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레코드] (15) 보물섬 / 이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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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de One / 이규호 (2014)
 ‘처음엔 넷이었지 어디론가 떨어졌지 잎이 셋 달린 허리가 굽은 세잎 크로바’(<오메가3>의 ‘세잎 크로바’) 입속에서 궁글리며 보도블록을 걷는다. <델리스파이스>와 'YB'라는 빅밴드에서 보컬과 기타를 빼고 결성한 프로젝트는 외롭고 신선하다. <비틀즈>의 드러머 링고 스타처럼 파랗고 차가운 나뭇잎 같다. 자동차는 길 끝에 박아두고, 노꼬메 오름을 오른다. 요즘 중산간에 큰 건물을 지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런 고층 오름이 있는데, 왜 또 지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쌍둥이빌딩처럼 큰노꼬메 오름과 족은노꼬메오름이 있다. 휘파람새 소리가 들린다. 소리는 들리는데, 새는 보이지 않는다. 유혈목이는 보이지 않지만 조릿대 밑을 지나면서 잎사귀가 흔들리는 것처럼. ‘맑은 하늘의 햇살처럼 한 발자국 다가’(<사우스 카니발>의 ‘노꼬메 오름’)오는 것은 없더라도 계단을 오른다. 어떤 건축가도 따라하지 못하는 이곳의 특장은 꼭대기에 오를 때까지 창문을 열면 허공이 없다는 점이다. 1층 창문을 열면 산수국에게 인사를 건넬 수 있고, 3층 창문을 열면 산벚나무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헉헉 대는 비트를 맞추며 오르면 빨래를 널기 좋은 정상이다.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서 있으면 ‘더 오를 곳이 없으니 더 느낄 것도 없더라’(<송골매>의 ‘산꼭대기 올라가’)라는 깨달음도 얻을 수 있지만 내려갈 길이 더 아득하더라. 무덤 옆을 지날 때는 송골송골 맺혔던 땀이 마른다. 어디선가 노린재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거의 다 내려온 것이다. 자리물회 오독오독 씹으며 한 그릇 먹으면 일요일이 다 지난다. ‘삼양리 검은 모래야 / 너 또한 한라산이지, 그렇지’라고 한 정지용처럼 우리는 다시 노꼬메 오름 속에 들어가 잠이 든다. 휘파람새가 내 무릎을 코코 찍어준다. / 현택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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