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의 제주담론] (30)
문화적인 품격과 영혼 없는 도정 그리고 천박한 경제제일주의가 투합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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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디 웡 중국 암웨이 대표가 성산일출봉 면전에 대형 암웨이 로고마크를 세우고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자, 여러분, 제주관광이 홍보되는 느낌이 드십니까? 아니면 세계적인 다국적 다단계 기업인 암웨이의 기업광고로 보이십니까?(파이낸셜뉴스 2014.5.31 사진)
지방선거의 열풍이 종반전에 이르렀던 지난 달 31일, 성산일출봉에 난데없는 대형 간판이 세워졌다. 세계적 다국적 다단계회사인 중국암웨이의 ‘Amway’라는 영문로고를 입체물로 만든, 높이 6m에 너비 20m의 대형 로고간판이 성산일출봉 전면 잔디밭 위에 세워진 것이다. 당시 이곳을 찾았던 내국인 관광객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황당해했다. 청정제주가 자랑하는 세계자연유산인 성산일출봉 가슴에 ‘Amway’라는 거대한 로고가 떡 버티고 섰으니 말이다.

세계자연유산이라는 유명세 때문에 이곳을 찾았는데, 졸지에 ‘암웨이 일출봉’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일출봉으로 오르는 계단에도 열 지어 암웨이 관광단을 홍보하는 배너 깃발 수십 기가 내걸렸다. 그리고 좀 아래쪽의 넓은 잔디광장에는 암웨이 관광단만을 위해 준비된 행사장이 마련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중국인만 입장 가능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출봉을 찾았던, 소위 ‘일반 관광객’들로부터 빈축을 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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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아고라에 ‘에스더’가 올린 사진들.
이 문제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인터넷의 힘이었다. 지난 6월 1일 성산일출봉은 찾은 ‘에스더’라는 필명의 네티즌이 다음 아고라에 “여러분!! 너무 기가 막히고 화가 나서 올립니다. 이번 주부터 대표적인 다국적 다단계 암웨이라는 회사에서 실적 좋은 중국회원들을 태운 대형 크루즈가 중국 상해에서 출발, 제주도로 옵니다. 이 행사를 유치하려고 제주도청에서 엄청 애를 썼다고 하는데, 그래도 이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제주도의 대표적인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성산일출봉 한가운데 저 간판이 웬일입니까? 제주 도청에 민원으로 전화했더니 제주도청은 전혀 몰랐다 하고 조사 중이라는 말뿐입니다. 민원 넣어주십시오. 암웨이 크루즈는 앞으로 6월 20일경까지라고 합니다. 아마 미적거리다 행사 끝나면 치워지지 않을까요? 너무 창피했습니다. 그런 회사와 떼로 몰려오는 중국인들이 대체 우리를 뭐로 보겠습니까? 가뜩이나 제주도는 이제 점점 중국화가 되어가는 것 같아서 갈 때마다 속상하고 화가 나는데요. 방송에도 제보하고 싶네요. 급한 마음에 이곳에 먼저 글을 올립니다.”라고 글과 사진(왼쪽 사진)을 올리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글을 본 네티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글은 현재 조회수 9만 5000여 건에, 9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6월 7일 현재) 또한 SNS를 통해서도 급격히 확산되면서 연합통신을 비롯한 언론매체와 인터넷신문 등도 앞 다퉈 기사로 다루기 시작했다. 

블로그 ‘시시콜콜 잡다구리’에서 활동하는 ID ‘엉슝맘’이라는 필자는 세계 자연유산 제주도 ‘성산일출봉이 암웨이의 것?’이라는 제하에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만 사정을 모르는 사람, 혹은 외국인 관광객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사진입니다. 성산일출봉 정상이 가까이 보이는 산 중턱, 드넓은 초지에 턱 하니 하얀색 대형 암웨이 간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일출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마치 성산일출봉이 암웨이 소유인 것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한국인의 자랑거리, 아름다운 성산일출봉이 도대체 왜 암웨이에 점령당했을까요?”라는 글과 사진을 올렸다.

