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의 제주담론] (31) 세상의 모든 일보다 급한 일, 제주어 살리기 ③
- ‘유산등재’는 국가적으로, ‘유산위기’는 지방이 알아서 해라?

현재 우리나라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건수는 엊그제 등재된 남한산성을 포함해 세계유산 11건(문화유산 10건, 자연유산 1건), 세계기록유산 11건, 세계지질공원 1건, 창의도시 3건, 인류무형문화유산대표목록 16건,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 5건(북한 4건)(유네스코한국위원회) 등이다. 적어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는 세계 어디에 내어 놔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가 왜 유구한 문화민족인지를 실감케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유네스코 등재가 될 때는 전국적인 뉴스로, 온 국민이 경축할 사안으로 이를 대내외에 알리고, 또한 그에 뒤이은 발 빠른 후속조처를 발표하며, 실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업을 통해 해당 유산에 대해 예산과 인력을 지원하는 등 이를 제도화하는 데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이른바 유네스코 특급을 타는 것이다.

특히 이런 사안에 대해 중앙과 지방 가릴 것 없이 전국의 언론방송사들도 해당 유산의 등재가치를 조명하는 대대적인 보도 붐을 이룬다. 역사문화유산일 경우는 당연히 ‘KBS역사스페셜’의 특별프로그램으로 안방을 누빈다. 자연유산은 자연다큐멘터리의 유의미한 테마가 되어, 관련 프로그램만 따로 제작한다든지 해서 모든 방송국들이 이를 방영하느라 떠들썩해진다.

하지만 2010년 제주어가 유네스코 소멸 위기의 언어로 등재되었다는 보도가 나간 이후, 제주에서는 충격과 근심 어린 방송과 언론의 보도가 봇물을 이루었던 것에 반해, 정부의 대응이나 중앙의 방송언론사 등에서는 이런 풍경을 결코 볼 수 없었다. 종합뉴스의 단신으로 처리된다든가 정규방송뉴스시간대에 잠깐 보도될 뿐 다른 유산 등재와는 확연히 다른 광경이 연출되었다. 자랑거리가 되면 가급적 부풀려 띄우고 부끄러운 일은 감추는 정부의 ‘춘추필법’의 고질병인지, 이 무거운 문화적 사건은 무시하거나 방치하고 말았다.

결국 유네스코 유산등재를 위해서는 국가적으로 노력하고, 유네스코가 경고한 사멸 위기는 지방이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모순이 눈앞에서 펼쳐진 것이다. 이런 모순의 배경은 무엇일까?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중앙정부의 온도차는 사실 새로운 일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숭례문이 화재로 소실되었을 때의 분위기와 비교하면 확연히 드러난다. 같은 문화적 위기에 대응하는 정부의 온도차는 기실 오래된 중앙정부의 못된 버릇이기도 함을 눈치챌 수 있기 때문이다. 숭례문 화재를 기억하는가?

숭례문 화재사건은 2008년 2월 10일 밤 8시 40분경부터 시작되어 다음날인 2월 11일 새벽 1시 54분경, 누각을 받치는 석반과 1층 누각 일부를 제외하고 1, 2층이 모두 붕괴되면서 종료되었다. 이 사건은 전국에 TV로 생중계되어 전 국민을 충격에 몰아넣었다.(이는 전적으로 이 사건을 문화적 충격으로 대대적으로 보도한 방송과 언론의 호들갑에서 더욱 증폭되었다.)

이는 전국적으로 안타까움과 분노를 자아냈고, 전 국민이 일체가 되어 숭례문의 화재를 애도(?)하는 분위기가 퍼져 있었다. 한마디로 전국적인 문제요, 국가가 책임져야 되는 긴급하며 매우 중대한 사건이 된다. 이 사건은 마치 대한민국의 문화적 상징물이 복구 불능으로 훼손된 것 같은 슬픔을 전국적으로 전파하기에 충분했다. 

그로부터 5년 3개월 후, 숭례문 복구작업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복구공사에 투입된 총비용은 245억 원, 연인원 3만 5,000명이 동원되었다. 신응수 대목장, 이재순·이의상 석장, 홍창원 단청장, 한형준 제와장, 이근본 번와장, 신인영 대장장 등 대한민국의 국보급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가 참여했다. 그야말로 우리가 보유한 전통궁궐건축 복원의 총역량이 동원되어 불과 5년 만에 완전히 복구되었고, 숭례문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는 자존심과 국보 제1호의 상징성을 회복했다(?).

