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레코드] (8) 졸업 / 브로콜리 너마저(2010)

9267370278_2.jpg
▲ 졸업 / 브로콜리 너마저 (2010).

여름에 녹산로를 지날 때는 [Pains Of Being Pure At Heart]의 ‘Say No To Love’가 어울린다. 다른 도로도 그러하겠지만 녹산로는 특히 더 계절마다 다른 음악이 어울리니 음악을 잘 골라야 한다. 정석 비행장 옆을 지날 때는 볼륨을 너무 높이면 자동차가 붕 떠오를지도 모르니 조심하고. 물론 주관성이 강하긴 하지만, 어떤 길이나 공간에 어울리는 노래가 있기 마련이다. 슬픈 곡조를 뜻하는 ‘哀調’로 자꾸만 읽히는 애조로이지만 그렇다고 단조의 노래만 들을 수는 없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핸들이 꺾이며 <브로콜리 너마저>의 ‘커뮤니케이션의 이해’를 듣는다면 잘 풀리지 않는 삶을 위안 받을 수 있을까. <브로콜리 너마저>의 ‘앵콜 요청 금지’도 그렇게 그들의 노래들은 웬만해선 제주도의 도로들과 잘 어울린다. ‘커뮤니케이션의 이해.’ 대학 교정 벤치에 앉은 여학생의 손에 들려 있을 것만 같은 제목만으로는 산뜻하다. <산울림>의 김창완이 어느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기자가 군사독재 시기인 1977년에 어떻게 ‘아니 벌써’ 같은 밝은 노래를 부를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인즉 ‘밝은 날을 기다리는 부푼 마음 가슴에 가득 …… 거리에 찼네’라는 노랫말을 깊게 생각해 보라고, 밝지 못한 날이기에 새로운 날을 기다리는 시민의 염원을 담은 거라고. ‘커뮤니케이션의 이해’도 그렇다. 연인 사이의 의사소통의 오해로 말미암은 어려움을 토로 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면에는 ‘말도 안되는 말을 늘어놔 거짓말처럼 / 사실 아닌 말로 속이려고 해도 / 넌 알지 못하는 그런건가 봐 / 생각이 있다면 / 좀 말같은 말을 들어보고 싶어.’라고 호소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소통 부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음악은 함께 들으며 소통할 수 있는 도구의 기능도 지닌다. 오늘은 산록도로를 달리며 <브로콜리 너마저>의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을 듣고 싶다. ‘사랑’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면 어쩌란 말이냐. ‘브로콜리’는 순수를 상징한다. 순수의 보루인 너마저 어떻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일텐데 이 ‘순수’가 바로 정의이다. 그렇다면 시내의 도로에서는 어떤 노래가 좋은지 추천해 달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안타깝게도 시내에서는 AM라디오나 듣는 게 낫다. 동쪽으로는 삼양부터, 서쪽으로는 애월부터 FM으로 채널을 바꾸면 된다. 마음과 길이 서로 소통하며. ‘보편적인 노래’를 함께 부를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마음과 길이 서로 소통하며. ‘커뮤니케이션의 이해’를 공부할 필요가 없는 세상을 위해.


147458_167336_4545.jpg
현택훈 시인.
[편집자 주] 현 시인은 1974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2007년 <시와정신>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집 <지구레코드>와 <남방큰돌고래>를 펴냈습니다. 2005년 '대작'으로 지용신인문학상을 수상했고, 2013년 '곤을동'으로 제1회 4.3평화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연재 제목이 '눈사람 레코드'인 이유는 눈사람과 음악의 화학적 연관성도 있지만 현 시인의 체형이 눈사람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가장 밀접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