상황이 이쯤 되니 제주도는 진화하기에 바빴다. 제주도 관계자는 “사실 이번 사안에 대해 각기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음을 먼저 알려 드린다.”라고 전제한 후 “최초 중국 암웨이 측과 인센티브 관광단 유치 문제를 진행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암웨이 측에서 칠성통 상권 방문과 제주 특산물 쇼핑을 하는 조건으로 대형 로고 설치를 요청한 것이며, 일부에서 제기하는 땅에 설치하는 그러한 내용물이 아닌, 쉽게 조립해 옮길 수 있게 만든 조형물”이라며 큰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논란이 발생해 오늘 아침에 철거하려 육지업체에 의뢰했으나, 오늘 기상악화로 못 오고 있어 그대로 놔둔 상태”이고 “육지업체가 오면 바로 철거할 계획”이라며 갑작스런 논란 확산에 당황하는 모습이었다.(뉴스 제주)

국민도 도민도 아랑곳 않는 경제제일주의자들의 민낯

그동안 우근민 도정은 관광객 1천만 명 시대의 개막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도는 2012년 내국인 관광객이 8백만여 명에 이르는 상황에서 둔화되는 조짐을 보이자, 외국인 관광객의 유치에 목을 매었다. 특히 지척의 중국인 관광객들의 제주호감에 힘입어, 중국인 관광객 유치에 공을 들인다. 마침내 그 결실로 중국의 건강식품 다단계회사인 ‘바오젠(保健) 그룹’의 대규모 인센티브 관광단을 유치하는 데 성공한다.

제주도는 이들을 위해 아예 신제주에 국내 최초로 ‘바오젠거리’라는 외국기업의 회사명을 거리의 이름으로 붙이고 새롭게 단장하여, 바오젠그룹의 제주방문과 맞추어 대대적인 개막식을 가지면서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의 여파로 2008년 54만여 명에 머물던 외국인 관광객(주로 중국인 관광객) 수는 2011년 100만여 명, 2012년 160만여 명, 2013년 233만여 명에 이르면서 연간 평균 50~100% 이상의 증가율을 보이며 가파르게 성장한다. 그 결과 제주도는 2013년 드디어 대망의 1천만 관광객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세계자연유산이라는 타이틀은 외국인들에게는 제주의 진기한 볼거리이지만, 내국인들에게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유산이기도 하다. 네티즌들의 격한 반응들은 바로 이런 내국인들의 자긍심을 훼손한 것에서 비롯된다. 쓸개라도 다 빼내어 주고 돈을 벌어야 된다는, 관광객을 유치해야 한다는 제주도정의 관광객 유치의 열정(?)은 세계자연유산의 가치와 의미를 헤아리지 못한 데서 오는 무지와 천박한 관광산업 중시정책의 결과다.

바로 이 가치와 의미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문화이며, 문화에 대한 안목과 문화의 품격인 것이다. 그런데 이번 제주도정의 정도를 벗어난 암웨이 사태는, 제주도정이 그동안 보여준 무식하고 폭력적인, 즉 자국민과 도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모든 것을 일방통행으로 해결해 온 제왕적 도백의 후안무치한 행보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지적에 아마도 우 도정은 볼멘소리를 할 것이다. “무슨 소리냐. 어떻게 유치해 온 관광단인데. 그들이 와야 제주도가 먹고살 수 있는데. 간이고 쓸개고 일단은 다 내줘야 할 것 아니냐?”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간과 쓸개를 다 내주고 나면, 사실 제주도와 제주도민들에게 남는 게 무엇이 있을까? 그래서 먹고살 수 있는 무엇이 제주도민들에게 떨어질 것인가? 우 도정은 마치 구국의 영웅처럼, 제주도민을 위한 살신성인의 태도로 일해 왔다고 항변하겠지만, 그것은 지극한 독단이요 자위적 평가일 뿐이다.