국가가 나서서 소멸 위기의 유산을 발 빠르게 대처해 살려낸 것이다. 복구작업이 끝나고 나서도 복구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와 그에 따른 다양한 테마의 기사들이 줄을 이었고, 또한 당일에는 거국적인 행사로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기념식을 갖는 등 숭례문의 회생 또한 전국화했다. 물론, 이후 부실공사로 드러나면서 신응수 대목장을 비롯해 당시 참여했던 국보급 장인들은 부실공사에 대한 책임으로 다시 뉴스를 탄다. 물론 이번엔 불명예스런 뉴스거리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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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염에 휩싸인 숭례문, 복구 중인 숭례문, 5년 3개월 만에 복구된 숭례문 전경.

“그렇다면, 제주어는?”, “제주어에 대해선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 “아무 일도 하지 않다니, 언어는 한번 사라지면, 숭례문처럼 복원하는 것도 불가능한데?”, “글쎄! 모르지 뭐, 혹 제주어가 국보였다면, 아니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든가. 그렇지 않은 바에야 1% 국민만 아는 방언에 무어 그리 대단한 의미를 두겠어?”. 정말 그런 것일까? 정말 그랬다. 정부는 제주어의 절멸 위기의 경고에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무형의 문화라서? 아니면, 단시일 내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서? 아니면 무엇 때문인가? 무형의 문화라고 이를 살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설득력이 전혀 없는 이야기다. 오브제로서의 유형문화와 무형의 언어문화는 그 층위가 다르다고 하지만, 위기의 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개념이다. 시간이 문제라면 시작이라도 해야 할 문제인데, 정부 차원의 대응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정부는 우리나라의 언어 중 가장 고형인 중세어가 살아 있는 독특한 언어유산에 대해선 이리 야박하게 굴까? 결국 이 역시 그 고질적인 중앙과 지방의 차별인가? 제주어쯤 사라져도 한국어 전체적인 범위에서는 큰 문제가 없다는 식의 차별 말이다. 제주인들은 숭례문의 사례와 비교했을 때, 스스로 자문자답하여 이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강정해군기지를 이야기할 때는 대한민국의 영토, 국방의 문제는 국가 차원의 일, 님비현상, 이기적 지역주의 등 마치 대한민국을 배신하는 행위처럼 국가주의의 잣대로 공격하고 밀어붙이면서, 정작 이 섬의 문화정체성의 근원이 되는 언어의 절멸 위기 앞에서는 “섬 것들은 섬 것들끼리 알아서 해라?” 그것도 그 좋아하는 ‘글로벌스탠다드’의 원산지인 유네스코가 발송한 ‘절멸 위기 경고장’을 받고서도 말이다.

좋다! 1%의 인구수와 1%의 정치력만을 가진 한 줌 제주섬이라 치자. 그렇다고 절멸 위기에 당하여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할까? 1%밖에 안 되는 ‘호끌락한 섬’이지만, “당신 몸에서 손가락이나 발가락은 당신 것 아냐? 그중 하나가 잘리면 피가 나지 않고 아프지도 않을까?” 하면서, 중앙정부에 “이 문제는 유산등재 때처럼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니까 국가적 의제로 채택하고, 이를 전국적 차원의 문제로 인식시켜 나가는 게 중요하오.”라고 강력하게 대시하며 제주도지사가 대차게 주장을 편 바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는 전적으로 그동안 제주어 살리기에 대한 지방정부의 전략적 패착이다. 왜냐하면 제주어는 대한민국의 방언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 앞서 제주어를 말살시킨 주범은 바로 대한민국 정부이기 때문이다. 지난 60여 년간 표준어만을 중심으로 하는 언어정책으로 일관해 온 결과가 결국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가 나서서 이에 대한 회생의 길을 모색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제주특별자치도는 당당하게 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특별조치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4년 동안 도지사도 한번 요구한 바 없고, 3명의 3선 국회의원들 중 어느 한 사람도 이에 대해 촉구한 바 없다.

제주어의 위기는 한국어의 위기, 국가가 나서야 하는 당위

제주도에서는 유네스코로부터 ‘절멸 위기의 언어’ 경고장을 받기 이전부터, 제주어를 지역문화유산, 즉 ‘전통문화자원’으로 인식하여 ‘제주어 살리기 운동’을 벌이던 참이었다. 사실 제주어 살리기 사업들이 전개된 배경은 역설적으로 국제자유도시 출범과 관련한 특별법 제정 당시, 제주도를 뒤흔들었던 영어공용화 논란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관철을 위해 언어마저 자본주의 경제의 수단으로 인식한 몇몇 공용화론자들의 주장이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키면서 오히려 제주어에 대한 사회적 반성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어쨌든 그 결과로 제주어 보존에 대한 지역사회의 관심이 촉발되었다. 

