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제주신화 이야기] (83) 노일저대구일의딸 여성 1

*노일저대구일을 노일저대라 부르기도 합니다. 노일저대는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속성입니다.
노일저대의 딸은 그 노일저대의 ‘딸’이니만큼 ‘노일저대’가 중첩된 개념일 것입니다. 한 세대의 이기심과 욕심이 두 세대까지 이어졌으니 이기심도 욕심도, 위험함도 그만큼 더 셀 것입니다.
*‘노일저대구일의딸’이라 쓰니 호명 자체가 이중으로 중복되는 경우가 생겨 ‘노일저대’로 줄여 씁니다. 

노일저대 소녀

어른이라면 내 욕심대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이 노일저대 소녀를 어른처럼 분장하게 한다. 노일저대 소녀는 학교가 파하면 화장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분칠을 하고 거리를 순회한다. 대상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녀는 그냥 길거리에게라도 ‘어필’하고 싶다. 남과 다르게 튀고 싶은 이 소녀들은 결국은 부모를 닦달해 얻어낸 돈으로 그것을 실현해낸다. 뉴발란스 운동화나 노스페이스 패딩을 너나없이 입고 이 소녀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몰개성의 집단적 표현으로 자기 존재를 과시한다.
조직된 힘은 무서운 걸까? 이 소녀들의 집단적 모습이 조금은 무섭게 보이고, 그래서 곰곰 생각해보면 적어도 지금과는 다른, 좀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그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선생님께 높은 평가를 받는, 착한 그녀의 또래는 화장실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분칠을 하다가 선생님께 들켜 벌을 서는 일에 신물이 난, ‘쎈’ 노일저대 소녀에 의해 뜬금없는 수모를 당하기 쉽다.
‘쎈’ 노일저대의 카리스마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친구들이 청소하는 화장실에서 버젓이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하고, 길거리를 배회하는 만큼, 그래서 선생님께 공개적으로 혼나고 벌 받는 만큼 얻어진다. 이 쎈 노일저대 소녀는, 특히 선생님에게 착하다고 인정받는 아이들을 구박의 대상으로 올려놓고 기회를 노리지만, 달리기를 잘하든 못하든, 예쁘든 밉든, 발표를 잘 하든 말을 더듬거리든, 거의 학급 안의 모두를 구박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녀는 러시안룰렛을 돌리듯 시시때때 대상들을 골라내 골탕 먹이고 왕따 시키기에 골몰한다.

체벌도 받고 선생님들께 돌아가며 욕도 한 바가지씩 들으면서도 계속되는 그녀들의 모습에 대부분의 어른들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혀를 끌끌 찬다.
하지만 그럴 것만은 아니다. 돈 돈 돈, 대학 대학 대학, 두세 개의 깃발만 저 꼭대기에 휘날리는 세상에서 우리 모두의 욕망이 똑같아졌듯, 그들의 욕망이 뉴발란스 운동화나 가부끼 분장으로 나타나는 것도 크게 이상할 건 없다. 끼리끼리 패거리와 두목을 만들고, 나와 다르다고, 내가 좀 세다고 함부로 짓밟는 것은 노일저대 소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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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일저대 처녀

노일저대 처녀가 꿈꾸는 건 완벽한, 돈 많고 멋진 남자와 만나는 것이다. 저기 어디어디에 그 백마 탄 남자가 있더라 하면, 그를 찾아 혈안이고 그에게 ‘어필’하려고 집중한다. 그런 그녀에게, 전문적인 능력을 구축하거나 내적인 수양을 쌓는 일은 따분하고 지루하니 가능한 노쌩큐지만 옷을 사고 치장을 하고 거울 앞에 서는 일은 즐겁고 재밌다. 코를 고치고 턱을 깎아내는 것도 해보고 싶다. 가부끼 분장을 하고 뉴발란스 운동화, 노스페이스 패딩의 똑같은 모습은, 자기존재에 대해 눈뜬 청년이 되어서도 대부분에게서 계속 이어진다.

