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기자단] 용담 레포츠공원서 발견한 위령비의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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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용담레포츠공원 진입로에 예비검속 희생자 원혼 위령비로 가는 안내 표석이 설치돼 있다. ⓒ문준영
해 질 녘 오후 다섯 시, 제주시 용담2동 해안도로에 위치한 레포츠공원은 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친구들, 혹은 가족들이 함께 모여 고기를 구워먹기 위해 부산한 모습이 매우 평화롭게 느껴진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니 내 기분이 다 좋다.

‘언제부터 밥 한 끼가 이토록 소중해졌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레포츠공원을 걷는다. 공원 입구에 다다르니, 특이한 돌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나무 잎사귀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정사각형의 표석이다. 글자가 적혀있긴 한데 잘 보이지 않는다. 가려진 표석이 마치 자신을 봐달라고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나뭇잎을 치우자 표석에는 ‘예비검속 희생자 원혼 위령비’라는 생소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 ‘豫(미리 예)’, ‘備(갖출 비)’, ‘檢(검사할 검)’, ‘束(묶을 속)’ 미리 검사하여 묶어 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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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평화공원 봉안관안에 있는 정뜨르 비행장 유해발굴 사업 당시 복원사진. ⓒ문준영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예비검속은 ‘범죄 방지 명목으로 죄를 저지를 개연성이 있는 사람을 사전 구금하는 것’으로 그 역사적 연원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2차 대전이 일어날 당시 일제는 1941년 식민지 조선에 ‘조선정치범 예비구금령’을 시행했으나 해방 후 미 군정이 시행되면서 예비검속 법은 바로 폐지됐다.

하지만 1948년 10월 이후 내무부(지방행정·지방재정·지방세, 지방자치단체의 감독, 치안·소방 및 민방위 등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던 중앙행정기관)는 제주에서 대대적으로 예비검속을 실시했고, 해방 직후 인민위원회 간부, 3·1사건 또는 4·3사건과 관련해 재판을 받았거나 수형 사실이 있는 자, 보도연맹 가입자, 요시찰자, 입산자 가족 등을 무참히 학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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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의 집단학살 유해발굴 현장. <제주의소리DB>

당시 예비검속된 사람들 가운데는 좌익단체에서 활동했거나 4‧3사건 당시 입산 활동을 했던 경력이 전혀 없는 경우도 많았다. 1950년 8월 15일 서귀포경찰서장이 제주도경찰국장에게 보낸 [예비검속자 석방 상신의 건]이라는 경찰문서에는 예비검속자의 검속 사유를 ‘인민군이 제주도에 상륙했다는 무근지설을 유포한자, 과거 범죄사실이 전무하나 태도가 애매한자, 삐라살포 사건 협의자로 검거 취조중인 자, 경찰 전화선 혼신 사건 시 혐의자로 집행유예 3년 언도 후 일제 검거 시 태도가 애매한 자’ 라고 적혀있다. 또한 술자리에서 음주 중 경찰관과 약간의 언쟁이 있었다는 사실을 경찰에 반감을 가진 자로 판단해 예비검속 한 사례도 있었다.

1950년 7월7일, 제주도경찰국은 예비검속자의 등급 분류를 지시했고, 등급 분류는 각 경찰서에 내려졌다. 당시 경찰국 공문에는 예비검속자들을 A, B, C, D 등급으로 분류하도록 나와 있다. D등급이 가장 중요한 자, C등급이 중요한 자, B등급이 경한 자, A등급이 애매한 자로 규정되었지만 이러한 판단 기준이 무엇을 근거로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중요한 건 무고한 시민들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이 진행됐다는 점이다. ‘불법 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고귀한 생명이 이 땅에서 사라진 것이다. 실상 이러한 이유 보다는 관련 있는 사람들은 모조리 없애야 한다는 당시 기득권자들의 극단적 이데올로기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 “알몸 차림의 500여 명의 사람들을 배에 태우고 바다로 나아갔다가 두 시간 정도 지나 빈 배로 돌아왔다.”

1950년 6.25 전쟁 당시 제주경찰서는 예비검속령에 따라 제주읍, 애월면, 조천면 등 한라산 북부지역의 주민 1000여명을 연행해 옛 산지주정공장과 제주경찰서 유치장에 분산 구금했다. 그리고 1950년 7월27일, 제주읍 주정공장에 수감했던 사람들을 사라봉 앞 바다에 수장시켰고, 29일 서귀포경찰서 관내 예비검속 수감자 150여명도 바다에 수장되었다.