중국도 우리처럼? 과연 그들도 우리처럼 만리장성에 삼다수 로고를 달아줄까?(제주도의 상징적인 도민기업이란 측면에서 삼다수 로고를 활용해 그래픽처리를 해보았다. 이 글과 관련해 삼다수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밝힌다.)

제주도의 산업분포에서 관광산업은 70년대 이래 제주의 주력산업으로 지위를 공고히 한 상태이다. 그러므로 관광객이 한 명이라도 더 제주를 찾는 것에 반대하는 도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민들은 간과 쓸개는 제대로 챙기는 마케팅을 요구한다. 또한 간과 쓸개까지 내어주는 관광객 유치 노력을 도민들이 원한 바는 없다.

위임받지 않은 일까지 마치 도민의 기대이고 준엄한 명령처럼 말하는 도정이야말로 웃기는 짓을 하는 셈이다. 더욱 큰 문제는 그렇게 유치한 중국인 관광객들의 제주체류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이 도민 다수에게 오지 않는다는 현실을 해결하지도 못한 상태라는 점이다. 투자유치와 관광객 유치에만 혈안이 된 도정에 대한 도민사회의 인식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지역경제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수용해주는 ‘매춘적 관광’, ‘창부적 관광’을 제주도민들은 바라지 않는다.

관광의 과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없이, 죽자 사자 손님만 데려다 놓는 ‘삐끼짓’ 역시 바라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쪽수에만 연연하는 관광은 질 낮은 관광일 뿐이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그 자원을 비싸게 팔아먹지는 못할망정 싼값에라도 팔아먹으려 혈안이 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최근의 드림타워 건축허가 문제에서 보듯이, 제주도정의 행보와 이를 바라보는 도민들과의 괴리감은 크다.

‘유산’ 알기를 개떡으로 아는 행정마인드와 문화유산 관리의 꼼수

이번에 드러난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제주도의 세계자연유산 관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도지사나 시장이 나서서 강행했을 때, 이를 견제․제어할 수 있게 마련된 문화유산보존시스템이 얼마든지 무력화될 수 있음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필자는 본 제주담론의 다른 글에서 제주특별자치도가 트리플크라운이니 인증의 섬이니 하면서 제주의 가치를 국제적 인증을 통해 인정받으려 해왔고, 또한 인증이 이루어졌지만, 도의 정책당국자들은 철저하게 관광산업에 종속된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절대적 가치를 지닌 세계자연유산마저 관광 활성화라는 경제적 가치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수단화할 수 있다는 도의 태도와 입장이 문제인 것이다. 이번의 경우도 도의 그러한 기존 입장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후안무치한 문화재 테러사건이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다.

<스포츠서울닷컴>은 세계자연유산 구역에 이 같은 조형물 설치가 가능한지를 3일 문화재청에 문의했다. 그 결과 문화재청은 제주도청의 성산일출봉 조형물 설치를 허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제주도청에서 성산일출봉에 천막과 조형물 설치 등 형상 변경을 신청했다. 그러나 조형물 설치는 경관을 저해할 수 있어 하지 말라고 지난달 31일 회신했다.”라고 답했다.

그러니까 제주도청은 문화재청에 형상 변경을 신청하기 이전에 이미 조형물 제작을 시작했고, 변경 신청 후 회신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현장에 설치한 것이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성산일출봉 조형물은 제주도에서 임의로 설치한 것이다. 아마 가설물이라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해 설치한 것 같다. 그래서 바로 철거하라고 지시했다.”라고 말했다.

