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연구소, 31일 오후 문예회관서 '4·3증언 본풀이마당'

4·3 56주기를 맞아 뼈아픈 4·3의 상흔을 간직하고 살아온 4·3체험자들의 생생한 증언이 공개석상에서 이뤄진다.

제주4·3연구소는 31일 오후 1시 제주도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제3회 '4·3증언 본풀이마당'을 개최한다.

'항쟁의 역사 고난의 기억'을 주제로 한 본풀이마당은 4·3을 겪은 사람들이, 4·3을 철저히 금기시했던 풍토속에서 지금껏 내뱉지 못했던 말을 당당히 풀어내는 시간이다. 또 4·3을 겪지 못한 세대들에게는 당시 참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증언에는 모두 4명의 4·3 체험자가 참여한다.

1948년 12월 1년형을 언도받고 광주형무소에서 수형생활을 한 강서수씨(79·조천읍 북촌리)는 경찰의 비인간적인 고문과 가족 희생 등에 대해 증언한다. 강씨는 당시 자신을 포함한 3형제가 꼭같이 수감생활을 한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

48년 일본에서 돌아오자마자 4·3의 회오리에 휘말린 안정자씨(75·표선면 성읍리). 안씨는 '빨갱이 아닌 빨갱이'가 돼버린 가족과 고난의 도피생활, 예비검속으로 수감됐던 기억, 그곳에서 목격한 수장(水葬) 등을 증언한다.

강두봉씨(79·조천읍 조천리)는 조천중학교를 다니면서 몸으로 느꼈던 당시 분위기와 도민들의 움직임을 전한다. 조천리는 당시 주민 저항이 가장 강했던 곳. 강씨는 경찰이나 서북청년단의 탄압에 주민들이 온몸으로 항거했음을 증언한다.

친정이 경찰 간부 집안임에도 불구하고 5명을 잃은 강도화씨(82·안덕면 서광리)는 기적처럼 살아난 자신의 구구절절한 생애를 증언한다.

그동안 4·3체험자들의 증언은 간혹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거나, 정부가 지난해 작성한 '4·3진상조사보고서'에 인용되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직접 그들의 증언을 들을 기회는 적었다.

특히 4·3체험자들의 고령화로 시간이 흐를수록 절절한 증언을 접할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4·3연구소는 "이번 행사는 참혹하고 아픈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경험자들의 가슴앓이를 털어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연구소는 앞으로 체험자들의 증언을 영상물로 축적, 향후 조성될 4·3평화공원 사료관의 컨텐츠로 활용토록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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