 및 물 사용량 증대, 대형 쓰레기 배출원)은 고스란히 제주섬의 생태수용력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또한 해수면 상승과 관련해 해안지역의 매립이나 신규개발은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최근 외국인 투자나 대기업의 투자로 이루어지는 모든 건축물들은 고층을 지향한다. 제주도의 차원에서는 이런 에너지와 자원의 한계시대에 부적합한 건축물의 조성을 강력하게 불허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드림타워는 세워져서는 안되는 빌딩이다.

인구
또한 제주섬의 급격한 인구증가를 조절해야 할 때가 되었다. 아직도 인구 100만 인구가 되어야 규모의 경제가 된다는 등의 구시대적 지식정보에 기반한 신념을 노래하는 판글로스들이 여전히 판치고 있겠지만, 이미 섬의 환경용량을 돌파한 상황에서 숫자놀음으로 발전을 들먹이는 시대는 착오적이다. 섬은 어떤 땅보다 한계초과에 노출되기 쉬운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그 한계초과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결국 인간의 쪽수다. 최근 이 섬에 들이 닥치는 이주의 물결도 이제는 잠재워야 한다. 인구를 증가시키는 어떤 개발이나 유치도 결국 섬이 자원고갈을 가중시키는 요인들이다. 그러므로 이제 정책적으로 이를 판단하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이 뒤따르면 우리는 그나마 좀 더 위기를 늦출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보다 가난한 인류시대에 살 준비를 한 근본적인 시대정신의 공유와 이의 정책화가 동반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랬을 때 우리는 성장의 한계의 저자들이 예고한(이미 증명된) 한계초과의 시대에 연착륙 할 수 있을 것이다.

요르겐 랜더스의 제안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는 지속 가능성을 찾기보다 지속 불가능성을 없애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우리가 지속 가능 사회로 진입하기 위해 사회와 산업 전 영역에서 지속 불가능성의 요소들을 제거해나가는 것이 곧 지속 가능성의 사회로 진입하는 길이란 말이다.

마치며

4면이 온통 바다인 제주에서는 종종 제주도를 선박과 비교해 ‘제주특별자치도호’라는 비유적 표현을 자주한다. 그리고 도지사는 바로 이 특별자치도호의 ‘선장’으로 비견되기도 한다.

지난 4월 16일 수학여행단과 화물을 싣고 제주로 향하다. 정말 어처구니 없게 대참사를 일으킨여객선 ‘세월호’를 제작한 일본 여객 회사 ‘마루에페리’가 만든 ‘해난(海難) 처리’ 규칙을 보면 무엇보다 ‘인명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 사태를 낙관하지 않고 ‘항상 최악 상황을 염두에 두고 조치를 강구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항목에 올렸다.

그리고 ‘선장의 대응 조치와 판단을 존중하라’고 규정했다. 모든 것은 선장에게 달렸다는 것이다. 선장에게 선상에서의 최고의 권위를 부여한 것이다. 언뜻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이번 사고에 대해, 각국 해난 사고 전문가들은 좌초 후 침몰까지 140분이란 생존 기회를 놓친 것은, 승객과 선박의 운명을 책임진 선장이 이런 당연한 규칙을 지키지 않은 결과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다. 제주특별자치도의 도지사는 제주도민이 미래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다. 그는 바로 제주섬의 운명을 거머쥐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제주도를 경영함에 있어서도 이 해난사고의 매뉴얼은 유용하다. 인명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바로 제주도민의 삶을 안전하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데 이때의 안전은 좀 더 광범위하고 다층적이다. 즉, 안전한 도민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안전에는 그야말로 사회안전망이라는 직접적 안전시스템은 물론, 인간으로서의 행복한 삶을 살 권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일자리, 의료, 교육, 복지 등 제반사항이 다 포함된다. 또한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둔 조치를 강구하는 것, 이것이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이는 뒤 이은 선장의 대응조치와 판단을 존중하라는 문장과 연동되어 더욱 그 의미가 명징해지기 때문이다.

즉, 이는 선장의 소양과 깊은 관련이 있다. 즉 특별자치도호의 선장으로서 이 선박에 다가오는 암초와 같은 위험들에 대해, 충분하고 심도 있는 이해와 명석한 예지력이 확보되었을 때 가능하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지난 도정에서 우리는 이러한 선장의 판단이 자꾸 이해관계에 휘둘린다든지, 시대적 트랜드와 위기의 감지능력이 떨어지는 상황을 여러 번 목격하고 경험한 바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선장은 배의 항로와 좌표, 그리고 항해여건인 날씨와 파고, 안개 등의 각종 해상정보와 지식에 능통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제주특별자치도호의 선장은 이 배가 향후 어떻게 미래를 항해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본인이 그런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 현대의 ‘카산드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필자도 수많은 카산드라들 중의 하나일 뿐일 것이다.

그리스 아테네공과대 아포스토로스 파파니코라우 선박디자인실 연구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선장은 사고 초기에 배가 기울어진 상황이 장기간 이어질 것이란 낙관을 하는 경향이 있다. 본능적으로 최악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평소 최악을 생각하는 훈련을 한다. 이런 훈련이 안 되면 낙관론에 젖어 승객들에게 ‘대기하라’고 명령한다. 이런 최초 실수가 순식간에 운명을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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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
세월호의 선장은 긴박하게 최악의 상황을 고려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판글로스적인 판단에 기운 것이다. 결국, 이 짧은 시간동안의 판단이 수백의 인명참사로 이어지는 화를 키웠다. 제주도의 미래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제주도의 미래를 판글로스들의 근거 없는 낙관론과 경험론에 의해 예견할 때, 그때 제주도는 거대한 침몰을 당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시간에도 판글로스들과 몽매한 위정자들은 여전히 블랙칵테일 파티를 즐기면서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지껄일 것이다. /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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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2
다른 2014-07-18 13:17:18
비현실적이고도 비현실적인.. 제주도만 놓고 보면 수긍할 수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의 한 도로써 제주도를 생각한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꿈같은 얘기들. 다른 시도에 대비해 상대적 빈곤이 탈피되지 않는 한 부를 향한 갈망은 사그라들지 않을 것입니다.
85.***.***.26

정독후 2014-06-09 16:47:11
처음으로 이렇게 긴 글을 정독해 봤음.

많은 부분에 공감이 ..
175.***.***.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