대통령 긴급명령 제9호로 비상향토방위령이 공포된 8월4일, 당시 경찰 공문서(불순분자 검거의 건)에는 현재 제주 도내에 820명이 예비검속 돼 있다고 나와 있었다. 이날 제주경찰서‧주정공장 등지에 수감되어 있던 예비검속자 수백 명이 제주항 앞바다에 수장됐고, 8월19일 밤부터 20일 새벽까지 제주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었던 예비검속자 수백 명이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공항)에서 총살된 후 암매장되었다. 같은 날 오전5시 모슬포경찰서 관내 한림면·대정면·안덕면 예비검속자 344명 중 252명도 군에 송치돼 송악산 섯알오름에서 집단 총살당했다.

이러한 예비검속자 사살은 극도로 비밀리에 수행되었다. 섯알오름 총살 현장은 우연히 주민들에 의해 발각되었지만 제주‧서귀포경찰서에 검속되어 있던 사람들의 희생 일시 및 장소 등 당시 상황은 철저히 기밀로 처리되었다.

당시 국민방위군으로 제주항 부두 파견 헌병대에서 경비 근무를 했던 장시용의 증언에 의하면 “밤 9시경에 50명씩 태운 차 10대가 부두에 도착하여 알몸 차림의 500여 명의 사람들을 배에 태우고 바다로 나아갔다가 두 시간 정도 지나 빈 배로 돌아왔다”고 한다.

1950년 9월이 되자 제주지역에서 예비검속자 총살 집행은 정지되었다. 제주경찰국에서는 9월 14일 도내 사찰관계자 연석회의를 개최하여 예비검속자 중에서 개전의 가망이 있는 자를 석방하여 국민의 의무를 다하게 하자고 의견을 모았고, 그 결과 1950년 9월 18일 제주경찰서 예비검속자 153명이 석방되었다. 이어서 제2차로 제주경찰서에 수용 중이던 48명의 예비검속자에 대한 석방도 이루어졌다. 서귀포경찰서는 9월 17일 예비검속자 전원을 석방했고, 모슬포경찰서에서는 9월 18일 이전에 전체 검속자 344명 중에서 90명을 석방했다.

#. ‘우리들이 말 못한 말들이사, 살아 있는 그대들인들 어찌 모르랴. 그대들의 가슴 깊이 묻어두었다가 아들, 손자들에게도 전하여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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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이 놓여 있는 예비검속 희생자 원혼 위령비. ⓒ문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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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양중해 선생의 시 ‘떠나가는 자의 소원’이 표석에 새겨져 있다. ⓒ문준영
위령비 근처는 조용했다. 정말이지 고요했다. 레포츠공원과 불과 100m도 채 떨어지지 않았지만, 이곳은 마치 다른 세상인 듯했다. 원혼들을 기리는 위령비와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는 비석, 그리고 故 현곡(玄谷) 양중해 선생의 ‘떠나가는 자의 소원’이라는 시가 적힌 비석이 자리하고 있었다. 선생의 시를 읽으며 그들의 소원을 잊지 말자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공원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내 가족과 친구들의 웃음소리였다. 이 웃음소리는 반세기전 나의 형제와 어머니, 아버지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산물(産物)이었다.

#. 일년에 한 번 뿐인 4월 3일, 우리가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4월 3일

4.3사건이 일어난 지 66년이 지났다. 올해는 4.3국가추념일로 지정돼 국무총리와 여야대표가 참석한 정부주관추념식으로 치러졌다. 도민들의 간절한 염원이 모여 국가기념일이 됐고,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역사가 되었다.

지난 6월 25일에는 예비검속 학살사건과 관련해 희생자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고, 4.3사업소와 업무협약을 맺은 서울대학교 법의학연구소는 새로운 개인식별 방법(SNP방식)을 통해 미확인 유해 13구의 신원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4.3희생자와 유족들에 대한 보상은 미비한 편이다. 조금씩 진전되고는 있지만 이들의 상처를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물질적 보상도 중요하지만, 이들의 명예와 유족들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들이 말 못한 말들이사, 살아 있는 그대들인들 어찌 모르랴. 그대들의 가슴 깊이 묻어두었다가 아들, 손자들에게도 전하여다오.’ 故 양중해 선생의 시 ‘떠나가는 자의 소원’중 한 구절이 다시 한 번 마음을 스친다. 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관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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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준영 대학생 기자.
건강한 아이를 하나 낳든, 한 뙈기의 밭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이 땅에 잠시 머물다 감으로써 단 한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랄프 왈도 에머슨(Emerson, Ralph Waldo)의 시 ‘무엇이 성공인가’의 한 부분이다. 눈앞에 성공이 주가 되어버린 요즘, 나의 작은 소리가 보이지 않는 곳 누군가에게 도움과 희망이 되길 바란다. /제주대 언론홍보학과 09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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