이 문제를 곰곰이 살펴보면 제주도정의 꼼수가 보인다. 이미 이 행사는 2012년 7월부터 10월까지 협의를 마무리 했고, 2013년 10월 3일에는 대대적으로 언론을 통해 홍보했다. 제주도는 이때에 “2014년도 해외 기업 인센티브 투어단 유치 일정을 확정한 결과 모두 3만 명에 육박하는 관광단이 제주를 찾을 전망”이라고 도내 언론에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 문화재 관련부서에서는 무려 8개월여의 시간을 다 보내고, 행사 바로 전날인 30일에야 문화재청에 조형물 설치를 위한 형상변경을 신청했다. 이는 애초부터 문화재청의 허가 유무와는 상관없이 설치를 강행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화재청은 이틀 후인 6월 1일 회신했다. 논란 속에 암웨이 대형로고 조형물은 6월 3일 철거되었지만, 이미 암웨이 인센티브 투어단의 1진이 참여한 환영행사는 5월 31일 애초의 계획(?)대로 치러졌다.

이렇게 보면, 도와 암웨이사의 약속은 지켜진 것이며, 도는 세계자연유산 보호의 제도적인 행정절차와 회신기간까지 고려한 절묘한 꼼수를 부린 것으로 보인다. 만약 아니라면, 암웨이로고 조형물 제작 이전에 도는 이에 대한 행정질의를 마쳐야 했을 것이다. 암웨이 로고조형물의 제작에만도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렸을 것인데, 도는 조형물 제작 발주 이전에 문화재청에 대한 형상변경을 위한 행정절차를 완료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행사 전날에야 질의를 했다는 것은, 회신이 ‘허용불가’로 나와도 설치물을 철거하기 위한 후속조처를 행사를 마치고 나서 조처하면 되므로, 최소한 불법 설치한 후 관광단 1진이 참여한 대대적인 오프닝행사는 가능하도록 회신날짜를 고려해 잡은 것이다. 이는 후속조처 이행시간까지 고려한 도정의 꼼수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꼼수는 이뿐만이 아니다. 문화재청의 철거명령에 제주도 관계자는 “그러나 논란이 발생해 오늘 아침에 철거하려 육지업체에 의뢰했으나, 오늘 기상악화로 못 오고 있어 그대로 놔둔 상태”라며 당장 철거하지 못하는 불가피성을 밝혔는데, 절묘하게도 하필 제작을 육지업체가 맡아 해서, 31일자 문화재청의 철거지시를 이행하려 해도 날씨 문제 등으로 3일에야 철거하게 된다. 수많은 제주도의 간판제작업체 중 저만한 로고조형물을 만들지 못해 육지업체에 맡겨야 했을까? 이는 문화재청의 철거 지시가 내려온 이후의 일정을 감안한 또 다른 시간끌기의 꼼수는 아니었을까? 

심각한 것은 세계문화유산 관리에 누구보다 엄격해야 할 관리주체인 제주도가 스스로 꼼수를 부리고 이 일을 추진했다는 사실이다. 세계자연유산은 유네스코로부터 인류가 보전해야 할 세계적 보편성과 가치를 인정받은 자연유산이다. 이제 인류는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 꼴’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고양이가 국민이나 도민들에게 세계자연유산 보호 어쩌고 하고 있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에 대해 제주환경운동연합은 페이스북을 통해 “평소엔 문화재 보호법으로 잔디밭에 들어가면 처벌받는다고 엄포를 놓더니, 행사구역으로 암웨이 인센티브단에만 개방하다니 참으로 어이상실”이라고 맹비난했다. 당연한 비난이다. 자기는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서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정은 이를 별일 아닌 것처럼 넘어가주기를 바라는 품새다.

