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경률 감독 뜻 잇자…독립영화협회 25일 창립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대형 문화 홍수 속에서 소리없이 외치다

4.3 항쟁을 다룬 '끝나지 않은 세월'의 고(故) 김경률 감독. 지난해 섣달 초 이틀이니까. 고인이 뇌출혈로 세상을 떠난지 채 100일이 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마흔번째 생일상에 욕심(?) 많았던 불혹의 삶을 마감한 고인은 몹시도 추운 겨울날에 섬땅 제주에 묻혔습니다.

▲ 故 김경률 감독
채 끝내지 못한 작업들....그리고 고인이 만들고 싶었던 '제주영상도시'...그리고 4.3...

어쩌면 외로웠겠지요

그래도 한때 민요패 소리왓 회원으로서, 또 아마추어 영화감독으로서, 때론 영상인으로 고집하며 치열한 삶을 살다는 고인을 대신해 차분히 뜻을 모아온 영화인들이 있었습니다.

오는 25일 창립식을 갖는 제주독립영화협회(JIFV)의 준비위원들입니다.

최근 제주에서 올로케가 진행된다는 드라마 역작 '태왕사신기'니 관객 1000만명을 돌파했다는 '왕의 남자'이니 소위 대작 위주의 미디어영상 문화 홍수속에서 숨을 죽인채 조용히 제주의 영상문화를 일궈보자는 소리없는 참모임이지요.

제주독립영화협회는 수년간 고(故) 김경률 감독을 중심으로 제주 영화를 사랑하는 10여명이 모여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1년여 동안 구체적인 뜻을 모아왔습니다.

지난해 이맘때를 넘겨서는 제주독립영화협회 창립준비위원회 발족도 있었습니다.

물론 영화를 사랑하는 도내 문화예술인들뿐만 아니라 흔히 말하는 '보통사람들'도 더러 있는 모임이지요.

하지만 고인의 죽음으로 그 뜻은 잊혀지는가 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열정은 쉬이 가라앉지 않나 봅니다.

25일 토요일 오후 7시 아라동에 위치한 간드락 소극장에서 열리는 독립영화협회의 창립식과 사업 설명회는 그래서 그 의미가 남다름니다.

고인의 오랜 후배인 미술인 고혁진씨(40)와 테러제이(J)의 대표 오멸씨(36)가 고인의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공동 대표를 맡아, 어쩌면 쉽지 않은 독립영화협회를 이끌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독립영화협회(http://cafe.daum.net/indejeju )는 앞으로 상반기에 제주지역 영상작품에 대한 정보수집을 통해 영상 상영 및 토론회를 열어 영상문화의 저변확대를 꾀할 계획입니다.

▲ 작품 '하루'-4.3 당시 마을주민들의 처한 상황상황을 잘 묘사했다 ⓒ 고혁진 화백

4월에는 고 김경률 감독을 돌아보는 회고전과 제작및 작품 상영전도 마련해볼 생각입니다.

5~8월쯤엔 영화에 대한 이해와 '영상과 영화'사이의 공동 화두를 찾는 전반적인 영상교육도 실시하려고 합니다.

또 자리를 잡아가는 하반기쯤에는 '제주에서의 대안영상, 독립영화제 그 진정성 찾기'를 테마로 한 심포지움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도내 영상 관련 단체들과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도내 영화제의 현황과 발전방향, 영화 인프라 구축을 위한 현실적인 대처방안을 모색해보자는 것이지요.

특히 제주독립영화협회 창립은 올해 3~4월 중에 제주민속관광타운을 리모델링해 개관할 영상미디어센터와 함께 영화 및 영상문화의 저변확대를 위한 제주씨네아일랜드 창립과 더불어 자못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잘만하면 해마다 가을에 열리는 '제주영화제'와 함께 서로에게 좋은 효과도 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지요.

무엇보다 독립영화협회 출현이 인적으로나 물적으로나 인프라 기근에 시달리던 도내 영상산업에 '감초'같은 역할과 함께 물량 위주로 치닫는 영상산업의 패러다임 틈새에 1% 부족한 '무엇'을  채워넣어줄 수 있다는 믿음이 큰 때문이라고 봅니다.

때마침 제주민예총의 계간지 '제주문화예술'에서는 고인을 위한 특집 '아! 김경률 감독'을 마련해 그의 넋을 달래고 있어 마음 또한 착잡하게 합니다.

선배 김경훈 시인이 고인을 위한 추모시 '오늘 벗 하나. 4.3 영령들 곁으로 보내며'를 통해 안타까운 후배의 마음을 시 한편으로 달랬더군요.

탐라미술인협회 회원 후배 고혁진씨도 '김경률 감독의 삶과 예술'이란 제하의 글을 통해 고인에 대한 추억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소개했습니다.

4.3 항쟁의 다큐 사진을 보며 분노했다는, 그래서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는 노총각 다큐 감독은 우리곁을 떠났습니다.

"실패를 거울 삼아 다시 한번 4·3영화를 제대로 만들어 보겠다"던 젊은 영화인은 그렇게 한을 삼킨채 세상을 졌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영화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 4.3이 일어나기 직전 아이들의 세상을 평화로웠다. 끝나지 않는 세월의 한장면.

<제주민예총 계간지 '제주문화예술'에 실린 김경훈 시인의 추모시를 저자의 이해를 얻어 싣습니다>

오늘 벗 하나, 4.3 영령들 곁으로 보내며

김경훈(시인)

무사 불릅디가
무신 경 헐말이 많읍디가
아직 살아 헐 일이 많은데
아직 끝나지 않은 세월인데

무신 경 골을 말이 하그네
무신 경 외로와구네
젊은 아이 말 벗 허젠 데려 갑디가

살아 백년
죽어 천년 아니우꽈

아직 살아 반 백년 아니고
아직 죽어 반 천년 못 채워수다

지가 산 인생
지가 정한 평생
꼭 이만헌 길이로 살게 허지 안해수꽈
무사 그만헌 길이로 살게 허지 안해수꽈

무신 미련
무신 원망 그리 하그네
오늘은 추운날
영 언 아이 데려가수꽈

날 볽아수다. 몸친 가져가시믄
영이라도 줍서
우리도 아직 고를 말 하우다
우린 아직 헐 일이 남아서마씀

보내주십서
우린 여기 묻으레 온거 아니우다
살레 와수다

마당히 데려가야 헐 사람들은 놔두고
무사 일 더 해야 헐 사람을 부릅디가

이것도 영령들의 뜻이라면
더이상 무슨 말을 골으쿠과마는
원통허고 애절헌 심사 어디다 눅일 수 이시쿠과

어차피 죽은 자의 유산은
산 자들이 떠맡아야 할 몫

이제 눈물을 가리고 앞길로 나가야주마씀
다시 만날 날
머리 긁적이지 않고 당당히 봐야주마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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