그 결과 제주어 살리기란 말이 보편성을 지니게 된다. 즉, 그 이후 제주어는 살려야 될 당위가 된 것이다. 2007년 9월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방언에 관한 조례인 ‘제주어 보전 및 육성 조례’가 제정된다. 이 조례는 2011년 4월에 개정되는데, 2010년 12월 제주어가 유네스코 소멸 위기의 언어로 등록된 데 따른 보완이 이루어진 탓이다.

제주대학교의 국어문화원(소장 강영봉)은 2008년 ‘제주 지역어 생태지수 조사’를 수행하고 그 보고서를 작성해 국립국어원에 제출했다. 또한 제주어의 실태를 국가적으로 파악하는 연구활동을 수행하는 한편, 연구원들이 매주 필드를 돌며 지속적으로 제주어 조사사업을 수행하면서 열성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제주도는 2009년에 14년 만에 《제주어사전》 개정증보판을 발간하기도 하고, 제주발전연구원 제주학센터를 중심으로 제주어 관련 사업을 추진하는 등, 경고장을 받기 이전부터 받은 이후까지 제주어를 살리기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탐라문화제 때는 연례적으로 ‘제주어 말하기 대회’가 열리고 있으며, 민간의 제주어 보존을 위한 동호인 그룹인 (사)제주어보존회에서도 제주어 말하기 대회를 개최하는 등 예전보다 다채로운 노력들이 경주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두는 제주섬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다. 또한 위기에 대한 대처의 규모와 속도, 상황에 대한 인식이 경고장 발부 이전이나 이후나 차별적으로 괄목상대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큰 문제다. 즉, 밀려오는 쓰나미는 그 높이가 35m에 이르는데, 기껏 15m 높이의 방파제로 막다가 결국 쓰나미에 휩쓸려 멈춰 버린 일본의 다이치 원전처럼,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일회적이고 대처 또한 전면적이지 못한 데서 이 방식으로는 제주어의 절멸을 결코 막아낼 수 없다는 우려를 갖게 한다.

적어도 유네스코의 소멸 위기 4단계의 경고장은, 제주어를 모태어로 하는 제주인들에게는 거대한 쓰나미다. 이를 예산도 빠듯한 지방정부 차원에서만 해결하려는 그동안의 도정의 태도는 안일한 생각일 수밖에 없다. 적어도 이 문제는 국가적 의제로 채택하게 하고, 국가와 지역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손을 잡아 노력해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의식의 전제는 ‘제주인은 한국인이다.’라는 것이다.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는 것과 세금을 납부한다는 점만 보아도 이는 분명한 일이다. 국방부와 해군이 강정주민들의 그 처절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군기지 건설을 밀어붙일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이곳이 대한민국의 영토이기 때문이며, 그런 고로 정부의 권력의 힘이 미치는 곳이기 때문 아닌가?

그런데 “제주의 절멸 위기는 제주도민의 문제다?”라는 인식은,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제주어’는 ‘제주말’이고 ‘한국말’은 따로 있다.”라는 논리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럼 제주도는 대한민국 아닌가?”라는 질문 또한 가능해진다. 본토권력에 필요하고 유리할 때만 대한민국의 일부인 것이 아닌 바에야, 제주어의 절멸 위기는 정부 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할 중차대한 국가적 문제인 것이다. 바로 숭례문에 대한 대처에서처럼 말이다.

분명 국어학자들의 학문적 결론에 의하면, 제주방언은 한국어의 중세어 고형을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언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제주어는 ‘제주섬 사람들의 말’이고, 한국말은 따로 있다는 듯하다. 이런 태도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형평성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마치 중세처럼 제주도가 한국의 변방으로 취급받는 상황이다.

제주어는 주지하다시피 한국문화의 문화다양성의 지표이기도 하다. 그것은 마치 제주도가 있어야 전국이 성립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경우다. 그런 제주어가 소멸된다는 것은 마치 신체의 일부에 종양이 생겨 결국 신체의 일부를 유실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체의 일부를 유실당할 대한민국 정부는 이와 무관한 듯한 태도를 2010년 소멸 위기 등록 이후에도 여전히 취하고 있다.

분명 유네스코 소멸 위기의 언어로 등재되면, 통보받은 해당 국가는 그에 따른 적절한 조처를 취하게 되어 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중앙정부 차원에서 제주어를 살리기 위해 한 일이 무엇인지 필자는 아직까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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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
또 다른 당위성은 제주어 소멸 위기의 상황을 초래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의 그동안의 국어정책에 있기 때문이다. 즉, 소위 ‘표준어’라는 것을 설정해서 전 국민, 전 지역을 대상으로 국가 단위의 언어정책을 오랫동안 추진해 왔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주의의 입장에서 통일된 언어정책은 필수적인 일일 것이나, 그것 역시 지금은 재고해보아야 할 정도로 시대의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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