아무리 지역경제가 중요하고 외국인 관광객 유치가 중요하다고 해도, 지켜야 할 것이 있다. 그런데 제주도정은 일개 기업의 대규모 관광단 유치를 위해, 유네스코 인증기준에 맞춘 법적․제도적 울타리를 수시로 넘나들면서 꼼수 행정을 펼쳤다. 아마도 행정에서는 이 정도쯤이야 적당히 둘러대면 될 일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번 일에 대해 어떤 이들은 “뭐, 그 정도 가지고 그래! 자연유산을 파손한 것도 아니고, 적법하게 절차에 따라 중앙의 판단을 요청했고, 주무부처에서 철거지시가 내려오니까 지시에 따라 철거도 했으니, 뭐가 문제라고 시비를 거는 거야?”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일견 이 볼멘소리가 타당한 듯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은 사건(?) 하나에서 제주도정의 문화재, 문화유산, 자연유산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의 문제점을 확인하게 되며, 유산 보존과 보호에 관한 행정편의주의적 사고방식이 구태의연하게 도사리고 있음을 엿볼 수 있기 때문에 허투루 넘길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세계자연유산처럼 주목성 높은 유산의 경우도 이러한데, 나머지 유산들의 경우는 어떠하겠는가? 특히 아직 정식 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한 비지정문화재쯤에 이르면,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안 보고도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유산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의 합작품, 구 제주시청사의 철거

2013년, 제주시 원도심의 구 제주시청사는 건립 50년이 지난 관공서 건물로, 근대건축유산이라는 건축사적 가치와 함께 중요한 비지정 문화유산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나 개인소유라는 점, 문화유산 확보를 위한 예산 문제 등의 핑계를 대면서 도와 시는 이 건물의 근대문화유산 지정과 매입을 미루었다. 그 사이 건축주는 몇 번이나 시청을 방문해 해결방안을 강구해 달라고 몇 년째 요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행정부서는 이 부서 저 부서로 책임을 미루면서 시간만 축냈다. 급기야 결국은 건축주에 의해 급작스레 철거되는 상황을 맞이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54년 만에 철거해버린 제주시 구 시청사. 옛 제주시청사는 1950년대에 지어진 건축물이다. 1955년 9월 제주읍이 제주시로 승격되자 1958년 6월 관덕정 인근 2549㎡ 부지를 골라 연면적 1707㎡의 2층 규모로 지어진 건물이다. 건축가 고 박진후 선생이 설계를 맡았으며, 시멘트 벽돌을 사용해 지어졌다. 당시만 해도 제주에서 몇 안 되는 근대건축물이었다. 1980년 3월 옛 도청사(현 시청)로 옮겨가면서 옛 제주시청사는 개인에게 팔리고 만다. 그 후 소유주는 일본의 재일교포로 넘어갔고, 이 건물은 결국 지난해 영영 자취를 감추고 만다.

서울시는 2012년 10월, 옛 서울시청사를 4년여의 리모델링을 거쳐 서울도서관으로 탈바꿈시켰다. 건축물도 보존하고 공공적인 활용방안도 마련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구 시청사는 관련학계와 문화계의 지속적인 보존요구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보존가치와 문화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던, 그야말로 돈과 직결된 일이 아니면 무관심했던 행정시스템에 의해 결국 무참히 사라져 버렸다.

당시 김태일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는 ‘제주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단 한 차례 썼던 별장도 등록문화재로 등록이 됐다. 사유재산이어서 등록문화재로 지정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행정에서 의지만 있다면 논의를 거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문제는 행정의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원칙, 의지였던 것이다. 행정은 원칙도 지키지 않았고, 그를 뛰어넘는 문화유산에 대한 가치에도 무지했으며, 또한 예산의 한계와 관행이라는 제도적 한계를 넘어서려는 의지도 없었던 것이다.

▲ 도서관으로 재탄생된 서울도서관. <출처=주간 기쁜소식>

아이러니하고 코믹한 상황은 그 이후 벌어진다. 건물이 철거되고 난 후 제주시가 그 터를 매입한 것이다. 목관아에 드나드는 관광객을 실은 대형버스들의 주차장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다. 문화는 사라지고 경제만 남았다. 정작 보존의 손길이 필요할 때는 외면했던 행정이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한 주차장 부지로는 그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이번에도 도청 공무원은 “어떤 부분에서 선의로 도의 이익과 지역경제만 생각하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긴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여전히 같은 맥락이다. 진정한 경제에 대해 무지하고, 세계적 공공재에 대한 이해와 올바른 가치평가가 결여된 항변이다.

