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레코드] (16) 머리에 꽃을 / 전인권, 허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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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1987 추억 들국화 / 전인권 & 허성욱 (1987)

<메탈리카>나 <본 조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시절에 <데이비드 보위>가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에게 왔다. 글램락의 창시자인 그를 따라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서 엄마 화장대에서 푸른색 아이쉐도우를 그려 보기도 했다. ‘우드스탁’을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프로그레시브 락이 열여덟 살의 몸을 휘감았다. 사이키델릭에 빠져들었다. <핑크 플로이드>,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 <소닉 유스> 등을 허겁지겁 챙겨들었다. <산울림>, <동서남북>, <화요일> 등을 들으며 음악만으로도 살 수 있을 것 같던 시절이었다. 그 음악세계의 정신적 지주는 단연코 <데이비드 보위>였다. ‘Space Oddity’, ‘Velvet Goldmine', ‘Ziggy Stardust’, ‘The Man Who Sold The World’ 등을 코카인처럼 흡입했다. <커트 코베인>이 나올 때까지 <데이비드 보위>가 내 심장의 비트였다. <데이비드 보위>처럼 늙고 싶었다. 내가 1960년대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음악에 의해서였다. <도어즈>의 짐 모리슨처럼 언제나 취해 있는 눈빛으로 살고 싶었다. 대마초 합헌에 동조하는 이유 하나만으로 민주노동당에 가입한 적도 있다. 동성애자를 옹호하는 것도 그렇고 민노당의 당규가 가장 <데이비드 보위>스러웠다. 영화 <골든 슬럼버>에서 음악의 기억에서 사건이 시작되듯 내 사상은 음악에서 시작되었다. <데이비드 보위>의 아들로 우리는 자랐다. 영화 <더 문>을 보고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껴서 알고보니 감독 던칸 존스는 데이비드 보위의 아들이 아닌가.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와 시청 앞 <제주소년 블루스>에 갔다. 그는 <들국화>의 ‘조용한 마음’을 신청했다. 그래서 내가 답가처럼 <들국화> 해체 후 전인권과 허성욱이 함께 부른 ‘머리에 꽃을’을 신청했다. ‘그러나 지금은 / 지난 얘기일 뿐이라고 / 지금은 달라 될 수가 없’는 시대에 영화 <벨벳 골드마인>이 재개봉되었고, 우리는 스무 살 무렵처럼 취해갔다. 변하지 않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은 전쟁을 하고 있고, 학교와 군대는 여전히 번식 중이다. / 현택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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