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레코드] (9) 은밀한 버스 / 플레이걸(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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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레이걸의 24시 / 플레이걸(2009).

선거가 끝났다. 고승완 제주도시사 후보가 내세운 공약 중에 ‘무상버스 도입’이 있었다. 무상이라는 말은 자유와 어울린다. 무일푼 시인도 무작정 무상버스를 타고 김녕 바닷가에 갈 수 있다. 김녕 바다에 발을 적시고 나뭇가지로 모래 위에 시를 끼적일 수 있다. 물론 몇 천 원이 없어서 김녕에 가질 못하겠느냐만 복지는 평등에서 시작한다. 무상급식도 처음에는 반대 의견이 많았지만 다 함께 맛있게 먹으니 얼마나 좋은가. 햇빛도 바람도 무상이다. 머지않아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은 무상이 되리라 믿는다. 플레이걸의 노래 ‘은밀한 버스’를 들어보자. ‘어둠이 찾아온 심야에 끝없는 세계가 펼쳐지고 / 안개를 넘어서 105번버스 보이네 / …… 작은 유성처럼 밤하늘 가르며 질주하네 / …… 별빛에 물든 내 눈동자 당신의 거울에 비춰질 때 / 달콤한 속삭임 귓가에 들려와 사랑에 빠진 건 비밀’. 버스는 이야기를 만들고, 기억의 노선을 만든다. 버스는 노동자의 발이 되고, 연인의 발이 된다. 고등학생일 때, 언제나 그 시각 버스 정류장에서 서 있던 그 소녀를 잊지 못한다. 그녀와 함께 버스를 타기 위해 돌아서 가는 버스를 일부러 탔다. 버스 차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날리던 그녀의 향기. 버스는 우리의 성(城)을 향해 달려갔다. 꽃들이 만발하고, 새들이 지저귀는 길. 스무 살 넘어 실연을 하고 탔던 버스는 얼마나 무겁고 느리게 움직였던가. 작은 덜컹거림에도 나는 울컥했다. 일주도로 버스를 타고 가다 표선이라는 안내 방송을 듣고서 목적지도 아닌데 내린 적이 있다. ‘표선’은 그 소녀 이름을 닮았다. 철물점, 슈퍼마켓, 미장원 등이 오래되어 빛바랜 건물들이었다. 나는 어느새 그리움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달리고 있었다. 종점이 없는 이 버스는 멈추지 않고 달려야 한다. 어제 나는 버스를 타고 용강 가족공동묘지에 갔다. 그곳에서 엄마를 만나 오후 내내 무덤가에 앉아 있었다. / 현택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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