구 제주시청사가 철거되어버린 것은 지역 내 엄청난 문화적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문화재 관련부서의 책임자는 어느 누구도 문책당하지 않았다. 그깟 낡은 건물 하나쯤 없어진다고 해서 문제될 게 하나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실제 그렇게 해도 아무 문제가 없던 것이다. 다만, 후손에 넘겨줘야 될 문화유산 하나가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제주시의 오래된 또는 의미 있는 건물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말았다. 결국 천년 도시라는 제주시 원도심에는 100년 된 건물은 고사하고 50년 된 건물도 보기 힘든 지경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세계자연유산을 둘러싸고 이런 박약한 사건이 일어났다. 제대로 된 단죄가 없기 때문이다. 공론화된 사회적 평가 역시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해난참사가 반복되는 것처럼. 이런 일을 찾고자 하면 한두 건일까? 그러므로 견제되고 감시되지 않는, 오랜 관행에 물든 고양이들에게 문화재 관리를 맡기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이번 사태는 보여준다.

그리고 뒷이야기

따져 보자. 이 글의 서두에 달아 놓은, ‘아우디 웡’ 중국암웨이 회장이 멋있게 포즈를 취한 그 사진 한 장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세계자연유산 청정이미지의 성산일출봉 턱밑에 암웨이로고를 박아 놓은 사진 한 장은 단순한 기념사진과는 그 의미와 가치가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이곳은 자연유산 보호규약에 따라 아무나 상업적 광고를 할 수도 없는 장소이다. 브랜드로 치면,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 자체가 파워브랜드다. 모든 관광객들이 방문지에서 반드시 들르는 곳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세계적 브랜드에 암웨이의 이미지를 결합시킨다면, 이는 최고의 광고효과를 지니는 또 다른 상품이 된다.

그러므로 이번 ‘암웨이 불법로고간판 설치사건’은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며, 석연치 않은 배경이 있는 듯 보인다. 도청 관계자는 이번 사태가 발생하게 된 배경을 “중국 암웨이 인센티브 관광단은 세계 최대 규모다. 이들을 제주도로 유치하는 과정에서 이 이야기가 나왔고 설치하게 된 것이다. 설치라고 하는 것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그냥 가져다 놓은 것이다. 그리고 현수막을 놓듯이 한 거다. 가능한 자연 경관을 훼손되지 않도록 조절했고, 세련되게 하려고 노력했다. 안 좋게만 해석해서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을 액면가 그대로 믿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 암웨이표 세계자연유산 성산일출봉 전경.

도청 관계자는 암웨이 측의 요구로 이 조형물의 설치가 이루어졌으며, 조형물의 제작, 설치, 철거비용까지 암웨이가 부담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가 된다. 왜냐하면 이번 조형물 설치가 그들의 제주방문에 대한 감사의 표시, 성의의 산물이라면 당연히 조형물의 제작비 등 비용 일체를 제주도가 부담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맞는 이야기다.

그런데 비용 일체를 저들이 부담하면서까지 무리하게 세계자연유산의 통제구역 안에다 대형로고간판을 세운 것은, 그들대로의 다른 계산이 깔린 것이라는 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그들대로 이번 방문을 통해 전 세계의 여타지역에선 절대 시도되거나 관철될 수 없는 아주 귀중한 세계적(?)인 홍보효과와 광고 하나를 챙긴 셈이다. 불법이고 뭐고 간에 제주도는 해 달란 대로 다 해준 셈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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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
결국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가져간다.”라는 속담은 이번에도 통했다. 더 큰 건 중국암웨이가 챙겼다. 요즘 외자유치니 뭐니 하는 일도 다 이런 모양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관광단을 유치하는 큰 공에도 불구하고 제줏말로 ‘몰명지게’ 만드는 건 바로 제주도정이다. /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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