시간이 지나, 왕따 시키기나 러시안룰렛 게임 따위는 자신을 도태시켜 버릴 것임을 아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녀의 그런 속성은 여전하다. 자신의 욕망에 부합되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다. 최고의 남자를, 특히 돈 많은 남자를 애인으로 삼고 싶고 자신이 정한 욕망을 실현해주기 어려운 남자들은 마음이 좀 가더라도 이내 아웃이다. 입맛에 맞는 남자는 교태를 부리며 부여잡는다. 그녀의 코는 점점 화장을 안 한 자신의 모습이 탄로날까봐 간밤에 살을 섞었던 남성들을 죽인,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되어 간다.

그녀는 지성적인 또래를 싫어한다. 그녀가 보기에는 어처구니없는, 지성적인 또래들의 당돌한, ‘자기 선택’이 그녀를 새침하게 만들고 그녀의 쾌락을 강등시켜버리기 때문이다.

노일저대 아내

노일저대 아내가 된 지금은 대만족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성공적인 삶을 평가하는 잣대가 하나로 평정되어갔기 때문이다. 그녀가 돈을 욕망한 것은 점점 더 현명한 선택이 되어 갔다. 세상의 기회는 소수의 여자들만 취할 수 있을 뿐이었고 대부분의 지성적인 아내들조차 노일저대 아내의 길을 걸어온 그녀를 대놓고 부러워했다. 

노일저대 아내는 경제력과 높은 지위, 좋은 가문에 멋진 모습까지, 이미 욕심 많은 그녀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것으로 삼은, 그녀의 남편에게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녀는 남편이 그녀의 욕망을 잘 채워주는 한 내조를 잘하는 아내, 괜찮아 보이는 이웃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많다. 자신의 욕망을 워낙 잘 요리해내는 이 아내의 힘만으로도 둘은 사이좋게 지낼 것이다. 하지만 남편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주지 못하거나 방해받는 상황이 되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길길이 날뛸 그녀의 욕망은 한순간 모든 것을 뒤집어엎고 파괴해버릴 가능성이 크다. 그녀가 좋은 아내, 괜찮은 이웃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폼 나는 남편에, 다른 사람들과 비교되는 좋은 집과 차에, 해외여행쯤 옆 집 건너가듯 소소하게 놀러 다닐 수 있는, ‘브랜드 과시’를 전제로 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욕망만을 향해 살아왔다.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도 그것뿐이다. 자신의 욕망을 향해 매진해 온 이 여성에게 사회적인 배려와 나눔, 양보나 인내 같은 것은 조상대부터 본 적도, 들은 적도, 해 본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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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일저대 어머니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삶을 살아오면서 그녀들은 점점 노일저대 어머니가 되어 간다. 
이런 노일저대 어머니의 자녀들은 자라는 동안 행복할지 모른다. 지위와 명예, 우아함, 너그러움마저도 돈으로 사버리는 노일저대 어머니는 아주 지적인 모습으로 친구들이나 선생님 앞에 나타날 수 있고, 최고의 옷과 학용품으로 자신을 치장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노일저대 어머니는 그녀의 아이들을 또래의 평범한 아이들과 어울리며 놀게 놓아두지 않는다. 남다르게 살도록 늘 자기 아이들을 빼낸다. 살아보니 돈이면 못할 것이 없다고, 모든 것을 접고 돈에 대한 욕망에 귀의한 자기처럼 살아야 최고라고 가르친다. 그렇게 노일저대 어머니는, 자신 내부의 여러 욕망을 관리하지 못하고 돈이라는 하나의 욕망에만 몰두하는 소녀, 처녀, 아내를 키워낸다. 어른 중에 어른인 어머니가 되었는데도 이 여자는 주변의 여러 것을 헤아리지 못하고 오로지 하나만 아는 아이 같은 존재로 회귀되었다. (계속/ 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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